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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J Nov 13. 2024

외상 후 성장, 삶은 땅콩

다르게 해석하라


생땅콩을 씻어 찜 솥에 올리고 글을 시작합니다


기운이 밑바닥을 치던 시절이었지요

힘을 받고 싶은 마음에 용기를 내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네 장점? 글쎄, 넌 생콩 하잖아'

친구의 답이었습니다


비가 올 것처럼 흐린 날씨 탓이었는지...

순간 머릿속에 그려지던 비릿함.

입안에 고인 듯한 생콩 즙을 뱉어내고만 싶었죠

그때 친구가 해 준 '생콩 하다'라는 말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사전을 찾아보니 '생콩 하다'라는 말은 '전라도 방언으로 새침하고 약간 까칠하다, 도도하고 차가운 느낌으로 사람 성격이나 행동에 대한 표현'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도도하고 까칠하다고? 나쁘지 않은데?'

'생콩! 그거 계속할까?'

저는 계속, 생콩 하기로 마음먹었죠

살면서 기가 죽었던 날들을 도도함과 까칠함으로 재구성했습니다


구수한 냄새가 퍼집니다

땅콩이 잘 익었네요

물기를 삼키고 통통하게 부푼 콩알들, 열매 맺느라 애쓴 진액이 투명해졌습니다

땅콩을 꼭꼭 씹어봅니다

비린 맛없이 고소하네요

입안을 돌아다니는 알갱이들이 저를 토닥입니다

품 넓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과거에 대한 부정적인 스토리는 미래의 나를 위협한다.

책 [퓨처 셀프]에서 들려주는 벤저민 하디의 문장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발생한 실제 사건보다 훨씬 더 중요한 건 그 사건에 어떤 스토리를 입히느냐다'라고 알려주네요


과거의 스토리는 미래의 목표와 희망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기억하고 싶은 방향으로 기억을 재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거죠

거듭 반복해서 재해석하고 재구성하는 동안 고난의 순간들을 사랑하게 될 거라는 조언입니다

과거의 경험에서 발견한 관점 덕분에 미래의 내가 더 단단해지는 것!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외상 후 성장'이라고 한데요


이제 콩알들은 무슨 말을 하고 싶을까요?

삶은 땅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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