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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어부 May 30. 2016

인도를 노래하다.

#12 신세계

신세계 (시모가 타운)


어쩌면 우린

아무런 목적도 없이

아무런 기대도 없이

아무런 조건도 없이

아무런 상관도 없이

어디론가로, 누구에게로 간

아무런 감정도 없었기에

그곳이, 그가 주는 커다란 이 끌림은

분명 감동일 거.


아무런 목적도, 기대도, 조건도, 상관도 없었으므로

분명 끌림.


언젠간 이곳이 참 그리울것만 같다.


무슨 연유에 한국에선 작정을 하고 잠을 자도 늦잠을 자는데.

꼭 바깥세상만 나오면 이상현상들이 하나둘씩 생겨간다.

그중에서도 제일은 영감들처럼 아침잠이 없다는 것. 여행의 묘미 중에 하나 일 것인데

창가에 휘날리는 커튼 사이로 흩어지는 햇살이 얼굴에 비춰 눈부심에 잠을 깨는 것을 늘 상상했건만

동네에 닭이나 개소리가 천정 알람이 되어 고막 속 깊숙이 들어오자 작용 반작용 현상처럼 벌떡 일어선다.

에이..


함피의 숙소 특성상 아침에 체크아웃을 해야 한다. 조금은 이상한 시스템인 듯 하나 어느 누구 하나 불만이 없고 그들만의 고유한 룰에 모두가 적응되어 있다.


이른 아침부터 커다란 배낭에 짐을 차곡차곡 재여 넣는다.

어제 빨았던 빨래들도 걷어 게어 넣고 빠진 물건이 없는지 확인하고 다시 확인한다.


여전히 아침은 모닝 짜이로.


인도인들은 아침 짜이를 마시지 않으면, 릭샤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짜이 사랑이 넘친다.

나도 뭔가 익숙한 것들이 불편해지고, 불편한 것들이 익숙해지는 것 보니 점점 물들고 있나 보다.


같은 라인에 동생들도 이른 시간 짐을 꾸려 나왔다. 남을 사람들은 남고 떠날 사람들은 떠날 준비를 한다.

길지 않은 만남. 짧은 시간에도 이렇게 정이 든다는 것은 여행에서만 가능할 일 아닐까.

가볍게 짜이 한잔으로 마지막이란 말을 하기엔 아쉬움을 감출 수가 없다.

그래도 내가 제일 형이니. 너네들이 여행을 나온 목적과 이유들을 생각해서 담을 건 가득히 담고, 놓을 건 모두 내려놓으라. 부디 몸 건강히 무탈하게 즐거운 여행 하고 인연의 줄이 닿아 다시금 어디서든 만나면 뜨겁게 웃으면서 포옹하자고, 함께 있는 동안 너무 즐겁고 행복했다.


여행이란 게 만남에 능숙하고 헤어짐에 취약함은 어쩔 수 없다. 점점 익숙해지길.


여행자는 자고로 배낭을 짊어질 때가 가장 여행자스럽다.

그리고 나는 조금은 더 로컬적인걸 많이 선호한다. 고로 구질구질하게 뭔가 찌질한 맛이 있다.

인도스럽다라고 할까.


함피에서 로컬버스를 타고 30여분 정도 이동을 하니 종점에 커다란 버스터미널이 나왔다.

그 흔한 영어 안내문이 하나 없어서 애먹었다.


사탕 하나로 또 인형의 미소를 얻었다


떠날 것이라 떠나 왔건만, 떠날 곳을 정하지 못해 떠나지 못한다.


한참을 지도를 들려다보다. 모르겠다. 핫싼. 그냥 이름이 꽂혔다. 뭔가가 쎄 보인다.

핫싼행 버스는 끝났단다. AM 11시도 아니 되었는데..


안 되는 영어로 질문과 답변 중에 시모가라는 곳에서 환승을 하라는 근거 없는 정보 하나 얻고선 시모가행 버스를 탔다. 소요시간 6시간 정도에 사설 버스보다 1/8 정도가 저렴하다. 저렴한 만큼 에어콘도 없고, 덥고, 좁고, 더럽고, 버겁다. 그중에서도 최고는 달리다가 조금씩 분해될 것 같은 오래된 낡은 버스가 불안을 한몫 더 했다.


