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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26. 2020
[수플레] 너의 움직임에서 사랑을 느껴
ep.4 Hozier - Movement
읽고 쓰는 라디오 '수요일의 플레이리스트, 수플레'의 마지막 주자 영훈입니다. 음악 듣는 것과 글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수플레 매거진에 작가로 참여할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앞으로 이름 모를 여러분들과 좋은 음악과 이야기를 통해 잠시나마 포개질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제가 수플레에 처음으로 소개하고 싶은 곡은 아일랜드 태생의 싱어송라이터 'Hozier'(호지어)의 'Movement'라는 곡입니다. 호지어의 가장 유명한 곡인 'Take Me To Church'를 처음 듣고, 이렇게 처절하게 울부짖으며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라는 의문으로 그의 노래들을 찾아 듣던 날이 기억나네요. 블루스 장르의 소울이 가득한 그의 여러 노래들을 좋아하지만 그중에서도 제가 가장 사랑하는 곡이 바로 오늘 함께 나눌 'Movement'입니다.
세르게이 폴루닌의 1인 다역 무용과 연기가 인상적인 Hozier - Movement MV
뮤비와 함께 노래를 감상해보셨나요? 저는 이 뮤비를 처음 봤을 때 몸에 전율이 일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이후로 한동안 이 노래에 꽂혀 자주 들었다가, 수플레에 공유하기 위해 오랜만에 곡을 들었더니 또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네요.
이 노래의 매력은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호지어의 진정성 가득하고 짙은 목소리로 시작해 후반부로 갈수록 쌓이는 화음, 그리고 마지막에 웅장하면서도 섬세하게 터뜨리는 브릿지-코러스 라인까지. 곡 안에 기승전결이 있고 후반부에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힘 있는 곡입니다. 그래서 이 곡을 집중해 듣고 있자면 마지막에 무언가 울림이 남는 경험을 하곤 합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그 라인을 이끌어가는 가사가 너무나도 아름답고 슬픈 곡이죠. 앞에서 말한 브릿지-코러스 라인의 가사 일부를 조금 가져와봤습니다.
When you move I can recall somethin' that's gone from me
네 움직임을 볼 때면 내가 잊고 있었던 기억이 되살아나
When you move Honey, I'm put in awe of somethin' so flawed and free
네 움직임을 볼 때면 내 사랑, 난 모든 흠과 자유로움을 경외하게 돼
So move me, baby
그러니 날 움직여줘, 자기
Shake like the bough of a willow tree
버드나무 가지처럼 흔들어줘
Like you've nothin' left to prove
더 이상 증명할 건 남아있지 않다는 듯이
And nothin' to lose
더 잃은 건 없다는 듯이
Move me, baby
날 움직여줘, 자기
Move like grey skies, Move like a bird of paradise
회색빛 하늘처럼, 천국의 새처럼
Move like an odd sight come out at night
한밤중에 펼쳐지는 진풍경처럼 움직여줘
가사가 좋죠. 정말 좋아요.
저는 가사를 듣고 두 가지 키워드가 딱 떠올랐습니다.
사랑과 영감.
여러분은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이 눈 앞에서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아름답고 슬프다는 느낌을 동시에 받아보신 적이 있나요? 무언가의 작은 손짓, 자는 얼굴, 깊은 눈동자, 사소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사랑을 느껴보신 적이 있나요? 저는 이 노래가 사랑하는 대상으로부터 자신이 받는 경이롭고 자유로운 느낌을 표현한 곡이라고 느꼈습니다. 그 느낌은 단순히 좋고 행복한 것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기쁜 동시에 슬프고, 한계가 있는 자유이고, 완벽한 동시에 불완전하죠. 마치 회색빛 호수에 파란 물감을 푸는 기분과 같습니다.
저는 사랑이 뭔지 잘 모르지만 이런 노래를 감상할 때 이런 느낌을 받습니다. 단순히 좋다라고만으로는 형용할 수 없는 느낌. 무언가가 마음을 간지럽히고 그래서 움직이지는 않고 못 베기는 느낌. 때로는 그것을 영감이라 부르기도 하고요. 사랑과 영감은 그런 의미에서 참으로 닮아있기도 하네요.
저에게도 'Movement'를 들을 때처럼 무언가가 울렁이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노랗게 물드는 노을을 바라볼 때, 우리 집 반려견 별이와 살을 맞대고 별이의 눅눅한 냄새를 맡으며 누워있을 때, 평생 마음에 새기고 싶은 문장을 소설 속에서 만났을 때, 그리고 그 자리에 서서 살랑살랑 춤추는 버드나무를 바라볼 때 말이죠. 그중에서도 버드나무에 관련된 제 이야기를 꺼내볼까 합니다.
