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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신 Jan 17. 2018

음지에 있던 불법 콘텐츠, 양지의 길로

불법적인 저작권 이용, 양성화 방법


“불법 콘텐츠 방지, 당신의 양심을 지키는 일입니다.”


IPTV에서 VOD를 볼 때 흔히 볼 수 있는 표어 중 하나죠. 

사실 VOD를 사서 보는 사람은 저작권법을 어기는 사람도 아니고, 불법적으로 저작물 유통을 하는 사람도 아니지만 켐페인 차원에서 내보내는 저작권 지킴 홍보 영상일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불법 콘텐츠’라는 말이 대체 무슨 뜻일까요?


뭘 어떻게 어겼길래 불법이라는 말을 쓰는 걸까요? 

혹시 콘텐츠를 다운로드 받으면서 법이라도 어겼다는 걸까요? 



보통 ‘불법 콘텐츠’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는 창작 과정에서 타인의 저작권을 침해했거나 법을 어겼다는 뜻입니다. 

다른 편에서 다룬 바 있는 이른바 ‘표절’ 문제가 대표적인 예죠. 

한국에서는 이른바 ‘음란물’도 법을 어긴 저작물입니다. 


다른 하나는 타인의 저작물을 정당한 권리나 허락 없이 복사(복제), 전송(공중송신), 유통(배포)했다는 의미입니다. 일반적으로 콘텐츠를 즐기는 평범한 시민이 ‘불법 콘텐츠 문제’에 연루되었다는 것은 주로 후자의 의미죠.


바꿔 말하면 ‘불법 콘텐츠의 양성화’라고 하는 것은 만드는 과정이 불법인 콘텐츠를 양성화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멀쩡한 콘텐츠를 제 값을 주지 않고 불법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방지한다는 뜻이죠. 


옛날에 아직 인터넷이 도입되지 않았던 시절에는 주로 ‘불법 복제된 비디오’나 ‘허가 받지 않은 카세트 테이프’, ‘복사집을 통해 유통되는 해적판 책’이 주된 불법 콘텐츠 유통 경로였습니다. 그 시절에도 정식으로 인가받은 버전보다 불법 버전이 훨씬 더 많이 팔렸다고 하더라구요. 


하지만 이제 인터넷이 도입되고 콘텐츠가 디지털 정보로 전환되는 시대가 도래하자, 불법의 양상도 바뀌었습니다. 2000년대 초반의 웹하드, 2010년대 초반에 유행한 토렌트, 이 시대에 유행하는 중국의 게임 사설 불법 서버와 클라우드 저장소 이용까지 다양한 형태로 콘텐츠를 업로드하고 다운로드하며 유통하는 경우가 많아졌죠.


게다가 옛날 불법 복제 저작물이 불법 복제 저작물 판매상에게만 이득을 줬듯이 오늘날의 불법 콘텐츠 이용도 저작권자가 아닌 불법 콘텐츠 유통업자에게만 큰 이익을 안겨줍니다. 



[김씨는 2015년 11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웹하드 사이트에 음란물 24만2481건을 올려 5400여만원의 수익을 거둔 혐의를 받고 있다.]



[마루마루의 광고 수익이 무려 80억원에 이른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중략) 작품 하나를 기준으로 본다면 연간 50억에 가까운 손해가 발생한다는 것인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이런 불법 콘텐츠 유통으로 인해 창작자는 정당한 수익을 얻지 못하게 됩니다.

반대로 창작자가 불법 콘텐츠 유통을 방지하기 위해 고소, 고발을 하게 되면 이른바 ‘합의금 장사’를 한다고 비난하는 경우도 많죠. 


<고소 남발...합의금 장사...'법폭'에 멍드는 사회, 2016. 9.26, 서울경제>


[먼저 저작권법을 이용한 법폭은 이미지나 폰트를 다운받거나 이용한 이들을 찾아 저작권법을 위반했다며 통상 100만원 선의 합의금을 요구하는 수법이 일반적이다.]


창작자 입장에서는 억울한 일이지만 사적 권리를 지키기 위한 고소, 고발은 검찰도 지양하는 바입니다. 때문에 초범은 교육을 목적으로 기소유예 시켜 버리거나 아주 적은 벌금형으로 끝내는 경우도 많죠.


게다가 콘텐츠 불법 유통은 ‘업로더’만 처벌하고 ‘다운로더’는 처벌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유저는 죄책감 없이 ‘불법 다운로드’를 하게 됩니다. 


이상한 일이죠? 콘텐츠를 웹 서버 상에 업로드하든, 자신의 컴퓨터에 다운로드 하든, 그 순간 디지털 콘텐츠는 서버에서 복사되어 인터넷 통신망을 통해 전송되며 이를 통해 배포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저작권 침해’가 발생했다는 뜻이죠. 


