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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어부 Sep 06. 2016

인도를 노래하다

#17 나는 꿈을 꾸었네

                                                                                                                                                                            

나는 꿈을 꾸었네(마두라이)



세상 어디서 무얼 하든

시작은 좋을 테지


세상 어디든 무엇이든

끝이 좋아야 하는 것을


세상 어디에도 무엇도

아름다운 끝은 없다지


세상 어디에나 무엇이나

나는 해피엔딩을 꿈꾸리


세상 어디라도 무엇이라도

나는 꿈을 꾸겠네


비록

이곳이 어둠속 꿈 일지라도





밤새 내리는 비에 대관령은 아가 수준의 말도 안 되는 커브길과 낭떠러지 길.

추월에 추월을 더 했고, 좁은 도로에 회전반경 조차 짧아 후진과 전진을 반복하길 수차례. 좁다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한쪽 길은 내리는 비에 바위를 더 할 기세고,  다른 한쪽 길은 떨어진다면 다시라는 말이 없을 낭떠러지다. 지금 도로라고 불리는 길 위엔 칠흑 같은 어둠과 눅눅한 비, 뜬 눈으로 바라보는 승객들의 더운 공기가 아주 조금의 시야를 더 가리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온통 대형버스와 대형트럭들의 경쾌한 엔진음은 무거운 대기 중에 시끄럽게 흘렀다.


아.. 왜 나는 미리 잠들지 못했나..


차라리 처음부터 못 보고 잠이 들었다면..


앞으로 10시간의 장거리를 더 가야 하는데.. 후회가 물밀듯 밀려온다.


대도시가 정말 싫었어도 하루를 더 버틸걸.. 그랬더라면 본래의 코스대로 움직였을 것을..


입버릇처럼 후회와 욕이 난무하다, 이내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깼다 들었다를 무한 반복.


약간의 진공상태를 지나 눈을 떳을 땐

비도 어느샌가 잦아들고, 창밖 멀리에 미명이 튼다.


슬리핑 버스도 아니었고, 또한 직행버스도 아니었으므로 그간 많은 사람들이 타고 내렸고 도착할때즘엔 5.6명 정도의 사람들만 남아 있었다.



버스터미널은 언제나 릭샤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연락도 하지 않았건만 나를 이리도 애타게 기다렸나..

어느덧 인도 여행 3주 차에 들어섰는데 사설 버스나 택시, 릭샤는 아직 이용하고 있지 않다. 충분히 로컬버스와 로컬 기차로도 가능했고 그 덕분에 본의 아니게 더 인도스러움을 배가 시켰다.


특이하게

마두라이는 시외버스와 시내버스가 같은 터미널을 사용해 조금은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아주 단순하게 기사분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정션 트레인 스테이션을 외치면 작용 반작용처럼 손가락을 가르켜 준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여행자들이 손에 꼽힐 정도로 없다. 내가 없는 곳만 다니는 건지, 아님 관광지가 아니라서 그런 건지.

천만명이 산다는 대도시 마두라이. 여행자는 모든 인도인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된다. 고로 사기의 대상도 된다. 인도 어디든 그랬지만 유난히 과한 관심과 먼저 말 걸어오고 인사를 먼저 하는 경우가 많다.


모르는 사람의 말은 약도 되고 독도 된다.

맹신하는 건 아주 치명적일지도 모른다. 적당한 의심과 적당한 신뢰.

여행에선 이것이 가장 중요할지도 모르겠다.


친절한 기사분으로 사료되는 분의 도움으로 올라탄 버스.

배낭이 커 오르는 것부터가 만만치가 않다. 누군가가 뒤에서 힘껏 밀어준다. 앞뒤로 멘 배낭이 우스꽝 스러우면서 이동에 굉장한 부자연스러움, 누군가의 가벼운 손길로 쉽사리 올라탔다. 그리곤 어디에 앉을지 두리번거리는데 널찍한 자리에 앉아 있던 친절한 할배가 활짝 웃으며 자리를 비켜준다. 요금도 9루피라는 것까지. 친절한 인도 꽃할배.


한적한듯 번잡한듯 무심한듯 구름은 시원하다


내리는 곳도 친절히 알려주신 꽃할배님. 나마스테.

정션 스테이션을 기준으로 움직여본다.


언제나처럼 직진본능.


무언가 너저분하게 정리가 안 되는 거리와는 다르게 하늘이 너무나 맑고 깨끗하다.


멀지 않은 곳에 호텔이 보인다.


