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場面)

가볍게 나이 든 환상

by 김가희


나이 듦 속에서 삶은 오래된 필름처럼 조각난 장면들로 이어진다. 그 장면들은 서로에게 기대어 서 있지만, 막상 겪기 전에는 질감을 쉽게 상상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린 날의 흐름은 길게 이어진 강물 같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그것은 불연속적인 빛점처럼 흩어진다.


그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는 현실보다 오래된 기억의 무늬를 더 자주 더듬는다. 과거에 버리고 떠나온 골목이 흙먼지가 묻은 운동화와 함께 돌아오고, 결코 다시 만나지 못할 얼굴들이 환한 빛 속에서 떠오른다. 나는 그것이 ‘환상 속으로 되돌아간다’는 말의 정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허구나 망상이 아니라, 오래전의 빛과 냄새와 온도가 뒤섞인 장소로 돌아가는 일이다. 그곳에는 훨씬 가벼운 내가 머물고 있다.


시간은 한 줌도 남기지 않고 모든 것을 들어 올려, 우리를 전혀 예상치 못한 곳으로 옮겨 놓는다. 그 과정에서 차곡히 쌓아온 신념과 성취, 나의 이름과 얼굴마저 바람에 흩날리듯 날아가버린다. 남는 것은 거창한 무게가 아니라, 순간의 가벼움이다. 어쩌면 나이 듦이란 가벼워진 나를 배우는 과정이지 않을까.




그 길은 왜 혼자여야만 하는 걸까. 왜 그 누구도, 나에게 이 길의 끝에 무엇이 기다고 있는지 말해주지 않았던 걸까. 오늘이 넘어갈 때마다, 모서리부터 닳아버리는 타이어처럼 나의 일부가 조금씩 사라져 간다. 이름도, 목소리도, 한때의 확신도. 결국 남는 건 소모되었다는 감각뿐이라는 것을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어쩌면 어른들은, 아이가 지닌 환상의 무늬를 오래도록 지켜주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 이후의 이야기다. 부서진 환상을 붙잡고 살아가는 나날이 아니라,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려 환상만이 홀로 남아 있는 그곳의 이야기 말이다. 현실의 그림자가 완전히 걷히고, 남은 빛마저 사라진 뒤에 나타나는 차원. 두려움이 희미하고, 환상이 한층 단단한 결을 지니게 되는 그곳 말이다.


우리는 환상에서 태어났다. 그것은 기억 이전의 기억, 언어 이전의 언어다. 처음 본 하늘의 푸름, 처음 만진 손의 온기, 설명할 수 없지만 분명히 알고 있던 어떤 질서. 그것이 나라는 존재의 첫 표면을 이루었다. 나이 듦은 그 표면이 닳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그 밑에 숨겨진 더 오래된 환상을 발견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환상은, 지금 당신이 느끼는 감정의 근원에서 여전히 숨 쉬고 있다.




감정은 흐르고, 변형되고, 때로는 사라진다. 그러나 그것이 사라졌다고 해서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다. 오늘의 기쁨은 어제의 두려움에서 태어나고, 어제의 분노는 오래 전의 슬픔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그 순환의 고리를 정확히 보지 못한 채, 매일을 새롭다고 착각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 감정이 태어난 자리와 그것이 흘러간 방향을 추적하는 일은, 결국 나의 뿌리를 바라보는 일이다.


그렇기에 드러냄이란 선택이 아니라 필연에 가깝다. 숨기고 눌러두었던 것이 몸의 가장자리를 밀어내 틈을 만든다. 그곳으로 스민 빛과 그림자가 뒤섞여 신호를 보낸다. 그것은 잘 다듬어진 문장일 수도, 아무 의미 없이 흘러나온 눈물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이 모든 형태가 나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이다. 세상에 닿으려는 염원은, 언제나 형태를 찾기 마련이다.


그러나 세상에 닿은 순간, 그것은 나의 것이면서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니다. 보는 이의 시선 속에서 굴절되고, 다른 형태로 옮겨 간다. 왜곡은 때로 불쾌하며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의미를 덧입힌다. 하지만 그 과정을 거친 뒤에야, 나는 내가 보지 못했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한다. 마치 환상 속에서만 보이던 색이 현실의 공기 속에서 전혀 다른 빛을 띠는 것처럼.




드러남 이후의 나는, 이전과 동일한 내가 아니다. 감정은 세상을 거쳐 돌아오며, 처음 떠날 때와는 다른 질감과 무게를 데려온다. 세계 또한 나를 통해 아주 조금 변화한다. 그것은 거대한 변혁이 아니라 오래된 환상의 표면에 새겨진 단 한 줄의 작고 섬세한 변화다. 그것은 나이 듦과 환상의 여정 끝에서 나와 세계가 서로를 기억하게 만드는 유일한 방향이 된다.


환상으로의 귀환은 고통을 지우는 일이 아니다. 말하지 못했던 고통이, 다른 형태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 사이에는 애정 어린 기다림이 있다. 말이 오면 끝까지 들어주는 태도, 끝이 올 수도 있음을 함께 견디는 동행. 귀환은 이런 공간 속에서 자란다. 그것은 내 안에 숨겨진 환상이 고통과 손을 맞잡고 다시 숨 쉬는 과정이다.


그렇게 귀환한 존재는 강해진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더 약하고, 더 쉽게 흔들리며, 그 약함을 견디는 방식으로 인간다움에 닿은 사람이다. 그에게는 모든 것을 알고도 외칠 수 있는 용기가 있으며, 그의 곁에는 상처를 감싸 앉는 인간이 있다. 고통과 치유가 가볍게 순환하는 나이 듦 속에서, 환상은 또 한 번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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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지지 않은 감정은 내면에 흐릅니다.

이 글은 '가희: 그럼에도 희망을 이음' 연재 중 하나로,

감각을 지나 정돈되어 가는 생의 여정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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