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1
머릿속이 복잡해서
마음까지 정신없어서
정해야 할 날짜를 아직도 갈팡질팡 하고 있다.
곧 정해져야만 하고
정해지면 아니 정해야 하는 날짜가 다가오면
또 어쩔 수 없이 떠 밀리듯 준비 없이 사라질 테니
마치 원래 없었던 양
아니 그랬으면 좋겠다
아무에게도 기억되지 않았으면
주변에 가까웠던 혹은 알고 지냈던 사람들의 안타까운 소식은
늘 준비 없이 들려왔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던 너무 멋졌던 남자 P
조금은 가벼워 보였지만 밝았던 H
내가 알았던 모습보다 훨씬 더 삶에 충실했던 D
그리고 너무 일찍 떠나버린 내 아이
그래서인지 나는 늘 죽음을 곁에 두고 있는 사람처럼
모든 관계에, 생각에 그리고 내 삶에 죽음을 떠올렸다.
두렵고 무서웠다.
드라마 나 영화를 볼 때는 죽음 이후의 세계나 아름다운 죽음이 그려진 작품을 좋아하게 되었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 가장 두려웠다.
한때 그가 조금이라도 연락이 되질 않거나
집 밖으로만 나가면 계속해서 그가 혹시나 갑자기 죽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시달렸다.
쓸데없는 상상이 강박처럼 박히면 그때부턴 안절부절 눈물이 주르륵 흘러서
하루도 눈물 없이 하루를 끝마친 적이 없었다.
어쩌면 지금도 조금은 그 마음이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몇 년 동안 나는 그 두려움과 홀로 맞서서 싸워야 했다.
이해해줄 누군가가 있다는 생각도 못했다.
너무 힘들어 슬며시 말을 꺼냈을 때
그 고백은 칼이 되어 나에게 박혔고
나는 그 덕에 꼭꼭 내 감정을 숨기고 이젠 표현할 수 없어 답답한 마음까지 끌어안고
끙끙 앓아야 했다.
한마디 말을 삼키면 목이 붓고 속이 꽉 막힌다
더 깊이깊이 눌러 담을수록 자리가 모자란 내 아픔은 눈으로 자꾸 눈물을 내보낸다.
소화제를 먹어도 묵직하게 계속해서 아픈 내 등은 어쩌면 음식물 때문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2
마무리는 참 어렵다.
두문분출 정신을 놓고 생각을 잊을만한 취미에만 나를 맡기고 6개월을 아니 3년을 보냈다.
샘솟는 생각과 아이디어 때문에 쉬질 못했던 내 입이
이젠 말을 내뱉지 못해서 버벅거린다.
머리도 멈췄는지 키보드를 타다닥 쳐내려가면 완성되었던 문장이
다시 보면 어색하기 짝이 없는 우스운 단어들의 조합이 되었다.
3년 동안 나는 나는 묻고, 표현하지 않고, 무엇도 빠져들지 않으며
한번 더 생각하고 체크해야 하는 것들을 잊는 연습을 해왔다.
그렇지 않으면 난 살 수가 없었다.
따져 들면 따져 들수록 나는 궁지에 몰렸고
말도 안 되는 기준이 기분 따라 움직이는 모습에
그저 눈감고 수긍하는 연습을 했다.
정신이 맑아지면 화가 나고 어이가 없어서
가만있지를 못하겠고
속이 뒤집혀서 하나하나 따져 들어 정상을 만들고 싶어 지니까
그러면 또 커다란 창 하나가 턱 끝에서 나를 찌를 준비를 하기에
그 창이 닿는 느낌이 싫어 계속 턱만 들었다
옆으로 피할 생각도
그 창을 반대로 들 생각도 하질 않았다.
끊임없이 울리는 경고 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살다 보니
그 경고가 점점 더 귀 가까이 울려왔고
지금은 내 귓속에 들어와 사이렌을 울리고 있다.
이제 더 이상은 무시할 수도 묵인할 수도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3
오늘부터 나는 약 한 달 동안
무시하며 살아야 하고
나를 다독이며 살아야 하고
동시에 구멍 난 독에 물을 퍼 날라야 한다.
서두르고 싶은데
아니 조금 더 늘어지고 싶은데
내뱉어야 하는데
잠깐은 맑아져야 하는데
며칠째 아니 몇 달째
계속 가슴에서 나오지 못한 말들이
입에 맺혀있는지
힘든 잠에 들면 꿈에 나온다.
한동안 꿈을 꾸지 않았던 나인데
아니 기억하지 못했던 나인데
이젠 눈을 뜨면 내가 꾼 꿈을 곱씹어 생각하고 의미를 찾는다.
하루의 대부분의 일과가 꿈의 의미를 찾는 것이 되어버렸다.
보이는 모습이 너무나 치사해서
내가 더 비참하다.
한 가지 이곳에서의 남은 숙제가 있다면
할 수 있는 한 계획을 세우고 잘 지켜낼 것
마음 아프지만 내 속을 이젠 내보일 것
실패가 아니라고 나를 위로해줄 것
울지 말 것
말을 할 것
나를 잘 다독여 줄 것
나를 위로해줄 것
나를 위로해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