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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어부 Dec 10. 2016

인도를 노래하다

#26 일과 이분의 일

일과 이분의 일(고카르나)


누군가를 떠나보낸다는 건

누군가는 홀로 남는다는 것

누군가가 돌아온다는 건

혼자가 함께가 된다는 것

함께 이기를 바라면

혼자 이기를 바라라

아무런 기대감이 없다는 건

커다란 두근거림이 있다는 것





자정도 넘어 달도 기울어가는 시간

뭐가 이렇게도 건조한 건지

탈수가 끝마치기 전 겨우 기사회생으로 살아난 껍질로

밤의 세레나데를 부르는, 이 죽일 놈들의 모기 놈들을 돈키호테처럼 허우적거리다

다시 뉘운 머리는 뒤척뒤척 머리맡은 위잉위잉 끝없이 헤드뱅잉을 하다

영혼이 다 털려 버렸을 때 즈음 몸도 너덜너덜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고카르나의 아침은 늘 청소로 시작한다


아침 해님과 동시에 눈을 뜨고 


감기가 들면 낫고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

지난밤의 일들은 신기루처럼 아무것도 아니었다

다만, 목구멍에 사막의 모래들이 쌓여 커다란 사구를 만들어 놓은 것만 같다


건조해진 몸과 마음은 물먹는 하마처럼

이곳에 존재하는 모든 물을 다 마셨건만

칼칼한 것이 목에 칼이라도 걸린 듯

알 수 없는 무언가로 꽉 막혀있다


그래도

모닝 담배

 

해님보다도 더 먼저 눈을 뜬 

타타님께서 테라스에서 모닝 담배 중이다

 

밤사이 옆방에서도 기침소리가 끊이질 않아 잠을 못 이룬 듯 보였으나 

타타의 컨디션은 오늘도 여전히 퍼펙트란다

(나는 감히 샨티 효과라고 본다) 


오늘은 타타. 샤샤. 리한나가 고카르나의 소풍을 끝내고

고아, 아람볼로 돌아간다


4번의 환승이라는 복잡한 루트가 기다리고 있기에 

모닝 티타임은 숙소 밑 레스토랑에서 하기로 협상을 봤다


칼칼함이 떨어지지 않아

레몬 허니 진저 티라는 강력한 녀석으로

 

매움과 달달함이 목에 걸린 칼을 녹여준다

 

아침부터 분위기가 조금 묘하다

아주 영영 떠나는 사람들 마냥 우울함이 조금은 첨가되어 있다

며칠이 되지 않은 사이긴 하지만 내가 우리가 조금은 서로 기댄 구석이 없지 않아 있었을 테지


조금은 멍해진 체 생각에 빠져있었다


조금은 허전한 마음이 들겠지만 어차피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들이라 생각하면

애써 위로가 된다


허나 이 생각은 나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있었다 (감사하게도)


어쩌면 오늘 하루는 조금 허전할지도 모르겠다

다음 여행지를 생각해놓고 조금은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겠다


차를 마시며

친구들 아람볼로 들렀다 가면 안되냐고 물어보길래

나 거기 한동안 있다가 왔노라 말했건만 그런 건 이유가 되질 않는단다

그땐 자기들을 몰랐다고 스쳐 지나갔을 거라고

시간이 되면 꼭 꼭 한번 들러주면 좋겠다고


뭐야, 나 다시 신이 보낸 사람이 되는 거야?

확신할 순 없지만 우선은 그렇게 하겠노라 말을 던졌다


만남은 짧았지만 뭔지 모를 애잔함이 마음 깊숙이 들어왔다

티타임 역시도 금방 끝이 났다

아쉬운 듯 표정들이 밝지만은 않았지만

그래도 샨티! 샨티! 


이럴 땐 식사를 가볍게 하는 게 좋겠다

식사만큼이나 가볍게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꼭 꼭 아람볼에서 다시 만나자고.. 그래 다시 만나자!!


숙소로 돌아와 오늘은 초심으로 돌아가 본래의 모습처럼 있는 듯 없는 듯 보내기로 

기쁜 마음으로 대사를 치르는데

옆방에서 약간의 샤우팅이 들린다 옥타브가 올라간다 

알아들을 수 없는 걸로 봐선 영어와 힌디는 아닌 것이다

터키어와 러시아어인 것 같다 (모국어가 나온다는 건 흥분했다는 증거)


싸운다..


이유인 즉

샤샤가 덥다고 빨리 아람볼로 가자 했나 보다

(여기나 거기나 기온은 똑같을 텐데)

별로 문제가 될 건 아닌데(내 관점에선)

이것저것 받친 게 많았던 타타인 모양이다


샤샤와 리한나는 타타와 결별을 선언했고

곧 러시안 커플은 떠났다

 

타타는 목소리 높여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차 한잔 더하고 헤어지잖다


역시나 샤샤랑 트러블이 많았다

이런저런 이들이 많았지만 자기가 좀 더 참아야 했다며 괜히 더 머쓱해한다

괜찮아 어차피 일어난 일이고 혹 다시 이런 일이 생긴다면 조심하면 되지 

달달한 짜이를 한잔 마시고 타타랑도 안녕을 했다

 

내일 꼭 봅시다

그럽시다


그렇게 모두들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다


정말 이젠 다 가버렸다


ATM 기기도 찾아보고 버스편도 알아봐야겠다 (어디가 되었든)


버스 터미널로 가는 길에 보이는 ATM기는 모두 먹통이다

괜히 걱정이다 

지난날 라오스로 기억을 한다

빌어먹을 ATM기가 내 현금카드를 먹고 입을 닦아 버리는 바람에

꼼짝없이 그곳에서 노숙을 한 적이 있다

그런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혹시나라는 불길함이 뒤따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언제나 불기한 예감은 적중되기 마련이니)


불편한 마음을 잔뜩 안고서 버스터미널로 간다


하늘 참 맑다

떠나기 참 좋은 날이다


어디선가 "훈" 하고 부른다


헛것을 들었나

이 넓은 인도에서 나를 아는 사람이 있을 리 없잖아


놀란 가슴으로 두리번두리번 주윌 사피니

검은 피부들 사이에 커다랗고 하얀 친구들이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다


어떻게 된 거니 떠난 지가 벌써 1시간은 족히 넘은 것 같은데

버스가 안 온다며 하릴없이 기다리고 있다고

 

아우 바보들 그럼 좀 물어보고 앉아있지 

주야장천 기다린다고 버스가 오겠나


여긴 인도야

기차역에 가면 이불부터 깔고 보는 인도라고..


