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순환의 시간
아침은 늘 알람보다 먼저 시작된다. 눈을 뜨면 창 너머 작은 집들이 한사코 생생하게 펼쳐지고 그 위로 햇살이 스며든다. 창문 밖 건물 벽의 커다란 시계가 나의 첫 시선이 된다. 알람이 울리기 전 잠시 눈을 감고 있는 동안 나는 하루를 맞이할 마음을 정돈한다. 정각이 되면 몸을 일으켜 스트레칭을 하고 단정히 하루를 연다. 아침마다 세상은 내 안에서 다시 정렬된다.
일어나자마자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이불 정리다. 단순히 접는 것이 아니라 청소 도구로 먼지를 걷어내며 침대를 새롭게 구성한다. 그 순간, 꿈의 흔적은 사라지고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다. 수면이 하루를 헤아린다면, 아침의 정돈은 그 헤아림을 완결한다. 이 작은 행동은 청결을 넘어 의식의 징조를 새로 짜는 행위다. 누구나 매일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이 순간에 상상한다.
몸이 덜 깬 시간에도 이 순서를 지키는 이유는 분명하다. 오늘을 환영하기 위해 어제를 정리하는 나의 방식이다. 청결한 공간은 사소한 기쁨에 길을 내어주고, 그 기쁨이 하루라는 땅에 뿌려지는 거름이 된다.
마침내 책을 펼친다. 30분의 여유 동안 나는 타인의 언어와 시선을 나의 공간으로 불러들인다. 글은 사소한 한 기록을 넘어 개인의 삶을 전해준다. 두 눈에 뚜렷함을 내포하기 위하여 생각을 담는다. 그 짧은 시간이 하루의 방향을 검토해준다.
굽이치는 생각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 메모를 남기기도 하고 그날의 감각을 기록하기도 한다. 어떤 날은 정리되지 않은 단상들을 적으며 스스로를 탐구한다. 머릿속을 청소해야 새로운 바람이 들어올 수 있다. 우리는 흔히 채우는 것만을 중시하지만, 비움이야말로 창조의 전제다. 한 줄의 기록은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환기시킨다.
바깥공기를 마시고 돌아오면 정신은 한층 맑아진다. 나는 날씨의 지배와 함께하기에 아침 산책은 하루의 기류를 맞추는 일이 된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내 신체의 순환을 자연과 조율하는 것이다. 바람의 속도, 공기의 냄새, 햇살의 각도를 몸으로 느끼며 하루의 방향을 내맡긴다. 이를 통해 나는 세상과의 연결을 내부로 올린다.
그 에너지를 놓치지 않고 집에 돌아와 중요한 일부터 선별하여 시작한다. 글쓰기와 중대한 결정을 오전에 배치한다. 아침은 나의 정신이 응집되어 있는 시간이다. 삶은 결국 자기 에너지를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이고, 나는 그 시간에 가장 큰 가치를 담아 쓴다. 그리하여 아침은 내 삶의 중심이다.
점심 이후의 시간은 다른 모양을 지닌다. 외부 일정 혹은 신체적 움직임이 많은 일을 배치한다. 여유 속에서 나의 몸이 흐르도록 둔다. 오후는 작은 대화와 사소한 휴식 같은 것들로 채워진다. 아침의 체계가 단단히 하루를 세운다면, 오후의 여유는 그곳에 숨을 불어넣는다. 단단함과 여유가 균형을 이룰 때 하루는 안정된 기반을 유지한다.
돌이켜보면 나는 오랫동안 규칙을 불편하게 여겨왔다. 일정한 패턴을 가진다는 것은 곧 억압으로 느껴졌고, 나를 강제로 틀 안에 끼워 넣는 듯했다. 날씨와 컨디션의 영향을 받아 기복이 심한 나는, 얽매임에 대한 작은 기운만 감지해도 숨이 막혔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이것들이 나를 순환시키는 보호라는 것을, 활기를 지펴준다는 것을 느낀다.
자율은 무조건적인 방임과 같지 않다. 하고 싶은 대로 다 흘려보내면 자유로워 보일지 몰라도, 실제로는 쉽게 흔들리고 금세 무너진다. 아무런 패턴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은 스스로에게 자율을 주는 것이 아니라, 순간의 기분에 종속되는 일에 가깝다. 나는 그것을 오래 품고 있었다. 경험의 거듭을 통해 알게 된 것은, 자유의 모서리를 갈아야 한다는 점이다. 무정부 상태가 내놓은 답변은, 흐름을 탈 수 있도록 돕는 지지대를 삶의 중심을 붙드는 작은 구조로 만들라는 것이었다.
우리의 하루에는 늘 곡선이 있다. 모든 것의 오르내림을 인정해야 한다. 위로 치솟을 때는 내려감을 준비하고, 아래로 내려갔을 때 상승을 위한 장치를 두는 것이다. 아침의 청소, 독서, 산책과 기록은 모두 하루의 곡선을 쪼개는 장치들이다. 쏟아지는 하강에도 다시 올라갈 수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이 우리를 지탱한다.
혼자 있는 시간이 고독이 아니라 성숙이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소한 의식들이 쌓여 결국 나를 키워내고 있었다. 오늘의 높낮이를 잘 이해할 수 있게 돕는 질서. 나는 나를 세심하게 관찰하며 순환의 시작점을 찾았다. 그것에 따라 흘러갈 때 비로소 희망의 존재가 세워진다.
이런 삶은 밖에서도 힘을 발휘한다. 방의 질서는 성취와 자부심으로 이어진다. 사소한 일상을 꾸준히 채워갈 때, 인생 전체가 몰입의 힘을 얻는다. 중요한 것은 바로 오늘의 삶이다. 단계를 통한 삶의 충실성에서 얻게 되는 것은 단순한 성과가 아니다. 그것은 삶을 정신과 마음으로 다스린다는 자각, 곧 나의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첨예한 순간이다. 그리고 이 실감이야말로, 그럼에도 인간의 생에 이어지는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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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지지 않은 감정은 내면에 흐릅니다.
이 글은 '가희: 그럼에도 희망을 이음' 연재 중 하나로,
감각을 지나 정돈되어 가는 생의 여정을 기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