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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기획 Nov 09. 2019

주유소습격사건, 끼어들땐 깜빡이  
좀 키자

상대의 마음을 얻는 언어  

강의 회수가 부쩍 많아진 요즘, 서울, 부산 같은 대도시뿐만이 아니라 제천, 파주, 보령 등과 같은 지방 강연도 많아졌다. 기차나 버스 등의 대중교통 닿지 않는 곳이다. 어쩜 그리 연수원들을 산속에 꼭꼭 숨겨서 지어 놨는지, 그 숨은 의도(?)는 잘 알겠지만 나처럼 강의하는 사람에게는 여간 곤욕이 아닐 수 없다. KTX나 버스를 타고 편하게 이동하고 싶지만, 여의치 않아 대부분 차로 이동을 한다. 그러다 보니 차로 이동하는 거리가 늘어났고, 기름값 한 푼이라도 아껴보겠다고, 주로 셀프 주유소를 이용하고는 한다.


어느 날인가 강의 시간에 촉박하게 이동하는데, 기름이 엥꼬 일보직전이다. 최근에 고속도로 한복판에 차를 세워본 경험이 있는지라, 공포감이 엄습해 온다. 일단 주유소부터 들어가고 본다. 다행히 선호하는 셀프 주요소다. 급하게 주유구를 열고, 경유를 선택하고, 주유를 하려고 주유총을 빼든 순간이었다. 내가 주유를 하고 있는 주유기 반대편에서 갑자기 어떤 여자의 머리가 튀어나오더니 이렇게 묻는다.


“휘발유랑 무연 휘발유랑 같은 건가요?”


진짜 순간 훅 들어왔다.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다. 머릿속에는 온통 빨리 주유하고 출발할 마음밖에 없었는데, 너무 깜짝 놀라서 들고 있던 주유총을 떨어뜨릴 뻔했다. 다른 곳에 신경을 쓰고 있어서 그 여자분이 갑작스럽게 말을 거는 것도 놀랐지만, 순간 나보고 ‘왜 경유차에 휘발유를 넣냐’고 이야기하는 줄 알고 더 놀랐다. *선택적 주의가 발동되면서 ‘휘발유’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뭔가 잘못되어 있는 줄 알았던 것이다. 다행히 내 손에 들려있는 것은 휘발유 총이 아닌 경유 총이었다.


정신 차리고 다시 보니 반대편 여자분은 나보다 더 놀란 눈치였다. 자세히 보니 앳댄 여자분이었다. 내가 뭐라고 하셨냐고 다시 묻자,


“제가 오늘 차를 처음 가지고 나왔는데요… 남자 친구가 휘발유만 넣으라고 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휘발유는 없어서요…그래서 혹시 무연휘발유와 휘발유가 같은 건지 해서요…”


질문이 하도 귀엽기도 하고, 그 심정이 이해가 가기도 해서 웃고 넘어갔지만, 그 상황에서 꼭 그렇게 훅 들어왔어야 했나 하는 찜찜함(?)은 남아 있었다. 어쨌든 시간이 없어서 다시 강의장으로 급하게 차를 몰고 가는데, 나보다 더 급한 사람이 있었는지 내 앞에서 깜빡이를 켜고 끼어들기를 시도한다. 그때였다. 뭔가 번득였다. 앞서 주요소에서 경험한 사례와 지금의 깜빡이가 엮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차가 끼어들 때도 깜빡이 켜고 끼어드는데, 사람이 사람한테 끼어들 때도 깜박이는 좀 켜야 되는 거 아닐까?'


운전을 할 때, 내 앞에서 깜빡이 안 켜고 칼치기해서 훅 들어오면 놀라거나 사고가 날 수도 있다. 거의 대부분의 차가 깜빡이를 켜고 들어온다. 일종의 신호이자 예의라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사람 사이에서도 깜빡이 역할을 할 수 있는 어떤 시그널이 필요하지 않을까?


물론 살다 보면 길거리나 어딘가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물어볼 수 있고, 부탁할 수 있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그 말을 묻기 전에 한마디가 생략되었다는 것이다. 전혀 모르는 타인의 영역으로 들어갈 때는 그에 걸맞은 의사 표현을 하고 예의를 갖춰야 한다. 그 한마디를 생략하면 나같이 심장이 약한 사람은 놀라 자빠질 수도 있고, 뭔가 급하고 바쁜 사람들은 방해를 받을 수도 있고, 심지어 누군가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도 있다.


혹시 그 여자분이 나에게 ‘저기 실례합니다’, ‘잠시 말 좀 묻겠습니다’ 정도의 말로 깜빡이를 켜고 들어왔으면 내가 놀랠 일도 없었고, 좀 더 친절하게 설명해 줄 수도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비슷한 상황은 길거리에서 길을 묻는 장면에서 자주 연출된다. 사람마다 경험한 내용은 다르겠지만, 내가 경험한 10명 중 9.9명은 대부분 이런 식으로 길을 묻는다.


“광화문역 어떻게 가요?”

“서울의료원 어디예요?”


