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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어부 May 09. 2016

여행을 닮고, 시를 담다.

사색을 노래하다.

시판돈 (돈뎃. 돈콘) - 라오스


되돌아가는 길

무엇으로 하여금

나의 마음을 사로잡아

발길을 두게 하였는지

나는 알 수 없지만

너는 무엇이 간데 나에게

고즈넉하게 평온을 주시는가

남루하다 하여 불평하지 않았고

비루하다 하여 불행을 말하지 않는고

어찌 그리 해맑을 수 있는가

나는 진정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진정 알 수 있

그리하여 시나브로

나를 진정 부자로 만들었고

나를 진정 어린아이로 만들었다

이 어찌 너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동남아 배낭여행을 하며 자꾸만 지난 라오스 생각이 나는 것은 미련하게도 미련한 생각일까

또 가고 싶으면 가는 것이지 내가 정한 루트대로 가고자 했던 것이 무너진지도 한참 지난 지 오래다.

어차피 갈 거면서 고민은. 그래 맞다. 이것이 어쩌면 여행의 묘미가 아닌지 모르겠다.

아쉬움의 다른 이름은 잘 못한 것들의 다른 이름인 그리움일 것이다.

캄보디아에서 다시 라오스로 넘어가는 길은 정말 멀고도 험했다. 해 뜨는 것과 해지는 것을 버스에서 봤으니.

슬리핑 버스였다면 그나마 다행이었을 것을. 13시간쯤 달렸을 때다 모두가 지쳐 잠시 쉬어가려 도로가에 버스를 정차했다. 담배를 하나 물고 나오는 순간. 눈앞에 불과 3m도 되지 않은 짧은 거리에서 트럭이 3명의 가족이 타고 나오던 오토바이를 그대로 받아 버렸다. 아주 아주 생생하게 기억이 된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일어났지만 기억 속에선 모든 것이 천천히 지나갔다. 모두가 그 자리에서 사망을 했고 가해자는 웃으며 도망을 가버렸다.

악마라는 건 보이지 않는 허상이 아니라 진정 무서운 사람이다. 나는 그날의 악마를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정말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났다. 대한민국의 욕을 참 많이도 했지만 정말 살기 좋은 나라는 대한민국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과 한 번뿐인 삶을 허망하게 보내고 싶지 않다는 생각. 그렇지 않아도 침묵이 흐르던 버스 안은 더 무거운 침묵 속으로 빨려 들었고 그렇게 라오스로 향하고 있었다.


이방인이 신기했던지 연신 사바이디를 외치며 그린라이트를 켰다


내가 운전한 것도 아닌데 지칠 대로 지쳐 라오스 남부 반나까상에 도착.

시판돈(돈뎃. 돈콘)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다시  얇은 보트를 타야 한다.

시판돈의 뜻은 시 = 4, 판 = 1.000, 돈 = 섬. 즉, 사천섬을 말한다.

섬이 4.000개는 없다. 사람이 사는 섬은 단 3개. 그럼 나머지 3.997개는 어디 있느냐.

나도 알 수 가 없다. 풀만 피워나도 섬을 칭했는지.

어두워져서야 도착한 돈뎃엔 먹구름 같은 모기가 모든 시야를 가렸고 선택의 폭이 좁은 숙소는 저렴했으나 경악을 금치 못 했다. 화장실에 모기를 그대로 갔다 놓았으며 커다란 틈 사이로 전갈이 출몰하곤 했다. 돈뎃의 첫날은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다. 잔 듯 만 듯, 안 잔 듯 잔 듯 비몽사몽 밤사이 방광 가득히 채운 아침. 소변을 차마 화장실에서 전투적으로 볼 자신이 없어 밖으로 나와 주윌 사필 고선 시원하게 볼일을 보는데. 시야에 초록색 풀들 이로 붉은색과 검은색이 교차로 움직이는 것을 포착했다. 더 자세히 더 자세히 바라보고선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온몸에 닭살이 돋고 머리끝부터 발끝가지 소름이 돋아 온다. 그리고 뒷거름칠을 한다.  똬리를 틀고 있던 뱀 위에 소변을 누었다는 것... 돈뎃의 이틑날도 경악으로 시작을 한다.

라오스의 또 다른 이름은 자연이다

부리나케 배낭을 다시 싸고선 나왔다. 그리고. 또 한 번의 경악을 머금었다.

나의 소변을 맛보았던 그 뱀은 동네 꼬마들의 장난감이 되어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는 것.

라오스는 그 자체가 자연이며 모든 것은 자연 친화적이다.

세상 무엇보다도 귀한걸 얻던 순간

영혼 없이 배낭을 멘 채로 작은 카페에 멍하니 앉아 있다. 하나둘씩 모여드는 아이들. 보부상 할머니의 움직임에 섬에 모든 아이들이 피리 부는 사나이에 나오는 쥐처럼 달려들었다. 궁금해 한참을 쳐다보니 아이들이 좋아하는 불량식품이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가 나에게도 전해져 흐뭇한 미소의 같은 표정어 있었다. 나도 어릴 적 어머니께서 일 마치고 돌아오시던 길 두 손 가득히 들고 오시던 검은 봉지 안에 나의 간식거리가 있지 않을까 어린 여동생과 골목 모퉁이에서 어머니를 한참 기다린 그때의 향수가 돈뎃에서 피어났다. 

별거 아닌데 별거인 돈뎃의 이틀도 강물처럼 지났다.

돈뎃에서 돈콘으로 가는길. 섬사이를 헤치다

돈뎃과 돈콘은 다른 섬이다. 육로로도 연결이 되어있다. 무거운 배낭을 들고 2시간을 걸을 수 있다면 걷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하나 나는 자신이 없다.


선택의 기로에 서다

돈콘에서의 하루는 세계 보호종이라는 메콩강 돌고래. 그거 한번 보겠다는 생각으로 내 인생의 가장 큰 인내를 실험했다. 비가 쏟아졌고. 바람이 불었고. 번개도 쳤다. 가려하면 왠지 돌고래가 한 번쯤은 고개를 들 거 같아서 가다 돌아서 앉고 가려다 그래도 한 번은 나오지 않을까 하는 미련한 생각으로 다시 앉았다. 그렇게 하루 온종일 돌고래를 기다렸다. 끝끝내 돌고래는 나타나질 않았다. 아쉬움은 컸지만 나쁘지 만은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신호등 하나 기다리지 못할 조루의 성급함을 보였겠지만 나도 모를 차분한 기다림 이었다. 미련 이었겠지만 참 좋았다. 사색의 시간. 적당한 고독함. 환경이 사람을 바꾼다는 말 잠시나마 공감.


돈콘에서의 이틑날은 온종이 폭우가 쏟아졌다.

독한 담배 한 갑과 진한 라테 한잔, 해먹 하나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던 하루


세상에 모든것은 멈추었다, 단 하나만 빼고


시판돈에서의 마지막 밤은 그날 내렸던 미친 폭우로 5km가 넘는 거리의 폭포 낙하 소리가 세상을 다잡아 먹을 듯 으르렁거렸다 내 방 가까이 까지.

고작 몇 개의 숙소와 몇 개의 레스토랑 한 개의 구멍가게가 전부이던 유흥과 문화와는 거리가 먼 정말 자연친화적인 여기 시판돈은 그냥 자연이 된다. 비도 되고 바람도 되고 구름도 되고 공기도 되고. 그 자연 속에 일원이 된다는 것이 참으로 좋다. 물들어진다는 것.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더 행복한 것만 같은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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