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만나는 동안
당신의 고통을 견디느라 아프지도 못했습니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야 나는
나를 마음껏 앓고 있습니다
몸뚱이가 불덩이처럼 뜨거워집니다
그래서인가요
당신과 헤어지던 날이 기억나지 않아요
추적추적 비가 왔던가요
스산한 바람이 불어 더 외로운 날이었던가요
아무래도 기억이 나질 않아요
열이 내리면 생각이 날까요
아아, 오해하지 말아요
그날을 기억하려는 것은 당신을 그리워해서가 아닙니다
그 시절의 나까지 다 앓아버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앓고 앓고 또 앓다 보면
세월이든 슬픔이든 기쁨마저 내뱉는 뜨거운 숨을 따라 떠나가고
당신을 만나기 전의 나를 다시 만나
어설픈 미소를 지어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몸뚱이가 불덩이처럼 뜨거워요
그래서인가요
당신과의 추억이 기억나지 않아요
우리도 평범한 사랑의 기억이 있었던가요
아무래도 기억나지 않아요
몸뚱이가 식으면 생각이 날까요
아아, 오해하지 말아요
당신이 그립지 않아요
다만 그 시절까지 다 앓아버리고 싶을 뿐입니다
겨우 이제서야 당신이 아닌 나를 마음껏 앓고 있는걸요
2018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