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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신 Jan 03. 2018

대통령의 연설, 누구의 것일까?

퍼블릭 도메인(공공저작물)의 세계


대통령, 민주주의 국가에서 일반적으로 한 나라의 지도자를 가리키는 단어죠.


내각책임제를 채택한 나라에서도 상징적인 지도자로 대통령을 따로 두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어떤 나라든 한 시대의 지도자가 말하고 행동하며 결정하는 일이 그 나라의 향방을 좌우합니다.


<오바마 스피치라이터들이 말하는 “대통령 연설문이란…” , 뉴시스, 2016.12.22.> 

"대통령이 선택하는 문장은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우리 과거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마주할 것인지에 대해 말해준다" 21일(현지시간) 미 백악관은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버락 오바마 연설보좌관(스피치라이터)들이 뽑은 오바마 최고의 연설과 그 작성 배경을 재조명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특히 지난 시대,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여러 명연설로 유명했는데요.


<백악관 오바마 명연설 공개, "오바마가 작성한 문장이 최고", 2016.12.30., 비즈니스포스트>


우리나라에서도 정치인들이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문을 본따거나 베꼈다는 논란이 있었던 적이 있죠. 사실 이런 논란은 그만큼 연설문이라는 게 생각보다 쓰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짧으면 15분, 길면 1시간 이내에 자리에 어울리는 분위기,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때로 정치적 결단을 담아 간명하게 전달해야 하는 게 연설문이기 때문입니다.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강원국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도 약 7년여 동안 청와대에서 연설문을 썼지만 고생했다고 하더라구요. 


[(강원국 작가는)  "노무현 대통령께 5년 내내 혼났다. 조금 혼내시면 늘 '이 시간도 가겠지' 하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연설문은 또 다른 정치인의 결정을 분석하는 틀이 되기도 합니다.

가끔은 국제 외교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죠. 외교 행위를 해야 하는 상대방 정상이 어떤 메시지를 중시하는지 파악할 수 있는 공개된 자료이기 때문입니다. 

2017년에 있었던 한-중 정상회담 때도 중국 정상의 연설문이 중요한 분석 자료가 되었다고 할 정도입니다.


<靑 "文, 시진핑 3시간 반 연설문 꼼꼼히 검토…굉장한 준비", 노컷뉴스, 2017.12.17.>


그런데 이런 대통령의 연설문에도 저작권이 있을까요?

앞에서 살펴본 강원국 비서관이 쓴 <대통령의 글쓰기>는 2016년 말 기준으로 10만부가 넘는 판매고를 올렸습니다. 이 책에는 대통령 연설문이 일부 인용되어 있는데, 그 연설문에 대한 저작권 사용료는 따로 지불했을까요? 


아니면 비서관 본인이 실은 썼던 연설문이니 저작권료를 지불하지 않았을까요? 

혹시나 업무상 저작물이라 청와대(대한민국)로 저작권이 귀속된 걸까요?



해답은 저작권법 법전에 나와 있습니다.


저작권법 제24조(정치적 연설 등의 이용) 공개적으로 행한 정치적 연설 및 법정·국회 또는 지방의회에서 공개적으로 행한 진술은 어떠한 방법으로도 이용할 수 있다. 다만, 동일한 저작자의 연설이나 진술을 편집하여 이용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이 법 조항에 따르면 공개적인 대통령 연설문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죠.

인용할 수 있고, 전문을 게재할 수 있으며, 이를 이용해 다른 글을 쓸 수도 있습니다.

대통령 연설문만이 아니라 법정에서 진행된 변론, 국회의원의 연설, 지방자치단체 장의 연설이나 자치의원의 연설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이 조항을 잘 살펴보면 ‘동일한 저작자의 연설이나 진술을 편집’하는 것은 안 된다고 규정되어 있기도 하죠.

이게 무슨 뜻이냐면, 고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문을 편집해서 연설문 모음집을 만들거나, 혹은 동일성유지권을 침해해 새로운 연설로 재편집할 경우에는 저작권 침해가 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일부 인용한 정도로는 ‘편집’의 정도에는 이르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저작권법 인용(저작권법 28조)이나 공정이용(저작권법 제35조의 3)에 해당할 가능성이 더 크죠. 