인포메이션으로 보이는 곳에서 물어보니

시간상 버스들은 이미 고카르나를 떠난 상태라

결과적으로 버스는 없다라고..


불가항력적인 부분을 내가 도와줄 수가 없네

미안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할 것 같아


위로 아닌 위로만 남기고

다시금 손을 흔들었다



별로 한 것도 없었건만 

시간은 물처럼 흐르고 해는 중천을 지나가 버렸다


아무런 생각 없이 걷다 보니 매일 같이 들르던 레스토랑 앞


요 며칠 시끌벅쩍하던 곳이 휑하니 차가움이 느껴진다

건조함에 칼칼한 목도 다시금 덩어리 져 몸도 처지는 기분


모두가 떠난 뒤 먹는 식사는 맛이 없다

허전함이 물씬 새어 나온다

월래 혼자였으니 지극히 당연한 것이지 


그와중에도 ATM기가 생각이 나는 건 

고카르나의 모든 인출기는 먹통 

어떡한담

 

결국 사설 환전소에서  100불을 바꿨다

(나쁘지 않은 환율인데 언제나 손해 본다는 느낌은 떨쳐버릴 수가 없다)


불행 중 다행

돈이 이 뭐라고 지갑이 빵빵해지니 마음도 빵빵하다 


오후 3시쯤 

돌아온 숙소


샤샤와 리한나가 있다


"서프라이즈"


월래의 옆방으로 다시

돌아간 사람이 다시 돌아와 있으니 

꿈인지 생시인지 놀라 자빠지는 줄 알았다

샤샤도 좋았는지 얼마나 세게 안는데 갈비뼈가 다 부러지는 줄 알았다


몰골이 말이 아닌데 피곤해 보인다

우선 식사부터 하고 오라고

수고했다니 그저 웃는 놈들


이상한 마음

되돌아 간듯한 시간


침대에 누워 오늘의 일들을 생각하니

참 우스우면서도 무슨 일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있을 수 있는 일

기분이 처졌다 다시 기분이 바로 섰다

비워졌다 채워졌다

모르겠으며 알겠다


근데 몸이 침대 속으로 빨려 드는 것 같은 이 기분은

조금만 쉬다가 따뜻한 차라도 한잔 더 해야겠다 

약간의 두통과 어지럼이 동반하니 감기가 오려나 

영 신경 쓰이네 영 신경이 쓰이네 쓰이네 쓰이..

침대에 잡혀 먹혔다


눈을 떴을 땐 노트북의 영화도 끝이 나있었고 식은땀과 함께 

건조함에 바짝 말라버린 내 모습을 봤다


창밖엔

약간의 미명만을 남겨두고 어둡게 내려앉는 고카르나


외국에 나올 때면 우습게도 세상 돌아가는 걱정보다는

지극히도 단순한 생계수단만 생각을 하니

오늘 저녁식사 메뉴 선택이 문제로다


우습게도

언제나 그 식당에 그 메뉴


따뜻한 진저 티로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달래어 주고 바닥에 잠시 누워있었는데

언제 나타났는지 옆자리에 샤샤와 리한나가 떡 하니 앉아 바라보며 웃고 있다


얘네들 점심도 아니 먹고 깊은 잠에 빠져있었단다

겨울잠에서 막 깬 듯 엄청난 먹성을 자랑하는 샤샤 

최근 며칠간 한국의 정서인 나눠먹기를 실천했더니 음식만 나오면 먼저 먹여준다 

내가 장난으로 "노 포이즌?" 하니 또 웃어 넘어간다 


샤샤와 장난치며 노는 모습을 한동안 쳐다보던 리한나는

자기네 러시아 사람들은 표정이 없단다 사나운듯한 무표정만 존재한다고

한국 사람들은 언제나 웃는 모습이더라고 나 역시도 그렇다 했고

사실은 나도 그렇게 웃는 얼굴은 아닌데

직업적으로 웃어야 했고, 무섭게 보이지 않으려 웃어야 했고, 무슨 걱정 있느냐에 없다 웃어야 했다

실직적으로 만들어 낸 웃음은 언제나 부자연스러웠고 불편했다

허나 지금의 웃음은 진짜다

내가 만든, 우리가 만든, 여행이 만든

진짜 웃음


어쩌면 무표정한 세상에서

웃는 러시아와 웃는 대한민국

우리는 그렇게 기억되고 추억을 할 것이다


여행의 참맛


기분 좋게 잘 쉬고

기분 좋게 잘 먹고

기분 좋게 잘 웃고

기분 좋게 잘 놀고


나빠졌던 컨디션도 조금씩 원래의 궤도로 진입하는 듯하다


약은 곧 맥주가 되었고, 맥주는 곧 약이 돼버렸다


안녕 고카르나


많은 일이 있었지만

큰 일은 없었고

별일은 없었지만 

별일  많았던 

허전했지만 

금세 채워지던

 

그런 하루


안녕 안녕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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