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김기현 대표 체제가 갈수록 우스꽝스러운 모양새로 변하고 있습니다. 김기현 대표는 지난 전당대회에서 과반득표로 결선투표까지 건너뛰고 집권여당 수장이 됐습니다. 하지만 이상하리만치 그가 대표가 되자마자 당 지지율은 힘을 잃고 있습니다. 기대했던 컨벤션 효과는커녕 여당 대표가 아랫사람들로부터도 지적을 당하는 ‘동네북’ 신세가 되고 있습니다.
조수진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4일 김재원 최고위원의 5·18 민주화운동 정신 헌법 수록 반대 발언 및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 관련 발언에 대한 당의 대응과 관련해 “김기현 대표에게 공식적으로도 더 말씀을 드린다면 대표로서는 강단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이어 “지도부는 당의 전체적인 이미지나 지지율 같은 큰 그림을 보고 독해져야 한다”고 당 대표에게 ‘훈수’를 두었습니다.
정권 출범 초기 집권여당 대표는 대통령 다음 가는 ‘2인자’로 불릴 만합니다. 특히 지난 전당대회에서 과반득표로 당원들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었고 내년 총선을 앞두고 공천권도 행사할 수 있는 막강한 자리입니다. 김기현 대표는 자신의 정치력에 따라 당뿐만 아니라 용산 대통령실 ‘군기’도 잡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김기현 대표는 새 지도부 출범 때부터 ‘태생적’인 한계를 안고 출발했습니다. 당 안팎에서는 “김기현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한테 로또 복권을 받았다”는 질투와 시샘이 나왔습니다. “윤 대통령 아니었으면 김기현 대표는 다음 총선 공천도 못 받았을 만큼 그저 그런 정치인인데 출세를 제대로 했다”는 해석도 나왔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김기현 대표는 집권여당 수장으로서 위신이 서지 않았고 위축돼 보였습니다. 당 안팎에서 특정 이슈가 발생하면 일단 의원들은 용산부터 바라봅니다. 김기현 대표 또한 용산의 레이더가 어디로 움직이는지를 보고 있다가 반응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니 당 대표의 령(令)이 설 리가 없습니다.
정치에는 묘한 자존심 경쟁같은 것이 있습니다. 홀로서기 ‘뚝심’으로 올라선 의원들은 그 자체로 인정해줍니다. 수도권 험지에서 계속 당선되거나 홍준표 대구시장처럼 선거 때마다 살아 돌아오는 ‘독한 정치인’은 결국 대권을 넘보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0선 30대’인 이준석의 당 대표 등극은 기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비례대표 재선이거나 강남 영남 등지에서 재선만 해도 그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집니다. 줄을 잘 서서 금배지를 달았거나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 보장되는 편안한 지역구 의원들은 선수만 쌓을 뿐 독자적인 정치세력을 형성하지 못합니다. 이런 점에서 울산에서만 4선을 기록한 김기현 대표의 집권여당 수장 등극은 로또에 로또를 맞은 격입니다.
그래서 당 내부에서도 “윤석열 대통령만 아니었다면 감히 어떻게...”라며 집권여당 대표를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알게 모르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언론인 생활을 오래했지만 초선에 비례대표인 최고위원이 ‘감히’ 4선의 당 대표를 향해 ‘지적질’을 하는 상황을 본 적이 없습니다.
여의도 바닥의 ‘짬밥’ 서열을 굳이 따지지 않는다고 해도 당 지도부의 책임 있는 최고위원이 대표의 이슈 대응에 대해 ‘강단이 필요하다’고 거침없이 지적하는 것은 용산의 윤석열 대통령이 출범 초기 ‘어리버리’를 타고 있는 김기현 대표를 못마땅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기류를 그대로 전달한 것뿐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현재의 김기현 대표 체제는 너무 무능하고 무기력해 보입니다. 날마다 쌓여가는 이슈에 대해 손을 놓고 용산 레이더망만 쳐다보고 있습니다. 김기현 대표가 독자적인 신호를 발신하지 못하니 최고위원들이나 의원들이 그를 만만하게 보고 무시하는 것입니다.
