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5월 31일 한상혁 전 방송통신위원장의 면직안을 재가했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한 전 위원장이 2020년 TV조선의 종합편성채널 재승인 심사 당시 점수 조작에 관여한 혐의로 기소되자,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방통위법)과 국가공무원법 등을 위반했다는 판단 아래 면직 절차를 진행했습니다.
이에 대해 언론계에서는 “윤 대통령의 ‘방송가 장악 시도’가 본격화하고 있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전임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한 전 위원장의 당초 임기는 오는 7월 말까지였습니다. 두 달만 있으면 ‘자동면직’이 됨에도 윤 대통령이 굳이 정치적 부담을 무릎 쓰고 한 전 위원장을 쫓아낸 배경에는 ‘일부’ 편향된 방송사에 대한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면직된 한 전 위원장 후임에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을 내정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언론계에서는 ‘왜 하필 이동관 전 수석이냐’는 반응이 많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동관’이라는 ‘언론 장악 선봉장’ 역할을 했던 ‘문제적 인물’을 방송정책을 총괄하는 방통위원장에 임명한 것에는 분명한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촛불정국 등으로 언론의 십자포화를 맞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 전 대통령은 ‘일부’ 편향된 언론이 자신을 정치적으로 매도하고 불순한 의도로 공격하고 있다는 인식을 가지게 된 것으로 알려집니다.
당시 정치권에서는 “촛불에 시달린 이 전 대통령은 ‘언론 관계’가 정권 유지의 최대 현안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이동관 전 수석에게 ‘언론 장악’의 특별미션을 주었다”는 해석도 나왔습니다. 이 전 대통령의 미션을 받은 이 전 수석은 특유의 돌파력과 업무 장악력으로 ‘방송 손보기’에 나섰습니다.
이 전 수석은 이 전 대통령과 별다른 인연이 없었지만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특유의 친화력과 폭넓은 네트워크로 이 전 대통령의 신임을 받았습니다. 특히 언론계에서 이 전 수석은 대표적인 ‘예스맨’이자 권력지향적인 인물로 인식됩니다. 언론인 출신이 ‘언론 탄압의 기수’로 등극한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권력자의 오더에 충실한 ‘예스맨’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 전 수석이 2008년 3월부터 2010년 7월까지 청와대 대변인과 홍보수석을 지낼 때 언론의 흑역사로 기록될 만한 ‘사변’들이 여럿 터졌습니다. 이 전 수석의 청와대 근무기간 중에 YTN에 이명박 대선캠프의 언론특보 출신 구본홍씨가 낙하산 사장으로 투하되었고 이에 반대하던 기자 6명이 해직되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2012년 KBS MBC YTN 연합뉴스 국민일보의 연대파업은 언론자유를 억제하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언론인들의 저항을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이때 언론자유를 외치며 파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MBC와 YTN의 언론인들이 무차별 해직돼 큰 논란이 됐습니다.
당시 해직됐던 박성제 전 해직기자(후에 MBC 사장 역임)는 이에 대해 “제가 2008년 MBC 노조위원장을 해서 이 분(이동관 전 수석)이 어떤 능력을 가진 분인지 잘 안다. 임기가 멀쩡히 남은 공영방송 사장들을 갖가지 기묘한 수단을 동원해 자른 다음 MB맨들을 낙하산 사장으로 투하하고, PD수첩 제작진을 체포해 기소하는 등 최시중 방통위원장과 함께 언론장악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선구자”라고 비판한 바 있습니다.
전국언론노동조합도 이동관 전 수석을 “MBC와 YTN, KBS에 낙하산 인사들을 내려 보내 공정보도를 파괴하고 이에 저항하는 언론인들을 대량 해직시킨 MB정권의 언론.홍보 총괄책임자”라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런 언론계의 비판에 대해 이 전 수석은 “나는 책임이 없으며 회사 안에서 일어난 일일 뿐”이라는 해명을 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전 수석의 ‘노골적인 언론 탄압’ 장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사건들이 많았습니다. 미디어오늘은 이 전 수석이 지난해 5월 윤석열 대통령의 대외협력특보로 위촉되자 그의 ‘언론 탄압’ 전력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며 국정원의 ‘언론 문건’을 예로 적시한 바 있습니다.
