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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실컨설턴트 May 10. 2019

사표 던지기 전에 열어보아라(3)

사직서 투척 직전에 보아야 할 세가지 비기 - 마지막 봉투

두 개의 봉투를 열어보고 10년을 버텼습니다. 이제 정말 그만둬야 될 것 같습니다. 지금이 아니면 영영 스스로 나갈 기회가 없을 것 같은 불안감. 깊이 숨겨 두었던 마지막 봉투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너무 오래되어서 숨겨둔 장소가 기억이 안 납니다.


"이럴 때, 선배들은 어떻게 했을까?"


대한민국 인터넷과 SNS를 양분하고 있는 NHN과 카카오의 창업자 두 분은 제가 다니는 회사의 선배이십니다. 물론 두 분은 제가 후배인지 모르시죠. 재미있는 것은, 두 사람이 연배도 비슷하고 회사를 다닐 때는 입사 동기였다고 합니다. 한 때는 네이버와 한게임이 합병되면서 함께 일하기도 했지요. 지금은 NHN과 카카오로 가장 강력한 경쟁 상대가 되어 있습니다. 한 회사에서 동기생으로 시작한 두 사람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의 라이벌로 성장한 스토리는 직장인에게는 너무나 매혹적으로 다가옵니다. 지금은 마치 '신계'에 사는 것 같아 보이는 두 사람도 시작은 우리와 별반 다를 것 없는 직장인이었습니다.


NHN의 이해진 창업자는 저에게 각별합니다. 제가 대학 4학년때 그 분이 리쿠르트를 왔었습니다. 그때 지금 제가 다니고 있는 회사의 장점으로 '사내벤처(회사 내에서 일정기간 벤처기업처럼 독립회사를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라는 제도를 홍보했었고, 그 대표 자격으로 당시 네이버라는 검색엔진을 개발하고 있던 이해진 창업자가 직접 설명을 했었습니다. 50명 정도 모인 학생 중에 제일 앞에 앉았던 저는 아주 근거리에서 그를 볼 수 있었습니다. '사내벤처'라는 제도가 아주 매력적으로 들렸고 그것이 제가 입사를 결심하는데 큰 영향을 준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입사 후에 알게 되었습니다. 사내벤처라는 제도가 왜 만들어졌는지. 당시는 우리나라가 IMF 사태에서 벗어나기 전이었습니다. 국내 기업들은 비용을 줄이기 위해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그 방법의 일환으로 만든 것이 '사내벤처'라는 제도였던 거죠.


카카오의 김범수 창업자가 회사에서 했던 일은 PC통신 사업이었습니다. 지금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 '유니텔'이라는 서비스를 만들고 운영하는 일을 했다고 합니다.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그래도 만약 유니텔이라는 PC통신 서비스가 계속 성장했다면 그의 미래는 어떠했을까요? 사업 초창기 한게임이 성장할 수 있도록 단초를 제공한 것은 PC방 관리 프로그램이었다고 합니다. 당시는 PC방이 대유행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PC방에서 게임을 했습니다. 이 점에 주목한 그는 PC방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프로그램을 무료로 PC방에 제공하는 대신 PC방에 설치된 PC의 모든 바탕화면에 한게임 아이콘을 깔도록 요구했습니다. 이 관리 프로그램을 만든 사람도 같은 회사 출신이었다고 합니다. 사실 이 프로그램은 원래 주차관리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갓 입사해서 처음 만든 것이 대기업의 주차장을 관리하는 주차관리 프로그램이었는데, 그 핵심 로직이 PC방의 과금 체계와 거의 동일했던거죠.


결론적으로 두 분은 모두 5년 이상의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천재성으로 무장하고 나타난 것이 아니죠. 두 분은 아니라 할 수 있겠지만 그들이 직장을 나온 것도 지금의 성공도 어쩌면 계획된 일이 아닐 수 있습니다. 솔직히 계획된 것이 아닐 가능성이 훨씬 높죠. 제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이겁니다.


회사를 다니느냐, 자신의 사업을 하느냐는
성공과 별다른 연관성이 없습니다.

이해진이고, 김범수였기 때문에 회사를 박차고 나와 성공한 것이지 누구나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두 사람이 회사에 남았다고 하더라도 분명 고위 임원이 되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일에 대한 생각과 태도가 차이를 만드는 것이지, 회사에 남느냐 떠나느냐가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라는 겁니다. 자신의 철학에 맞도록, 목적을 효율적으로 달성하는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회사에 남기도 하고, 자신의 일을 시작할 수도 있는 것이죠.


눈을 들어보니 책장 속에 빨간 봉투가 낡은 책 속에 삐져나와 있습니다. 봉인해제된 봉투 속에는...


[세 번째 봉인해제]

최대한 퀭한 몰골의 가족사진을 꺼내보아라

[에필로그]

오늘도 한 분이 그만두셧습니다. 자의였는지, 타의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최근들어 자주 보는 광경입니다. 뭐가 옳고 그른지는 논의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회사를 나서는 뒷모습의 차이만을 얘기하고 싶습니다. 이제 곧 20년이 되는 회사생활동안 적지 않은 분들의 퇴사를 지켜봤습니다. 연말 임원들의 퇴임을 정기적으로 지켜봤고, IMF사태와 금융위기로 인한 구조조정 과정을 봤습니다. 상식적으로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아무래도 먹고 사는데 지장없는 순서로 미련없이 회사 문을 나서지 않을까?'


만약 그렇다면 고위 임원들의 발걸음이 가장 가벼웠겠죠. 하지만 지켜 본 결과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회사에서 임원으로 한참을 근무한 분들 중에도 퇴사하며 아쉬움과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도 있었고, 과장인데도 고마운 마음으로 가볍게 나서는 분도 있었습니다. 누구의 결정이었는지, 퇴사 후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의 차이였을 뿐입니다.


언젠가 저도 반드시 회사 문을 나서야 하겠지요. 그때 제가 원하는 저의 뒷모습은 영국 드라마에 나오는 '마법사 맥피'의 말로 대신하겠습니다.


내가 일하는 방식에 대해 네가 알아야 할 것이 있어.
네가 날 필요로 하지만 날 원하지 않을 때, 난 남을거야.
하지만 네가 날 원하지만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난 떠날거야.
이쪽이 더 슬픈 일이지만, 그래야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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