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타이완짹슨 Jan 03. 2021

'대만에서' - 쉐어 하우스를 운영하다. ('위기'편)

가오슝을 떠날 것인가? 말 것인가? 사이에서.

2016년 여름. 쉐어 하우스 1세대들이 이직과 귀국이라는 각각의 이유로 떠나며 생긴 빈자리는 새로운 입주자들로 채워졌다. 다행스럽게도 새로이 입주한 친구들은 큰 어려움 없이 한 공간에 녹아들었고 그렇게 첫 일 년이 지나가고 재계약 시기가 다가왔다. 재계약에 대해서는 별 다른 고민이 없었다. 나도 그렇고 새로운 입주자들도 잘 지내고 있었으니 재계약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집주인을 만나서 재계약에 사인을 할 때 '꽤나 잘 운영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짜릿함' 이 느껴졌다.



<재계약 직후 찾아온 위기> 

그러나 재계약이 있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대만 회사 본사에서 나를 찾았고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을 듣게 된다. 그들은 내가 이제 타이베이로 올라오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쉐어 하우스 운영하면서 찾아온 첫 번째 위기였다.'


- 계약 해지와 유지 사이 - 에서 고민하다.

회사에서는 내게 생각할 시간(타이베이 근무 여부)을 준다고 했지만 사실 선택권이 없었다.

안 가면 퇴사? 외에는 답이 없었다. 회사에서 급여를 받고 심지어 외국인 근로자로서 상주할 수 있는 비자와 의료 보험까지 책임져 주는 회사의 요구를 '쉐어하우스 운영'이라는 명분으로 버틸 필요는 없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셰어 하우스는 내 공간을 같이 사용하는 것이지. 직업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결국 나는 타이베이로 간다는 전제하에 다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우선 중도 해약을 하게 될 경우를 생각했다. 보증금은 월세 2개월분이었는데 전액 못 돌려받으면 약 150만원 정도의 손해가 있겠지만 깔끔하게 마무리는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 나와 같이 살고 있던 나를 믿고 입주해 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다. '내가 떠나면 이들도 떠나야만 했다' 특히나 직장이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보위는 이제 이곳에서 슬슬 적응하던 시기였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내가 살던 방에 누군가 와서 사는 것이었다. 기왕이면 나의 역할(공용 공간 정리 및 청소 등)까지 해 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했다.



- 타이베이로 이사를 준비하다 -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나는 현실을 직시하고 회사에 타이베이행을 알렸다. 달리 선택권도 없었지만 대만에 온 이후로 가오슝이라는 도시에서 3년 넘게 거주했기에. 대만이라는 나라를 알기 위해서라도 변화는 필요했다.라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7번째 이사(가오슝 -> 타이베이)는 정말 우여곡절이 많았다. 아무래도 지역이 달라서 낯선것도 있었지만 수도의 월세는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았기에 원하는 예산에 입맛에 맞는 집을 찾기란 무척이나 어려웠다. 현재 방이 3개 있는 쉐어 하우스 월세와 비슷한 예산으로도 타이베이에서는 한 2개 있는 집도 구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한 번은 구두상으로 입주(한국으로 돌아가는 분에게 양도받기로 함) 이야기가 끝난 집을 계약하러 올라가는 기차 안에서 다른 사람과 양도 계약을 마쳤다. 문자 한통을 전달받고 허탈해 한적도 있었다. 그렇게 나는 가오슝과 타이베이를 세 번이나 오고 간 끝에서야 겨우 생활할 집을 구할 수 있었다.



- 대만 아빠와 아들 - 

우여곡절 끝에 타이베이로 이사를 확정 지었고 쉐어하우스는 양도 없이(할 사람도 없었지만) 계속 내 명의로 유지하기로 결정했으니 빠르게 새로운 입주자를 구해야만 했다. 처음에는 믿을만한 사람이 필요했기에 아는 사람들 위주로 수소문을 했지만 그것도 여의치는 않았고 나는 결국에 또다시 인터넷에 광고를 해야만 했는데 그때 '대만 아빠'를 만났다.


아직도 그들과의 첫인상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그들과 만난 장소 때문이었다. 보통 집을 보러 오는 경우에는 1층 로비(대만 아파트들은 대게 호텔처럼 되어 있다)에서 기다리고는 하는데, 아빠는 로비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바깥쪽 그것도 쓰레기 분류장 앞에서 고개를 숙인 채 서성이고 있었다. 그때가 밤에는 약간 쌀쌀해지는 11월 말이었다. 그가 고개를 들었을 때의 그 눈빛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의 눈에는 알 수 없는 사연이 가득해 보였다. 측은함과 동시에 옆에 해맑게 웃고 있는 8살 아들을 보면서 왠지 믿음이 느껴졌다.

입주 조건과 일정 등 이미 광고에 게재된 내용이었지만 형식적으로나마 확인을 하였다. 그리고 나는 '세상 모든 일이 신나 보이는 8살 꼬마 아이' 에게 이름을 물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을 불러주며 말했다. " 짜이찌엔(또 만나자)"


사연이 많아 보이는 아빠에게 별 다른 질문은 하지 않았다. 내게도 그다지 시간이 많지 않았기에 그저 혼자서 아들을 키우는 아빠의 책임감을 믿기로 했다. 그리고 그들은 내가 떠난 자리에 입주를 마쳤다. 새로운 식구가 된 것이다.  