저작권법 제16조(복제권) 저작자는 그의 저작물을 복제할 권리를 가진다.
제18조(공중송신권) 저작자는 그의 저작물을 공중송신할 권리를 가진다.
제20조(배포권) 저작자는 저작물의 원본이나 그 복제물을 배포할 권리를 가진다. 다만, 저작물의 원본이나 그 복제물이 해당 저작재산권자의 허락을 받아 판매 등의 방법으로 거래에 제공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저작권법 제136조(벌칙) ①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거나 이를 병과할 수 있다.  
1. 저작재산권, 그 밖에 이 법에 따라 보호되는 재산적 권리(제93조에 따른 권리는 제외한다)를 복제, 공연, 공중송신, 전시, 배포, 대여, 2차적저작물 작성의 방법으로 침해한 자


그러니까 '불법 콘텐츠를 업로드한 사람'은 이른바 ‘저작권 침해죄’를 범한 것이 됩니다. 

하지만 다운로드를 한 사람은 이 죄로 처벌받지는 않죠. 

왜냐하면 ‘사적복제’는 가능하도록 저작권법에서 허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작권법 제30조(사적이용을 위한 복제) 공표된 저작물을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아니하고 개인적으로 이용하거나 가정 및 이에 준하는 한정된 범위 안에서 이용하는 경우에는 그 이용자는 이를 복제할 수 있다. 다만, 공중의 사용에 제공하기 위하여 설치된 복사기기에 의한 복제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물론 집에서 혼자 사용하는 정도를 넘어선 복제가 발생하면 당연히 개인 유저도 처벌받아요. 그러니까 위 법 조항만 믿고 무조건 집에서는 복사해도 된다고 믿으시면 곤란합니다. 


어쨌든 이런 이유로 창작자는 저작권 침해가 발생해도 고소, 고발 외에는 적절한 대처법을 찾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게다가 요새는 유튜브나 동영상 사이트에 콘텐츠가 업로드되면 순식간에 퍼져나가서 방지할 대책도 찾기 쉽지 않은 실정입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저작권 침해를 당하다보면 창작자는 정당한 수익을 넘어 최저생활비도 벌 수 없게 되는 경우가 많고,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창작을 할 수 없게 됩니다. 

나아가 콘텐츠 창작을 하겠다고 새로 도전하는 신규 창작자나 콘텐츠 업체도 줄어들게 되죠. 결국 콘텐츠 시장이 공멸의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때 음악이 디지털 콘텐츠 시장 전체가 망할 위기에 처해 있었죠. 

그 시절 ‘소리바다’를 비롯한 P2P 음원 유통 서비스나 웹하드 업체 때문에 음악 시장은 큰 위기를 겪었습니다. 

이에 대해 음악저작권협회를 비롯한 저작권자들은 고소, 고발을 개시하며 불법 콘텐츠를 법을 통해 잡는데 주력했죠. 하지만 효과는 상당히 적었습니다. 


<음반업계, 저작권 '비상'···대책위 구성..'소리바다' 공소기각 이후, 2003. 5.23, 한국경제>


<엠넷미디어 등, 소리바다 상대로 ‘저작권 침해소송’ 제기, 2007.12.10., OSEN>

[음반, 음원 유통 회사인 엠넷미디어 외 91개 저작권 보유권자들이 소리바다(대표 양정환)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저작권 침해 정지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 벅스뮤직 서비스금지 결정, 2003.10. 2, 프레시안>



이런 저작권 소송전이 빗발쳤지만 디지털 콘텐츠의 수익화는 요원한 길이었죠.

해답은 다른 곳에서 도출되었습니다. 


<'벅스뮤직' 유료화...'공짜 서비스' 논란 일단락, 2004, 7,14, 스포츠조선>

[벅스뮤직 유료화는 'IT 선진국, 저작권 후진국'으로 불리던 국내 음악 환경에 한 획을 긋는 일대 사건으로 기록되게 됐다.]



무료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던 ‘벅스뮤직’이 저작권자에게 돈을 지급하고 대신 이용자에게도 이용료를 걷는 유료 서비스를 도입한 겁니다.

이를 시작으로 멜론, 지니 등 디지털 음원을 서비스하는 업체들이 등장했고 음반을 음원이 대체하는 시장 트랜드와 겹치면서 유료 음원 콘텐츠 시장이라는 새로운 시장이 열렸죠. 지금도 수익 배분 문제로 늘 대립이 일어나는 시장이긴 하지만, 불법 콘텐츠만이 빗발치던 시절과는 다릅니다. 



