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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기획 Jul 12. 2019

제1화 : 개념이 인식을 지배한다

앞후니까 꼰대다


일단, 질문하나 던지고 시작하자. 요즘 사람들이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뭘까? 바로, 미세먼지 농도를 체크하는 일이라고 한다. 더운지 추운지는 뒷전이고, 미세먼지 농도를 체크하는 일을 우선시 한다. 미세먼지 농도를 체크하는 것은 화장실을 가고, 물을 마시는 것만큼 우리의 하루를 지배하는 패턴이 되었고, 미세먼지라는 단어는 일상 대화 속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가 되었다. 불과 1-2년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사실 미세먼지는 수십 년 전부터 있었다고 한다. 다만, 우리의 인식 속에 어떤 개념으로 자리잡지 못했던 것뿐이다. 그러다 미세먼지가 일급 발암 물질로 지정이 되고, 미세먼지 농도를 의무적으로 공표하는 법이 마련되면서, 미세먼지는 사람들의 인식 속에 하나의 개념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이때부터일까? 실제 미세먼지 농도가 나빠진 것도 있겠지만, 사람들이 미세먼지에 민감해지기 시작했다. 각종 매체들도 앞다투어 미세먼지 관련 뉴스를 비중 있게 다루면서 대중의 관심을 증폭시켰다. 그러면서 미세먼지에 대한 우리의 불안감도 더욱 커졌다.


이 지점에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해본다. 미세먼지의 유해성 여부를 떠나서, 미세먼지라는 개념이 우리의 인식속에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좀 더 민감해지고 신경쓰는 것은 아닐까하고 말이다. 미세먼지라는 개념에 대해서 몰랐다면, 그냥 '공기가 안 좋은가 보네’ 하고 넘어갔을 일이 이제는 ‘미세먼지가 어떠네 저떠네’ 하고 한 마디쯤 해야 넘어가는 시대가 되었다. 세상이 미세먼지, 미세먼지 하니까 나도 모르게 지나칠 정도의 관심과 불안감이 생긴 것인지도 모른다. 


중2병이라는 말이 있다. 딩크족이나 오래전 부모님들에게는듣.보.잡 일지도 모르는 이 단어는 중딩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에게는 에이즈보다 더 무서운 병이라고 한다. 아직까지 뚜렷한 처방이나 대처방법이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 치유되는 병이라고는 한다. 하지만 그 시간이 너무나 고통스럽고 공포스러워서 모든 부모들이 피하고 싶은 병이기도 하다. 중2병의 주요 특징으로는 말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방문을 쿵 하고 세게 닫으며, 질문에는 무응답이 기본이요, 짜증은 부가 서비스라고 한다. 


나는 여기서 또 이런 딴지를 걸어본다. 중학교 2학년이라는 시기를 전후로 사춘기가 찾아오거나, 혹은 어떤 질풍노도의 시기가 찾아오기 마련인데 누군가 중2병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내서 이 병을 키운 건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냥 지나갈 수도 있는 시기인데, 중 2병이라는 개념에 매몰되어 중 2가 되면 으레 걸려야 하는 병인 것처럼 생각하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다. 또한 중2병이라는 확실한 핑계를 가지고 중2가 된 것이 무슨 벼슬이라도 하는 것처럼 더 거세게 반항하고 저항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다. 나아가 중2병이라는 개념이 알려지고, 확산되면서 부모들이나 사회가 중학교 2학년 모두를 중2병이라는 프레임으로 바라보며 매도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왜 당연한 것에 딴지를 거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 내가 던지고 싶은 질문이 있다. 



‘우리는 너무 쉽게 사회가 만들어 논 개념에 매몰되어, 그 개념이나 프레임 안에 생각을 가두는 것은 아닐까?’ 


인지적 편향일 수도 있고, 남들이 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에 쉽게 동조하는 경향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 번도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왜 꼭 그래야만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질 필요는 있다. 관련해서 나는 '꼰대' 라는 개념도 알게 모르게 선배나 상사의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세뇌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꼰대의 어원은 다양하다. 번데기의 사투리인 '꼰데기' (주름이 많은 어른)에서 왔다는 설도 있고 프랑스의 백작을 뜻하는 '콩테'에서 왔다는 설 등이 있다. 하지만, 주목할 만한 사실은 그 어느 단어에도 부정적인 의미는 없다는 것이다. 이런 단어가 어쩌다가 지금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추론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지금은 회사나 사회에서 고압적이거나 고집이 센 누군가를 비하하는 의미로 씌이고 있다. 여기까지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다.


‘재미가 있었을까? 그들만의 은어가 좋아서였을까?’ 


꼰대라는 단어의 사용량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고, 결국 지금은 그 외연의 크기가 도를 넘어섰다. 조금만 쓴 소리를 하거나, 나랑 다른 생각을 이야기하면 '꼰대'라는 이름으로 매도하기 시작했다. 꼰대라는 이름은 점점 부정적인 키워드이자 똥 보다 못한 타이틀로 자리 매김 했고, 이 시대 직장인들, 특히 요즘세대들이 기피하는 단어 1순위가 되어버렸다. 이에 따른 부작용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기성세대들도 요즘 세대들 눈치를 보며 꼰대 소리를 들을까봐 신경이 쓰여서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 


개념은 인식을 지배한다고 했다. 인식은 생각을 지배하고, 생각은 행동을 지배한다. 그래서일까? 꼰대라는 부정적인 개념에 갖힌 요즘 세대들은 꼰대를 기피하고 어려워하기만 한다. 그래서 나는 요즘 세대와 기성세대의 소통과 화합의 시작이 꼰대라는 개념을 버리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진짜 꼰대 같은 인간들도 있다. 배려심이라고는 눈꼽 만큼도 없고, 사람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대하며, 공과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자기중심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꼰대들은 지탄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선배라서, 상사라서, 팀장이라서 그 자리에서 해야할 말, 필요한 말을 하는 것까지 같은 범주로 싸잡아 비난하는 현실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꼰대가 아닌 상사, 꼰대가 아닌 선배, 꼰대가 아닌 멘토나 스승으로 개념을 전환하고 인식을 바꾸는 것에서부터 관계개선이 시작될 것이다. 상사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꼰대라고 낙인 찍고 사회악이나 조직의 주적으로 몰아세우며 기피하는 일은 막아야 한다. 


습관처럼 ‘꼰대 같네’, ‘꼰대네’, ‘꼰대인정’이란 말을 쓸 것이 아니라, 혹시 내가 꼰대라는 부정적인 개념에 매몰되어 일방적으로 상사를 바라보는 것은 아닌지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꼰대도 상사이기 이전에 인간이고, 그들도 오래 전에는 요즘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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