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컨설턴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실컨설턴트 Aug 10. 2023

프로젝트에서 쫓겨났습니다

점잖게는 방출

프로젝트에서 쫓겨 났습니다.


저 먼저 갑니다. 나오지 마세요.


놀라지 마세요. 자주 있지는 않지만, 종종 벌어지는 일입니다. 며칠 동안 전화를 많이 받았습니다. 나름의 해석과 걱정을 해줍니다. 저를 내 보낸 잘 알지도 못하는 고객사의 누군가를 대신 욕해주기도 했습니다. 철이 없을 때는 이런 말들이 진정한 공감이고, 제 미래에 도움이 될 소중한 조언인 줄 알았습니다. 귀담아 들었고 최대한 공감했습니다. 지금은? 그냥 눈웃음과 영혼 없는 끄덕임만 잠시 유지합니다. 그러면 그들도 총총 제 갈 길을 갑니다.




살면서 처음으로 지적 충격을 받았던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그 때는 학교에서 군복 입고 군사훈련을 정규 수업(교련이라 불렀습니다)으로 들었습니다. 그 시절에 '국민윤리'라는 이름만으로도 오래된 냄새가 나는 과목이 있었습니다. 약간 나치 냄새도 나죠. 생소했던 그 과목의 첫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칠판에 쓰신 한 줄이 저는 신선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문제였죠. 그리고 이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로 존재에 대해 묻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로 이어져 삶의 의미까지 찾으라 합니다. 이것이 갓 입학한 고등학교 1학년에게 주어진 숙제였습니다. 온 나라가 하나의 군대였던 시절입니다. 숙제는 안 해 가는 것은 명령 불복종, 즉결 처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어떻게 A4지 한 장을 채워갔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그 종이에 쓰였던 단 한 글자도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스스로 무슨 말을 쓰는지도 모를 언어들을 종이에 나열한 이후로도 오랫동안 저는 그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당연한 일이죠. 기원전 5세기에 동서양 할 것 없이 혼란한 난세에 이곳 저곳에서 천재들이 나타났습니다.


우리는 무엇이고, 어디서 왔으며,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때부터 고민하고, 그 이후로도 수 천 년을 인류는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찾으려 했습니다. 그런 어려운 문제를 고딩한테 주고 답을 찾으라뇨. 아동학대 수준입니다. 지금은 왜 답을 찾지 못했는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습니다. 애초에 질문에 잘못되었던 겁니다. 과학이 발전하고 인간이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면서 우리는 허무한 결론을 마주하게 됩니다. 우리 삶에 주어진 의미는 없었던 겁니다. 주어져 있지 않는데 어떻게 찾을 수 있겠습니까? 살면서 우리는 이런 실수를 너무 자주 합니다. 섣부른 결론만 내리지 않아도 그런 실수를 줄일 수 있을텐데 성급하기까지 합니다. 답이 없는 것에 정답을 붙이려는 강박은 우리 몸 어디에 설계되어 있는 걸까요?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오랜 경험과 과학이 말합니다. 우리의 삶에 주어진 의미는 없다고요. 주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찾지 못합니다. 그래서 삶의 의미는 각자 만들어야 만들어야 합니다.




각자 의미를 부여해서 만들어 가야 할 삶의 의미를 어떻게 만들어 가야 할까요? 오늘 저에게 연습할 좋은 기회가 온 겁니다. 프로젝트에서 교체 당하는 순간에요.

그냥 어떤 일이 벌어진 거예요. 벌어진 일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좋고 나쁨은 더더욱 없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건 나 자신입니다. 내 생존에 유리하고, 내 행복을 더하도록 해석하고 의미를 잘 부여하는 능력이 저는 창조성이라 생각합니다. 스티브 잡스처럼 아이폰을 상상하고, 머스크처럼 화성 정복을 꿈꾸는 그런 창조성은 인류 전체에서 몇 명만 있으면 됩니다. 우리에게는 내게 제일 중요한 내 인생의 시간을 최대한 행복하게 그려갈 정도의 창조성만 있으면 됩니다. 인생은 어차피 해석놀음이니까요.