이는 김 대표가 공천만 받으면 당선되는 영남에서 선수를 쌓았기 때문에 현안 대응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슈에 순발력 있게 대응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정무 감각의 촉수도 예민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여의도 야전’에서 방송패널로 이슈 대응 능력을 키웠던 이준석 전 대표가 그 새를 못 참고 김기현 대표에게 ‘훈수’를 했는데, 그것은 적절해 보입니다. 이준석 전 당대표는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 당 지지율 하락 원인과 관련해 “지도부가 출범한 뒤에 결이 잘다”면서 김 대표가 현장을 방문해 지원한 ‘1000원의 아침밥’ 사업, 김 대표 체제에서 처음 만든 당 내 특위인 민생특별위원회 ‘민생119’가 전날 첫 회의에서 편의점 도시락을 진열한 사례를 언급했습니다.
이 전 대표는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 편의점과 학식 이벤트는 별로 오래 머물고 싶지 않은 현실이다. 어젠다 세팅 자체가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다보니 관심이 안 간다”며 ‘선배’의 정무 감각을 보여주었습니다.
김기현 대표가 당 수장에 오른 뒤 여러 가지 일을 했겠지만 국민들 머릿속에 “‘1000원 아침밥’ 먹으러 경희대에 갔다”는 것 정도만 남아있다면 이는 김 대표뿐 아니라 국민의힘 지도부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것을 방증합니다. 당 대표가 날마다 발생하는 이슈의 핵심을 제대로 짚지 못하고 겉도는 언행을 하고 있습니다.
3년간 이어졌던 당의 호남 정책에 재를 뿌린 김재원 최고위원 발언에 대해 김기현 대표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됐습니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통상 새 지도부가 들어서면 컨벤션 효과로 당 지지율이 급등하는데 우리 당은 거꾸로 왜 지지율이 폭락하고 있는지 분석하고는 있느냐”며 김 대표를 직격해도 “지방자치행정을 맡은 사람은 그에 대해 더 전념하셨으면 좋겠다”며 판사 스타일로 타이릅니다.
김 대표의 ‘고구마 대응’은 전광훈 목사의 ‘저질 발언’에 이르러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 김 대표는 당의 유일한 현역 상임고문인 홍준표 시장에 대해 ‘일개 목사’ 전광훈이 ‘홍준표 XX 탄핵 하세요’라고 상스러운 말을 해도 경고는커녕 “전 목사 그분은 그분 역할을 하는 거고, 우리 당은 우리 당 역할을 하는 것”이라며 또 점잖게 말합니다.
당 내부에서는 “전광훈 목사가 자신의 정치 웨이트를 키우기 위해 의도적으로 김재원 최고위원을 끼고 돌거나 홍준표 시장에게 도발을 하는 것인데 김기현 대표가 그에 대해 과감하게 절연을 선언해야 한다”라는 지적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김 대표는 국민의힘 이미지를 ‘극우’로 몰아가는 전광훈 막말 사태에 대해 ‘너도 옳고 너도 옳고’식의 애매모호한 대응을 하고 있습니다.
김 대표의 이런 ‘황희 정승’식 대응에 대해 당에서는 ‘답답하다’는 불만이 쏟아집니다. 김 대표가 총선을 앞두고 전광훈 목사의 ‘극우 성향 지지층’과 확실한 결별 선언을 하지 않고 타이르면서 ‘동행’을 하려 한다면 황교안 전 대표의 총선 참패 꼴이 나게 됩니다. 김 대표의 ‘전광훈 싸고 돌기’에 뿔이 난 홍준표 시장은 “전광훈 밑에서 잘해보세요”라고 쏘아붙였습니다.
김기현 대표는 2030 지지율을 올리겠다며 ‘대학생 1000원 아침밥 지원 확대’에 이어 청년 데이터 무제한 혜택 요금제를 하겠다고 합니다. 길거리 다니는 청년들을 붙잡고 한 번만이라도 물어봤다면 데이터 무제한 혜택 요금제가 그들에게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봉숭아학당은 보수정당 지도부가 총체적 난국에 빠졌을 때 흔히 등장하는 표현입니다. 초선에게 ‘좀 독해져라’고 지적을 당해도 반응도 하지 않는 당 대표입니다. 극우세력 목사가 집권여당에 상소리를 해도 가만히 있습니다. ‘연포탕’(연대 포용 탕평)은 아예 끓일 냄비도 없었습니다. 김정은과 맞짱을 떠야 하는 국가안보실장이 ‘블랙핑크’ 때문에 잘렸다는 소문이 나와도 한 마디 말도 못합니다. 김기현은 지금 도대체 뭐하는 당 대표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