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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어부 May 08. 2016

여행을 닮고, 시를 담다.

같음을 노래하다.

파야오(태국)


사랑하면 닮는다고 한다

호수에 비치는 하늘이 너무 예쁘다

어디까지가 물이고 어디까지가 하늘인지

물은 투명한데 하늘을 닮고 싶어서

늘의 그대로를 담고 있다

누군가를 흠모하고 사랑한다는 건

나를 모두 투명하게 버리고

그의 색을 오롯이 입는다는 것

물든다는 것

닮다, 담다




태국 치앙라이에서 계획했던 루트가 비수기라 버스가 없다는 일반 통보에 뒤통수를 맞는 듯 잠깐의 어지럼증이 동반했다. 그렇다고 승객이 없어 성수기에만 운행을 하는 버스를 만들 수는 없지 않은가. 나지막한 의자에 앉아 지도를 펴서 치앙라이와 가까우면서 다른 나라로 넘어가기 좋은 루트 중에 파야오라는 동네가 눈에 들어왔다. 정보가 미비해 조금의 망설임은 있었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다리는 파야오행 버스에 몸을 싣고 있었다. 로컬버스라 커다란 배낭이 조금은 성가시고 번거로웠지만 배낭여행자가 가장 멋있어 보일 때는 배낭과 함께 있을 때가 아닌가 생각을 해본다. 로컬버스의 특성상 많은 정차와 기다림으로 조금씩 지쳐갈 때쯤 땀을 많이 흘리던 차장 아주머니께서 까올리 파야오를 연신 외쳐주셨다. 친절하게도. 여기가 파야오임을 확신하고 내렸다. 나를 제일 처음 맞아 준 것은 재래시장이었다. 사람 냄새가 난다.

하늘냄새와 사람냄새가 향기롭다.

크지 않은 동네였기에 헤맬 이유도 없었다.

그 흔한 외국인 여행자 한 명 볼 수 없었다.

그렇기에 숙소도 찾기가 쉽지가 않았다.

호기심으로 잔뜩 부푼 마음으로 기웃기웃 여기저기 거닐다.

공사 중인 호텔을 발견했는데. 그중에 사장님으로 보이시는 한분이 뛰어와 호텔에 묵고 가란다.

공사 중인데 방 하나는 다 만들어 놨다며 나의 발길을 이끌어 방을 보여주시는데. 가난한 장기 배낭여행자가 감히 이런 곳에 묵어도 될까 짧은 고민이 끝나기도 전에 말도 안 되는 값을 제시하신다. 사기가 아닐까 하는 조금의 마음과 한번씩 이런 편안하고 안락한 곳에서 하루쯤 쉬어가는 것도 참 좋지 않을까 하는 사치스러운 마음였다. 결과적으로 묵기로 결정.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던 결과였다. 저렴하기도 하고 새것이니 깔끔하기도 했고 짐을 풀고 되지도 않는 영어로 자전거렌탈과 오는 길에 태권도복을 본 것 같은데 위치 좀 알려달라고 하니. 관광 맵이 없다며 손수 그려주신다. 친절하시게도.


관광지도가 없는 파야오에 아날로그 지도를 그리다.

정말 쉬운 코스가 아니라. 그게 전부였다. 도보로 10분도 되지 않는 거리에 파야오의 명물이라는 꽌파야오가 있었다. 해질녘 해가 놀을 따라 조금씩 기울어 가고 다.

해질녘 호수엔 구름도 쉬어간다.

파야오의 느낌은 태국의 타 지역과는 많이도 다른 기분이 들었다. 조금은 더 가족적이고. 생계의 낚시가 아니라 레저의 낚시를 즐기는 여유가 있었고. 연인들은 호수에 앉아 뜨거웠던 해 질 녘 바라보며 사랑을 속사귀고 아이들의 웃음이 진심이 묻어나는 철저하게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그날과 그 다음날 그 다음날에도 이방인은 나 혼자였으니. 신선하거나 신기로웠을 것 같다.

붉은 해는 그를 투영하는 붉은 호수에 두개에서 하나로. 하나에서 다시 0으로. 그렇게 어둠이 내려앉은 파야호엔 모든 게 멈춘 듯 고요가 흘렀다. 어릴 적 시험에 가구가 아닌 것은 무엇인가에 침대를 체크 한적이 있다.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 과학이라고 했었는데 새 건물에 새 침대는 나를 완벽하게도 케어를 했다. 과학적이지 않았을까 혼자 말도 안 되는 상상으로 웃음이 묻어나는 아침이 밝아 왔다.

베개에 묻은 잠을 때어내고서 밖에 담배라도 한대 태울 요량으로 나가니. 친절한 사장님이 없던 자전거를 조립해 놨다. 감동이다. 나의 걸음에 날개를 달다. 그 어디든 시간을 초월할 수 있을 정도의 날렵함이다.

특별할게 없고 특별한 게 아닌 그저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꽌파야오. 호수. 이건 치앙칸의 붉은 노을만큼이나 사람을 홀린다.

닮고, 담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닮아 있다. 자연이 만든 데칼코마니

내가 너이고 너가 나인 거처럼.

누군가를 좋아하면 나의 색은 빠지고 그의 색으로 오롯이 물이 든다.

이 호수는 진정 하늘을 사랑하고 있다.

나의 날개와 파야오의 벽화거리

날개가 있으니. 아니 갈 수 있는 곳이 어디랴.

붕붕이 덕분에 스치듯 태권도장의 위치도 확실히 알아 놨다.

점심을 먹고 잠시의 휴식을 처한 뒤. 도복으로 갈아 입고. 나서다 하늘의 무거움과 무릎의 욱신거림을 느꼈다.

혹여나 하는 마음에 친절한 사장님께 우산을 하나 빌렸다. 아니나 다를까 엄청난 폭우가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기상청에 슈퍼컴퓨터 이상의 정확도가 높은 무릎과 손목이 있었다. 한 번씩은 참 고맙다.

나의 태권도 인생 20년은 태국으로 인해서 모든것이 무너졌다. 즐기는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태국에서 8번째 태권도 재능기부. 파야오. 태국에서 하는 태권도 수업은 하면 할수록 나는 많은 것을 비웠고. 많은 것을 채웠고. 많은 것을 얻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태권도를 그만두고 다시는 하지 않겠다던 다짐으로 왔건만 머나먼 이국땅에서 태권도를 할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했었다. 그것은 내가 나의 재능을 기부하는 게 아니라 나의 교만과 자만을 깍아내린 따뜻한 손길이었다. 나의 인생에 디딤돌이 되었고. 철저하게 즐기는 법을 배웠다. 감사합니다. 더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싶었는데. 내가 더 많은걸 배우고 왔으니. 살아가면서 또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다시금 고이 접어 넣어둔 도복을 잘 다려서 다시금 달려가겠습니다.


말도 안 되는 꿈같은 곳에서 너무나 많은 스승들이 있었다.

자연이 그러했고, 가난이 그러했고, 아이들이 그러했다.

고정관념은 스스로 옭아매는 올가미다.

비울수록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다.

오롯이 닮아야 담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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