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어부 Oct 22. 2016

인도를 노래하다

#22 셀렌디피티

세렌디피티 (포트코친)



뜻밖의 즐거움이라

내가 감히 빠져들어도 되는가

누군가는 이미 틀어져 있었다라 말하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라 말하겠지

내일과 다음 생 사이에 어느 것이 먼저인지는 알지 모르나

그사이의 지금은 오롯이 즐길 이유가 충분하겠지

가난함은 마음의 사치라는 것 또한 누군가는 말해주었고

이제와 나는 비로소 부자가 될 수 있었지







오래간만에 깊은 잠에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미약한 두통과 불편하리 만큼의 무거움이 내려앉아 있는 아침


급하게 편암함이 찾아와서 그랬을까


잠에서 깨어난 듯 아니 여전히 꿈속을 헤매듯

한쪽 눈을 게슴츠레 뜨고서 천정에 돌아가는 선풍기를 바라봤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선풍기 사이로 스치우듯 지난날의 말들이 지나갔다


여행 중에 만난 여행자가 코친에 들릴 일이 있다면 꼭 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었다

자기는 까따깔리 때문에 며칠이고 이곳에 머물렀고 너무나 좋았다고 회상하듯 말했었다

그때부터 였을까 언제 올지도 절대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가슴속 깊은 곳 나만의 서랍에 넣어둔 것이 어느새 흘러나와서 마음에 작게나마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다


코친을 스쳐 지나감에

한동안 잊고 있었다 


그러다 나 또한 계획이 바뀌고 바뀌고 틀어지고 좋고 싫어지다

결국엔 돌고 돌아 코친으로 오게 되었지만 


여행이란 건 언제나 예측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세운 계획대로 척척 다된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겠지만 그렇게 만만하지 않은 것 또한 여행이었고

언제나 예상을 비켜가는 것은 예사하고 뜻하지 않은 곳에서 뜻하지 못한 즐거움 또한 주는 게 여행이더라


회자정리 거자필반이라 했던가.

결국 만나게 될라치면 아주 멀리 돌아서라도 보게 된다는 것


하루에 단 한 번의 공연일뿐더러 포트코친에서만 한다는 그 공연

꼭 보러 가야지


구름처럼 하릴없이 떠다니는 것도 좋지만

오늘은 할 일이 생겨서 더 좋다


무거운 몸을 가벼웁게 만드는 따뜻한 샤워를 하고선 부담스럽지 않게 아침을 한다


이제는 역만 보이면 의무적으로 달려가 이곳에선 어디로 가는지 확인을 한다.


낯익은 지명을 발견했다

고카르나

뭄바이에서 아람볼로 조금씩 내려가며 들리려 했던 고카르나

그 또한 계획이 바뀜에 없는 줄만 알았다.

그 반가움에 알 수 없는 굉장한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새로운 곳 또는 새로운 사람 새로운 공기 새로운 분위기가 설레는 것 행복한 기운이 스미는 것


그나저나 
여행책. 노란 친구. 2015 최신판이라고는 하는데. 

최신판의 정의를 모르는 것 같다. 정독을 하는 나로서는 최근판이 2012에 멈춰있다. 

과거에 머물고 있는 최신판이다. 그림도 가격도 시간도 단 하나 맞는 게 없는 계륵 같은 마음의 무게



포트코친으로 가는 길

북페스티벌이 한창이다

우리나라 파주를 생각한다면 굉장한 실망을 안고 욕이 남발할지도 모르겠다

그냥. 아주 그냥. 천막에 질서 없는 허접 하지만 사이즈만큼은 아주 대륙 스케일이다

여행을 다니면서 늘 들리는 서점과 그 속에서 어린왕자를 찾는데, 어린 왕자 대신 수많은 공주들을 찾았다.


동화는 아이들의 동심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어른동화도 필요하다.


나의 어릴 적 동경의 상대로 환상에 젖게 했던 그 공주들.

그러나 그들은 나의 환상과 동심을 동시에 깨트려 버리는 장면을 목격하고야 말았다.

백설공주와 신데렐라. 개구리 왕자. 숲 속의 잠자는 공주. 미녀와 야수. 

인도에선 공주들이.. 공주들이.. 너무 했다.


인도답게 간디의 일대기도 사진첩으로 7세 때부터 암살당할 때까지 사진들이 나열되어 있고 힌디어로 상세 설명이 되어 있지만 알아볼 수가 없다. 다만 이빨 빠진 사진과 벽에 기대어 다리를 포개어 있는 모습은 참 인간적으로 보였다. 대단한 사람이라기보다 사람 냄새가 나는 주위에 흔하게 존재하는 할아버지 같은 모습



어제와 비슷한 날씨에 변함없는 번잡함이지만 다른 느낌. 조금은 더 가까워진 듯한 코친.


