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의 대물림

유품 속에서 얻은 깨달음

by 하야
물건의 대물림

할아버지의 부고는 또 다른 형태로 내게 닥쳐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앞으로 등기우편이 날아들었다. 주택금융공사에서 보낸 것이었다. 할아버지 앞으로 주택담보대출이 있으니, 기간 내에 처리하지 않으면 집이 경매로 넘어간다는 내용. 나는 아빠의 자리를 대신해 상속자로 올라 있었다.



내 어린 시절의 모든 서사가 담긴 집이었다. 짐을 정리하러 가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마당에는 할아버지의 차가 방치되어 있었고 바닥에는 잡풀들이 내 키만큼 자라 있었다.


"쏘팔코사놀…"

대문 앞에는 언제 놓였는지 알 수 없는 택배 상자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주인 잃은 집은 차가운 공기만 맴돌았고, 먼지와 이물질이 쌓여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장판이 발바닥에 쩍쩍 달라붙었다. 내가 출가하고 할아버지 홀로 살던 집은 그만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안방에 들어서자 할아버지의 앉은뱅이 의자 옆에 약봉지와 안약이 이리저리 뒹굴다 멈춰 있었고, 대량으로 사놓은 마스크가 종이 가방에서 쏟아져 널브러져 있었다. 주방에는 인스턴트 3분 카레와 라면 봉지가 쌓여 있었다. 싱크대에는 언제부터 쌓여 있었는지 알 수 없는 설거지거리가 가득했다. 냉장고는 더욱 처참했다. 문을 열자마자 악취가 코를 찔렀고, 드시다 넣어둔 요구르트와 지저분한 반찬통들이 그득했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황급히 냉장고 문을 닫았다. 그 순간, 묘한 감정이 스쳤다. 저건 단순한 지저분함이 아니었다— 그 모든 것들이 말없이 할아버지의 외로움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이어서 내 방 문을 열어보았다. 낡아서 벽지가 떨어져 덜렁이고 있었지만, 놀러 올 손녀를 위해 그대로 보존해 둔 할아버지의 사랑이 느껴졌다. 할아버지가 사주셨던 두꺼운 영한사전, 부쩍 외모에 관심이 많아진 손녀를 위해 사준 자그마한 화장대. 주인은 잃었지만, 그곳에는 추억이 곳곳에 서려 있었다.


여름날 대자로 누워 녹이 슬어 털털거리며 목이 자꾸 떨어지는 낡은 선풍기 하나에도 행복해했던 공간이었다. 그런데 사람이 없다고 이렇게나 물건들이 무용해지고 쓰레기로 변하다니. 물건이 제 기능을 발휘하고 의미를 가지는 것은 결국 사용하는 '사람'의 존재에 달려있음을, 할아버지의 흔적으로 가득한 이 집은 내게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게 삶의 흔적과 추억으로 가득했던 집을 마주하며, 나는 처절한 깨달음을 얻었다. 죽음과 함께 유품은 짐이 된다는 사실을. 할아버지가 아끼고 소중히 모아 보관해두기만 했던 수많은 물건들의 무용함과, 쓰지 않고 가지고만 있는 것의 허무함을 유품을 통해 절절히 확인하게 되었다.



폐허가 된 우리집이었던 곳.

이 경험은 내게 죽음이 무엇도 영원히 소유할 수 없음을 알려주었다. 물질적 소유에 대한 집착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삶의 본질은 다른 곳에 있음을 자각하게 된 것이다. 그 순간부터 나는 물건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 글은 단순히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는 법이 아니라, 흔적을 지우며 살아남은 한 사람의 생존 기록이자, 다시는 대물림하지 않기 위한 비움의 선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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