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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이완짹슨 Nov 05. 2020

겨울 不적응자에게, 6년 만에 찾아온 그 겨울.

따뜻한 나라에서 남은 생을 살고 싶어 하는 어느 이상주의자의 끄적임.

지하철 역사 내 액세서리 매장들을 지나치면서 장갑이 눈에 들어왔다. 무심코 지나치던 공간 속에서 오늘도 그렇게 지나치려고 했으나 겨울 예방? 차원에서 민트 초콜릿 향이 날 것만 같은 색깔의 장갑을 집어 들었다. 무심코 지나치려고 했던 이유는 혼자서 밥을 먹는 일보다 지하철 지하상가에서 천천히 쇼핑을 하면서 무언가를 사는 일이 어색해서였는데 당장의 추위 앞에서는 그런 어색함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당장 내 손이 시렸으니까.


날씨가 부쩍 쌀쌀해졌다. 2020년이 2개월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서울의 날씨가 춥게 느껴지는게 어찌 보면 당연하지만 나는 그 당연함에 익숙하지 못한 듯하다. 이제 곧 더 추워질 겨울을 어떻게 보낼지 생각하면 걱정이 앞선다. 제목에서 알아차렸겠지만 나는 스스로를 '겨울 부적응자'라고 했는데, 그러니까 좀 더 유연하게 적자면 추운 것을 무척이나 싫어한다. 뭔가 남을 설득시킬만한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예를 들어서 나는 '곱창이 싫어'라고 말하는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하다.



<겨울이 싫어서...>

그래서 상대적으로 따뜻한 나라 대만이 좋았던 거 같다. 1년 내내 여름은 아니었지만 대만에서 제일 유명한 양명산에 7년 만에 눈이 내렸다고 뉴스가 나는 나라이며, 러시아처럼 보드카를 마시며 겨울을 버텨내야 하는 나라는 아니었으니 말이다. 2014년 11월에 처음 가서 그 곳. 그리고 지금은 2020년 11월이니까 정확히 6년 만에 한국에서 겨울을 보내게 되었다. 한국행을 결심하면서도 제일 걱정했던 부분이 바로 이 겨울이라는 녀석인데 내가 싫다고 해서 이 녀석이 비켜 갈리 없으니 나는 반대로 녀석을 맞이 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불은 진작 오리털로 갈아 넣었고 담요는 보드랍고 따뜻한 녀석으로 준비를 했다.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오래된 집에 있는 보일러를 틀어보니 다행히 잔고장이 없이 돌아간다. 높이 있는 침대까지 그 온기가 느껴지지 않아서 아쉽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수면 양말까지 구매를 할 정도로 나름 대비를 했다. 2014년 겨울에는 30대 초반이었지만 이제는 후반이라고 말해야 할 나이니 말이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어릴 적 나는 어느 아이들처럼 겨울을 좋아했던 것 같다. 정확히는 겨울에 내리는 눈으로 신나게 눈사람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즐거웠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겨울이 싫어졌다. 아마도 부산에서 강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에 살면서 경험한 강력한 바닷바람 (동네 사람들은 이 바람들 '똥 바람'이라고 불렀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건 출처가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주장인데 내가 여름에 태어나서 내가 태어난 시기를 좀 더 선호하거나 잘 적응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 보았다. (참고로 나는 6월 25일에 태어낫는데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 또한 생일과 선호하는 계절이 일치하는지 한번 확인하는 것을 조심히 제안드려본다)

 

그 외에도 추위 때문에 경험한 안 좋은 사례들을 몇 가지 더 적자면 학창 시절 겨울에 피부가 하얗게 일어나는 것 또한 싫었다. 지금이야 나름 좋은 화장품에 보습제나 미스트로 해결이 가능하지만 그때는 그런 것도 잘 모르는 소년이었기 때문에 해결 방법을 찾는 것보다 그 상황을 계절 탓을 하며 미움이 쌓인 듯하다. 그리고 샤워를 하고 나오면 몸에 묻는 물기를 닦아도 느껴지는 '차가움' 은 지금도 적응이 안 되는데 영화 '남한산성'을 보면서 20세기 후반에 태어나서 참 다행이구나 싶다.. 이것저것 적고 보니 싫은 이유가 참 많은 거 같다.


