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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어부 Dec 05. 2016

인도를 노래하다

#25 돌아보다

돌아보다 (고카르나) 



익숙함이라는 이 잔인한 감정은

사람을 참으로 무미건조하고 무감각하게 만드는

이 세상 가장 무서운 벌이다

눈을 뜨고도 볼 수 없고

귀를 열고도 들을 수 없고

심장이 데워져도 느낄 수 없다

어쩌면 손 닿을 곳에 많은 보물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일하게 안이하게 지나가 버린다

불확실한 것에 확실한 것을 잃지 않게

너무 늦지 않게

한 번쯤은 뒤돌아 보길

그리고 한 번은 알아주길

그리고 한 번은 안아주길




                                                                                                                                                                        

                                                                                            

안락함을 주던

고카르나에도 불청객은 있었다

모기 이놈들 때문에 뒤척인 밤을 생각하면

영원한 천국은 없다


건조하던 방안 창을 여니

남인도 답지 않게 선선한 아침 바람과

뜻밖에 새로운 인도를 보았다


황홀한 아침의 일몰 이런 게 아니라

고카르나에 살고 있는 모든 인도인들이

모두 청소도구를 들고 나와 너 나 할 것 없이

아침 대청소를 하고 있다는 것


더러움과 불쾌함의 대명사가 인도 아닌가

이제와 별로 대수롭지도 않지만


그날 나는 보았다

인도 속 고카르나의 아침 얼굴은

깨끗하고 단정했다는 것을


이 사진은 자꾸만 베트남과 오버렙이 된다


어색하고 익숙하지 않은 장면에

신선함과 함께 이질감이 들 정도이니

인도 같지 않은 인도 속 나는 분명 이방인


아침해가 기지개를 펴고 있다

바람막이을 입고 선선한 바람을 가로질러

어제 갔던 레스토랑으로 향한다


"모든 인도인은 아침 짜이를 마시기 전이면 릭샤도 움직이질 않는다"

이런 걸 보면 나도 시나브로 물들고 있었나 보다


웬걸

타타와 리한나. 벌써 아침을 끝내고 블랙티 한잔 중이다

내가 본 서양 친구들은 대부분 아침잠에 못 이겨 

점심때면 농담 삼아 굿모닝 하곤 했었던 기억이..


이곳 레스토랑은 Pure Veg.

외부의 육식인 계란조차 허락지 않는 절대 채식의 식당

(우스게 생각으로 석가모니와 간디가 왜 그렇게 말랐는지도 알 듯했다)

버터와 빵. 인도에선 처음으로 마시는 블랙커피


아메리카노라고 할 수 있다


짜이에 매일같이 굵은 다이아 같은 설탕을 2스푼씩 넣다 보니 

이제와 쓴 걸 마시지 못하게 됐다 

세상 쓴맛을 알았는데

이젠 여행의 단맛을 조금씩 알아가는 듯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모닝커피와 함께

어제 피곤해서 곯아떨어진 덕에 남은 일기를 쓰는데 

리한나, 한국 글씨가 이쁘다고 부러운 듯 말하길래

너가 더 예쁘다고 하니. 잇몸을 드러내며 웃어 죽어나갔다


타타 역시 밤사이 안녕했나 물어본다

죽일 놈의 모기들을 못 죽여 내가 반은 죽었지만

일일이 말하는 것이 더 힘들기에

간단명료하게 퍼펙트와 엄지 척을 했다

(이럴 때면 언제나 영어가 절실했고, 가장 늦은 것이 후회라는 것을 새삼 깨닭는다)


웃으며 오늘의 스케줄을 물어본다 

옴 비치에 갈 것 같다고 말하니, 같이 가도 되겠냐고 물어온다. 

why not!! 얼마든지 

내 것도 아닌데 같이 보면 어떠하랴, 같이 가면 좋지   


현지인들에게 옴 비치에 가는 길을 물어보니 여럿 말들이 난무한다

2시간부터 30km까지.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가보면 안다

걷는 거 하나만큼은 내가 짱이지 않겠는가


숙소로 돌아와 가벼운 세안을 하고 선크림을 듬뿍 바르고 나니 중무장이 끝이 났다


타타. 샤샤. 리한나. 역시 스텐바이 중이다


그렇게 옴 비치 원정대가 급작스레 결성이 되었다


아무것도 아닐 이름 모를 언덕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고카르나비치 - 꾸들비치 - 옴 비치로 이어지는 길


멀다 그리고 멀다

덥다 그리고 덥다


모두들 웃으면서 시작했으나 점점 말들을 잊어가고 있다


걷는다 물마신다

걷는다 물마신다

 

평야가 나오고 황무지가 나오고 바윗길이 나오고 산길이 나오고 오르막 내리막을 하다 보니

드디어 끝이 보인다


샤샤, 리한나, 타타, 소 그리고 꾸들비치


꾸들비치

드디어 얼굴을 비치는 구나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정말 많은 해변을 가봤지만 최고다 정말

