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남편이 오묘한 얼굴로 작은 방에서 나왔다. 남편은 검은색 노트를 품에 꼭 안고 있었다.
"이게 뭔 줄 알아?"
"뭔데?"
"이거 유럽여행 갔을 때 샀던 몰스킨이야."
그저 여행에서 산 노트를 발견했다고 저렇게 감동받진 않았을 텐데. 의아한 얼굴로 나는 남편을 쳐다봤다.
"밖에서 쓰려고 열어봤는데 앞 페이지에 우리가 유럽여행 갔다 돌아온 날 쓴 일기가 있어. 그 날 쓴 일기를 읽는데 기분이 너무 이상하다. 너무 잘 썼는데?"
스스로를 칭찬하는 모습이 웃기기도 하고 꽤 감동받은 얼굴이기에 궁금하기도 했다. 남편은 읽어보라며 일기를 나에게 내밀었다. (당당하게 읽어보라고 내미는 걸 보니 일기에 누구 험담을 적는 스타일은 아닌 모양이군.) 우리는 외출하기 직전이었기에 나는 노트를 가방에 넣고 집 밖으로 나왔다.
남편이 운전하는 동안 나는 조수석에서 남편의 일기를 읽었다. 어쩌면 그저 평범하게 여행에서 돌아온 느낌을 적은 일기였는데 그 날의 분위기나 우리의 모습들이 떠오르면서 갑자기 눈물이 터졌다.
(남편의 허락을 받고 남편의 일기를 간략하게 적어봤다.)
2015년 12월 2일 AM 03 : 30
여행을 마치고 짐을 풀고 한숨 잤다. 여행이 끝났다. 꿈을 꾼 듯하다. 실감이 안 났던 것들이 실감이 나고 사진을 뒤적이며 그때의 공기, 분위기, 풍경, 냄새, 소리를 다시 생각해보려 곱씹어 본다. 한 달 만에 찾은 집은 지겨울 것 같았지만 무척 반가웠고 무엇보다 새로웠다.
생각보다 넓었고, 생각보다 따뜻했고, 생각보다 집 안으로 빛이 많이 들어왔다. 여행을 가기 전에도 아마 그렇게 내 곁에 존재했을 것이다. 여행지에서의 순간을 되새기려 하면 그때는 느끼지 못했던 설렘이 갑작스레 느껴진다. 오히려 그곳에서 느꼈어야 할 감정들이 그 장소를 떠난 뒤에야 찾아온다. 그곳을 벗어나야 그 장소의 의미를 비로소 곱씹을 수 있다. 내가 그곳에 머물 때는 절대 음미할 수도, 지각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여행은 내가 취한 일상의 의미를 더욱 자세히 알기 위해 떠는 것일지도.
(중략)
눈부시게 아름다운 것들이 많았다. 시간을 멈추고 장소와 시간을 떼내어 영원히 간직하고 싶던 순간들. 그것들은 단순히 사진을 찍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숨죽이며 그 순간에 느꼈던 경외감. 그런 시간들이 아주 소중하다. 번잡한 일상에서는 그런 시간들이 필요 없게 느껴진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인생에서 뒤돌아 보면 정말 기억에 남는 시간은 그것들을 고요하게 고독으로 대하던 순간들이다. 대상과 내가 1:1로 만나는 순간. 기회가 된다면 힘들어도 고돼도 다시 여행길에 오르는 걸로.
2015년이라니. 어떤 날은 꿈처럼 아득하게 먼 옛날 일 같기도 했고, 어떤 날은 불과 작년 일처럼 선명하기도 했는데 정확한 날짜와 시간을 보니 그 날의 풍경이 모두 그려졌다.
유럽 여행을 떠나기 전 우리는 정확히 인천공항 지하 주차장에서 싸웠다. 출발을 일주일 정도 남겨둔 상황이었다. 남편은 내내 참았던 말을 토해내듯 사실 자신은 여행 가는 게 그렇게 내키지 않는다고 했다.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하면 어떡해! 라며 화를 냈지만 나도 알고 있었다. 남편이 억지로 나에게 맞춰주고 있다는 것을. 나 스스로도 과하게 너무 큰 일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생각에 순간순간 불안하고 두려웠는데 남편이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순간 불안 불안하던 마음이 펑 터져버리고 말았다.
"내가 무슨 여행에 미친 인간이어서 너한테 이러는 줄 알아? 나도 안 가도 그만이야! 그럼 처음부터 가기 싫다고 말을 정확히 했어야지. 일주일 남겨두고 이제 와서 그런 얘길 하면 어쩌라는 거야?"
"얘기하면 네가 들었겠어? 어차피 가는 쪽으로 네 마음은 완전히 정해졌잖아!"
"그래도 이건 너무 비겁한 거 아냐? 눈치 보고 말 못 할 거면 끝까지 말하지 말던가. 이제 와서 그럼 왜 얘기해?"
