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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기획 Dec 27. 2019

제73화: 퇴사의 순간, 퇴고 먼저 하는 건 어때?

꼰대라서 할 말은 좀 할게

*퇴고 : 글을 쓸 때 글을 완성하고 나서 여러 번 생각하고 수정하는 절차


2018년 여름, 소위 엄마 속 좀 썩였다는 엄. 썩. 아 사촌 동생이 대기업에 취업을 했다. 집안의 경사였고, 성대한 파티가 열렸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동생은 일 년을 채 넘기기 못하고,  퇴사를 했다. 할 만큼 했고 최선을 다했지만, 힘들었다고 한다. 힘든 만큼 스스로에 대한 보상이 필요했다. 그때부터 동생의 욜로 라이프가 시작되었다. 해외여행에, 전국 팔도 맛집 탐방이 이어졌다. 그동안의 고통과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는 듯 동생의 인스타그램에는 화려한 피드들이 줄지어 올라왔다. 주변 지인들의 부러움과 탄성을 자아낸다.


#좋겠다 #부럽다 #행복해 보인다 #나도 퇴사


동생의 삶을 부러워하고 지지한다. 그때 당시 컨설팅 회사에서 쩔어 지내던 시절이라  나 또한 그런 동생의 삶이 무척이나 부러웠다. 하지만 이런 삶이 언제까지 이어질까에 대한 걱정도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전에 사촌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퇴사를 했던 그 회사에 다시 취업을 했다고 한다. 다른 회사도 아니고 같은 회사에 재취업을 했다.


뜻대로 되면 그게 어찌 인생일까?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게 인생이라고, 겉으로는 화려한 욜로 라이프를 즐기고 있었지만, 동생은 번번이 재취업에 어려움을 겪으며 속앓이를 했다고 한다. 스펙이 문제인지, 전 직장에서의 짧은 경력이 문제인지 아무튼 백수 생활은 8개월간 이어졌다. ‘어땠냐?’라는 질문에 동생이 한마디로 답해온다.


“춥더라”


참고로 이 녀석이 백수로 지낸 대부분의 기간이 한 여름이었기에, 진짜 추웠다는 의미는 아니었을 것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한 마음이고, 자신의 인생에 대한 두려움에서 나오는 오한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불행인지 다행인지 전 직장에서 다시 일할 수 있는 기회는 주어졌지만, 동생이 그 직장에서 가져가야 할 핸디캡은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있다. 동기들보다 8개월 뒤쳐진 업무 경험은 극복해야 할 과제이고, 재입사자라는 주위의 따가운 시선은 극복해야 할 마음의 짐이었다. 제 발로 나간 회사에 재입사에 했다는 무너진 자존심은 견뎌야 할 삶의 무게가 되었다. 하지만 그만큼 동생은 더 단단해질 것이다.


Bottom and Bounce


이미 바닥을 치고 최악을 경험해 보면 더 이상 물러날 곳은 없다. 아마 더 치열하게 더 열정적으로 회사생활을 해나가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다만 돈이 아니라, 일의 의미를 발견하고, 성장의 기회를 찾고,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환경이라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세가 전제되어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사촌동생의 퇴사와 재입사를 지켜보면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요즘 세대들이 생각났다. 오죽하면 퇴사를 할까, 그 심정이 이해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퇴사 이전에 한 번쯤 생각해 봤으면 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퇴사는 개인의 자유 의지이고, 회사에서 막을 권리도 없지만, 퇴사를 너무 가볍지 않게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취지에서 퇴사 이전에 생각해 봐야 할 3가지 이야기를 해본다.


1. 퇴사는 도피가 아닌 더 나은 삶을 위한 선택이어야 한다 .


평양감사도 하기 싫으면 그만이다. 더 나은 조건, 더 나은 일을 찾아서 떠나는 것은 솔직히 막을 방법이 없다. 가치가 다르고, 목표가 다르면 선택은 바뀔 수 있다. 퇴사해서 더 나은 삶을 찾아가면 된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 단지 현실이 싫고, 견디기 힘들어서 퇴사하는 거라면 다시 생각해 보기 바란다. 그 이유로 퇴사하면 다른 직장에서도 같은 이유로 퇴사할 가능성이 높다. 스스로 극복하지 못하고, 내성을 키우지 못한 채 다시 한번 상처에 노출되면 상처는 덧나게 되어 있다.


일이 어렵고 힘들어서 나갔으면 그 다음 일도 힘들 수밖에 없다. 일의 결과가 좋든 나쁘던 끝까지 해낸 경험이 있어야 계속해서 어렵고 난도가 높은 일에 도전할 수 있다. 똘아이가 싫어서 나갔다면 어딜 가나 똘아이는 만나게 되어 있다. 똘아이 질량 보존의 법칙이라고나 할까? 정도의 차이일 뿐 어딜 가나 비슷한 사람은 만나게 되어 있다. 똘아이 때문에 그만두었다가 퇴사 이유가 되어서도 안된다. 그 똘아이의 똘끼를 이겨낼 강인함을 키우는 것이 낫다. 그래야 더 떨아이, 쌍 똘아이를 만나도 견질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연습이라고 생각하고 버틸 수 있을때까지는 버텨보자. 분명 방법은 있다.