호텔 가격과 여행자 거리 정도 물어볼 겸 호스트를 찾으니 하이얀 이를 들어내는 호스트는 엄청난 가격을 제시했고, 여행자 거리라는 말엔 갸우뚱거리며 모르는 눈치다. 생각하는 듯하더니 뭐라 뭐라 말을 했는데 아마도 사람이 많은 듯한 길을 알려주는 듯했다. 길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이방인의 커다란 배낭을 보고 엄청난 호객꾼들이 붙었다.


집요하게 굿룸. 굿프라이스를 앵무새처럼 지저귄다. 상대방의 의사나 기분 따윈 상관없이 끊임없이..

 

마두라이. 마이솔에 뒤처지지 않을 정도

시끄러움과 번잡함. 더러움. 집적댐에. 릭샤. 룸. 호객행위가 쌍벽을 이룬다.


룸 찾는데, 계속 따라다니며 앵무새처럼 자기 말만 하는 릭샤꾼. 굿룸. 굿프라이스. 이 말만 귀에 맴돌았다. 계속..

무거운 배낭에 어깨도 짓눌리고, 슬슬 짜증이 올라오는 시점이다.

굴하지 않는다. 인도인들.


뒤돌아 짜증 한번 내고 "돈 팔로 미"를 크게 한번 외치고선 돌아섰는데..



호텔이나. 로지가 없다.


또다시

한참을 거닐다,
몇몇의 보이던 숙소들은 말도 안 되게 비싸고 몇몇의 저렴한 숙소는 더러워서 역겨울 정도였다.

다시 한번 느끼는 것이지만 세상엔 "싸고 좋은 곳은 없다"라는 진리.


그렇게 보낸 숙소들 뒤에는

또 사라졌는지 보이질 않는다.


그때 다시 붙은 호텔 호객꾼. 반대편에 많다고 자기가 잘 아는 숙소가 좋다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치밀어 오르는데.

그래. 널 역이용하겠어.

따라가던 길에 저렴한 가격을 붙여놓은 커다란 호텔이 보여 붙여 놓은 가격이 맞는지 룸 컨디션을 보러 가니

화들짝 거기 아니라며 잡아당기는 호객꾼. 괜찮다며 보고만 온다고 했는데 안된다며 큰소릴 지른다.

세상에 안되는게 어딨니 나는 간다.

올라간 곳이 5층이다. 인도는 리셉션이 0층.

올라간 룸의 컨디션은 상상만큼의 기대 이하의 상태.

다시 내려갈 생각에 앞이 깜깜해졌다. 기다리고 있을 호객꾼도 귀찮아지고, 지친 내 몸과 마음도 귀찮아졌다.

이젠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가 없을 것만 같다.


마이솔에 이은 마두라이. 한숨이 나온다.

모든 것은 나의 마음에서 비롯되었을 테지만

나는 이런 대도시가 싫다.

언제부터였을까..

공황장애.


순식간에 지나간 모든 것들이

내가 꿈을 꾼 듯만 했다.


정신없고 시끄러운 혼란 속에서 짐을 내리고 침대에 눕자마자 3시간을 기절해 버렸다.

꽤 피곤했긴 했나 보다.

몸과 마음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 말이다.


아무렇지 않다, 아무렇지 않다, 아무렇지 아니하다.


정신을 차릴 겨를도 없이 허기짐이 밀려왔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거늘, 이곳이 금강산은 아닐지라도.
대충은 훑어보고 뭐라도 먹어야 되지 않겠는가.


날씨가 참 내 마음처럼 왔다가 갔다가를 반복한다.

 

커다란 호텔 밑에 줄지어 서있는걸 보아하니 맛집인 것으로 추정이 된다.


음.. 영어메뉴판이 없다.

그러던 중 누군가에게 밀즈라는 말이 들려서 밀즈 그것 달라니 하얀 이를 들어낸다.

 

남인도식 전통 밀즈. 커다란 바나나 잎을 바닥에 깔고 밥. 카레. 마살라. 커드 등등을 올려다 준다. 무한 리필도 가능할 것으로 추정된다. 음식이 조금만 줄어들어도 내 주위에 서있는 사람들이 자동 리필을 하니.



부담스럽다..


밥이 어디로 넘어가는지 알 수 가 없다.



생김새가 다르기에 나에게 관심이 있었겠지만,  

나보다도  카메라에 더 더 관심이 많아 보였다.

자신감 충만한 인도 아저씨. 사진 찍어주란다.

그리고 같이 찍잖다.


찍었다.


너무너무 집중되어 먹는 탓에 입으로 밥이 들어가는 건지 허둥지둥 마시고 나와버렸다. 정말 부담스러운 가게. 흔한 짜이 집도 보이질 않는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매일같이 외교부에서 집중호우 조심하라는 메세지의 타밀라두주.

