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안 들으면 고아원 보낸다.”

할아버지와 할머니(2)

by 하야
"말 안 들으면 고아원 보낸다."

집안일을 억지로 시키거나 먹을 것을 굶기진 않았다. 하지만 정서적인 공백은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컸다.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았지만, 대화는 거의 없었다. 무언가를 물어보면 돌아오는 건 짧은 대답과 무표정한 얼굴뿐이었다.


한창 LG의 롤리팝 폰이 유행하던 시절, 학교만 가면 너도나도 최신폰을 자랑했고, 최신폰을 가진 아이는 주목받고 인정받는 분위기였다. 최신폰을 사는 건 당시 나에겐 단순한 통신 수단을 넘어 소속감과 친구관계 형성의 상징적 의미를 지녔었다. 항상 아이들 틈에서 겉돌았기에 최신폰으로 주목받는 게 부러웠고 너무 갖고 싶었다. 할아버지에게 조심스레 최신폰을 사달라고 요구했고, 사춘기였던 나는 도가 넘는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안방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할머니가 한 마리의 맹수 마냥 달려 나와 고함을 지르며 내 티셔츠 목덜미를 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이 미친년아. 네 하나에 들어가는 돈이 얼마나 많은데, 미쳤냐. 이참에 그냥 뒤져라!! 뒤져라!!!! “며 사정없이 때렸고 갑작스러운 매질에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할머니의 매질이 끝난 뒤, 티셔츠의 목덜미는 어깨가 훤히 드러날 만큼 무참히 찢겨 있었다. 차라리 바닥 밑으로 몸이 꺼져버렸으면 싶을 정도로 비참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한바탕 응징이 끝났다는 듯 매정히 자리를 떠났고, 나는 홀로 남아 찢긴 옷자락을 부여잡고 몸을 웅크린 채 닭똥 같은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나의 모든 행위는 죄가 되었다.

작은 투정이라도 부리는 날이면, 할머니는 "말 안 들으면 고아원 보낸다." 며 아무렇지 않게 내게 말했다. 그 말은 내 어린 마음을 칼처럼 베어냈다. 진짜로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늘 목 뒤의 칼날처럼 서늘히 따라다녔다. 그 공포는 깊게 내 마음을 잠식해 갔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나는 내 감정을 삼키는 법부터 배웠다. 방 한구석에 웅크려 자주 울었다. 공책을 펼쳐 연필이 뭉개질 정도로 같은 말을 반복해서 적었다.


"나는 왜 태어났을까. "

"나는 왜 태어났을까? "

"나는 왜 태어났을까! "




박이 터지자 ,

하늘에서 색종이 꽃가루가 비처럼 쏟아졌다.


"와아아—! "


박 터뜨리기를 끝으로 운동회 오전 활동이 마무리되었다. 점심을 먹기 위해 아이들은 하나 둘 가족들이 깔아놓은 돗자리로 달려갔다. 내 발걸음은 저절로 느려졌다. 운동장 가장자리, 플라타너스 나무가 만들어준 그늘 아래에서 무심한 듯 치킨을 뜯으며 손짓하는 할머니와 낡은 모자를 쓴 할아버지가 보였다. 화사한 운동장 속, 그 풍경은 내게 오래도록 흑백사진처럼 남았다. 다른 가족들의 돗자리를 지날 때마다, 마치 마음이 발가벗겨지는 듯했다.


운동회는

모두가 가족을 자랑하는 날이었고,

나에겐

엄마가 없다는 사실을 세상에 들키는 날이었다.



할아버지는 말없이 내 손을 잡고 어디론가 이끌었다.그곳엔 누구의 발자국도 찍히지 않은 눈이 소복이 내려 있었다.세상에서 오직 우리만이 처음 밟을 수 있는 하얀 세상이었다.

한참을 돌아서야 알았다.

낡은 돗자리 위에 앉아 있던

그 두 사람은

내가 부서지지 않도록

조용히 떠받치고 있던 작고 단단한 흔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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