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연애시절, 우리는 블랙 프라이데이를 좋아했다. 미국 내에서 1년 중 가장 크게 세일을 하는 날인데 누구는 상술이라고 코웃음 쳤지만 우린 그날 맛있는 저녁을 먹고 밤늦게 마트에 나가서 이것저것 둘러보고 다른 사람들은 무얼 사나 구경하기도 하고 겸사겸사 필요한 것도 사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지금 우리 집에 있는 몇 가지 가전은 모두 그때 마련한 것이다. 믹서기, 에어 프라이어, 최근에 중고로 팔긴 했지만 티비까지 전부 다 유용한 것들이었다. 한 5년 전이었나 문득 그는 블프에 플레이스테이션을 사고 싶다고 했다. 플... 뭐? 어 잠깐만, 그거… 게임기 아닌가?
"갑자기 게임기를 산다고?"
"응!"
"그거 꽤 비싸지 않아?"
"응, 그래도 꼭 사고 싶어."
"왜?"
"나 어릴 때 게임기 진짜 갖고 싶었는데 한 번도 가져본 적 없거든. 우리 집은 가난해서 부모님이 게임기 같은 거 사주실 수 없었어."
가난이라는 단어에 놀란 눈을 한 나를 뒤로한 채 그는 정말 최신 플레이 스테이션을 샀다. 철권 같은 추억의 게임팩은 빠질 수 없지. 포장을 뜯으며 몇 번이고 이 게임기가 정말 갖고 싶었다고 말하는 그의 두 눈이 어린아이처럼 빛났다. 처음에는 게임기를 산다고 해서 혹시 퇴근하고 와서 매일 게임만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우습게 그는 처음에만 몇 번 하더니 이내 시들해졌다. 나중에는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왔을 때나 몇 번 하고(얼마나 신경을 안 썼으면 그때마다 조이스틱을 충전해야 했다) 혼자 있을 때는 먼저 꺼내어 보는 법이 없었다. 그렇게나 갖고 싶어 했던 게임기인데? 그렇게 일주일, 한 달, 반년 일 년이 지나면서 우리는 게임기의 존재를 까맣게 잊어버렸다.
우리가 이 년 전 이사때문에 티비장을 정리하면서 플레이스테이션을 몇 년 만에 처음 꺼내보았다. 아 맞다, 그제야 돌아본 게임기에는 뽀얗게 먼지가 쌓여있었다. 새 집으로 이사 와서는 그 게임기를 다이닝룸 캐비닛 밑에 넣어두었는데 심지어 커다란 쓰레기통이 캐비닛 문을 반이나 가리고 있어서 실수로라도 여는 법이 없었다. 그나마도 내가 정리한 거라 그는 아마 게임기가 어디에 있는 줄도 모를 것이다. 나는 그에게 한 번도 그러게 왜 게임도 안 할 거면서 비싼 플레이 스테이션을 샀느니, 그렇게 사놓고 쓰지도 않는다느니, 저렇게 처박아 둘 바에는 중고로라도 팔아서 귀염둥이 까까라도 사주라는 말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다.
부모님이 사주신 게임기를 자랑하며 실컷 게임을 하는 동네 친구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꼬맹이를 상상하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그의 부모님은 아마도 여러 가지 몹시 타당하고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이유로 게임기를 사주지 않으셨을 것이고 어린 그는 그제야 가난이라는 단어를 조금은 실감했을 터, 그때 뚫린 마음 한 구석이 아직까지 메워지지 않은 것뿐이다. 그 구멍을 메꾸는 방법은 단 한 가지. 그 시절 사무쳤던 어린 원혼을 달래는 의식이라고나 할까. 어린 시절 간절히 원했던 물건, 그러나 갖지 못했던 게임기나 인형, 장난감 따위를 다 커서 사는 것은 그의 마음속 어딘가에 구멍을 메우기 위한 스스로 벌이는 굿판인 것이다. 이미 시간은 너무 흘러버려 그는 고가의 게임기를 덥석 살 만큼의 두둑한 지갑을 가진 어른이 되었지만 어쨌거나 더 이상 친구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언제까지고 그에게 위안이 되리라. 아무도 찾지 않는 벽장 속 게임기는 그 자체로 자신의 역할을 다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