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판에 남은 온기
그는 인간을 계산했다. 기억을 오래 붙들지 않았고, 감정은 이득과 손해의 계산에서 제외되는 항목이었다. 그에게 중요한 건 가격과 효율이었다. 무엇이 비싸고 귀한지, 어떤 선택이 가장 높은 가치를 보장하는지. 그는 그것을 삶의 기준으로 삼았다.
좋은 고기를 사서 대접하는 일은 곧 그의 마음을 증명하는 방식이었다. 인간은 종종 사랑이라는 것이 자기가 생각하는 최선을 주는 방식이라 생각한다. 문제는, 그 최선이 타인에겐 아무 의미도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그가 끝내 이해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녀는 달랐다. 한없이 무거웠다. 표정과 목소리, 식탁 위의 사소한 움직임에 의미를 부여했다. 무엇이 담백한지, 무엇이 본질에 가까운지에 더 마음을 두었다. 그러나 그 무거움 속에서도 자신의 기준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필요한 만큼만 취하고, 나머지는 그대로 두었다. 이러한 예의는 종종 배려로 포장되지만, 사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마련한 울타리일 뿐이었다.
두 사람을 한자리에 앉힌 건 아이였다. 아직 나이가 어려 보였지만, 그 눈빛은 단순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아이는 그와 그녀를 번갈아 보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같이 밥 먹어요. 이유를 묻는다면 ‘그냥’이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그냥이라는 말에는 의도가 없다. 그러나 의도가 없다는 사실이 관계를 시작하는 가장 순수한 의도가 되기도 한다. 아이의 한마디는 전혀 섞일 수 없는 두 세계를 하나의 좁은 테이블 위로 불러냈다.
그들은 고깃집의 좁은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철판 위에는 마블링이 촘촘한 소고기만이 올려졌다. 그는 굽는 속도와 익힘을 조절하며, 최적의 타이밍에 고기를 잘라 그녀의 접시에 올려주었다. 그것이 최상의 배려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고기 대신 구석에서 익어가던 양파와 버섯을 집어 들었다. 그는 그 모습을 곁눈질로 보고, 아무 말 없이 다음 고기를 또 올렸다. 그녀는 여전히 야채만 골라 먹었다.
몇 점째인가, 그의 젓가락이 멈췄다. 그리고 목소리가 날카롭게 솟았다. 비싼 부위를 공들여 대접했는데, 그것을 거절하다니. 진심이 담긴 무언가가 거절되는 순간, 거절은 개인의 취향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행위로 받아들여진다.
비아냥이 철판 위 기름처럼 튀어 그녀 앞에 떨어졌다. 말은 점점 거칠어졌고, 불필요한 단어들이 연달아 흘러나왔다. 그녀는 가만히 있었다. 그러나 그 침묵은 그의 머릿속에서 이미 의미를 부여받았다. 그에게 그것은 분노도, 방어도 아니었다. 단지 자신이 옳았음을 확인해 주는 대답 없는 합의였다.
그녀는 자신의 상황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기름 냄새가 오래전부터 속을 불편하게 하고 있었음을. 그래서 야채를 집었던 것뿐이라는 것을. 그는 그녀의 침묵에 대한 이유를 묻지 않았고, 그녀는 굳이 애써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그에게 중요한 건, 그가 대접했다고 믿는 방식의 가치였으니까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차가운 세면대 위에 손을 짚고, 속을 게워냈다. 고기의 기름이 목을 타고 올라오는 감각을 더는 견딜 수 없었다. 뱉어낸 건 음식만이 아니었다. 함께 앉아 있던 이 시간의 의미까지 모두 내려보낸 것이다. 몸이 거부하는 것을, 마음은 종종 억지로 삼킨다. 그러나 몸은 끝내 자기 방식대로 그것들을 전부 토해낸다.
그는 자리에 남아, 방금 전 그녀의 눈물을 떠올렸다. 기묘하게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묘한 만족이 스쳤다. 눈물을 보였다는 건, 마음을 연 증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끝내 눈물의 이유를 확인하지 않았다. 묻지 않아도 된다고, 이미 충분히 이해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의 머릿속에서 이 장면은 이미 관계의 진전으로 분류되었다.
그는 취약함을 일종의 합의로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다. 상대가 약해진 순간, 그 빈틈이 곧 관계를 붙잡을 기회가 된다고 믿었다. 눈물은 그에게 경고가 아닌 초대었다. 혹시, 나중에 이 여자와 잘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 가능성은 허황되었지만, 그의 세계에서 이런 기대는 낭비가 아니었다. 식탁 위 공기는 이미 식어 있었지만, 그의 마음 한구석은 알 수 없는 온기로 데워지고 있었다.
그는 계산서를 들고 자리를 떠났다. 철판 위의 고기는 이미 윤기를 잃었고, 기름은 검게 굳어 있었다. 그곳에 남은 건 아이뿐이었다. 잠시 후, 뚝배기가 보글거리며 올라왔다.
아이는 숟가락으로 천천히 국물을 저었다. 세상도, 사람도, 어쩌면 이렇게 끓여야 하지 않을까. 아마도 공존이라는 것은, 서로의 차이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천천히 익혀 같은 국물 안에서 버티게 하는 기술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들은 오늘의 자리에서 결국 그 맛을 느끼지 못했다.
그와 그녀는 같은 시대를 살았으나, 서로 다른 종이었다. 그는 자본의 언어를 말했고, 그녀는 신념의 언어를 말했다. 둘 사이에는 번역기를 거쳐도 해석되지 않는 문장이 있었다. 이해는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남은 건 각자의 방식으로 채운 공허뿐이었다.
국물 속에서는, 조금 전까지 서로를 외면하던 고기와 야채가 한 그릇 속에서 함께 김을 내고 있었다. 소고기는 여전히 고기였고, 양파와 버섯도 여전히 제 모양을 지키고 있었지만, 오래 끓는 동안 서로의 맛을 나눠 가진 채 하나의 향을 만들고 있었다. 그렇게 비워진 자리에 김은 여전히 피어올랐고, 그 향은 천천히 오래 남을 듯했다.
.
.
.
.
.
말해지지 않은 감정은 내면에 흐릅니다.
이 글은 '가희: 그럼에도 희망을 이음' 연재 중 하나로,
감각을 지나 정돈되어 가는 생의 여정을 기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