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꼰대 구출작전, 꼰대 탈출 넘버원
꼰대에 대한 글을 쓰다 보니, 내가 그동안 경험했던 꼰대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회사에서 만난 직장 상사, 임원, 사장님의 얼굴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외에도 개인적인 모임이나 생활 속에서 만난 꼰대도 여럿 있었다. 여러 가지 꼰대 유형을 떠올리면서 ‘꼰대라고 해서 다 같은 꼰대는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정도 이해를 해줄 만한 수준도 있었고, 도무지 참을 수 없는 분노를 유발하는 꼰대도 있었다. 꼰대에도 급이 있고, 꼰대적인 특성의 빈도나 강도도 천차만별이었다.
꼰대의 특성에 따른 분류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중에, 불현듯 신라시대 계급 제도였던 ‘골품제도’가 떠올랐다. 골품제도는 신라시대 신분제도이자 지배체계로서, 성골(聖骨)과 진골(眞骨)이라는 두 개의 골과 1두품에서 6두품까지의 6두품으로 크게 3 등급으로 신분을 구분하는 제도였다.
골품 제도는 소국가에서 시작한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룩하고, 화려한 통일 신라의 시대를 열어가는데 크게 기여한 제도였지만, 종국에는 부폐와 타락으로 인해 신라의 몰락을 가져온 제도이기도 했다. '필요'하기도 하지만 '몰락'의 주요 원인이 되기도 했던 골품제도가 왠지 꼰대와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꼰대의 유형을 분류하기에 적합한 프레임이라고 생각하고, 신라시대 골품제도의 계급에 맞춰 3가지 유형으로 꼰대를 분류해 본다.
▶육두품 꼰대
이제 막 꼰대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계급으로 전체 꼰대의 30% 정도를 차지한다. 꼰대와 안꼰대의 경계를 수시로 오가며 자신의 정체성을 의심하는 계급으로,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계급이기도 하다. 내가 신입사원 때 일하던 방식에 비해 시대가 변했고, 인식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만, 그것을 이해하는 것에는 다소 어려움을 겪는다. 머리로는 이해를 하는데, 마음으로 100% 받아들이지는 못한다.
때때로 후배들이나 신입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도통 왜 저렇게 말하고 행동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 때는 안 그랬는데’라고 속으로 생각하지만, 그 말을 겉으로 뱉어내지는 못한다. 아직까지 꼰대 소리를 듣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육두품 꼰대들은 후배들과 대화를 할 때 되도록 경청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듣기는 듣는데 결국 결론은 ‘내 생각은 이래’, ‘나는 이렇게 하는 게 좋겠어’라고 단정적으로 이야기한다. 상대방의 입장과 상황은 이해하지만, 그래도 내 생각이 맞다는 데 한 표를 행사하고, 내 경험과 기준으로 상대를 평가하는 경향이 강하다.
▶진골 꼰대
육두품 꼰대에서 진화한 계급으로, 상위 20%에 해당하는 꼰대이다. 다만 육두품 꼰대와 다른 점이 있다면, 내가 꼰대라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누가 봐도 꼰대가 맞는데, 정작 자기 자신만 그 사실을 모른다. 수시로 사람들에게 '나는 꼰대 아니지?', '나 같은 상사가 어디 있어?'를 남발하고 다닌다.
진골 꼰대가 되면 ‘답정너’를 기본 베이스로 하고, '내로남불'이라는 신무기를 장착하기 시작한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중간에 커트하며, ‘그게 아니라’, ‘내가 해봐서 아는데’를 발사하며 공격해 온다. 대화를 하자고는 하지만, 결국 자기 이야기로 시작해서 자기 이야기로 끝난다. 대화 지분율이 90%에 육박한다. 대화에 대한 제대로 된 정의를 알고 있지 못하는 것 같다.
여기에 ‘내로남불’이라는 최악의 권력을 휘두른다. 나는 나이가 많고, 직급이 높으니까 해도 되는 행동을 남이 하면 불쾌하게 생각한다. 나이와 직급을 훈장 정도로 여긴다. 여기서 한 발 더 나간 진골 꼰대는 아예 그런 행동을 못하게 하기도 한다. 인사에 대한 태도도 남다르다. 인사는 무조건 상대방이 먼저 하는 것이며, 나는 그 인사에 대꾸하거나 반응하지 않을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진골 꼰대쯤 되면 나이와 경험을 진리라고 믿게 된다. 게다가 왕족이라는 특권 계급인 만큼 이들 옆에 붙어서 ‘우쭈쭈’ 해주고, ‘맞습니다 맞고요’를 외치는 사람들이 많아지다 보니 점점 그 경험 안에 갇히게 되며, 한 단계 상위 레벨인 성골 꼰대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한다.
