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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어부 Jun 02. 2016

인도를 노래하다.

#14 닮다

트윈 (스나바나벨라골라)


말한 적이 있었나

그대를 좋아한다고


느낄 수 있었나

그대를 향한 내 떨림이


바랄 수 있겠나

그대의 따뜻한 미소를


오늘도 어김없이 찾아온

내 맘속의 그대는


나의 낮과 밤이자

나의 태양과 달


그대와 마주봄이 아니라

그대와 같은 곳을 바라봄으로


봄처럼 풋풋하고

여름처럼 열정적이고

가을처럼 그리움으로

겨울처럼 기다림에 감사함으로


아무런 예고도 없이 찾아온

내 맘속의 그대와 매일


나의 시간을 

그대의 시간을

우리의 시간을 함께 하고 싶다






스산하고 을씨년스러운 밤도

아침이 되자 평온하고 따뜻한 작은 마을로 돌아왔다.


스나바나벨라골라.


등산을 하려 했던 아침였건만 알람에 의한 작용 반작용.

무의식에 알람을 죽이고 다시금 찾아간 꿈나라.

내가 이럴 줄 알았지. 

아무 일도 없는 그런 날은 영감처럼 새벽같이 일어나더니 꼭 무언가를 계획하면 조건도 없이 비켜간다.


썬라이즈는 보질 못했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아침이다.

벌써 올라선 태양은 내려올 마음이 없다. 더 올라서 뜨거워지기 전에 올라 가봐야겠구나.


히어로


꾸미는 것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도.

가벼운 세안과 양치만으로 숙소를 나섰다. 숙소 앞 작은 짜이집. 어르신들과 짜이를 한잔 한다. 아이들은 등교에 바쁘다.


이곳의 유일한 볼거리

작은 마을을 전부 내려다볼 수 있다는 돌산.


입장료 같은 건 없다. 허나 신발을 신고 갈 수 없어 신발을  보관해야 된다는 것. 보관료는 겨우 10루피.

언젠가 이런 식의 도난사건을 들은 적이 있어. 작은 배낭에 매달고 가려니 큰 목소리로 안된다고 해 조금은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 왜 안되냐고 물으니 그냥 안된단다. 점점 목소리가 올라가고 얼굴이 빨개진다. 나보고 영어 할 줄 아냐고.. 니보다 잘한다했더니 나보다 더 흥분을 하는 너.


시시비비가 파국으로 이를지 몰라. 결국은 보관함에 맡기고 오른다

시작부터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불편하고 불쾌하다.


시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불쾌한 마음에 고개를 숙이고 조금씩 오르고 오르다.

발아래 계단을 보며 왜 이렇게 삐뚤삐뚤 일률적이지 못하나 생각했다. 

고개를 들고 들고서야. 계단을 보니 왜 그런지 알았다 몇 초가 되지도 않은 시간에.


바위에 계단을 깎아 놨다.


인도놈들 한 번씩 생각하면 참 별거 아닌 것에 참 별것을 보여 주는 이상한 대단함이 가득하다.


맨발로 오르는 계단. 해가 아직 잠을 훌훌 털지 못했는지 아직은 발끝에서 차가움이 느껴진다. 더 더 오를수록 머리도 시원해진다. 맑아진다. 그냥 참 상쾌하다.


뒤돌아 본 마을의 전경. 엥. 호수가 있다. 마을에선 있는지도 모르고 지나쳤던 담벼락이 호수였다니.

벽으로만 알고 지나쳤던 벽.


그대의 아름다움을 꼭 가려야만 했나


아무런 의심도 없었던 담. 오르지 않았다면 알 수 없이 그냥 기억 조차도 못할 벽.

안쪽에 청량감이 가득한 물이 가득 있다.

저렇게 이쁜걸 왜 가려놔야만 했을까.


오름직한 동산이 되길



맑은 하늘에 독수리가 낮게 난다. 

얼마 되지 않는 높이지만 성취감이란 늘 한 단계 올려다 준다. 

시작은 불편하고 불쾌했지만 그 끝은 마음이 훨씬 편하고 상쾌해졌으니 그걸로 된 거지. 

결국엔 좋아해질 것을 의심하고 화내고 스스로를 더 피곤하게 했다. 


여긴 인도다. 


한국인의 정서로는 견디기 힘들다. 더럽고 시끄럽고 짜증스러운 게 넘쳐난다. 하지만 그나마의 친절이 있고 매력이 있지 않은가. 웃자. 웃으면 이 미친 인도도 나를 항해 더 크게 웃어줄지도 모르니. 


배달되나요


슬슬 배가 고픈데 여전히 이 작은 마을에 식당 하나 보지 않는다. 있는데 못 찾는 건지 아니면 어제처럼 식당인데 공장인 줄 알고 지나쳤는지도.. 있는 거라곤 이발소와 테일러샵 두 집 걸러 한집이다. 


2평도 되지 않는 곳에서 면도를 하고 옷을 재단하고 짜이를 팔고 과일을 판다. 

소박하다. 전혀 불편해 보이지도 불행해 보이지도 않는다. 


우리네랑은 조금 다른 정서를 가져서 그럴까. 

더 큰집. 더 좋은 차. 더 좋은 직장.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너 보다 "더" 때문에 작은 것에 만족하지 못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난다. 