머지않은 장소에 여객선터미널이 있었고 머지않은 시간에 포트코친으로 도착을 했다

여전한 기분으로 맞아주는 이곳엔 왠지 모를 편안함이 깃들어 있다.


너를 보려 이곳까지 흘러왔다


이곳에 두 곳 정도 까따깔리 극장이 있는데

가까운곳에서 미리 예약과 함께 앞자리 선점까지


돌아올 무언가가 있다는 기다림은 분명 설렘


해변길이 아닌 작은 골목길로 들어서니 어제 보지 못한 아기자기한 여행자 거리가 있다

중년의 외국인들이 많았고 인도스럽지 않은 적당한 깔끔함과 정돈됨이 자리 잡고 있었다

참 예쁘다

밥맛의 여부 따윈 상관없는, 꼭 여기 앉아 먹고 싶다는 기분

그러보 보니 이곳의 골목명이 God's own street 다

혹시나 해서 옆 골목의 이름을 보니 Princess street 다

누가 정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이쁜 이름임에 틀림없다

무엇이든 이름을 따라가는 법


이쯤이면 카페에 들어가야 될 상 싶어
담배를 한대 태우는데 지나는 릭샤꾼이 자기 릭샤가 페라리라며 타란다. 그저 웃지요. 


외국인 여행자를 배려한듯한 서양식의 건물에 들어서니 인도스러움이 강한 카페다

몸속까지 상큼함이 있을 것만 같은 레몬에이드를 한잔 주문하는데.. 정전이 된다

시원함이 전혀 없던 시끄러운 에어컨은 죽은 듯 침묵을 했고 곧이어 찾아온 굉장한 더움에 고요함을 더했다


인도에서 한가로이 레몬에이드라..

상상해보지 않았던 일들이라 조금 더 달콤하고 상큼하게 다가왔다


공주거리에선 모두가 왕족이다


간밤에 무거웠던 몸은 일기예보의 예신이었나. 조금의 비가 내렸는데 

이런 것쯤 아무런 문제가 되질 않았다
그 비 덕에 마음의 온도가 충분히 내려가고 몸도 한결 가볍게 이끈듯하다

 

아침에 일어나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면 언제나 한식이 생각이 나는 건 이젠 어쩜 당연할지도 모른다


공주 거리. 프린세스 스트릿에 노천 레스토랑은 꼭 사람이 앉겠음 하는 신비한 매력이 있다

비록 편의점 플라스틱 의자 지만 상관없다. 비프카레와 볶음밥. 한국음식이 너무 생각이나 아침을 먹으면서 된장찌개와 김치찌개. 파전에 막걸리가 먹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비주얼은 틀리지만 비프카레서 한국 맛이 났다. 이걸 어떻게 만들었을까. 신기할 정도로 완전 한국 맛이다. 간절함이 이뤄낸 맛의 향연이다. 맛만큼은 충분히 한식이다. 감동이로소이다.


행복함이 절로 묻어나는 포트코친

놀이터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하고 중국식 어망에서는 겨우 몇 마리의 물고기만으로도 진한 미소가 번지는 노인들의 주름 깊은 미소

절대적으로 가난한 나라는 아니라는 인도를 보여준다


가난은 물질의 여부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


드디어 시작되는 까따깔리 공연

공연은 메이크업 공개를 시작으로 하고 마무리가 되는대로 무언극 연결되어 들어간다

어린 청년의 익숙한듯한 여장과 초록 얼굴의 주인공 아저씨는 메이크업을 받던 중에 코골이가 시작됐다

노련함과 대범함을 동시에 보여주는 듯하다. 지루한듯한 메이크업이 끝나고 시작된 공연은 인도 전통춤으로 시작해서 까따깔리로 이어졌는데 말 그대로 무언극이라 말이 하나도 없다. 말을 한다고 한들 알 아 들을 수도 없었겠지만 


말한마디 섞지 않았지만 대화를 나누는 기분이 든다


박자에 맞춰서 눈동자, 눈썹, 입술이 신기할 정도로 따로 움직인다

초록 얼굴을 한 희두교 전설의 신 등장. 말이 없기에 혼자만의 생각으로 말풍선을 입혀본다

만남부터 유혹 시기 질투 등 결국 여자 분장을 한 여인의 죽음으로 마무리가 된 공연은

말이 없었기에 모든건 바라본 이의 시선으로 모든걸 해석할터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했지만 어차피 무언극라 정답은 없었다

딱 기대만큼의 공연이었다

아깝지 않은 시간이었다


오늘의 모든 마무리를 깔끔하게 치른 느낌


돌아가는 배에서 바라본 풍경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너무나 고요하게도 마음이 아우러 졌다

코친을 담을 수 있는 눈과 마음을 얻었다는 것 






매거진의 이전글 인도를 노래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