▶성골 꼰대
대한민국 꼰대 상위 10%에 해당하는 특특특권 계급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꼰대적인 특성을 싹 다 가지고 있다. 세상이 ‘꼰대’라는 단어에 씌어 놓은 부정적인 프레임을 만들어낸 계급이기도 하며, 지속적으로 이를 강화해 나가는 계급이다.
안하무인은 기본이요, 안 해도 되는 말을 해서 사람 기분을 건드리고,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낸다. 어쩔 때는 그런 행동을 즐기는 듯한 인상을 풍기기도 한다. 진짜 권력은 사람들의 존경심에서 나온 것인데, 자신이 가진 지위와 파워를 권력이라고 착각하고, 남용하는 계급이다.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을 때는 자신이 가진 권력을 이용해서 상대방에게 불이익을 주기도 한다. 여기서 말하는 권력이란 직급이나 계급, 나이 등에서 나오는 힘뿐만이 아니라 돈이나 기타 상대적인 우위에서 나오는 힘을 의미한다.
그래도 성골 꼰대쯤 되면 왕족은 왕족인지라 품위를 지키고자 노력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성골 꼰대 중에 성격이 포악한 경우 때로는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집어던지는 행위를 일삼기도 한다. 그렇게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기도 하고, 마치 사무실 한복판에서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이 권력이라도 되는 것 마냥 으시된다.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냉랭할 뿐이다. 그런 성골 꼰대를 보면서 하나 같이 “x신” 이라며 무시한다. 겉으로만 따를 뿐, 속으로는 무시한다. 성골에서 왕이 되지 못하면, 그야말로 그 말로는 추리해진다. 추풍낙엽, 낙화가 따로 없다.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다. 쓸쓸하게 퇴장할 뿐이고, 아무도 찾지 않는 사람이 된다.
여기까지 해서 꼰대라는 계급을 3가지 등급으로 구분해 보았다. 삼각형 피라미드의 위로 갈수록 직급이나 나이가 올라가는 경우가 많고, 자기 중심성이 강한 특성을 보인다. 결정적으로 자기 이익을 위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경향성이 높아진다. 남이야 상처를 받든, 어려움에 처하든 나만 편하고 나에게만 이득이면 그만이다.
꼰대를 3가지 등급으로 분류해 봤는데, 물론 꼰대 등급을 칼로 무지르듯이 정확하게 나눌 수는 없다. 하지만 각 등급에서 보인 꼰대적인 특징은 어느 정도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특징이기에 동의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맞아 저런 사람 있어'
'아 진짜 우리 회사에도 딱 있어'
등등 저마다 내가 경험한 꼰대의 모습을 떠올리며 공감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위의 이야기를 보면서 강 건너 불구경하듯 남의 이야기로만 듣지는 말아줬으면 좋겠다. 나 또한 그 계급의 어디쯤엔가 위치해 있을 수도 있고, 지금은 아니더라도 그렇게 될 수 있음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고 이 글을 읽어줬으면 좋겠다. 물론 꼰대적인 특징이 윗사람이나 나이 든 사람에게서 좀 더 강하게 나타나는 특징이기는 하지만, 생물학적인 특성이나 지위가 꼰대 여부를 결정하지는 않는다. 꼰대적인 특징은 직급이나 세대적인 특성보다 한 사람이 가진 기질과 태도의 발로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꼰대가 될 자질은 가지고 있다.
나 또한 꼰대가 될 수 있음을 경계하고자 하는 것이 이 글의 진짜 의도이다. 누구나 꼰대를 욕하고, 꼰대가 되고 싶지 않은 마음이야 가지고 있지만, 내 안의 자기 중심성이 조금씩 고개를 들고, 남보다 내가 편하고자 하는 마음이 중심부에 자리 잡게 되는 순간 그 순간 나도 영락없는 꼰대가 된다. 내 안에 숨어있는 꼰대 본능을 스스로 통제하지 않으면, 한 순간 꼰대라는 조류에 올라타게 된다.
내가 편하고자 하면 꼰대가 되고, 남을 편하게 하고자 하면 꼰대가 되지 않는다.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하면 꼰대가 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하고 말하면 꼰대가 되지 않는다. 입을 먼저 열고 많이 열면 꼰대가 되고, 귀를 먼저 열고 자주 열면 꼰대가 되지 않는다. 내 생각만 믿고 행동하면 꼰대가 되고, 남의 이야기를 듣고 행동하면 꼰대가 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오피스 드라마의 한 획을 그은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에 나온 명대사를 인용해 글을 마무리 한다. 어떤 기업의 대표가 후배 직원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하면서, '나한테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도 옳을까? 나한테 틀린 것이 다른 사람에게도 틀린 것일까? 세상에 절대적이라는 것은 없다'라고 하면서 이런 명대사를 남긴다.
나도 누군가에게 개새끼일 수 있다.
개새끼라는 단어에서 한 단어만 바꿔서 마무리 해본다.
나도 누군가에게 꼰대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