2. '퇴사합니다'는 마지막 순간에만 꺼내야 할 말이다.


고등학교 때도 느꼈고, 어른들의 싸움을 볼 때마다 느낀 것이지만, 기대했던(?) 싸움은 생각보다 싱겁게(?) 끝나는 경우가 많다. 입으로는 죽일 듯이 달려들지만, 막상 손이 나가거나 발이 나가지는 않는다. 입에서 시작해서 입싸움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야 놔 말리지 마.”

“놓으라고. 저 xx 가만히 안 놔둬”


라고 말하며, 격하게 달려든다. 하지만 싸움 대상과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는다. 말리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옆에서 말리는 사람들이 있기에 싸움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안다. 말리는 구석이 있기에 더 덤벼들지만, 진짜 치고받고 싸울 마음은 없다. 싸움을 말리는 사람들이라는 안전장치 덕분에 말만 더 세게 뱉을 뿐이다.


회사에 불만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아 진짜 더러워서 때려치워야지.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고, 사직서를 품고 다니는 사람이 있었다. 한두 번은 들어줬는데, 계속해서 그런 말을 입에 담고 살기에, ‘그럼 너 나가. 퇴사해’라고 말했다. 그때 그 친구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동공이 1초에 수 백번은 흔들린다. 입술이 바들바들 떨려온다. 적지 아니 당황한다.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냥 막연하게 쏟아낸 불만이고 희망 사항이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아니야. 너 잘하자나. 퇴사하지마' 라고 위로해 줄거라는 안전장치가 있기에 말은 뱉지만 실제로 퇴사라는 싸움에는 이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진짜 나갈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고민하고, 숙고하고 최종 결정을 한 후에 조용히 사직서로 이야기한다. 입으로 먼저 떠들지 않는다. '퇴사할 거야, 때려치워야지' 라고 말하는 사람은 분풀이만 할 뿐 실제 그렇게 할 용기가 없다. 빈수레는 언제나 요란하고, 부정정인 이미지를 만들어 낼 뿐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결정적으로 독이 되어 돌아온다.


‘퇴사할 놈. 나갈 놈. 회사를 우습게 생각하는 놈 승진시켜서 뭐해.’


또한 그런 부정적인 태도는 주변에도 악형향을 끼친다. 나는 이 회사가 싫어서 나가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어떤 곳보다 소중한 직장이고 삶 안식처일 수도 있다. 경험이 다르고 생각이 다를 수 있다. 내 선택이 중요한 만큼 이 회사를 다니기로 한 다른 사람의 선택도 중요하다.  '이 회사 별로야, 퇴사할꺼야' 라는 한마디로, 이 회사를 다니기로 결정한 사람들의 선택까지 무시하지는 말자. 그 선택에 담겨있는 다른 사람들의 자존심까지 무너뜨리지는 말자.


3. 회사 탓을 하기 전에 나 자신을 돌아보자.


세상 그 어떤 일도 나를 위해 존재하는 일은 없다. 그 안에서 내가 어떤 의미를 찾고 스스로 보상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순간 일이 재미있어 지기도 한다. 퇴직이나 이직은 개인의 자유 의지지만, 적어도 그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 만큼은 일에 몰입하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런 생각과 일에 대한 태도가 성공하는 사람들이 가진 제 1 원칙이자, 어떤 업무 능력이나 스킬보다 중요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런 태도 하나가 진짜 퇴사를 막고 버틸 수 있는 장치가 되어주지는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런 생각으로 일한다면 어느 회사에가더라도 인정받는 사람이 될 수 있고, 퇴사를 한다고 하면 회사에서 돈 보따리 싸들고 말리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지는  않을까?


일 잘하는 사람의 전형과 신입사원이 프로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잘 담아낸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온다.


"앤드리아, 너는 너랑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구나"

"앤드리아. 솔직히, 노력하는 건 아니잖아. 징징대고 있기 밖에 더했어?"


주인공 스스로는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노력한다고 생각하는데 거기에 돌아온 상사의 답변이다. 물론 섭섭하고 억울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게 나와 상사의 인식의 차이이고 극복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상대방에게 물을 따르려거든 넘치게 따라야 한다. 그래야 많이 따랐다고 생각한다. 적당히 많이 따른 물컵은 상대방의 눈에 아주 적게 따른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불평불만 이전에 남들이  인정해주는  실력을 키우고, 퇴사를 고민하기 전에  내가 일과 회사를 대하는 태도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  꼭 있었으면  좋겠다.


퇴사는 또 하나의 경력 개발의 기회이기도 하고, 새로운 삶이나 기회를 만들어줄 장치가 되어준다. 그렇다고 해서 퇴사가 좋다는 얘기 아니다.  반대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퇴사에 담는 마음만큼은 진지하게 생각해 주기 바란다. 대안이 있는지, 퇴사에 대해서 충분히 고민했는지, 나는 정말 최선을 했는지가 전제 되어야 할 것이다. 퇴사 이전에 철저하게 나 자신에 대해 퇴고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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