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의 이름은 특이했다. 전화로는 한 번에 알아듣는 법이 없고 대면으로 이야기할 때도 무조건 상대가 한 번쯤은 네? 하며 되묻기 마련인 그런 이름이다. K는 살면서 아직까지 이름이 같은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다.
학기 초에 선생님들은 K의 이름을 꼭 잘못 불렀고 엇비슷한 이름을 가진 남자애들이 한 반에 한두 명은 있었다. 어? 남자 앤 줄 알았는데 여자애네 하는 그런 말들을 들으면 K는 확 붉어진 얼굴을 감추려 고개를 숙였다. 수줍음이 많은 그녀는 그림처럼 조용히 살고 싶었으나 특이한 이름 때문에 언제나 어디서나 K는 눈에 띄었다. 선생님들이 수업시간에 누구를 발표시킬까 손가락으로 찬찬히 출석부를 쓸어내리며 음... 하고 낮은 목소리를 내면 K의 등에는 주루룩 식은땀이 흘렀다. 어김없이 K의 이름이 불렸기 때문이다.
"OOO! 이 반에 OOO가 누구냐? 일어나서 39쪽 읽어봐라."
K는 쭈뼛거리며 일어나 교복 마이를 아래로 잡아당겨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선생님들은 불안한 표정의 K를 보며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는데 그것은 K의 특이한 이름이 지나치게 평범한 그녀와 전혀 어울리지 않다는 반증이었다. 그 짧은 순간에 K는 큰 괴로움을 느꼈다. 자신의 이름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니. 후에 K는 여대에 가게 되어 더 이상 이름 때문에 남자로 오해받는 일은 없었지만 여전히 그녀의 고민은 깊었다. 사람이 꽉 찬 지하철에서 하염없이 흔들리며 K는 매일 같은 생각을 했다.
'왜 나의 이름은 그 흔한 민지나 혜정이가 아닌 걸까?'
어쩌다 K는 이런 이름을 갖게 된 것일까. K의 엄마에 따르면 그 이름은 그녀의 외할아버지께서 지어주신 이름이라고 한다. K는 외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많이 없지만 굉장한 외골에 고집이 세신 분이라고 알고 있다. 글쎄, 당시 유행하던 이름도 아니고 흔한 계집애 이름도 아닌 K의 이름을 누가 지었든 아마 엄마의 입김이 강하게 들어갔을 것이라고 K는 막연히 추측한다. K의 엄마는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여자였지만 이것 하나만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녀가 피우지 못한 원대한 꿈을 K가 이루어주길 바라는 게 평생의 목표였던 사람이었다. 고된 시집살이와 무능력한 남편, 가난한 친정 사이에서 희망이라곤 자식인 K밖에 없었으니 K가 세상에 이름을 떨칠 인물이 되어 자신을 우습게 본 모든 사람들에게 본때를 보일 날만 기다리는 여자였던 것이다. 영문도 모른 채 엄마의 지난 삶을 보상해 줄 도구가 된 K는 처음에는 그녀의 구원자가 되려고 했으나 이내 자신은 너무나 나약하고 보잘것없는 존재임을 깨닫고 좌절했다. 자신의 꿈을 다른 이를 통해 이루려는 사람의 말로는 비참할 수밖에 없다. 애초에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자기의 입맛대로 만든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인 데다가 가장 큰 문제는 K의 엄마 스스로도 자신이 '피우지 못한 원대한 꿈'이 뭔지 잘 몰랐기 때문이다. 두 모녀가 오랫동안 실체 없는 꿈을 좇는 동안 발 밑의 행복은 무참히 짓밟혔다. 서로에게 상처만 남기고 헤어졌을 때도 K의 엄마는 여전히 K가 아주 대단한 사람이 되어 세상 모두가 그녀의 이름을 알게 되며 그때 드디어 이 특이한 이름의 진가가 발휘될 것이라 믿었다. 역시 범상치 않은 이름을 가진 인물이 큰 일을 해냈다는 세상의 찬사를 기다리고 있던 그녀의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네 이름을 봐, 이름만 들어도 특이하잖아. 뭔가 다르잖아. “
물론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K는 어찌어찌 그 시절에 좀 알아준다는 여자 대학교까지 나왔지만 그녀의 성취는 거기까지였다. K는 그저 일상의 소소한 기쁨을 누리는 적당한 삶을 살길 원했다. 그녀는 자신의 삶에 그럭저럭 만족하고 싶었으나 그녀의 엄마가 크게 상심한 것을 알기에 마음이 마냥 편하지는 않았다. K는 거울을 볼 때마다 자신이 이름값을 못하는 것 같아서 항상 슬퍼졌다. K의 삶이 왠지 실패한 것만 같고 그녀의 이름처럼 뭔가 특별하게 남들과는 구분되는 눈에 띄는 인생의 성과가 있어야 할 것만 같았다. 특별한 이름은 평범한 그녀에게 벗어날 수 없는 영원한 족쇄와도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K는 외국에 나가 살게 되었는데 그것이 그녀에게 뜻하지 않은 해방을 가져다주었다. 새로운 이웃과 새로운 환경에서 처음 K의 이름을 말하며 자신을 소개했을 때 사람들은 다들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후에 누구도 그녀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그녀의 이름은 그들에게 특이한 정도가 아니라 감히 되물을 엄두도 내지 못하는, 그 어떤 사족도 붙일 수 없는 외계인의 이름같이 느껴졌으리라. 관공서에 가도 학교에 가도 은행에 가도 완벽한 이방인인 K의 이름을 제대로 부르는 이가 없었다. K는 그녀의 이름이 엉망으로 불릴 때 몹시 기뻤다. 이름을 흘끗 보고 이내 발음하기를 피해버리고 당신의 이름이 맞게 쓰인 것이냐고 물을 때 그녀는 희열을 느꼈다. 그녀는 누구의 기억에도 남지 않고 마침내 잊혀질 자유를 얻은 것이다.
K는 이렇게 이름 없이 사는 삶이 꽤나 편하고 좋았지만 살면서 어쩔 수 없이 누군가와는 통성명을 하고 지내야 했다. K는 지난날처럼 달리는 차 안에서 매일 같은 생각을 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K에게 한 가지 좋은 묘수가 떠올랐다. 특이한 그녀의 본명과는 달리 그녀의 천주교 세례명은 흔하디 흔한, 푸근한 할머니를 연상케 하는, 이미 유행이 한물 지나간 이름이었다. 그녀의 오랜 바람대로 풍경처럼 살아가기 좋은 이름이었다. K는 세례명으로 자신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비로소 그녀의 이름을 정답게 부르기 시작했다. 세례명이 불릴 때마다 K는 자기 안에 숨겨왔던 또 다른 자아를 부르는 것처럼 느껴졌고 이름의 족쇄에서 완전히 벗어난 자유로움을 느꼈다. 자신이 이름에 어울리는 삶을 살고 있는지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다. 우연히 거울을 봐도 많이 슬프지 않았다. 사회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더라도 그녀는 그녀의 외딴 세상 안에서 마침내 안식을 찾았다. 그리고 K는 갓 태어난 그녀의 아들에게 더없이 평범한 이름을 지어주며 빌었다.
'아가야, 그저 평범하게 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