소소한 것에 감사할 줄 알고, 살아있음에 감사할 줄 알고, 작은 것에 만족할 줄도 알아야 더 큰 감사함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스치듯 지난 것에 내려놓음과 채움을 배우다.


공장 같은 식당에서 어제와 동일한 메뉴.

기억이 나질 않는다. 고기를 언제 먹었는지.

몸으로 배웠다 인도는 소를 먹지 않고, 남부는 채식을 한다는 것을.

제대로 된 고기 한번 먹고 싶다.

삼겹살.



닮다


골목골목을 거닐다

자메이카풍의 작은 학교로 추정되는 건물이 있어 둘러본다. 


어린이집인가 보다 3세 반. 우유 급식 중이었는데 생우유가 따뜻하게 데워져 있다.

선생님께서 한잔 주셨는데 비린맛 하나 없이 달콤하니 맛이 있었다. 


지금처럼 웃길


어린아이들에 비해 초등학생들은 확실히 호기심이 많다. 

어디서 왔니. 이름은 뭐니. 언제 왔니. 언제 가니. 등등 사진 찍어달라. 펜 달라.


귀여운 것들. 걷기를 반복하다. 어제 인사를 나눈 코코넛 애기네. 카라멜 하나에 입이 귀에 걸린다. 나에겐 별거 아닌 것이 누군가에겐 크고 신세계가 될 수도 있다는 것.  단 하루 만에 모든 골목과 학교. 상점들을 다 둘러봤으니. 뭘 해야 할까요.


일출을 못 봤기에 일몰이라도 볼 요량이다.

숙소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하릴없이 누워있다 오랜만에 영화를 본다. 

언제 잠이 들었는지 작은 창으로 들어오는 볕이 내 얼굴을 스치고서야 일어났다.


오후 4시 일몰이 지려면 2시간 정도의 시간이 있겠구나 싶어. 어제 오후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들렀던 작은 짜이집. 다시 한번 들렀다.


풋풋한 미소가 이따금식 생각이 난다


지나치다가 볼때라치면 늘 웃어주시던 아주머니. 오늘 찍은 사진을 보자는 액션이다. 힌디로 뭐라 뭐라 하시는데 알 수는 없지만 느낄 수는 있었다. 그리곤 카메라에 관심을 보이신다. 간단한 사용설명을 해주고 카메라를 목게 걸어주니 얼마간 이곳저곳을 찍는 듯 분주해 보였다. 그러길 10여분. 웃으며 다시 건네 받은 카메라엔 단 한 장의 사진도 없었다. 그냥 카메라가 신기했던 건지. 뷰파인더의 풍경이 일상보다 더 예뻐 보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오늘의 사진은 아주머니의 가슴속에서만 인화되어 있을 것 같다. 


사진찍는다니 대청소를 하던 꽃할배. 꽤 귀여웠습니다.


맞은편 잡화상 이곳에서 유일하게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던 할배.

저녁 먹었냐며 웃으며 인사한다. 마을이 작을수록 친절이라는 것이 베여 있다.



일몰. 

해가 흐린 탓에 붉은빛도 한번 보질 못했다. 그래도 나쁘지만 않다. 

괜찮은 음악을 틀어놓고 어둠이 내려앉을 만큼 누워 있으니 이곳이 고향이요 집만 같다.



하나 있던 와인샵. 킹피셔 큰 병을 하나 사서. 식당을 찾는데 결국은 찾지 못하고 닭강정처럼 보이는 음식이 잔득있는 포장마차에 앉았다. 고비라고 한다. 야채 강정. 볶음밥. 모두가 다 야채다. 고기. 고기. 고기. 맥주와 야채 강정. 고기 맛이 난다고 생각하니 그런 것도 같다. 야채 볶음밥에도 고기 맛이 난다고 주문을 건다. 향신료가 강해. 밥은 도저히 주문이 걸리지 않는다. 그냥 야채 볶음밥.


조용한 마을에 싸움이 났다. 주먹다짐을 하는 듯했으나 거의 밀치기 수준이다. 급기야 몽둥이를 든 경찰관이 오토바이를 타고 출동함으로 진화됐다.


두 번의 등산과 빈속의 상태에 5%의 알코올이지만 취기가 오른다. 스나바나의 모든 사람들이 친구같이 느껴진다.

친해지기에 짜이한잔 마실 시간이면 충분하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커피잔이 그려진 커피숍이 보인다. 짜이집이다. 같이 앉아서 담배를 하나 얻어 피고 짜이를 마시며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여긴 어린 총각. 나이 많은 할배들이 다 들 나이에 상관없이 친해 보인다. 유일하게 나이에 민감한 나라는 대한민국뿐이다. 여지껏 다닌 나라들과 만난 외국인 친구들을 볼 때면 좋고 친해짐엔 나이와 국적은 불문하다 싶다. 다 인도친구들이다.


말도 통하지 않지만 짜이 한잔과 담배를 나눠 피는데 친해지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오늘은 별로 한 게 없는데도 하루가 참 짧고, 많이 걸었지만 힘들지 않았고, 별로 본 게 없지만 많이 봤고, 먹은 게 없지만 배가 불렀다.


육체의 허기짐 보다 정신적인 포만감이 가득한 하루.


스나바나벨라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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