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성수기에 제주도 호텔을 예약하느라 진이 빠졌다고 말했다. 그 모습은 학점을 전부 A로 받고 자랑하던 때와 닮아있었다. 대학 동기 중에 취직도 가장 잘했고 월급도 높은 만큼 그녀가 예약한 곳은 무려 무려 여행 방송에 나왔던 곳이라고 했다. 목소리는 발랄했지만, 그녀의 눈 밑엔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어느새 호텔과 가까워졌다. 나는 호텔 간판을 보고 옛 기억이 떠올랐다. 놀라서 머뭇거리는데 그녀가 막무가내로 끌어당겼다. 호텔 로비는 우리와 같은 젊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저 많은 사람이 전부 죽음을 준비하고 왔다기엔 여행용 가방이 거대했다. 프런트로 갔더니 검은 유니폼을 입은 직원이 관으로 들어가는 열쇠를 건넸다.
엘리베이터를 타자 진동 소리가 주위를 가득 메웠다. 화장장 속 관에 들어간 기분이었다. 열쇠를 돌리고 들어간 스위트룸의 침대는 고인들의 자국 하나 없이 깨끗했다. 나는 그녀에게 방송 속 호텔의 모습이 거짓이라고 했다. 무슨 말이냐는 반응에 나는 오랫동안 열지 않았던 기억을 꺼냈다.
입시가 끝난 겨울, 좋은 대학에 못 간 탓에 가족들로부터 없는 사람 취급을 받았다. 차가운 물 속에 머리를 처박힌 듯 숨이 막혔다. 버티다 못해 무심코 안락사 패키지를 신청해버렸다. 하지만 호텔로 걸어가던 길, 타지에서 붉은 노을이 저물어가는 걸 보니 동이 틀 때 성공하지 못했다고, 해가 진 후에도 좌절하긴 싫어졌었다. 끝내 살고 싶다는 마음이 따뜻하다 못해 뜨거워져서 눈물이 흘렀다. 결국 난 자정이 되기 전에 여행용 가방을 챙겨 돌아갔다.
예상과 달리 그녀는 나 혼자만 나가라고 했다. 나는 진심으로 죽고 싶냐고 물었다.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끄덕였다. 왜 그러냐 물어도 소용이 없었다. 울컥해서 멱살을 잡고 흔들어도 가만히 있는 그녀가 무서워졌다. 그녀는 갑자기 일어나 문밖으로 날 내보냈다. 아무리 흔들어도 문은 단단히 못질 된 관처럼 끝내 열리질 않았다.
소란에 달려온 보안요원들이 나를 밖으로 내던졌다. 이래선 그녀의 장례식도 갈 수 없었다. 나는 오랫동안 가만히 앉아서 뒷문을 바라봤다. 성인 한 명이 들어갔을 법한 불룩한 검은 봉지들이 미련 하나 없다는 듯 쓰레기장으로 빠르게 끌려가는 것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