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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어부 Dec 16. 2016

인도를 노래하다

#28 기다림

기다림(아람볼)


누군가가 돌아오리라는 확신이 있을 때

기다림은 행복이 되겠지요

나는 누군가에게 행복이 된 적이 있었던가요

그대가 돌아 오리라는 확신이 있었을까요

나는 그리움이었을까요

나는 기다림이었을까요


만선을 기원하며


아무것도 없는 방안

아무 생각 없는 가구처럼

깔끔하게 잠에서 깨어났다


고 카르나의 드라이함이 아직도 내 목 속을 짓누르고 자리 잡고 있지만

이곳엔 다행히도 물먹는 하마라는 놈은 없었다


눈곱을 띠기도 전에 노트북을 챙기고

강력한 와이파이를 자랑하는 산토스네로 향했다


잦은 정전과 아무런 능력도 없는 부채만 펼치고 묵묵부답

아무런 대답도 없이 침묵을 유지할 때가 많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연명하듯 살얼음판을 위태위태 걷듯

늦어도 된다는 그 자체가 신비롭기까지 한 곳

그런 기대감에 나뿐만 아니라 많은 여행자들이 찾는 곳


짜이와 고아식의 오믈렛

한 달 전과 같은 메뉴

딱 한 달 만이다


그전엔 몰랐던 편안함과 안락함이 존재했었다

아람볼이라는 곳엔


타타와의

의리를 보여주려 얼굴 도장만 찍으려 들렀던 것뿐인데

긴장이 풀렸을까, 오랜 피로의 누적일까

컨디션의 이상 징조가 하나둘씩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간에 안일함에 뒤를 돌아보지 못한 스스로가 미워진다


불안정한 상태로 여행을 이어 간다는 건

장기적으로 마이너스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함과 불편함의 공존


다행히 아람볼이라

다행히 익숙한 곳이라

다행히 편안한 사람이 있으니

다행이다


끝끝내 침묵하던 와이파이는

된다 되겠지 될 거야 그럴 수도 있어 괜찮아 조금만 힘을 내봐

기대하고 고대했던 것은 실망을 지나 절망을 안겨줬다


희망과 절망은 기껏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과

기대가 클수록 실망이 크다는 것

(여행이라는 놈은 너무 사사로워 신경조차 쓰지 않던 것들을 너무나도 친절히 잘도 알려준다)


터벅터벅 숙소로 돌아가는 길

모래엔 지난날의 흔적들이 흥건하고

돌아가지 못한 기억들만이 남아있다


타타와 리한나는

아람볼의 장승같다

어딜 가나 나의 앞길에 웃으면 행복을 기원하는


동서양의 문화를 고루 받은 터키

언제나 다음날의 안녕을 고하는 타타님

조금의 피곤한 기색을 보일때라치면 어디서 무엇을 가지고 나올지 모르는 판도라 같다

역시나 진저티를 한가득 들고 와서는 모닝티라는 사사로운 것들이 감동으로 일상이 되어버린 일

아이고 나는 언제나 받기만 하는 부족한 사람이다

타타 케세큐(터키의 감사말)


일정이 어떻게 되겠느냐 물어보는 타타에게 컨디션이 조금은 좋지 않다고 하루 이틀 더 머물 것 같다니

큰 코를 벌렁거리며 샨티샨티 정말 잘 생각했다고

여행을 하려 들지 말고 순간을 즐기시라는 샨티 교주님 타타

늘 좋은 말과 배려 감사해


혹시나 하는 기대감으로

오전이라는 시간을 바람처럼 흘려보내 버렸다

발끝 모래의 기억과 지난날의 안일함을 씻어내려 들어간 화장실엔

알록달록 독을 가득 품고 있을 것만 같은 개구리 놈이 아직도 CCTV를 돌리고 있었다


덜 말린 몸으로

커다란 팬 아래 누워있자니

침대는 과학인 것 같다

데이터를 처리하듯 지난날의 추억을 먹는다


여행을 하다가 보면 다시금 머물렀던 곳으로 되돌아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곳의 향수가 그곳의 사람이 그곳의 기억이 너무 좋았기 때문

본의 아니게 불가항력적으로 되돌아가는 경우도 있겠지만


지난날 루앙프라방을 생각해보면

그곳에서 비자가 하루밖에 남지 않아 겨우 베트남의 국경을 넘을 수 있는 시간이거늘

친절한 기사분의 친절한 갑질로 다시 므앙응어이로도 되돌아 갈 수 도 없고

그렇다고 베트남도 갈 수 없다 길은 오직 루앙프라방뿐

선택을 할 수 있는 건 그뿐이었지만 모른 척 화만 내고 있을 뿐이었다


여행은 언제나 불확실이다

계획을 했기에 편의성이 생기는 것이고

그 계획이 틀어졌기에 끝이 아니라 새로운 여행이 탄생한다는 것을


나는 그 길 위에서 배웠다

내 인생의 모토인 그 갈림길에서


고맙다

진심으로


결국에 돌아가게 된 그곳에서

오직 라오스 밖에 보지 못했던 그곳에서 프랑스를 보았다는 것

어디에 있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와 있었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이제와 알아버렸다는 것