겨울이 싫어서 한국을 들릴 일이 있을 때는 늘 겨울을 피했고 (여름옷을 입고 한국에 도착하는 겨울옷으로 갈아입는 벙거로움도 싫었고), 친동생이 12월에 결혼하다! 라고 연락이 왔을 때 '왜 하필' 12월이냐?' 고 묻고 싶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예식장 빈 날짜가 없었다는 말에 친동생 앞날을 막는 친형이 되고 싶지 않아서 원망도 못 했던 참 어리석을 정도로 겨울이 싫었다.

그런데 사람이 참 간사하다고 느껴지는 이유 중에 하나가 더운 곳에서만 살다 보니 가끔은 추운 것이 그리울 때도 있더라는 거다.



<일본에서...>

한 번은 대만에서 지인을 만나러 비행기로 3시간 거리에 있는 일본 오사카에 간 적이 있었다. 그때가 3월 초였는데 그때 당시 내가 거주하던 가오슝은 겨울 같지 않은 겨울(영상 10도만 되어도 겨울이라고 하는 곳)이 지나고 슬슬 따뜻함과 더위가 시작되던 시기였다. 그에 반해 일본의 3월은 여전히 추웠다. 한국에서 가져온 겨울 코트를 오랜만에 입었지만 속으로 파고드는 추위까지는 감당하기 힘들었고 내복이라도 사 입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2박 3일 일정에 수화물도 없이 온터라 포기 하고, 오랜만에 여행이 주는 분위기에 취해 혼자 팔짱을 낀 채로 거리를 걸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코 속으로 들어오는 차가운 바람이 따뜻한 우동 한 그릇을 생각나게 만들었다. 나는 '지도에 나온 맛집' 따위는 찾아볼 겨를도 없이 눈 앞에 보이는 곳으로 들어갔다. 한자가 적힌 하얀 커튼을 제치고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목재로 만들어진 미닫이 문을 열었다. 미닫이 문의 대부분은 유리창으로 되어 있어서 안이 훤하게 보였는데 문을 열자마자 우동 집답게 그곳에서 발생되는 따뜻한 열기가 나를 감싸주었다. 그리고 순간 안경이 뿌옇게 앞을 가려졌는데 그때 나를 맞이하는 주인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말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환영하는 듯한 그의 말투에 재빨리 자리에 앉았다.

일본답게 1인이 부담 없이 앉을 수 있는 자리들이 많았다. 기왕이면 사장님이 가락국수 만드는 과정을 볼 수 있고 완성된 가락국수를 제일 빨리 받을 수 있는 바에 앉았다. 가락국수는 주문한 지 1분도 채 되지 않아서 나왔는데 그때 먹었던 가락국수 한 그릇에 나는 몸을 녹일 수 있었고 또다시 거리를 걸을 수 있었다. 그때 기억이 내 삶 속에서 흔치 않아서였을까?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미닫이 문을 열 때 느꼈던 열기와 주문한 가락국수 위에 살짝 뿌려진 튀김 부스러기가 가락국수 국물에 불어 점점 커지던 모습까지 말이다. (지인보다 가락국수가 더 기억에 남아 있는 여행이었다)

<국물이 조금 짭조름했지만 허기와 추위를 달래기에는 충분했다>



<다시 대만에서...>

대만에서는 우동은 아니지만 우동과 비슷한 소고기면을 한국의 짜장면처럼 쉽게 맛볼 수 있는데 내가 가오슝에서 자주 들리던 소고기면 집에서는 먹으면서 땀을 한번 흘리고 계산하고 나와서 바깥 더위에 한번 더 땀을 흘렸었다. 그에 반해 일본에서는 아주 오랜만에 따뜻한 음식으로 배를 채운 후 내 입에서 나오는 따듯한 입김과 거리에 흩어져 있는 차가운 공기 사이에서 '우동 한 그릇이 주는 겨울 속 행복함' 을 느꼈다. 그때 기억을 다시 돌이켜 보면 겨울을 싫어하는 것이 맞나?라는 의구심이 나 자신에게 들기도 한다.


