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와 할머니(1)
위 사진은 할아버지, 할머니와 찍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가족사진이다.
어느 날, 늙을 대로 늙은 두 분이 "영정사진을 남겨야겠다."며 사진관에 가자고 하셨다. 그렇게 찍게 된 첫 가족사진. 나는 셔터가 눌리는 내내 눈물이 흐르지 않도록 눈을 부릅떴다. 가족사진을 찍는 일이 기뻐야 할 일인데, 어딘가 마음 한구석이 자꾸 아팠다. 할아버지의 굽은 등, 할머니의 주름진 손, 사진관의 조명이 두 분의 얼굴을 비출수록 언젠가 이 사진만 남을까 봐 서러움이 가슴 깊이 올라왔다. 사진이 완성되었을 땐, 마치 오래전 놓쳐버린 ‘가족’이라는 단어를 이제야 겨우 붙잡은 기분이었다.
존재만 있는 집에서의 성장
낯선 거실의 딱딱한 가죽 소파에 앉아 나는 손톱을 뜯으며 울고 있었다. "엄마…" 입술이 닳도록 불렀지만, 엄마는 오지 않았다. 안방에서 TV를 보던 할머니가 나의 울음이 성가신 듯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외쳤다. "엄마, 나중에 온다! 그만 울어라!!" 무언가 돌이킬 수 없이 잘못됐다는 걸 어린 마음에도 알 수 있었다. 나를 안아주는 어른은 아무도 없었다. 그 집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 삼촌, 아빠, 그리고 나. 함께 사는 사람은 많았지만 그 누구도 내 마음엔 가까이 와주지 않았다. 아빠는 집에 잘 들어오지 않았고, 존재만 있었다. 어린 나는 그렇게 조용히 시들어갔다.
하루는 외할머니가 생수병에 무언가를 담아 들고 찾아왔다. 죽은 딸을 살려내라며, 광기 어린 얼굴로 라이터를 켜고 고성을 지르던 장면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외할머니는 아파트에 불을 지르겠다며 할머니를 향해 라이터를 휘둘렀다. 나는 그 난리 속에서 숨을 죽인 채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다. 모두가 울고 있었지만, 정작 누구도 진짜 울음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해양대학교를 졸업하고, 상선에 기관사로 승선해 여러 나라를 다니셨다. 그는 선장의 보증을 섰다가 빚을 떠안게 되었고, 집엔 빨간 딱지가 붙었다. 그날 이후,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싸움이 잦아졌다. 회피적인 할아버지는 락스를 들고 죽겠다며 협박하기 일쑤였다. 나는 항상 어른들의 어긋난 삶 사이에 껴 있었다. 마치 누구의 편도 될 수 없는 증인처럼.
무너진 보증과 밀려드는 채무 속에서 할아버지는 점점 말이 없어졌고, 어느 날 우리는 짐을 싸 도시를 등지고 시골로 향했다. 그렇게 시작된 시골살이.
할머니는 무뚝뚝하고 인색한 분이셨다. 따뜻한 말은 거의 없었고, 밥 챙기고 옷 챙기고 잠재우는 일은 의무처럼 이어졌다. 그 형식적인 돌봄 속에서 나는 조금씩 익숙해져 갔다. 사랑 없는 돌봄에도 사람이 익숙해지더라.
할아버지 곁에는 늘 먼지가 소복이 쌓인 모서리가 닳고 표지가 벗겨진 책더미가 놓여 있었다. 내게 수학 공부를 가르쳤는데 내가 잘 따라가지 못하면 할아버지는 큰소리로 "지 애비 닮아서는. 쯧쯧"라며 욕을 하거나 내 손을 때리기도 했다.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던 할아버지의 말 없는 얼굴에 왜 그토록 화가 가득했는지. 그 분노는 무지한 손녀를 향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자식들의 무너진 삶과 그것을 지켜봐야만 하는 자기 자신을 향한 절망이었음을.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야 알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늘 말이 없으셨다.
사랑한다는 말도 칭찬도 들은 적이 없었다.
내가 쓴 글이 실린 신문 조각이
책장 한편에 스크랩되어 있는 걸 우연히 보았다.
낡은 가위로 반듯하게 오려낸 신문 조각.
그것은 소리 없는 박수였고,
말로 다 하지 못한 사랑의 형상이었다.
그는 말 대신
내 존재를 조용히 끌어안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