어떻게 해야 창조적인 해석을 할 수 있을까요? 그런 건 저도 모릅니다. 각자 찾아야죠. 맞습니다. 저는 책임감 따위는 없습니다. 그냥 던집니다. 단지 해석할 때 주의할 점은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 너무도 명확하고 최근에 과학적으로 증명도 되었습니다.

생성형 AI 들어보셨나요? 그럼 chatGPT는요. 요즘 가장 핫한 인공지능입니다. 인공지능이 뭘 모방해서 만들었을까요? 인간의 뇌입니다. 인간이 뇌가 학습하는 형태를 모방한 것이 인공지능 중에서도 머신러닝이고 그 중에서 제일 잘 나가는 방법이 딥러닝입니다. 이런 이론을 가장 성공적으로 현실화한 것이 chatGPT라 생각하시면 큰 오류는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사람도 인공지능과 비슷하다고 보면 되겠지요. 인공지능을 학습시키는 것은 데이터입니다. 나쁜 데이터가 들어가면 나쁜 말을 하기도 하지요.

출처: 이루다홈페이지

실제로 AI 친구를 표방했던 이루다사례가 있습니다. 사용자들이 성적인 대화로 학습시키는 바람에 서비스를 종료했었죠. 미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2016년 3월에 MS가 출시한 AI 챗봇 테이 사례입니다. 출시했다가 16시간 만에 운영을 중단했습니다. 백인우월주의 및 여성과 무슬림 혐오 성향의 익명 사이트에서 테이에게 비속어와 인종 및 성차별 발언을 되풀이해 학습시켰고, 그 결과 실제로 테이가 혐오 발언을 쏟아낸 탓이었습니다.




내 삶의 의미와 인공지능이 무슨 관계? 모르시겠어요? 인공지능이 사람을 모방했다고 했잖아요. 삶의 의미를 해석하는 엔진은 가치관이라 부르는 것일테죠. 그 가치관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인공지능을 학습시키는 것과 뭐가 다를까요?

쫓겨난 사실은 그냥 벌어진 겁니다. 그런데 그 일에 대한 해석은 가치관이라는 필터를 통과합니다. 그때 또 다른 데이터들이 같이 입력됩니다. 타인의 영향입니다. 처음에 고객이 교체를 요구한다고 했을 때 저는 속으로 좋았습니다. 원래 프로젝트는 서울, 그것도 강남에서 해야 하는데 저는 서울에 집이 없습니다. 호텔 생활을 전전하거나 작은 방을 구해야 할 형편이었습니다. 시작하면 일도 힘들어지고 고객들의 관심 어린 눈총을 받으며 정시 출근, 안 정시 퇴근을 반복해야 합니다. 쫓겨나면 판교라는 좋은 환경에서 격주로 재택근무라는 달콤함도 누릴 수 있지요. 그래서 좋았습니다. 그랬는데 며칠 동안 계속 부정적인 데이터가 들어오는 겁니다. 그것도 해쉬 태그에 ‘#적이보냄 #나쁜입력 #무시해가 붙었으면 좋으련만 ‘#걱정스러워 #파이팅’, 이런 태그가 붙어 들어오니 반사도 안 됩니다. 결국 이틀 후에 우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정신을 퍼뜩 차렸습니다.

삶의 의미, 가치관같이 대단하게 들리는 언어를 들먹여서 뭔가 근사한 것을 만들어야 될 것 같지만 저는 그런 건 없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뭐가 근사하고 뭐가 멋진 건가요? 그 기준은 내가 찾는 겁니다. 외부의 데이터로 학습해서는 안 되는 영역인 겁니다. 그걸 자꾸 허락하고 필터링 하지 않게 되면 나답게 사는 건 물 건너 가는 겁니다. 저도 오늘 정신 똑바로 차리려고 합니다. 필터도 하나 더 세팅하려고요.

매거진의 이전글 KPI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