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하고 창백한 나의 방
그 끄트머리에 앉아
네모난 스크린 속 세상을 봅니다
내 고요한 방에 세상의 소리들이 가득 찹니다
창백했던 나의 방은
뜨거워지기도 하고 어지러워지기도 하고
간지러워지기도 하고 울컥거리기도 합니다
차가워지기도 하고 배 아프게 우스워지기도 하다가
문득 가여워지기도 하고 분노에 가득 차기도 합니다
그러다
고요하고 창백한 나의 방이 그리워집니다
그래서 시끄러운 세상을 검은 벽 너머로 구겨 넣어 버립니다
다시
고요하고 창백해진 나의 방
그 끄트머리에 앉아
롤러코스터처럼 덜컹거리던 방의 기억을 떠올려 봅니다
아무래도 그 뜨겁고 울컥거리던 것은 내 것이 아닙니다
차가운 것도 가여운 것도 우스운 것도 내 것은 아닙니다
내 방에도 작은 문이 있다면
그 문에 조그마한 손잡이가 있다면
훔쳐보던 세상의 뜨겁고 울컥거리던 것을 만질 수 있을까요
차가운 것도 가여운 것도 우스운 것도 내 것으로 가질 용기를 낼 수 있을까요
고요하고 창백하기만 한 나의 방
그 끄트머리에 앉아 오래 골몰하다 외로워집니다
문도 손잡이도 없이
고요하고 창백한 나의 방
그 끄트머리에 앉아
다시 네모난 스크린 속 세상을 봅니다
2018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