캄보디아 시아누크빌과 조금은 비슷한 구석이 있지만

시아누크빌은 뭔지 모를 다크하고 우울한 맛이 있었던 반면에 

고카르나 꾸들비치는 초록의 느낌이 있다 

때 묻지 않은 깨끗함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커플이 있는 반면

산책을 즐기는 노년부부가 있고 일광욕을 즐기는 소들이 있다


넓지 않은 해변에 많지 않은 사람


시간이 지남에 충분히 일본인이라 야쿠쟈라 불리만하다


잠시간의 여유를 만끽하고 다시금 옴 비치로 길을 옮긴다

끝인 줄 알았던 꾸들비치는 다시 옴 비치라는 시작이 된다


또다시 돌길을 오르고 좁은 산길을 지나 황야를 뚫고 다시 들어선 인적 없는 숲길


멀리서 옅은 파도소리가 가까워짐을 짐작한다

곧이어 새소리도, 사람 소리도 작게 작게 메아리가 들리 운다


옴비치 이곳에서 우리의 조합을 신기한듯 바라보았다


웰컴 투 옴 비치


다 왔나 보다 근데 유독 해골 표시가 많다

사고가 많이 났나 보다. 

비치에 돌들이 많아 위험은 해 보인다. 

위에서 본 옴 비치는 옴자와 비슷하니 3자 모양이다. 그래서 붙여졌나 모르겠다.


나는 개인적으로 꾸들비치가 더 예쁘다


얼마나 걸었는지 얼굴 살이 쏙 빠진 것 같다

밥! 밥! 밥!

모두가 같은 표정인걸 보아하니 두말하면 허기짐에 쓰러지겠다


허름해 보이지만. 뷰만큼은 고급의 레스토랑을 선택하고 앉았다. 

옴 비치가 전부 내려다 보인다. 

메뉴판에서 가지 시즐러가 있는 걸 발견했다

언젠가 라오스 므앙응어이에 있을 때 몇 없는 레스토랑 중에 카레집이 하나 있었다

그때 가지 카레를 먹고선 감동을 크게 받은 적이 있었다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리하여 나는 언젠가 이 가지 카레를 먹으로 인도에 가야겠다고 했던 생각이 현실이 되었다


참 조용하다

이런 곳에서 아무런 행위도 없이 해먹에 누워서 시체처럼 시간을 죽여도 좋겠다 할 정도로


음식이 차례대로 나왔다

세상에 이런 일이

뷰 하나만 보고 들어온 허름한 식당에서 이런 맛을 낸다는 건 반칙이다 아니 말이 안 되는 거다 

눈물겹고 보람되다


돌아가는 생각 따윈 잊은 지 오래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이 되어

시간을 잡아먹다 보니 어느새 그림자가 많이 기울어져있음을 느꼈다

돌아가야 한다


잘 먹고 잘 쉬고 이제 갈 생각 하니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단 생각이 들었다

아직 출발도 아니했건만 지쳐버리는 몸과 마음을 어찌할꼬



월래 저들의 계획은 비치보다도 동굴이었다고 했다

다시 옴에서 꾸들비치를 지나고 커다란 산 언덕에서 제일 연장자인 타타가 동굴 갈 사람 손을 들라고 한다

정말 모두가 하나같이 피곤해 보이는 얼굴들이지만 입술 근처에서 재미나겠다는 미소가 흘러들 나왔다

모두가 노 플라블럼


중요한 건 산에 올랐건만

타타는 동굴이 어디에 있음을 전혀 몰랐다

샤샤나 리한나 역시도..


산하나를 이 잡듯이 수색했다

그러다 한 사람 한 사람 흩어지고 없어지고 사라지더니 어느새 나타났다가를 반복

이 길이 저길 이고 거 길이 그 길이고 헤매고 헤매다

길어진 그림자는 거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결국엔 포기를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샨티 샨티를 외치며 하산하는 그들은

긍정 어벤저스라 말하고 싶다


하산 역시도 전혀 다른 길로 나왔는데

그 덕에 굉장한 노을을 선물 받았다


매일같이 여행은 나에게 선물을 준다


나에게도

노을 하면 뒤처지지 않은 곳에서 태어나고 자라났는데

지금 이곳 고카르나의 이름 모를 언덕이 그것을 잊기에 충분했다


어디에서 무엇을 보느냐가 문제가 아니겠지

누구와 무엇을 보느냐가 문제인 것이지

그럼에 나는 참 행복한 사람


아름답다 

평온하다 

따뜻하다


오늘 밤에

킹피셔 한 병이면 더 이상은 없겠다 

더 할나위 없겠다

이 순간이 최고로 멋진 마무리가 될듯하다


너무 행복하고 즐겁고 아름다운 하루를 선물해주신 나의 그대들께 감사하다 

내가 존재한다는 것 

그 또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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