2009년 9월22일 ‘100분토론 등 문제프로그램 진행자 교체지시’란 제목의 국가정보원 문건에는 “손석희는 ‘100분토론’에서는 무조건 빼고, ‘시선집중’은 일단 교체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연예인) 제거에 따른 논란이 진행되는 것을 보아가며 탄력적으로 대응”, “○○○은 9.21 임원회의 시 11월로 예정된 가을 프로그램 개편 시 손석희를 TV <100분토론>에서 빼고, 김미화도 교체하라고 지시했음”이라고 적혀있었다고 합니다. 그해 11월 손석희는 <100분토론>에서 하차했습니다.
2010년 3월4일 국정원 문건에는 “윤도현 김구라 김제동 등 좌편향 아이콘 연예인은 개전의 정이 없으므로 조기 퇴출”이란 대목도 있다고 합니다. 미디어오늘은 “이동관 전 수석은 2009년 9월부터 2010년 7월까지 청와대 홍보수석으로서 이 같은 언론사 사찰문건을 국정원에 요청하고 보고받은 당사자로 지목된 바 있다”라고 보도했습니다. 이에 대해 이 전 수석은 ‘당시 상황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해명한 바 있습니다.
권력자의 편향되고 왜곡된 언론 장악 시도와 ‘탄압’ 명령을 ‘예스맨’답게 충실하게 수행했던 이 전 수석은 ‘권력’이라면 그 우두머리가 누구인지는 크게 개의치 않는 전형적인 권력 지향적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이 전 수석은 지난 2017년 1월 대선 과정에서 중도를 표방하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캠프에 합류했습니다. 당시 정치권에서는 이 전 수석이 진보성향 인사들도 참여했던 반기문 캠프 합류를 두고 “‘권력바라기’의 무분별한 출세주의 행태”라는 비판도 나왔습니다.
언론계의 암흑기였던 이명박 정권 시절 이동관 전 수석은 ‘언론 장악’을 진두지휘한 장본인이었습니다. 그런 그를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5월 대통령 대외협력특별보좌관으로 위촉했고 이번에는 방송정책의 총사령탑인 방통위원장에 앉히려고 한다는 전언입니다. 윤 대통령이 ‘언론 장악’ 경험이 많은 이동관 전 수석을 콕 찍어 방송정책을 총괄하는 방통위원장에 임명하려는 의도는 명백합니다.
윤 대통령 입장에서 현재의 언론환경은 자신의 반대편으로 완전히 기울어진 ‘편향된 운동장’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언론 장악업자’를 복귀시켜 새로운 언론 판을 만들려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노골적인 언론 장악 시도의 비극적 결말은 이미 ‘선배’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잘 보여주었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촛불정국으로, 윤석열 대통령은 ‘바이든-날리면’으로 언론에 대해 본능적인 피해의식을 느끼며 권력자의 입맛에 맞게 제압하려 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 때 해직을 당한 언론인들이 지금 윤 대통령 비판에 앞장서고 있다는 것은 권력자의 언론탄압 부메랑이 누구에게로 되돌아가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언론을 힘으로 제압할 수 있다는 발상은 언론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 정신에 위배되는, 권위주의적이고 폭압적인 접근방식입니다. 힘으로 누르려고 하면 더 큰 반발력으로 저항하는 게 언론의 본질이라는 것은 그동안의 언론자유 투쟁의 역사에서 잘 나타납니다. ‘칼이 펜보다 강하다’는 오만과 편견은 한 권력자의 불행한 종말을 예감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