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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어부 Dec 03. 2016

인도를 노래하다

#24 Life is this moment

Life is this moment (고카르나)



순간을 사랑하라

내일과 다음 생 중에 어느 것이 

먼저 도달할지는 모르나

현재가 모여 과거가 되고

지금이 모여 내일이 될지니

고민하지 말고 걱정하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에

집중하고 몰입하여

지금 이 순간을 하얗게 불태우라



 

밤사이 여름에서 가을로

 

미친 듯이 쏟아붓던 코친의 비를 뚫고 북쪽으로 계절을 거슬러 왔다 


어제까지의 더운 여름 바람은 사라지고

기차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선선한 바람에 가을이 스며든 것만 같다.



낮과 밤이 바뀌어 도착한 고카르나


몇몇의 여행자들을 내려놓고선

다시 바삐 힘차게 움직이는 기차

끝이 보이질 않던 기차는

어느새 검은 점이 되어 사라져 버렸다


기차역만이 덩그러니

기차역에 덩그러니 서있는 나


언제나 그렇듯 

수많은 오토릭샤들이 고카르나에 온 걸 환영한다 

금의환향한 기분이 드는 건 언제나 새로운 도시에 도착할 때면

일어나는 불문율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나의 집과도 같은 배낭을 소중히 올려 매고선

오솔길 같은 작은 길로 들어서니


외롭지도 않게 길도 한길이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아무거나 있을 곳으로

뚜벅뚜벅

뚜벅뚜벅

한참을 거닐어도 길은 한길이다

끝이 없을 것만 같은 길도 끝이 나겠지


그리고

이제는 익숙해져도 괜찮을 것들이


좀처럼 익숙해 지질 않는다

어깨가 조금씩 짓눌러져 목이 아파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은 너무나 맑다


몇몇의 여행자, 한길, 릭샤 한대, 푸른 나무들.


아무것도 어떤 것도 없던 길 끝에

양갈래로 나뉘었으며 보기에도 소박한 버스정류장이 있다


겨우 두 갈래에서 방향을 찾아야 한다

예전 같았으면 손바닥에 침이라도 뱉고 손뼉이라도 칠 일이었지만


까막귀인 나도 이제는 미약하게나마 말귀를 알아듣는 재주가 늘었다

염치가 없으면 눈치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나보다 조금 먼저 걸어간 외국인들이 떠나가는 외국인들과 나누는 대화를 얼핏 들었다


버스 방향이며 어느 곳에 뭐가 있고 어디가 괜찮다는

정확힌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어떤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슬금슬금 그 외국인들 사이로 

물들이고 있다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각

먼지를 가득 머금은 오래된 낡은 버스가 도착한다


언제나 만석인 버스는 타라고 하는 건지 타지 말라고 하는 건지

분명한 건 타겠지만, 그 짧은 순간 고민을 하게 되는 건 어쩔 수가 없나 보다

배낭 조차 내릴 곳이 없어 메고선 서커스라도 하듯이 손잡이를 겨우 잡고선

좁은 길을 위태위태 하게도 한참을 달려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 해질 때쯤 종점으로 예상되는 곳에 도착을 했다


현지인들은 짐을 내리고

여행자들은 배낭을 짊어진다


어색하지 않게

몇몇의 외국인들이 걸어가는 방향으로 길을 잡고

좁은 골목을 지나고 시장을 지나 조금은 넓은 길로 들어서니

몇몇의 외국인들과 간간히 숙소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분명 비치가 가까이 있음에 

비릿한 바다 냄새도 파도 소리도 없다


짓눌려 오는 어깨끈 사이로 옅은 신음이 새어 나오고

걸음도 점점 무거워짐을 느낄 때

 

길목 게스트하우스 2층 테라스에서 손짓을 한다

인도인은 아닌듯한데 더 가면 숙소가 없다고 여기에서 묵으라 한다


인도인들의 호객행위에 대처하는 제일 젠틀한 방법

평소처럼 웃으며 무시를 하고 지나기


정말이지 그곳 이상에선 숙소도 상점도 없다


다시 돌아나가니 손짓하던 그 사람 여전히 앉아 손짓을 한다


별사람 다 있네 싶어 

룸 컨디션이나 볼 겸 들어선 숙소엔

인도치곤 썩 괜찮은 컨디션이다

기대 이상이지만 손짓하던 사람이 여간 신경 쓰이는 부분이 아닐 수 없었다



짐을 풀고 땀도 식힐 겸 복도 발코니에서 담배를 태우니 

손짓하던 그 친구가 다가온다


호스트가 아니라고 말하는 그는 터키인이다


활짝 잇몸을 보이며 웃으면서 말했다


자기가 어젯밤 신께 빌었다고

한국인이나 일본인을 만나게 해 달라고

그래서 

나는.. 신이 보낸 사람이라고...


뭐지 이 부담스러운 멘트는..


지극히도 가벼운 대화중

식사는 했냐며 괜찮은 식당이 있다며 소개를 시켜준


그러고 보니 장거리 이동에 걷고 버스 타고 식사할 틈이 없었다


가볍게 산책도 하며 해변도 결코 멀지 않은 곳에 있었음을 알았다

내리쬐는 햇빛도 따갑고

발 밑 모래도 뜨겁다

그 중간에 떠다니는 공기조차 데워져 있다

약간의 현기증이 일어났다



해변 근처에 루프탑

너무 작아 지나칠 뻔했던 그 식당

아까 터키 친구가 알려준 그곳이었다


그리고

그곳엔 

터키 친구가 있었다..


