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음악소리
김지훈 씨는 오늘 야근에도 어김없이 중얼거렸다. 그의 소리는 줏대 없는 라디오 방송국이라도 되듯 유명한 아티스트의 노래가 되었다가 드라마 대사가 되었다가 개인적인 이야기로 바뀌었다. 아침부터 시작한 그의 음악은 종일 방송이라도 되듯 끝나는 법이 없었다. 매일 혼란한 그의 음악을 듣고 있자면 나도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오늘 안에 보고서를 제출하고 돌아갈 계획은 이루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차라리 집에 가서 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다. 잠시 내 집을 떠올렸다. 5평도 안 되는 비좁은 방에서도 잠조차 제대로 못 잤다. 방음이 제대로 안 되는 탓이었다. 옆집에도 김지훈 씨를 복제한 이웃이 있는 듯했다. 어떻게든 여기서 끝내야 했다. 나는 김지훈 씨에게 조용히 해달라는 눈빛을 흘렸다. 그는 나를 의식했는지 잠깐 입을 멈췄다. 그러나 타자기 소리만 들리는 건 어색하다는 듯 다시 입을 움직였다. 내 사정을 모르는 이들은 입사 동기니까 이해하라는 속 편한 소리만 해댔다.
나는 이제 집에 가고 싶었다. 나는 목을 가다듬고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했다. 김지훈 씨는 자신이 벽간 소음을 일으키는 이웃이라는 듯 고개 하나 돌리지 않았다. 회사와 집의 경계가 무너져버렸다. 맥이 탁 풀려 다시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에 열중했다. 김지훈 씨는 인턴 때부터 한결같았다. 회사의 인성과 성실함의 기준이 잘못된 듯했다. 가끔 나도 중얼거리면 어떨까 싶었지만, 맥락 없는 소음을 내긴 싫었다. 손가락이 저릴 때쯤 보고서가 완성되었다. 이 정도 수준이면 상사에게 다시 하라는 소리는 듣지 않을 것 같았다. 제출 버튼을 누르고 힘차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시에 창밖에서 비가 세차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중얼거림에 잡음이 섞여 거대한 소음이 일어났다. 분명 일기예보에서는 밤에 비가 온다는 얘기가 없었다. 서랍을 뒤졌지만, 예비우산 하나 없었다. 그냥 티브이 잡음 같은 빗방울을 뚫고 돌아가야 할 듯했다. 하지만 내가 유일하게 가진 양복은 이게 전부였다. 중금속이 섞인 빗물 따위에 적시고 싶진 않았다. 그가 방해지만 않았어도 더 빨리했을 텐데. 지금쯤이면 혼술을 하다가 잠자리에 들었을 것이다.
나는 창가에 달라붙어 창문에 맺힌 빗방울을 셌다. 이걸 다 센다면 비가 그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서른 개쯤 셀 때 김지훈 씨가 일어났다. 그도 문서 작업을 마친 듯했다. 그에게도 우산은 없어 보였다. 우리 둘 다 대책 없이 야근했던 것이었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가방을 챙겼다. 김지훈 씨는 그런 나를 한 번 쳐다보고는 맨손으로 나갔다. 창밖에선 아직도 빗방울이 부서지고 있었다. 그 사이를 김지훈씨는 빠르게 달려 나갔다. 그는 머리 하나 가리지 않은 채 건너편 편의점에 들어갔다. 그 후 희미한 가로등 불빛 아래 우산을 쓰고 걸어 나오는 그가 보였다. 그는 축축한 몰골로 돌아와선 내게 투명한 비닐우산을 건넸다. 그동안 소음을 냈던 것을 사과하는 듯했다. 조금 전까지 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점이 무안해졌다. 동시에 그가 왜 합격할 수 있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나는 받은 우산을 펼쳐 밖으로 나섰다. 우리가 돌아가는 길은 같았다. 빗소리가 가득 메우는 길에서도 그는 반복적으로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그의 음악이 무엇인지 나는 관심이 없었다는 게 떠올랐다. 나는 무슨 노래를 그렇게 부르는 거냐고 물었다. 그제야 그는 입을 멈추고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이내 혼잣말이라고 했다. 그는 대학 때 홀로 자취를 하면서 혼잣말을 하는 습관이 생겼고, 잘못된 것은 알지만 잘 멈춰지지 않는다며 괴로움을 토했다. 언젠가 혼잣말이 정신과적 증상이란 기사를 본 기억이 떠올랐다. 혼자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져야 하는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증세였다. 내가 혼자 술 마시다가 중얼거렸던 것과 비슷한 걸까.
나는 사무실에서 대화하면서 일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자주 말하다 보면 혼잣말 증세가 나아질 듯했다. 그는 마음만이라도 고맙다는 듯 싱긋 웃었다. 주파수를 찾듯 흐리멍덩한 소리만 냈던 라디오에 신호가 잡힌 듯했다. 비록 다시 끊겼지만 앞으로 그의 음악은 합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