버스는 가다가 서다가를 반복하고 추월하다 추월당하다를 반복한다. 흔들흔들. 멀미를 절로 하게 만든다.

정신없이 해드뱅을하며 잠에 들었다 깨다를 반복하고, 자세를 바꾸고 바꾸길. 2시간.

작은 버스정류장에 버스를 새웠다. 점심은 못 먹는다 봐야 하니 물과 과자 몇 개를 샀다.


외국인이 존재할 수 없는, 존재하면 안 될 것 같은 이름 없는 작은 동네.

온 동네 꼬마들이 버스 주위에 모여들어 어디서 왔니, 이름이 뭐니, 깐죽깐죽 껄떡거린다.

먹을걸 달라 돈을 달라 하는데 바라만 보고 있으니 흰디어로 욕하는 것 같기도 하고 썩 기분 좋은 말은 아닌 것 같았다. 어느 나라를 가도 욕 같은 건 금방 알아보지 않던가. 분명 욕 같았다.

순수해 보이긴 했지만 너무 어릴 적부터 저러면 커서도 달라질게 없을 텐데..

귀찮게 하는 게 짜증스럽기도 하면서 안쓰럽기도 했다. 여전히 바라만 보다 다시 버스는 달리기 시작했다.


 꽃 보다 소


덜컹덜컹, 위태위태, 흔들흔들. 또 잠이 든다.


PM 4시 40분을 가리킨 시계와 시모가 타운이 40km 남았다고 알리는 표지판이 보였다. 가까워지는구나. 해가 기울며 불게 하늘을 물들이고 있다. PM 6시에 도착한 시모가 타운.

산길로 좁은 길로 흙먼지를 가득 흩날려 광장한 시골이거니 했다. 여긴 어떤 정보도 지도에도 존재하지 않는 마을이었기에. 예상은 정확하게 빗나갔다. 깔끔한 대형 버스터미널. 하지만 함피 버스터미널 이후로 지금까지 단 한 명의 외국인도 보질 못했다. 그 많던 릭샤들도 단 한 번의 호객행위도 없었고 뭔가 이러면 안 될 것 같은데 이러니가 조금은 인도답지 않다는 부적응이 생긴다. 정돈된 듯 지저분한 뭔가가 계획된 도시 같은 느낌!?


게스트하우스라는 간판도 하나도 없다 그렇다고 호텔도 거의 보이질 않았는데 들른 곳은 풀이라고 했다.

왜 숙소가 없을까.

이유는 조금 있다가 알게 됐다.


남인도는 숙소들을 통칭으로 LODGE라고 한다. 그것을 알고 난 뒤부터 곳곳에 롯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터미널 앞 호텔은 풀이였고 그 근처엔 허접하지만 TEX가 붙어 8.9백 루피를 웃돌았다. 비싸다. 별거 아닌데 별것에 슬슬 짜증이 올라온다. 마일리지가 차곡차곡 싸여 터지기 전 즈음 적당한 가격에 괜찮은 숙소가 있다.

여태껏 숙소 중 제일 깨끗하다.(여기서 깨끗하다는 기준은 덜 더럽다는 것) 실망스럽지 않게 화장실은 뭐 거기서 거기지만 늦은 시간이니 여기로 정했다.

인도에서 처음으로 여권을 맡겼고, 보증금으로 350루피를 맡겼다. 여태껏 그런 적이 없었는데 의심이 사람 잡는다. 그래서 영수증도 받았다. 큰 배낭만 내려놓고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숙소 근처를 거닐어 본다.

여전히 외국인이 없다. 단 1명도. 없을 수도 있지만 그런 적이 없었으니 여기가 어딘지 왜 그런지

더 더 궁금하고 호기심이 생기는 동네다.

지나치는 이곳의 모든 인도인들이 하이. 헬로를 외친다. 어느 곳이 든 그랬지만 모두가 그러니.. 어색하다.


짜이 장인

숙소 옆에 많은 사람들이 서서 마시던 짜이집.

들어서자마자 정전이 되었다. 늘상 있는 정전이지만 느낌이 묘하다.

