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하는 숨
청소를 시작하자, 집 안 가득 고여 있던 시간이 흩날렸다. 손끝에 닿은 먼지는 지난 계절을 불러내며, 멈춰 있던 공기를 흔들었다. 손길이 닿지 않은 구석마다 오래 눌어붙은 흔적이 잠들어 있었다. 청소는 단순히 집을 다스리는 일이 아니라, 시간이 남긴 잔여와 맞서는 일이었다.
집은 나를 닮아 있었다. 겉으로는 단정하고 잘 관리된 듯 보였지만, 열어보지 않은 서랍 안에는 오래 묵은 것들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보이는 곳만 완벽했던 나의 집은 오래 묻어둔 나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한두 벌의 옷만을 돌려 입는 나와 달리, 다섯 개의 옷장을 가득 채운 옷들은 무색하게도 숨어 지내야만 했다. 그 아이들도 한때 나의 선택을 받아 이곳에 오게 되었겠지. 나의 감도가 변해 손이 가지 않게 된 옷도 있었고, 이미 낡아 해졌지만 애착이 나를 붙들어 이곳에 남아있는 아이들도 있었다. 또 어떤 것들은 여전히 취향에 맞았으나, 그다지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 한마디에 고개를 숙여 자신을 숨기기도 했다.
모아두고 보니 그 안에 내가 있었다. 외면받던 나, 상처받던 나, 설레던 나, 따뜻하던 나, 강해지고 싶었던 나약한 나 마저 그 속에 녹아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세월이 전부 나라서, 단 하나도 쉽게 비워내지 못한 채 여전히 나와 함께 옷장을 지키고 있던 것이다.
놓아주지 못한 나의 이기심으로 인해 그들은 오랜 시간을 어둠 속에 갇혀 버텨야 했다. 보내지 않는 것이 그들을 위한 길이라 믿었고, 나와 함께 있는 편이 더 나을 것이라 스스로를 설득하며 옷자락을 붙들었다.
만약 옷들에게도 아침이 있다면, 그들은 매일 두 감정을 품었을 것이다. 불리지 않는다는 고통, 언젠가 선택될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기대. 문이 열리고 늘 같은 옷만이 불려 나가는 순간마다, 자신은 없는 듯 묻혀가는 하루를 견디며 서서히 아파했을 것이다.
그들의 기대조차 결국 나의 선택에 종속된 것이었다. 존재하지만 불리지 않는다는 사실은,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들의 갇힘은 곧 나의 갇힘이었다. 나는 옷을 붙든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시간을 붙잡고 있던 것이다. 보내지 못한 애착은 결국 서로를 어둠 속에 세워두는 일이 되었다.
어쩌면 나는 옷을 정리하는 것에 고통이 수반된다는 것을 알았던 나머지, 그 일을 몇 해간 미뤄 왔던 것이다. 언젠가는 다시 입을 날이 오겠지, 다 저마다 쓰임이 있겠지. 그러나 그것은 미래를 핑계 삼아 결정을 유예하는 주문에 불과했다. 실상은 작별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들이 원하던 활발한 움직임을 감당하지 못한 나는 매일 아침 고개를 반대로 돌려 그들과 눈 맞추기를 피해왔다. 옷들과 함께한 과거는 점점 짐이 되어 어깨를 눌렀고, 그 무게는 시간이 갈수록 알 수 없는 자책과 부담, 그리고 공허로 쌓여만 갔다.
이제는 보내줘야 될 것 같다는 단호한 결심으로 벽면 가득한 옷들을 꺼냈다. 한 벌씩 그 시절의 나와 함께했던 추억을 입으며, 오래 붙들고 있던 감정들에게 차례로 작별을 고했다.
그제야 알게 되었다. 현재를 산다는 것은 곧 과거를 자유롭게 놓아주는 일이라는 것을. 지우지도, 부정하지도, 억지로 인정하지도 않은 채, 모든 판단을 멈추는 행위임을. 보내는 일은 버림이 아니라 이해의 완성이었다. 머무름만이 애착은 아니었고, 단절만이 해방도 아니었다. 그 사이에는 조용한 길, 존중의 통로가 있었다.
이제야 나는 과거를 향한 집착에서 벗어나, 어떠한 부정적 감정도 없이, 행복한 눈물로 그 시절을 바라볼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소유도, 회피도, 단절도 아닌, 애정 가득한 마음과 가냘프게도 다정한 시선으로 그때의 나를 마주하며 비로소 완전히 보내줄 수 있었다.
향기 없는 죽은 집. 정리되지 않은 구석의 먼지는 보이지 않게 쌓여, 숨을 조금씩 막아왔다. 표면은 단정해 보였지만, 닿지 못한 틈마다 묵은 시간이 눌러앉아 있었다. 집의 호흡이 막힌다는 것은 곧 나의 호흡이 막힌다는 뜻이었고, 나는 그 사실을 외면한 채 살아왔다.
과거를 떠나보낸다는 것은 결국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다. 지우려 하면 상처로 남고, 붙들려하면 짐이 된다. 존재한다는 것은 늘 변화 속에 있으면서도, 동시에 사라지지 않는 흔적 위에 선다는 뜻이다. 나는 오래도록 과거와 현재를 갈라놓으려 했지만, 결국 그것들은 한 몸처럼 맞물려 있었다. 현재는 과거를 해방시키고, 과거는 현재를 지탱한다. 보내는 행위는 이 단순한 진실을 인정하는 순간 완성된다.
이제 나는 안다. 내가 소유한 것은 어떤 물건이나 기억이 아니라, 그 모든 경험을 통과하며 살아 있는 나 자신이라는 것을. 남겨둔 것도 떠나보낸 것도 결국 같은 나의 연속성을 이룬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절도 집착도 아니다. 그저 자기 존재를 구성해 온 시간을 온전히 바라보고 제자리에 두는 일일 것이다. 과거는 붙들거나 부정하지 않아도, 이미 나의 일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묻고 싶다. 아직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마음속 서랍에 남아 있는 당신의 시간은 무엇인가. 언제 그것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눈을 마주할 수 있을까. 그 순간이 올 때, 아마도 당신의 현재는 조금 더 깊어져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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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지지 않은 감정은 내면에 흐릅니다.
이 글은 '가희: 그럼에도 희망을 이음' 연재 중 하나로,
감각을 지나 정돈되어 가는 생의 여정을 기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