우리는 차 안에서 아슬아슬하게 외줄 타기 하던 감정들을 폭발시키며 언쟁을 벌였다.
남편은 회사를 그만둔 참이었다. 나도 그때 개인적으로 뼈 아픈 실패의 경험을 맞은 직후였다. 나는 남편에게 이럴 때 긴 여행을 가보자고 했다. 한 달 정도 유럽여행을 해보자고. 남편은 난색을 표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남편은 신혼여행이 첫 해외여행이었다. 여행이란 3박 4일, 2박 3일 일정으로 다녀오는 것이지 누가 한 달씩 여행을 간단 말인가? 심지어 지금 회사를 그만두고 당장 매달 들어오는 수입이 끊긴 마당에. 남편은 모아놓은 돈도 없이 호기와 객기만 가득 찬 와이프의 주장을 대차게 거절하진 못하고 미적지근한 호응과 무응답으로 반대 의사를 표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 어떤 사명감처럼 남편을 꼭 유럽에 데려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대학생 때 1년간 휴학하고 아르바이트로 경비를 모아서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온 일이 있다. 그것이 내 첫 해외여행이었다. 무식해서 용감했던 40여 일의 그 여행 덕분에 나는 태어나서 처음 보고 경험한 것들이 많았다. 그건 확실히 내가 살던 동네만 뱅뱅 돌 때 할 수 있는 경험치와는 확실히 달랐다. 지금 우리 부부에게 필요한 건 바로 이거야! 나는 확신했다. 남편도 가기만 하면 무조건 좋아할 거야! 그래서 나는 밀어붙였다. 하지만 날짜가 점점 다가오자 남편의 불안감이 점점 더 커졌고 결국은 터져버리고 만 것이다.
그 날 차 안에서 우리는 '그래! 다 취소해! 환불받고 가지 마!' 라는 결론을 내고 울며 불며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씩씩거리며 컴퓨터 앞에 앉아서 호텔과 항공권을 예매한 사이트 창을 나란히 켜놨다. 창만 켜놓고 마우스만 움직일 뿐 도저히 취소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뱉어놓은 말이 있어서 밖으로 나가지는 못하고 끙끙거리고 있는데 문을 열고 남편이 고개를 내밀었다.
"취소하지 마. 가보자. 걱정이 돼서 그랬어."
그렇게 울고 불고 다시 한번 화해의 시간을 거쳐 한 달짜리 짐을 준비하고 우리는 로마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한 달 동안 여행하면서 다행히 우리는 크게 싸우지 않았다. 우리는 꽤 좋은 팀워크를 자랑했고, 위기 상황을 웃음으로 잘 모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력적으로 힘든 순간들은 분명히 있었고 당황스러운 일을 겪을 때도 있었다. 그리고 생애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광경을 보고 가슴이 벅차 울었던 순간도 있었다. 정말 좋다! 너무 좋다!라는 말을 혼자 배낭여행할 때는 나눌 수가 없어서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서로 마음을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한 달을 꽉 채우고 우리는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서 인천공항으로 돌아왔다. 한 달 사이에 변한 건 아무것도 없는 게 당연한데도 우리 집까지 가는 모든 풍경이 새로웠다. 유독 날씨도 좋았다. 그리고 한 달치의 먼지를 가득 뒤집어쓰고 있을 우리의 작은 집 문을 열었다.
남편의 일기처럼 정말 집안 가득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고 슬로비디오처럼 모든 것이 느리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울컥할 만큼 집이 반가웠다. 여행이 너무 좋았지만 돌아올 곳이 있어서 더 행복했다.
"우리 다시 그런 여행 갈 수 있을까? 몇 년 후에 전세계에 바이러스가 퍼져서 이렇게 여행 다니는 게 힘들어진다는 걸 알았으면 더 열심히 보려고 노력했을 텐데. 그렇지?"
"그러게. 여행할 때는 정말 하루하루가 소중했어. 매일매일 다시 못 올지도 모르는 곳에 가는 거고 새로운 거 보러 가는 게 그 날 할 일이니까. 그리고 끝이 정해져 있잖아. 근데 일상으로 돌아오면 그냥 하루하루 의미 없이 살 때도 많은 거 같아."
남편의 일기 덕분에 우리는 여행지에서 느꼈던 에피소드를 또 나눌 수 있었다. 아마 수없이 둘이 했던 얘기일 것이다. 그럼에도 매번 재밌고 신나는 우리의 여행 후기. 그리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 무엇이든 기록하고 남겨놔야 한다는 것을. 그날을 기록해놓지 않으면 아무리 붙잡고 싶어도 결국 희미해지다 사라져 버린다. 남편은 감상에 젖어 새벽 3시에 일어나 일기를 썼겠지만 4년의 시간이 지난 후 우리는 그 일기를 보고 더 큰 추억을 곱씹을 수 있다. 언젠가 다시 여행이 가능해진다면 고되더라도 여행길에 꼭 오르기로. 그때 가서 딴 말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