<일 년 내내 여름이면...>

생각해 보면 일 년 내내 여름보다는 사계절이 더 좋구나 싶은 것이, 일 년 내내 더우면 일단 일 년 내내 똑같은 옷만 입게 된다. 사람이라는 동물은 적응을 워낙 잘하는 동물이다 보니 한 겨울에는 더욱 부지런(곰도 겨울잠을 위해서 부지런해지는 것처럼)해지는데 반해, 여름에는 쉽게 게을러지는 듯하다. (그래서 동남아 사람들이 한국인 시각에서는 다소 게을러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나는 어느 순간 더위를 즐기면서도 일면 내내 똑같은 옷만 입어야 한다는 사실에 조금 싫증이 날 때도 있었다. 한국에서 대만 오기 직전에 구매한 겨울 코트는 언제쯤 입어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대만의 날씨는?> 

대만 갈 건데 '거기 날씨 어때?" 대만에 있을 때 정말 많이 받은 질문이다. 이는 물론 계절마다 다르다.

크게 '타이베이를 북부' , '타이중을 중부' , '타이난부터 가오슝을 포함한 최남단 컨딩까지는 남부 지역' 으로 날씨가 확연히 다르다. 우선 남부 지역의 경우는 겨울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다만 12월과 1월에는 온도가 영상 10도 전후로 내려가는 시기가 한 번씩 찾아오는데 이는 한국에서 한파 혹은 폭설(제주도 공항 통제 때) 때 대만의 온도가 같이 훅 떨어진다. '영상 10도' 한국인들에게는 그저 쌀쌀한 정도일지 모르겠지만 한 여름 40도 가까운 더위에 적응해 있는 현지인들에게는 30도나 떨어진 온도가 상당히 춥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대부분의 집들은 시원하게 지내라고 대리석 바닥으로 시공을 해 놓아서 여름에는 그리 시원한 바닥이 이 시기에는 한기가 올라오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이 시기에 영상 10도 전후임에도 불구하고 '저체온증 사망' 환자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리고 북부 타이베이의 경우는 최대 영상 3도까지 내려가는 것을 경험한 적은 있다. 앞서 말했지만 양명산에 눈이 내리면 뉴스가 나오는 나라이다. 그리고 혹여나 0도까지 내려가면 언론에서는 더욱 난리가 난다. 영하로 내려가는 일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가오슝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목도리'와 '털모자'를 백화점이나 거리에서 판매하기도 한다. 그래서 연말에는 나름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나는 지역이다.

이에 반해 가오슝은 영화 제목처럼 '8월의 크리스마스' 같다. 사람들은 여전히 반팔을 입고 있고 슬리퍼를 신고 다니고 있다. 최남단 '컨딩에서는 여전히 서핑'을 즐기는 현지인들과 외국인들을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내가 살아본 적 없는 타이중은 1년 내내 덥지도 춥지도 않은 제일 평범한? 날씨를 유지하는 지역이다.


그래도 이 시기에 좋은 점이 있다면 상대적으로 모기나 바퀴 벌레 같은 녀석들이 눈에 덜 띈다는 것이다. (여름에는 사람 잡아먹는 모기는 고사하고, 하수구에서 쏟아져 나오는 바퀴벌레는 정말 상상도 하기 싫을 지경이다) 이것을 자세히 묘사하지 않는 이유는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의 정신 건강을 위함이다. 물론 나의 정신 건강도 포함이다.

<가오슝에서 배로 5분이면 도착하는 '치진 섬' 이곳에서는 12월에도 서핑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 뭐 나의 그러한 것들에 대해 마무리하면서 -   

겨울이 싫은 사람처럼 적기는 했지만 생각해보면 나는 내심 다가오는 겨울을 즐길 준비를 하고 있다.

대만 사람들은 스키를 한번 타기 위해서는 '해외여행'을 떠나야만 하는데 반해 나는 차로 2 ~ 3시간만 달리면 스키를 탈 수 있고 그동안 쌓인 먼지만 털어내던 겨울 코트도 실컷 입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차가운 날씨에 먹는 가락국수 대신 '라면 한 그릇의 행복'과 '뜨아' 한잔의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한 두 번쯤 찾아오는 '기록적인 한파'가 나를 다시 '대만에 가고 싶어'라고 말하고 싶게 만들지도 모르겠지만 그 또한 괜찮을 듯하다. 이 겨울이 지나면 또다시 따뜻한 봄이 올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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