모든 것이 생경하게 다가오던 때가 있었습니다. 사랑에 빠지면 항상 지나치던 골목길도 다르게 보인다는 말이 아주 공감 가던 때였습니다. 모든 것이 푸르르고 밤공기가 상쾌해 걷기 좋은 5월이었습니다. 저는 제 신경이 온통 쏠리게 하는 한 사람과 선유도 공원에 갔습니다. 그 당시 저는 마음속으로 7번의 카운트를 하고 있었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모든 것이 궁금한 이 사람을 최소 7번은 만나보고 고백을 할지 말지 결정하자는 저만의 다짐이었습니다. 그전에 저는 단순한 호기심만 있으면 사랑이 가능한 줄 알았고, 그렇게 급하게 만난 사람에게 원하지 않는 상처를 줘버린 적이 있었습니다. 사랑에 빠지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 저였지만 그 이후 친구가 금사빠는 위험하다며 최소 7번은 만나보고 신중하게 결정하라는 지시를 따르기로 했습니다. 단순한 호기심과 사랑의 차이를 구분하고 싶었고 좋아하는 만큼 조심하고 싶었으니까요.
선유도 공원에 간 날은 우리가 4번째로 만나는 날이었습니다. 저는 키스하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지금 생각해보면 이미 저는 그 사람에게 빠져있었는데 억지로 참고 있었네요.) 공원 이곳저곳을 함께 걸었습니다. 그러다 한 벤치에 나란히 앉았습니다.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간지러운 대화가 오고 가는 순간 눈 앞에 있는 버드나무를 보았죠. 그 버드나무는 홀로 굳건히 서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때 바람이 불었습니다. 그러자 버드나무의 잎들이 좌우로 살랑살랑 흔들리며 풀들끼리 부딪히는 평화로운 소리를 냈습니다. 작게 바스락거리면서 하늘거리는 나무의 모습은 마치 바람에 몸을 맡기고 춤추는 자유로운 존재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풍경을 그 사람과 함께 보며 생동한 느낌을 받은 순간, 저는 결국 친구와의 약속을 어겼습니다. 고백을 해버린 거죠.
자세히는 모르겠습니다. 그날 제가 왜 그랬는지. 하지만 그 버드나무의 움직임을 보면서 무언가 용기를 얻었던 것 같습니다. 마음에서 일렁이는 무언가를 표출하고만 싶었죠. 그때 그 사람이 마침 옆에 있었고 저는 고백을 안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전에 저는 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항상 유유자적 흘러갈 수 있는 존재. 바다가 되었다가 땅 속에 스며들었다가 공기가 되었다가 하며 세상을 떠돌며 모든지 될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를 꿈꿨습니다. 하지만 그 날, 전 처음으로 나무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흘러가기만 하는 존재는 경험하면 할수록 어딘가 모르게 불안정했고 저는 안정적인 무언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 순간 마주한 버드나무는 항상 그 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서있는 안정적인 모습과 바람에 몸을 흔들며 춤추는 자유로운 모습을 모두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무언가가 생겨난 것이죠. 그 날의 공기와 버드나무, 그 사람은 저에게 영감이자 사랑이었던 것입니다. 단단하면서도 유연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었죠.
결국 그 날 제 고백은 받아들여졌습니다. 그 뒤로도 저는 물론 매번 미끄러지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고백이 받아들여졌다고 해서 제가 바로 버드나무가 될 수는 없었습니다. 그 사람에게 나무 같은 존재가 되고 싶으나 그러기에 저는 너무나도 미숙하고 자꾸만 넘어집니다. 단단하면서도 유연한 존재가 된다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더군요. 그럼에도 그 사람의 손짓이나 사소한 움직임을 보고 있자면 다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노래를 듣고 있자면 전 그 날의 사랑과 영감이 떠오릅니다. 이 노래 가사 속 '버드나무 가지처럼 흔들어줘.'는 어쩌면 '내가 널 사랑하게 해 줘.'와 같은 말이지 않을까 하면서 말이죠.
오랜만에 그 날을 생각하니 선유도 공원이 가고 싶어 지네요. 날이 풀리고 봄이 오면 다시 그 사람과 함께 가봐야겠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사랑과 영감을 느끼게 하는 곡이 있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혹은 그런 사랑과 영감을 느끼게 하는 존재를 그리워하거나 만날 날을 기다리기도 하겠죠. 'Hozier - Movement'를 들으면서 여러분을 움직이게 하는 무언가를 떠올려보시는 수요일 되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