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김기현 대표 체제가 흔들리고 있다. 전당대회가 끝난 지 이제 겨우 한 달 지났는데 벌써부터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예상이 오르내린다. 김재원 ‘수석’ 최고위원 사퇴 이슈도 올라와 있다. 당 안팎에서는 김기현 대표가 제대로 된 리더십을 보여주기 위해선 충격요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장 빠른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이 ‘인적쇄신’이다. 이런 점에서 김재원 최고위원의 사퇴가 급한 불을 끄는 지름길이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현재 당내에서 김재원 최고위원을 바라보는 시각은 상당히 싸늘하다. 그는 전당대회 직후 전광훈 목사를 ‘칭송’하는 발언으로 한 차례 당을 들었다 놓았다 했고, 5.18 정신 헌법 수록 반대 취지 발언으로 ‘막말’ 논란을 증폭시켰다.
그 후에도 김 최고위원은 ‘4.3 추념식은 격이 낮다’고 발언해 당을 완전히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렸다. 윤석열 대통령이 보수 지지층을 의식해 제주 4.3 추념식 참석을 의도적으로 피했다는 지적에 대해 김 최고위원이 대통령 ‘쉴드’를 친답시고 4.3 항쟁의 의미마저 폄훼하는 우둔한 실수를 저질러 여론의 융단폭격을 받아야 했다.
김 최고위원의 ‘극우 성향 3연타’에 국민의힘도 도매급으로 넘어가 당 이미지도 완전히 ‘수구 세력’으로 낙인찍혔다. 김 최고위원의 지각없는 ‘막말’에 당 안팎에서는 중징계를 요구하는 주장이 빗발쳤다. 김 최고위원이 공개 활동을 하면 할수록 당의 이미지만 더 나빠질 것이라는 지적이 잇따라 제기되면서 김 최고위원 운신의 폭도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급기야 김 최고위원은 4.3 유족들을 만나 직접 사과하는 정면 돌파를 택했다. 하지만 이런 ‘악어의 눈물’ 퍼포먼스는 오히려 타오르는 불길에 기름을 더 끼얹는 격이 됐다. 김 최고위원은 제주까지 내려가 유족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숙였지만 유족들은 “진정성 없는 사과”라는 오히려 더 분노했다. 일부 유족은 자리를 박차고 나가기도 했다.
김 최고위원은 “당의 입장을 제가 갖고 와서 사과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처음부터 계속 말씀드렸다”고 해명했지만 전혀 설득력이 없었다. 국민의힘 ‘수석’ 최고위원 정도면 대표와의 사전 조율 아래 당 차원의 공식 사과 메시지와 구체적인 재발 방지 대책을 가지고 갔어야 유족들의 아픈 마음을 그나마 달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김 최고위원은 그냥 ‘미안하다’는 겉치레 사과만 되풀이했고 그것이 당장의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면피성이라는 게 누가 봐도 읽혀지는 대목이었다. 사실 김 최고위원이 4.3 유족 사과를 한다고 했을 때 부정적 반응이 많았다. “제주까지 가서 유족들에게 ‘미안하다’ 한 마다 할 것이라면 가지 않는 게 낫다”는 지적이 많았다.
하지만 김 최고위원은 자신의 막말 후유증를 너무 안일하게 생각해 ‘사과하면 그냥 받아주겠지’ 하는 편의주의적 발상으로 사전 정지작업도 없이 제주로 덜컥 내려갔다가 유족들의 화를 더 키운 결과가 됐다. 결과적으로 김재원은 자신의 사과 퍼포먼스를 위해 유족들을 ‘쇼’의 소품으로 이용한 셈이 됐다.
김 최고위원의 ‘실패한’ 사과 퍼포먼스는 자신의 중징계를 부르는 트리거가 됐다. 국민의힘 당원 200여명은 김 최고위원 징계 요구서를 당에 제출했다. 김 최고위원의 잇단 헛발질이 국민의힘에 대한 여론을 심각하게 악화시킨다는 판단을 했던 것이다. 김 최고위원에 대한 징계 논의는 이르면 다음 주부터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4월 마지막 주 구성이 완료되는 윤리위원회는 첫 안건으로 김 최고위원 징계안을 고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김 최고위원에 대한 중징계는 김기현 대표에게 상당한 정치적 부담이다. 새로운 지도부 출범 한 달 만에 ‘수석’ 최고위원을 날린다는 것은 김기현 대표 체제 와해의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 또한 김 최고위원 징계 이슈가 장기화 되면 그것이 여권 아젠다를 삼키는 블랙홀이 될 수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그래서 지도부에선 윤리위 징계가 아닌 자진 사퇴로 상황이 수습되기를 바라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하지만 김재원 최고위원이 자진 사퇴를 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김 최고위원이 전당대회에서 1위를 차지한 정치적 위상을 스스로 걷어차 버린다면 그의 정치생명도 사실상 끝나게 된다. 당에 마땅한 우군도 없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시간이 흘러 논란이 유야무야되기를 바라는 것이 최선이다.
정치권에서는 김 최고위원이 당원권 1년 정지의 중징계를 받게 되면 국민의힘 소속으로 내년 총선 출마가 불가능해 사실상 ‘정계퇴출’의 수순으로 갈 수도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이준석 전 대표는 앞서 윤리위에서 ‘당원권 1년 정지’를 받은 바 있다.
그와 비교해 5.18 발언부터 ‘3연타 망언’ 논란을 일으킨 김 최고위원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높은 상황에서 ‘6개월 이하’ 당원권 정지가 내려질 경우 오히려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당에서도 징계 기간을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자칫 ‘솜방망이 징계’가 내려진다면 김기현 대표 체제 전체로 내홍의 불길이 옮겨갈 수도 있다.
김 최고위원은 앞으로 ‘자숙하는 척’ 잠행하며 의도적인 시간끌기를 할 것이 확실시 된다. 하지만 당 내부에서는 ‘김기현 대표가 김 최고위원에 대한 중징계를 때려야 자신의 추락한 위상을 확실히 바로세울 수 있다’는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김기현 대표가 웬만해선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김 대표가 김 최고위원에게 일종의 ‘반대급부’를 제시하고 일단 자진사퇴 형식으로 물러나게 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그렇게 해서라도 당의 내홍을 수습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의 대체적 분위기는 ‘김재원 최고위원이 현 지도부와 같이 가기는 사실상 힘들 것’이라는 쪽이다. 김 최고위원이 제 발로 나가든지 중징계를 받든지 양단간에 결정이 내려져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김재원 최고위원 한 명이 나간다고 해서 현재의 국민의힘 ‘봉숭아학당’ 지도부가 기사회생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김기현 대표 체제는 그 태생적인 한계에 대한 본질적 의구심을 노정하고 있다. 더 나아가 국민의힘 ‘총 사령관’ 윤석열 대통령의 통합 리더십에 대한 불신도 여권을 상시 불안 정당으로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결국 국민의힘은 외부에서 사람을 끌어와 비대위로 구멍을 메꾸는 방식으로 내년 총선을 맞이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