뭐니 터키 친구

기다리고 있었는가?

스토킹은 아니겠지?

우연이겠지?


웃으며 손흔던 그 친구는

대뜸 주인에게 자기 친구 두 명은 어디 갔냐고?

아~

나를 기다린 건 아녔구나..

괜한 오해를 했다



V 보다 W


괜한 오해는 진실을 왜곡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미안하다 오해했다


같이 온 듯 

다른 게 온 듯 

그렇게 자연스럽게 합석을 하게 됐다. 


우선 나는 신이 보낸 사람이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굉장한 믿음으로 보여졌다

이유는 한국사람이라는 아주 아주 단순한 조건으로


대화는 천천히 또박또박 말하고 들어주고

힘겹게 대화를 이어갔다

 

이런저런 대화중에 

대뜸 하는 이야기가 여행을 하려 들지 말고 엔조이를 하라고 


who am i

take it easy 


늘 순간이라고 

샨티 샨티를 끊임없이 외친다


뭔가 이상하다 점점 샨티교에 빠지는 기분은.. 

샨티의 정확한 뜻은 모르겠으나 

느낌상으로는 충분히 알 수 있겠는 건 

초초초 긍정이라는 것 



함피 이후로 잦은 이동과 비위생적인 환경들 

숨 막힐듯한 사람들과 먼지와 매연 

산만함과 시끄러움의 끝을 보여주어 

충분히 지치고 버거울 시점


타타 이양반이 위로와 치유를 주는 듯하다 


정말로 신이 만나게 해주려 한 것인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그 순간 또 많은 생각을 하지 말라며 


life is easy.  

freedom. 

everytime enjoy.

 

진정한 자유를 느끼기 위해선 지금 이 순간을 즐기라고

 

뭐지 이 사람 미친 사람 같다


그리곤 우린 홀린 듯이 식사를 마쳤다

홀린 듯이 숙소로 조용히 걸어왔다


숙소에 들어서자 급히 

방으로 뛰어들어가더니 일행을 데리고 나와 소개를 시켜준다 


러시아 친구 샤샤와 리한나 

나처럼 영어를 잘 못하는 것인지

러시아 특유의 시크함인지는 모르겠지만

조금은 서툰 인사를 하고 얼굴을 바라보니

얘네들 눈이 너무 예쁘다

 

그리곤 같이 모여서 태우는 담배는 

언제나 맛나다



볕이 좋아 

밀린 빨래도 하고 옥상에 널어놓으니

참 여행이란 게 별거 없다 싶은 마음도 들고

배낭 깊은 곳에 빨래 말고 근심도 가득 넣어 온건 아닌지

타타의 말처럼 어디든 마음을 조금만 내려놓았음 더 나았을 텐데


며칠간 먹은 음식들이 모두 pure veg.. 

절대적으로 육식이 필요할 때다


고기. 고기. 고기.


뒤돌아서면 찾아오는  허기짐은 어쩔 수가 없다


사방을 둘러보고 아무도 없음을 인지하고

(영어를 못하는 나로선 계속해서 말을 거는 타타가 조금은 부담스러웠을지도 모르겠다)

길을 다시 나선다. 


사람들이 없던 작은 골목길을 찬찬히 걸어 볼 참이다 


소 라는 말은 친구이자 그리움 그리고 인도


적막하리만큼 고요한 마을 골목

뜨거운 태양을 피해서 그늘에 앉아있는 노인들과도 눈인사를 한다 

이방인이 반가운 듯 신기한 듯 미소를 가득 머금는다


길을 따라 걷다 보니 결국 크게 한 바퀴 돌아

낮에 왔던 레스토랑으로 돌아왔고 

거기에서 또다시 타타와 리한나를 재회했다

  

두 번째 만남에선 

러시아의 시크함이 사라진 지 오래 

어린 소녀의 미소는 참 예뻤다

 

영어를 전혀 못했다던 리한나. 

1달도 안 된 시간에 영어를 하게 됐다고

같이 열심히 해보자는 한마디..


안돼 안돼..


점점 빠져들고 있어. 샨티교에.

시종일관 웃음으로 대한 타타와 리한나



오래간만에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그로 인해 짜이 향에 풍미를 더 하니 

어떻게 고카르나가 좋지 아니하겠는가


(한참을 지난 뒤에 느낀 것이지만

어디에 있느냐 보다

누구와 있느냐가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너무나도 늦게 알아버렸다..)

 

해가 기울고 붉게 타들어 갈 때쯤 

같이 선셋을 보러 가잖다 

좋은 곳을 안다고


(좋은 곳은 항상 가기 쉬운 곳에 없다는 진리도..)


순간을 즐기시길


수평선 넘어 붉은 해가 기울고 나면 순리대로

그 반대편에서 밝은 푸른 달이 떠 오르지 않겠는가


타타의 말처럼 

지금 이 순간을 최고의 순간이라 생각을 하고 즐긴다면 


나는 굉장한 곳에서 굉장한 사람들과 굉장한 노을을 바라봄에

세상 부러울 게 하나 없는 가장 큰 부자겠지



P.S

저들이 신께 기도하여 보낸 사람이 내가 아니라

지친 삶에 단비처럼 내린 그대들이 천사일지도 모르겠다

꼭 만날 사람은 어디서든 만나 지게 되어있으니



"here and now = this mo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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