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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신 Jan 10. 2018

한 줄 카피, 당신에게 권리가 있을까?

단 하나의 문장, 저작권이 있을까?


난 우리가 좀 더 청춘에 집중했으면 좋겠어.”


여기, 아름다운 문장 하나를 소개합니다.

일상어로 이루어져 있지만, 

빛나는 청춘과 흘러가버리는 시간의 덧없음을 

일곱 단어에 집약시킨 문장이죠.


이 문장을 두고 올해 흥미로운 소송이 시작될 전망입니다. 


<“내가 쓴 이 문구를… 대기업 맞선 개인의 저작권 싸움한겨레, 2017. 8, 1>

     

이 문장은 본래 인디밴드, 

“1984”가 2009년에 낸 엘범 자킷에 있는 문구죠.

밴드의 구성원이었던 김정민 작가가 만든 문구라고 합니다.


지난 2009년 제작된 1984의 앨범 <1984 청춘집중-난 우리가 좀더 청춘에 집중했으면 좋겠어> 자켓 사진


이 문구가 뒤늦게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자,

현대백화점에서 2017. 4.21에 벽면 광고 문구로 사용하면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김 작가는 대기업이 명백히 저작권 침해를 했다고 주장하며 내용증명을 발송했고, 

현대백화점은 저작권위원회나 기존의 판례로 볼 때 저작권은 인정하기 어렵다며, 

다만 화해의 의미로 2백만원 상당의 금액을 제시했죠.


김 작가는 납득하지 못했고, 아마도 소송이 시작되고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사건은 콘텐츠에 있어 매우 흥미로운 쟁점을 담고 있습니다.

아주 짧은 ‘단문’이 과연 저작권이 인정될 수 있을까요?


생각해 보세요.

예컨대 우리는 오늘도 무수한 기사에 댓글을 달고 SNS에 짧은 글을 올리죠.

그 글 중에는 한 문장으로 구성된 것도 무척 많습니다.

그런데 그 글들은 저작권이 인정될 수 있을까요?


일단 현재까지의 판례와 저작권 전문가들의 태도는 부정적입니다.


하이트 맥주 케이스 사례-서울고등법원 1998.7.7.선고 97나15229

"가장 맛있는 온도가 되면 암반천연수 마크가 나타나는 00, 눈으로 확인하세요"라는 부분과 "최상의 맛을 유지하는 온도, 눈으로 확인하십시오."는 양쪽 모두 맛있는 온도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단순한 내용을 표현한 것으로서, 그 문구가 짧고 의미도 단순하여 그 표현형식에 위 내용 외에 어떤 보호할 만한 독창적인 표현형식이 포함되어 있다고 볼 여지도 없다


이 케이스는 하이트 맥주(피고)가 독특한 광고 문구 한 문장을 제안받은 다음,

그 문장과 거의 유사한 문장을 이용해 광고 문구를 무단으로 만들었던 케이스인데요.

1심에서는 원고가 이겼지만, 2심에서는 하이트 맥주가 이긴 사례입니다.

이유는 아주 단순한 내용이고 짧아서 독창적인 표현으로 인정받지 못한 케이스죠.


영화 “왕의 남자” 케이스-서울고등법원 2006.11.14.자 2006라503 결정

영화 '왕의 남자'에서 그대로 사용된 "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어"라는 희곡 '키스'의 대사는 네티즌들이 이를 명대사로 뽑고 있고 신문만평에도 등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이는 표현으로서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받을 수 있는 창작성 있는 표현이라고 볼 수 없고, 다른 작품에서도 유사한 표현들이 자주 사용되고 있으므로 저작물성 부인


이 케이스는 연극 “키스”에서 나온 대사를,

천만 관객이 관람한 영화, “왕의 남자”에서 그대로 가져갔다는 이유로 

소송이 진행된 케이스입니다.

물론 이 경우에도 재판부는 고작 한 문장 정도로는 저작권이 인정될 수 없고,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이는 표현이라는 이유로 창작성도 부정했죠.


이외에도 “제목” 정도의 문장, 문구가 저작권이 부정된 케이스는 무수히 많습니다.

저작권 전문가도 보통 비슷한 대답을 하죠. 


<박성구 변호사 "저작권 핵심은 `창작성`, 콘텐츠 제목까지 보호 가능할까?", 카톨릭 평화방송>

“저는 보호해줄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미국의 경우 통상적으로 이런 류의 저작권을 잘 인정하지 않는 편이고 유럽은 좀 더 강하게 인정하는 편인데요.”



<[프랑스] 타인의 제호를 도메인네임으로 등록한 것은 저작권 침해>

유럽, 특히 프랑스는 지식재산권법에 제목을 저작권으로 인정하기 때문에 

인정되는 경우죠. 

우리와는 다릅니다.


일반적으로는 아래와 같습니다.

<저작권 위원회-영화 제목은 저작권이 될 수 없어요>


이건 원래 저작권이 이렇게 구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저작권법 제2조 제1호 
"저작물"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을 말한다.

     

저작권은 인간의 사상/감정을 표현을 통해 

창작한 창작물에게 부여되는 권리입니다.

     

일반적으로 미국, 유럽, 일본 모두 비슷한 법률로 규정되어 있죠.