또 그것은 너무 늦은 뒤였다는 것  


추억을 먹다

웃고 욕하고 뒤척이다

오후라는 시간을 잠이라는 놈에게 한 수를 내어줘 버렸다



눈을 뜨니 팬은 충성을 다하듯 윙윙 거리고 있었고

부시시한 상태로 창밖을 보았을 땐 해는 중천을 한참을 지나있었다


그렇게 자도 나아지지 않는 컨디션은 할 말이 없다


뭐라도 먹지 않으면 분명 또 화가 날 것이 분명하다

한 달 전 이곳에서 나에게 굉장한 포만감을 준 피자집이 떠 올랐다

컨디션이 안 좋을수록 잘 먹어야 해


나는 자주 아픈 편이 아니다

허나 한번 아프기 시작하면 죽는 게 무엇인가를 알아보는 학습을 한다는 것


아~ 김치찌개 먹고 싶다


진정 놀 줄 아는 총각들


오늘도 여전히 홀로 앉아있는 리한나

샤샤는? 아직도 안 들어와서 지키는 중이란다

밥도 못 먹고 몹시 허기진 표정이 가득하다

혹시나 남은 음식을 먹을까

생각하면서 손은 이내 가방으로 들어가

조심스레 피자를 꺼내 건넸다


그때의 행복한 표정은 봐었야 안다


한국의 정서 나눔의 행복


남은 피자는 너의 몫


타타는 자기 방에서 책을 보고 있었다


저기 타타

혹시나 오늘 저녁에 부엌 한번 쓸 수 있을까 물어보니

얼마든지 된다고 하며 몇 시쯤에 사용하겠냐고 물어 온다

8시쯤이면 좋겠어

오케이~


지난번 고카르나에서 타타는 자기 방에 부엌이 있다고 했는데

타타의 방엔 부엌이 없다 작은 침대와 좌식 테이블에 방석 책꽂이가 전부인데

눈으로 확인하고도 타타는 너무나 진지하고 확실하게 8시에 된다고 하니

믿을 수밖에 (뭐 없어도 크게 상관없으니)


수평선 위로 마지막 불꽃을 태우다

다시 돌아온 방 안에서 멍하니 앉아 해 질 녘 바다를 바라보니

문득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얇은 파도처럼 밀려 들어왔다


아프고 힘들고 할 때면 생각나는 게

고향이고 어머니다

이곳에서 고향을 느낄 수도 없고

어머니를 만날 수도 없다



그리하야 밤 8시에

극약처방을 하기로 했다

고향 같은 어머니 같은


배낭 속 가장 깊은 곳에

아주 아주 위대하고 은밀하게

"신라면 3개가 봉인되어 있다"


봉인을 해제해야 할 때가 오늘이다



기다림이란게 이렇게도 행복하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조금은 알았다


시간은 찰나처럼 지났고


배낭에서 보물이라도 꺼내듯 소중하게

조심스럽게 라면 3 봉지를 꺼내 들고 누가 볼세라 가슴팍에 봉인을 했다

똑똑똑

타타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가잔다 부엌으로

작은 골목 몇 개를 지나

숙소 밑 작은 공터

화덕을 만들어 놨다


대박..


냄비는 또 어디서 구했는지


코리아 누들이라며 조심스럽게 1봉 2봉 3봉을 꺼내니

하얀 이를 들어내며 특유의 코를 벌렁거린다


불을 피우고 냄비에 물을 붓고 스프를 넣고 끓기를 기다린다

불이 꺼질세라 코코넛잎, 작은 나무 조각들을 계속 넣고 기대감에 벅참이 오른다


기다리는 동안 코코넛 나무에서 크고 작은 코코넛들이 중력을 이기지 못했다

타타와 인도에서 사망률 1위는 코코넛이니 머리 조심 하란 말 (타타는 손톱만 한 코코넛을 맞았다)


음.. 먹다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고 했겠다


보글보글

한국의 냄새가 난다

이내 면을 넣어 달라고 방울방울 손짓을 한다

퐁당퐁당

꼬들꼬들하게 잘 익어주려무나


기다리는 동안

봉지로 그릇을 만들고

나뭇가지를 잘 긁어내어 젓가락을 만들었다



타타 먼저 하얀 속살을 들어내며 흔들흔들 몸을 튕기던 라면을 크게 한 젓가락 담아 준다

어설픈 젓가락 질이지만 땀 흘려 먹는 모습이 굶주린 하이에나 못지않다

나 역시 극약의 처방이라도 받은 듯

크게 한 젓가락 담고 미친 듯이 불고 먹고 불고 마시고

미치겠다 정말


이런 감동은 언제나 나타날까

처음이라는 단어를 가장 좋아한다

나의 첫 인도에서 첫 이방인과 첫 라면을 끓여 먹는다

세상에서 두 번도 없는 단 한 번의 순간을 처음이라고 하지


할렐루야


라면 2 봉지는 부셔먹었는데

내가 왜 그랬을까

참을걸

내가 라면 부셔먹으러 인도에 왔는지 자괴감이 들고 괴로워

인생 최고의 실수이자 후회가 들었던 짧은 순간의 교차


타타 한국의 라면은 세상 모든 누들 중에

베스트 오브 베스트라고 극강의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사실 타타의 처재가 한국사람이다.)

내가 무슨 라면 하나로 한국의 국빈처럼 터키의 국빈을 접대하는

화덕과 라면의 콜라보

고맙소. 타타. 캐세큐!!


내 안에 한국이 들어와 있다

사라지기 전에

육체의 포만감과 정신적인 충만감으로 고이 꿈에서도 한국이 가득하길

 

대한민국 라면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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