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그때
그때 (코친)
그때의 시간을
그때의 사건을
그때의 사람을
그때의 기억을
지금의 추억을
살 수만 있다면
그때의 시간을 비가 오던 그때로 돌리고
그때의 사건에 춤을 추고 그때의 사람을 노래하고
그때의 기억이 지금의 추억이 아니라
현재를 마지막처럼 춤추고 노래하고 사랑했을 텐데
너무 늦은 그때는 지금도 저 멀리 향해 가고 있네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오래 남을진 모르겠으나
내가 아는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변함이 없이 푸르길
그리고 그때를 잊지 않고 한 번쯤 꺼내어 아픔 없이 살아가길
어제 보다도 늦은 아침이 찾아왔다
아침이라 하기에 늦은 시간까지
베개에 묻은 잠을 떼어내지 못했다
눈을 뜨자마자
살아보려 먹으려 하는 걸 보니
나도 참 어쩔 수 없는 사람
아침은 언제나 독한 담배 한대와 그 독함을 씻어줄 샤워다
샤워를 하는데 3일 만에 처음으로 자욱한 연기와 함께 뜨거운 물이 나왔다
매일같이 같은 밸브를 열어 씻었는데
여태껏 미지근한 물이 뜨거운 물인 줄 알고 있었던 나는..
하늘이 무겁다
금세라도 비를 뿌릴 것처럼
혼잣말이 끝나기 무섭게
꽤 크고 무거운 물방울이 한두 방울씩 흩어진다
숙소까지 멀리 않은 거리지만
찰나의 순간
생각하는 틈 사이로 무겁게 무섭게 온통 코친을 적신다
비를 기다릴 이유도, 비를 피할 이유도 없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온몸은 젖어 무거울 대로 무거워져 있다
숙소에 돌아와 큰 창을 열고 창과 마주 앉아 밖을 주시한다
건물들로 가려져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소리를 보고 있다
문득
쎄레트 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낯설지가 않다
어릴 적 그 언젠가 겨우 미싱기가 딱 하나 정도 들어갈 정도의 작은방에서
어머니는 누비 미싱일을 하시고 나는 그 옆에 커다란 창에 붙어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한참 바라보다
"엄마 나는 이 빗소리가 참 좋아."라고 했던 기억이 스쳐 지났다
그땐 올려다보던 비를
오늘은 내려다보고 있다
그때에 지금에
시간이 지남에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변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면
누군갈 향한 그리움은 아닐까
코친을 쓰러트리려 쏟아붓는 비에
가난했지만 따뜻했던 추억들도 함께 하나둘씩 쏟아졌고
잡으려 잡을 수 없고
그리운 그리움이 결국 내 가슴속에서 넘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