다짜고짜 말을 걸어온다. 그냥 훅 들어온다. 남의 시간과 공간보다 내가 길을 묻는 게 더 중요하다. 심한 경우 내가 가는 길을 막아서며 길을 묻는 경우도 있다. 실례합니다. 길 좀 물어볼 수 있을까요?”라는 그 어렵지도 않은  한마디 말을 하고, 길을 물어오는 사람은 정말 열에 한 명 될까 말 까다. 미국 사람들이 너무나 쉽게 아무렇지 않게 하는 말, ‘Excuse me’가 우리나라에서는 왜 그렇게 안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관련해서 우리가 쓰는 말 중에 쿠션어라고 하는 말들이 있다. 집의 소파나 침대 위에 굴러 다니는 소품 중에 ‘쿠션’은 사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소품이다. 하지만 그냥 소파보다는 쿠션 한 두 개 정도 있는 소파에 누우면, 좀 더 아늑하고 포근한 공간이 될 수도 있다. 좀 더 편안하다. 쿠션어의 개념도 바로 이 쿠션의 개념에서 나온 말이다. 말랑말랑한 배려의 언어로서, 꼭 필요한 말은 아니지만 혹시라도 딱딱하게 전달될 수 있는 내용을 부드럽게 연결해 주는 언어를 일컫는다.  


[쿠션어]

실례합니다. 길 좀 물을 수 있을까요?

번거로우시겠지만, 다시 한번 보내주실 수 있습니까?

양해해주신다면, 확인해 보고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바쁘시겠지만, 매장에 직접 방문해 주셔야 합니다.


꼭 필요한 단어는 아니지만, 적절하게 사용함으로써 자칫 엄한 상황이나 딱딱한 분위기를 만드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고, 예의 바르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특히 갑자기 상대방의 영역으로 들어갈 때나 뭔가 부탁을 해야 할 때 깜빡이 역할을 해주며, 상대방에게 들을 준비를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쿠션어는 일상생활뿐만이 아니라 회사 생활에도 꼭 필요한 언어이다. 특히 후배들이 선배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볼 때 생각지도 못하게 훅들어오고 너무 자주 물어보는 경우에 선배들도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질문은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모아서 정리해서 하는 것이 좋고, 적절한 쿠션어를 활용해서 접근해보자.


선배님 시간 괜찮으시면, 잠깐 몇 가지 물어볼 수 있을까요?”

대리님.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자료 요청 좀 하려고 왔습니다”


여기에 한 가지 스킬만 더 추가하면 더 금상첨화라고 할 수 있다. 평서형이 아니라 청유형으로 끝내는 방법이다. '자료 요청 좀 하려고 왔습니다'는 자 잘못하면 상황에 따라 명령이나 지시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부탁과 청유의 형식까지 더해진다면 좀 더 좋은 의사소통이 될 수 있다.


얼마 전 모 회사에서 강의를 하는 날이었다. 강사는 쉬는 시간에도 할 일이 참 많다. 음악도 틀어야 하고, 화이트보드도 지워야 하고, 다음 시간 교안도 확인해야 하고, 10분은 짧게만 느껴진다. 바쁘게 움직인다. 그때 어느 신입사원 교육생이 말을 건네 온다.


“강사님 실례합니다. 목마르실 것 같아서 물 하나 사 왔습니다.”


행동도 예쁘다고 생각했지만, 그전에 뭔가 집중하고 있는 나를 배려한 ‘쿠션어’를 사용하며 내 영역으로 들어오고자 하는 면이 참 예쁘게 느껴졌다. 내 시간과 공간을 지켜주며 접근한 방식이 고맙다는 생각과 함께, 소소하지만 사람 간의 관계를 부드럽게 하는 이런 윤활유와 같은 언어 사용이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요즘 세대들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에 하나가 ' 중심적'이라는 것이라고 한다. 물론 중요한 가치고 나 또한 내 개인의 가치와 시간 등을 가장 중요시한다. 그러면서도 놓치지 않으려고 주의하는 것이 있다. 나의 그것만큼 상대방의 그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특히 생면부지 타인의 영역(시공간)으로 들어갈 때는 작은 시그널 정도 송신하는 센스는 필요하다고 본다.


상대방의 시간과 공간에 대한 배려를 담아,

사람에게 끼어들 때도 깜빡이 한번 키는 건 어떨까?


그 어느 때보다 바쁘고 정신없이 사는 요즘 세대들이 혹시나 놓치고 있는 부분은 아닐까 해서 이번 글에서 이야기해봤다.



*선택적 주의

내가 관심 있는 정보, 듣고 싶은 정보가 더 잘 들린다는 것, 아무리 시끄러운 파티장에서도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부르면 들리는 원리이다.



한마디 톡톡

*어깨를 '톡톡'치며 위로하고 싶은 메시지 'talk talk'


1. 내 친구쯤 되는 꼰대들에게

명령형, 지시형도 때로는 필요하지만, 청유형 화법을 장착해보자. 상대방에게 부탁이나 제안한다는 느낌도 주고, 이렇게 할 경우 강요당했다고 생각하기보다 그 선택을 본인이 하게 한다는 인식을 줘서 좀 더 동기 부여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2. 요즘 세대들에게

쿠션어는 잘 쓰면 좋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습관처럼 쓰는 '미안합니다만, 죄송하지만'은 예외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식당 같은 곳에서 반찬 더 달라고 할 때 '죄송하지만, 반찬 좀 더 주실 수 있을까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게 당연한 일도 아니지만, 죄송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혹시 그렇게 말함으로써 상대방에게 내가 죄송한 일을 한다는 인식을 줄 수도 있다. 예의는 갖추되 죄송할 필요까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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