주문한 짜이는  단돈 6루피. 굉장한 맛이다. 옆에선 담배를 잎에 말아먹고 간식 같은 것도 담뱃잎에 말아서 먹는다. 참으로 신기한 구경이다.


나는 시모가 타운이라는 곳이 신기해서 구경하고, 시모가 타운의 사람들은 이방인인 나를 신기해서 구경한다. 아메리카에서 왔냐고 한다. 처음이다.. 점점 미궁으로 빠진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중에 오롯이 이방인인 나는 아메리칸


미국인이라니.. 일본인도 중국인도 아니고. 황당하고 당황스러워 그저 웃는다. 그리고


근처에 정말 커다란 시장이 있었는데 시장의 모든 상품들보다 더 많은 관심을 보이는 건 나다.

엄청난 눈들.. 한국으로 치자면 아이돌의 탈을 쓴 외계인 정도랄까. 부담스러웠지만 뭐 나쁘진 않다.

죽기 전에 언제 이런 관심과 집중 조명을 받아 보겠는가.


그러던 중 경찰관의 검문도 받았다. 신기했겠으므로. 또는 의심스러웠겠으므로. 어디서 왔고. 왜 왔고. 어디로 가는지 등등.

재미난 경험을 했다.

점심도 거른 상태에서 저녁을 먹으로 들어간 커다란 식당. 커다란 식당임에도 불구하고 하나 없는 영어. 내가 영어를 잘해서가 아니라(나는 영어를 정말 못 한다.)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불가능이라. 정말 미지의 나라에 온 것만 같았다. 머릿속을 빨리빨리 돌려서 제일 만만한 탈리를 생각해 냈다. 탈리 달라고 하니. 못 알아듣다. 왜. 도대체 왜.. 너네들이 즐겨먹는 탈리를 왜? 탈리. 퇄리. 탈뤼. 달뤼 모든 탈리를 다 말했건만. 왜..

롯지처럼. 남인도는 탈리를 밀이라 불렀다. 이것 또한 뒤늦게 알고 난 뒤로 남인도에 있는 동안 밀만 먹었다는 전설이 있다.

같은 인도인데 번거롭게 왜 그런지..

관광도시가 아니니 외국 여행객이 있을 리 만무하고, 영어가 없어도 되는 환경이니 당연스레 영어도. 영어 메뉴판도 필요가 없었겠지. 너무나 저렴한데 맛까지 있어주니 환상의 도시에 있다.

내가 먹는 밥이 신기해 보이는지 주위에 밥 먹는 사람들이 뚫어져라 쳐다본다. 내 몸 여기저기가 뚫린듯했다.

외계인이 손으로 밥 주워 먹는 게 신기했겠지. 슬슬 발동이 걸린다. 꽤 마음에 드는 사람 냄새나는 동네다.


외계인은 오렌지를 먹는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시장에 들러 사과와 오렌지를 구입하는데도 엄청난 인파가 몰려든다.

외계인이 사과랑 오렌지 사는 게 신기했겠으므로. 호텔에 딸린 레스토랑. 짜이 한잔으로 고된 하루를 마무리 지으려 주문했다. 이건 미친 맛이다.

여지껏 뭘 마셨는지를 모를 만큼 사기를 당한 것만큼. 숙소 값만 조금만 더 싸지. 그럼 완벽이라는 말이 딱 어울렸을 텐데. 약간의 아쉬움이다.

처음 겪는 정보 하나 없는 생소한 지역 신선한 경험을 했다. 인도에서 순수함을 가진 유일한 신비로운 도시가 아닐까. 시장에서의 파워풀한 에너지가 넘치는, 생각보다 덜 더러웠던, 미친 맛을 보유하던 짜이가, 시모가 타운. 괜찮았어. 시끄러웠지만 잘 간 것만 같다. 정말 목적지가 없는 여행만이 느낄 수 있는 보물찾기 시간.

모든 로컬이 신세계를 보여준 뜻밖의 하루다.



불편한 것이 익숙해지고

익숙한 것이 불편 해질 때


내가 어디에서 뭘 하는지

뭘 하러 내가 여기에 왔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을 생각이 들 때


그때는 두 눈을 감고

나만의 작품에 자신감을 가질 것


여행이란 것은

하얀 캔버스에 알록달록 물감을 칠해

오롯이 나만의 그림을 그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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