도착할 때부터 하늘이 맑았다 흐리고 소나기도 이따금씩 내렸다.


질퍽대고 진흙을 튀기며 달리는 오토바이와 릭샤의 클락션 소리. 세상 모든 더러움과 짜증스러움 그러하기에 귀찮음이 마두라이가 인도를 모두 담고 있다.

여기에 며칠을 더 있는다면 아마도 난 병에 걸려 서서히 말라죽어버릴 것만 같다.


쉬어가라는 계시 일까. 오늘은 정말이지 아무것도 할 여력이 없다.


여차 나온 김에 기차역에 들러 전철 노선을 알아보다,

무슨 마음에야 급 킨야쿠마리행 기차표를 끊어버렸다. 새벽 2시 출발.


참 저렴한 숙소에 묵고 있어서 다행이다 싶다.



저녁 먹기 전엔 나오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음료와 몇몇의 간식을 사서 돌아왔다.


힘들다 귀찮다 미뤘던 개인 운동도 조금 하고 샤워 후에 다음 이동지의 정보를 훑어본다

정말 말고 조용한 마을이면 좋겠다는 기대감을 갖이면서. 정말 그뿐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모든 배터리들도 충전했고 모처럼 영화 한편의 여유로움까지 즐겼다.


여행이라는 게

무엇을 보고 무엇을 먹고 어디서 자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나에게 어느 곳이 더 끌리는지, 혹은 굉장한 매력이 넘친다면 그곳에 더 머물면 그걸로 된 거다.

여기가 아니면 저기로 가면 되고, 내가 이 여행의 주인공인데 어디라는 배경에 집착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

시원한 선풍기 바람 아래서 책이나 영화, 낮잠 또한 충분히 여행의 큰 묘미가 아닐까 생각 든다.


창밖으로 어둑어둑 어둠이 내려온다.

새벽기차기에 저녁을 먹고 다시 또 잠을 자줘야 겠지.

숙소 밑에 작은 레스토랑. 간단히 볶음밥과 버터 치킨을 먹었다. 낫 베드.

계산서와 거스럼 돈이 안 맞다. 왜 그렇냐니 TAX가 붙는다고..

그래. 그럼 좀 적어 놓지 그랬니? 그러더니 아주 조금의 시간이 지난 후에 서빙하는 친구 서비스비를 또 더 달라고 한다.


웃픈 현실이다. 정중히 거절을 하고 숙소로 향하는 길.


미친듯한 경적소리에 몸이 저절로 반응을 한다.

오토바이들과 릭샤를 향해 날라차기를 하고 싶다는 짧은 생각과 함께.


아주 잠시였지만

너덜너덜하게 다시 영혼이 털린 기분. 양치만 하고 누웠건만 곧바로 잠에 빠졌다.

그리고 모처럼 꿈을 꾸었다.

귀신 꿈... 무섭다는 생각보다 새벽길에 그 큰 배낭을 메고 기차역까지 걸어가려던게 조금은 신경 쓰였나 보다 했다.


AM 12:30

짐을 최적의 상태로 냉수마찰로 정신무장을 해서 기차역으로 향한다.

여기저기 10여 명씩 무리가 많다. 하나같이 담배들을 태우는지 마리화나를 하는지 복잡하다.

큰소리치고 곤니찌와 인사를 한다. 웃으며 곤니찌와로 답례를 했다.


이동하는 순간부터 꽉쥔 주먹 도착을 해서야 편다.

사고라는 것은 늘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것이기에 언제나 대비를 철저히 해야 어느 정도는 대처를 할 수 있겠지.


내가 젤로 좋아하는 우리 고모가 인도 가면 늘 바보처럼 웃고, 불의를 보면 그냥 구경만 하고 참고 지나치라고.. 인도에서 나는 인내의 한계를 느끼는 수행을 하고 분노조절에 대가가 되어가고 있고 전투본능은 뭄바이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배낭 속에 깊숙에 넣어 놨다.



호기심 이겠지만, 참 기분 이상하게 만드는 인도인들의 눈빛.



반대로 내가 너무 잘생기고 발란스 좋은 훌륭한 남자로 비쳤다고 생각하는 편이 여기 남인도에서

내가 병에 안 걸리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멀리서 희미한 불빛과 기적 소리가 난다.

나를 인도에서 최고 남쪽 끝으로 보내줄 기차가 들어온다.


좀 더 나은 컨디션으로 킨야쿠마리에 인도해주길 바라며, 결코 가볍지만 않은 발걸음으로 커다란 기차에 작디 작은 이내몸을 맞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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