이 간단한 문장을 분석하면 이렇게 됩니다.


우선 인간이 만들어야 하고, 

생각(아이디어)이 아닌 표현이 대상이며, 

창작물이어야 해요.


그런데 짧은 문장의 경우 유의미한 ‘창작물’로 보기 어렵고, 

일상 언어로 표현되어 있어 보호 대상이 아니라는 게 한국의 기존 판례 입장인 거죠.

하지만 반대 케이스가 있습니다. 


“When there in no room in hell, the dead will walk the earth.”
(지옥에 더 이상 공간이 없을 때, 망자들이 지구를 떠돌게 된다.)
[Dawn Associates v. Links, 203 U.S.P.Q. 831 (N.D. Ill. 1978)]


미국 일리노이 주 연방지방법원에서 있었던 케이스입니다. 


위 문장은 어떤 좀비 영화를 광고하기 위한 문장이었는데, 

유사한 공포 영화에서 홍보를 위해 광고에 배껴썼다가 문제가 되었죠.

이 케이스에서 미국 법원은 비록 한 문장이었지만 차용된 부분이 

“질적으로 중요하고, 핵심적인 부분”이라는 이유로 

실질적 유사성을 인정해서 저작권 침해를 인정했습니다.


다른 케이스도 있죠. 


“E.T. Phone home”이라는 문구가

영화 <E.T>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저작권 침해라고 판결난 케이스도 있습니다.(Universal City Studios v. Kamar Industries, Inc, 1982)


딱 2문장이 인정된 사례도 있죠. 

판매용 엽서에 적히자 저작권 침해가 인정된 케이스입니다.


“I may not be totally perfect, but parts of me are excellent,” and “I have abandoned my search for truth and am now looking for a good fantasy.”
(나는 전적으로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내 일부는 완벽하지. 그리고 난 진실에 대한 추구는 포기했지만 탁월한 환상을 추구한다.-영국의 잠언가 애슐리 브릴리언트)
(Brilliant v. W.B. Productions, Inc., 1979) 


일본의 문학 양식인 “하이쿠”는 2-3줄 정도에 17글자에 불과하지만 저작권으로 보호받는 엄연한 문학 작품입니다.

<일본의 하이쿠>

     

그리고 한국에서도 단문이 저작물로 인정된 판례가 있습니다.

바로 이외수 작가의 트윗 저작권 분쟁 케이스입니다

     

     

<변명을 많이 할수록 발전은 느려지고 반성을 많이 할수록 발전은 빨라진다.” 

등의 문장으로 짧은 글귀 속에서 삶의 본질을 꿰뚫는 촌철살인의 표현이나 시대와 현실을 풍자하고 약자들의 아픔을 해학으로 풀어내는 독창적인 표현형식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 대부분이고,

각 글귀마다 이외수 특유의 함축적이면서도 역설적인 문체가 사용되어 그의 개성을 드러내기에 충분한 사실을 인정한 판결>


(1심 서울남부지방법원 2013. 5. 9. 선고 2012고정4449

2심 서울남부지방법원 2013. 8. 30. 선고 2013노822 판결: 항소기각, 이후 상고기간 도과로 확정)


이 케이스에서 법원은 검찰이 주장한 “트윗 단문 저작권 침해”를 인정했죠.


물론 사실 이런 인정된 케이스 대부분은 ‘한 문장’의 저작자가 사실 유명하거나,

그 문장이 무척 알려진 케이스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 마디로 법원에서 이 ‘한 문장’의 저작권 혹은 ‘창작성’을 

무시하기가 어려운 케이스였죠.


하지만 우리가 처음 본 문장으로 다시 돌아가 볼까요?


난 우리가 좀 더 청춘에 집중했으면 좋겠어.”


이 문장이, 이외수 작가의 트윗 문장 만큼은 아니더라도, 

과연 창작성이 없는 문장일까요?


판단은 법원의 몫입니다만, 

어쨌든 결코 ‘한 문장’이라고 해서 저작권이 인정되지 않는 것만은 아니라는 거죠.


아, 저작권은 인정되지 않아도 출처의 오인/혼동을 일으키는 경우는, 

“부정경쟁행위방지 및 영업비밀에 관한 법률” 상, 

“부정경쟁행위”로 인정될 여지는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저작권은 인정되지 않더라도, 

널리 알려진 “영업표지”를 침해한 케이스가 될 수는 있죠.


이 경우에는 앨범 “1984 청춘집중-난 우리가 좀더 청춘에 집중했으면 좋겠어”가 얼마나 저명한지가 문제될 겁니다.


<라디오 프로그램, “별이 빛나는 밤에” 제목의 부정경쟁행위 인정 케이스>
(서울중앙지방법원 2017. 3. 24. 선고 2016가합552302 판결)
<혼자 사는 여자 vs 독신녀 부정경쟁행위 인정 케이스>
(서울중앙지방법원 1979.11.30.자 79마364 결정)


어쨌든 이 케이스가 어떻게 판결이 나올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와 여러분이 SNS에 쓰는 ‘단문’의 저작권이 얼마나 인정될지도,

이 케이스로 다시 한 번 검증될 것이기 때문이죠. 


어떻게 판결이 나든 이제는 “단문”의 시대가 도래 했다는 점만은 분명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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