- 기존 입주자들과 '아빠와 아들' 사이에서 - 

사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뭔가 좀 어울리지 않는 조합? 사실 내 입장에서는 이런 부분이 좀 걱정이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내가 믿음이 가는 것도 중요했지만 무엇보다 같이 사는 사람들이 잘 맞아야 하니 말이다.

그동안 내가 생각했던 셰어 하우스라고 하면 TV 시트콤에 나오는 젊은 청춘 남녀(1세대는 나를 포함해서)들이 모여 살거나 대게는 싱글 라이프를 즐기는 사람들이 함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더욱 그랬던 거 같다. 그런데 나의 걱정은 그저 기우일 뿐이었다.


- 내가 떠난 후 아빠와 아들이 입주를 하다 -

다행히 믿고 떠날 수 있는 상황 속에서 나 또한 마음 편하게 이사를 할 수 있었다. 고양이들도 데려가고 싶었지만 내가 지내게 될 (일곱 번째 이사이자 그곳 또한 큰방은 한국 여행객들의 게스트 하우스, 작은 방들은 나 같은 객지인들을 위한 쉐어 하우스였다) 곳은 고양이들을 들일 여건이 안 되었고 고양이들 또한 잦은 이동 자체가 스트레스일 수 있었기에 이곳에 두고 가는 것이 옳았다. 게다가 기존 입주자 친구들도 고양이를 좋아했고 조금 슬픈 이야기지만 고양이들도 나보다? 다른 입주자들을 더 잘 따르고는 했다.


그리고, 나는 1 ~ 2개월 간격으로 타이베이와 가오슝을 오고 가며 아파트 공과금 및 관리비를 납부하고 그들과 식사를 하며 처음에 나누지 못 한 사연들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사연 많은 아빠와 아들, 그리고 고양이 집사 '보위'>

이 둘은 어울리는 듯 아닌 듯 은근히 잘 어울렸다. '보위'는 퇴근 후에 집에 오면 피곤할 법도 한테 어린 아들 녀석의 이야기 동무가 되어 주기도 했다.


<8살 아들의 생일날. 나는 아이가 좋아하는 팽이를 선물로 사주었다. >

나중에는 8살 아들에게 같은 아파트에 사는 또래 친구들이 생겨나는 바람에 어느 순간 쉐어 하우스는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어 버리기는 했지만 나는 그런 모습을 걱정보다는 흐뭇한 삼촌의 시선으로 지켜봤다. 그렇게 쉐어 하우스는 한 번의 위기를 넘긴 후에 새해를 맞이할 수 있었고 나 또한 빠르게 타이베이 생활에 녹아들 수 있었다.




- P.S -

<쉐어 하우스 사는 가오슝 총각 'NICK'의 이야기>

애매하게 공실이 발생하던 시기가 있어서 마땅히 일정이 들어맞는 입주자가 없어서 속이 타던 찰나에 NICK은 그날 전화를 받고 그날 밤 곧바로 입주를 했다. 자기 자신을 국립대 법대생이라고 소개하던 NICK은 입주하던 날 그 자리에서 한 손으로 잡기 힘든 돈뭉치를 꺼내 보이며 2개월치 월세를 완납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의 진짜 직업은 카지노 겜블러였다. 내가 만난 입주자 중에서 제일 예측 불가한 캐릭터이기도 했다.

나는 가오슝에 부모님이 있음에도 굳이 이곳 쉐어 하우스를 찾아온 NICK의 선택 이면에는 그의 일탈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2개월치 월세를 완납으로 받은 나는 그저 조용해질 수밖에 없었다.


NICK은 사람들의 배려 속에 고마움을 느꼈나 보다. 처음에 2개월만 살고 싶다고 입주를 했던 NICK은 2개월이 끝날 무렵 한 달만 더 살겠다고 해서 나는 다른 입주자들의 입주 일정을 조정하면서까지 그에게 한 달을 더 허락했다. 그리고 그 한달 또한 끝날 무렵에는 그냥 계속 살고 싶다는 의사는 나타내었다. 사실 닉이 계속 살고 싶다는 의사 표현에 대해서는 무척이나 고마웠지만 나는 내심 그가 연장 없이 떠나기를 바랐었다.

이유는 닉의 사생활 때문인데 아무래도 겜블러라는 직업? 특성상 야간에 활동하고 낮에 자는 경우가 많았다. 서로의 직업까지 같을 순 없지만 생활 방식이 다르면 아무래도 다른 입주자들이 불편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쉐어 하우스에 살면서 NICK에게 여자 친구가 생겨버렸다. (잘생기고 돈도 많으니 당연할지도) 처음에 한두 번 들리던 여자 친구는 어느새 우리 집의 식구가 되어 버리면서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셰어 하우스에 커플이 있으면 알게 모르게 불편한 상황이 발생을 하기 때문이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는 그저 이곳에서 편암함을 느껴서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미안하지만 이제는 나가 달라.라고 통보를 할 수밖에 없었다. 

좋은 만남 이면에는 불편한 이별도 있더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