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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J Aug 18. 2024

리오나는 선물을 고르는 재주가 있었다

선물을 잘 고르는 법


요즘 애용하는 에코백은 리오나에게 받은 선물이다

책이랑 노트, 텀블러, 가벼운 스웨터를 넣고도 넉넉하다

리오나는 선물을 고르는 재주가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선물을 받을 때 늘 흡족하고 좋았다

'내 마음을 오래 생각했구나' 하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리오나는 지난해 토론토로 어학연수를 갔을 때 홈스테이에서 만난 친구다

우리는 4월의 캐나다, 같은 날 도착했다

어학원에서의 첫 수업도 같은 반이었다

리오나는 일본에서 온 20대 대학생이었는데 예비 영어선생님이었다

어학연수를 보내준 부모님께 감사하며 알뜰하게 생활하던 친구였다


집으로 돌아오기 전 우리는 유니온스테이션에서 만났다

둘만의 마지막 식사였다

나는 내가 좋아하던 한식 도시락 가게를 소개해주었다

잡채랑 오이무침 도시락을 먹었고 버블티로 아쉬운 마음을 나눴다

고마움과 안녕을 말하면서 눈물이 났다

그때 포장하지 못해서 미안하다며 내민 선물이 에코백이었다


안전하게 잘 돌아가기를, 한 번씩 자신을 생각해 주기를, 함께 했던 토론토에서의 추억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앞면에  크고 작은 글씨들이 가득 쓰여 있었다

그것은 우리가 다니던 토론토의 거리 이름이었다

EGLINTON,  DANFORTH,  YONGE,  SPADINA. LAWRENCE....


에코백은 흰 천에 튼튼하게 박음질되어 있고 널찍한 사각형이다

검은색 끈은 어깨에 착 붙는다

가볍고 여름에도 덥고 습한 피부에 자극을 주지 않는다

담백하고 스마트하고 맑은 사람, 리오나 같다


가방은 우리가 함께 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어학원 가던 길, 라멘 먹으러 가던 길, 삼겹살 식당을 찾아 코리아타운에 가던 길, 쇼핑가던 길, 소풍 가던 길, 야구경기를 보러 가던 길...

어깨에 기대어 자고 가끔은 서로 못 알아듣는 영어로 재잘거리던 시간

그 길에 우리의 추억이 있는 까닭이다


리오나는 나보다 한 달 뒤에 돌아가기로 되어있었다

샤랄라 블라우스와 점프 슈트가 잘 어울리던 그녀

초콜릿과 팬케익, 피스타치오를 좋아하고 한국 문화와 한국사람을 좋아했다

엄마랑 비슷한 나이의 나를 친구로 대해주고 울 곳이 필요할 때 내게 청하던 아이였다


선물은 받는 사람을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한 시간을 나눠주는 걸 거다

얼마나 비싼가 가 아니라 아끼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리오나에게 받은 첫 선물은 마더스데이에 받았던 스타벅스 커피스틱이었다

추위가 계속되던 봄 날씨에 뜨거운 아메리카노는 내게 큰 위안이었다

덕분에 텀블러에 늘 챙겨가지고 다니며 너무 잘 마셨다

그때 리오나가 지나가는 내 얘기를 기억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생일선물로 받았던 바디크림도 기억난다

홈패밀리와 우드바인 비치에 놀러 갔던 날, 소품샵에 들렀었는데 향이 좋다고 했던 그걸 몰래 샀던 것이다

달콤한 벌꿀향이었다


그녀의 선물이 유난히 좋았던 이유는 선물과 함께 받았던 카드 때문이기도 했다

마음을 보여주는 문장과 예쁜 말들은 선물을 잘 고르고 잘 전하는 사람으로 내가 제일 먼저 리오나를 생각하는 이유이다

오랜만에 캐나다 추억박스를 열고 그녀에게 받은 카드를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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