게다가 다른 사람이 아닌 대통령은 국가기관에도 해당되기 때문에 다음 조항의 적용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저작권법 제24조의2(공공저작물의 자유이용)
 ①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업무상 작성하여 공표한 저작물이나 계약에 따라 저작재산권의 전부를 보유한 저작물은 허락 없이 이용할 수 있다. 다만, 저작물이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1. 국가안전보장에 관련되는 정보를 포함하는 경우
2. 개인의 사생활 또는 사업상 비밀에 해당하는 경우
3. 다른 법률에 따라 공개가 제한되는 정보를 포함하는 경우 (후략)


따라서 강원국 비서관님이 인용한 대통령 연설문의 분량 정도라면, 사용해도 무방하다고 볼 수 있겠죠.

바꿔 말하면 대통령의 연설문은 저작권법 제24조의 2에 해당하니 ‘공공의 것’이라고 볼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문은 어떨까요?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인이니 미국 저작권법의 적용을 받는 걸까요?

미국 저작권법에 따르면 사실 연설문도 저작권 보호를 받고 함부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킹 목사의 연설문과 녹음·녹화물은 '공공 소유'가 아니기 때문이다.
28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 등 미국 언론에 따르면 킹 목사의 연설은 킹 목사 가족의 사적 소유물로서, 저작권으로 보호를 받는다.]


다만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공무원이었으니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문은 미국 정부의 공공저작물이기는 하죠.


<미국 연방 저작권법 제101조(정의)
'미국 정부 저작물'이란, 미국 정부의 관리나 근로자가 그의 직무나 일부로서 작성한 저작물이다.
미국 연방 저작권법 제105조(저작권의 보호대상 : 미국 정부 저작물) 미국 정부의 어떤 저작물도 이 편 법전에 의한 저작권 보호를 받지 못한다. 다만, 미국 정부가 양도, 유증, 또는 그 밖의 방법에 의하여 이전된 저작권을 인수 또는 보유하는 것은 금지되지 아니한다.>




하지만 여기는 미국이 아니라 한국입니다.


<베른조약=1886년 스위스의 수도 베른에서, 저작권(著作權)을 국제적으로 서로 보호할 것을 목적으로 체결된 조약.>


한국 저작권법 제3조(외국인의 저작물)
① 외국인의 저작물은 대한민국이 가입 또는 체결한 조약에 따라 보호된다.
② 대한민국 내에 상시 거주하는 외국인(무국적자 및 대한민국 내에 주된 사무소가 있는 외국법인을 포함한다)의 저작물과 맨 처음 대한민국 내에서 공표된 외국인의 저작물(외국에서 공표된 날로부터 30일 이내에 대한민국 내에서 공표된 저작물을 포함한다)은 이 법에 따라 보호된다.


베른협약(만국 저작권 보호 동맹 조약)과 한국 저작권법에 따라 미국 시민인 오바마 대통령의 저작물은 한국 저작권법에 따라 보호됩니다.


그런데 한국 저작권법에 따르면 앞서 보았듯이 정치적 연설은 그대로 인용하는 경우에는 인용 가능합니다. 

따라서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문은 한국에서는 인용 가능하죠.

 

다만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은 ‘영어’로 이루어져 있으니, 한국말로 번역하는 순간 엉뚱하게도 번역가의 번역저작권이 발생하는 문제는 있죠. 

(그러니 한국어로 된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문을 인용할 때는 주의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대통령의 연설문은 일종의 공공저작물이자, ‘공개적인 정치적 진술’이기 때문에 약간의 주의사항만 명심하면 만인이 사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대통령의 연설을 보면서 한 시대의 흐름을 볼 수 있고, 또한 대통령은 말을 통해 한 시대를 끌고 나갑니다. 시대의 비전과 나라의 방향이 대통령의 연설문 속에는 녹아 있죠. 

또한 그 시대에는 불가능해 보였던 꿈이 대통령의 연설을 통해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여기, 한 연설문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이 연설문은 그때는 불가능해 보였던 일을 현실로 만들었고, 미국만이 아니라 인류를 더 위대한 시대로 이끌었습니다.

우리도 지금은 불가능해 보이는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https://www.jfklibrary.org/JFK/Historic-Speeches/Multilingual-Rice-University-Speech/Multilingual-Rice-University-Speech-in-Korean.aspx

<J. F. 케네디, 미국의 우주 탐사에 관한 라이스 대학교 연설>


<우리는 달에 가기로 했습니다. 
그들이 묻는 다른 일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것이 쉬워서가 아니라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이 목표는 우리의 에너지와 기술 수준을 정비하고
그 한도를 측정할 기회가 되기 때문에, 

우리가 기꺼이 받아들일 도전이고 
뒤로 미루기 싫은 도전이며 
우리는 물론 다른 이들도 성공하고자 하는 도전이기 때문에.
다음 십 년이 시작되기 전까지 달에 가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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