<가상화폐 ‘비트코인 광풍’과 '솔로몬 판결', 2018. 1.14, 굿모닝 충청>

[김 판사는 또 2000년대 초 미국의 냅스터 재판과 우리나라의 소리바다 재판을 상기한 뒤, “결국 사법부는 소니 판례 기조의 연장선에서 P2P 서비스 자체의 금지를 거부하는 대신 필터링을 비롯한 무거운 관리감독 책임을 P2P서비스 사업자에게 부과하는 것으로 결론지었다”고 환기시켰다.]


나아가 온라인 사업자가 유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신, 서비스 자체는 인정해주고 책임을 강하게 부과하는 판결도 나오기 시작했죠. 


웹하드 업체의 경우도 비슷한 경로를 거쳤습니다. 

2000년대 초반 웹하드 서비스는 주로 영상을 불법적으로 공유하는 서비스였습니다. 

이 업체들과 소송전을 벌이던 방송국이나 영화사들은 웹하드를 완전히 근절하는데 실패했습니다. 

그러자 정부에서 2012년부터 ‘웹하드 양성화’라는 방법을 선택하게 됩니다. 


<내려받기 할 것도 없고… 할 필요도 없고, 쪼그라드는 웹하드, 2016. 2.23, 서울경제>

[2010년 까지만 해도 웹하드는 개봉 전 영화, 방영을 마친 후 10분 만에 올라오는 TV 드라마 등 온갖 불법 콘텐츠의 '보고'였다. '야동' 1만4,000편을 살포했다가 2006년 경찰에 붙잡힌 일명 '김본좌'가 활동할 정도로 웹하드는 음란물 유통망이기도 했다. 보다 못한 정부는 2012년 5월부터 등록 사업자만 웹하드 서비스를 할 수 있는 등록제를 시행해 웹하드를 양성화하기 시작했다.] 


즉, 서비스를 불법이라고 규정할 때보다 양성화시키자 원치 않는 유통도 줄이고, 수익도 얻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거둔 거죠. 

이런 ‘불법 콘텐츠 양성화’의 좋은 사례는 유튜브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유튜브를 통해 유통되는 방송사 콘텐츠죠.



<KBS, 유튜브 콘텐츠 공급 시작 - 지상파 3사 모두 유튜브에, 2012-02-20, 전자신문>

[MBC·SBS에 이어 KBS까지 지상파 콘텐츠를 유튜브에 공급한다. 지상파 3사 콘텐츠를 모두 유튜브에서 볼 수 있게 됐다.]


지금은 유튜브에서 방송 콘텐츠를 보는 게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2012년 전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던 겁니다. 2012년에 구글과 KBS를 비롯한 지상파 방송사들이 계약을 체결하면서 ‘양성화’가 이뤄진 거죠. 

그 전까지는 유튜브에 업로드되는 방송 콘텐츠는 모두 불법이었고, 각 방송사 법무팀은 불법 콘텐츠를 단속하기 위해 소송을 거느라 바빴죠. 


아주 큰 수익은 아니겠지만 이전의 불법으로 유통되던 콘텐츠에서 한 푼의 수익도 얻지 못하던 시절에 비하면 훨씬 나은 선택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런 ‘콘텐츠 양성화’ 원리는 오늘날 불법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토렌트나 중국 게임 사설 서버, 클라우드 서비스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을 겁니다. 

특히 최근 온라인 게임사의 경우 불법 사설 서버의 ‘양성화’를 시도하기 시작한 바도 있죠.


<위메이드, 비수권서버 양성화 첫 단추 뀄다, 2017. 8.28., 동아일보>

[위메이드는 이번 비수권서버 양성화를 시작으로 정품 수권을 받기를 희망하는 게임사들에게 합법적으로 사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전기 정품 연맹'을 확장한다.]


요컨대 저작권 침해 단속과 함께 정식으로 콘텐츠 유통을 할 기회를 제공하는 양성화 전략을 쓰기 시작한 겁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사례는 주로 규모가 있는 콘텐츠 기업들이 쓴 방식입니다.

불법 업자들이나 해외 인터넷 기업과 협상이 가능하고 정부 정책을 로비를 통해 움직일 수도 있기 때문에 가능한 점이 있죠.  


하지만 앞으로는 개인 창작자도 이러한 ‘양성화 방안’이 가능한 시대가 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최근 저작권위원회에서 만든 저작권보호원의 경우 그런 업무를 처리하게 될 가능성이 있죠. 


약간 시각을 바꾸면 창작자도 개인으로 움직이기보다 에이전시 회사와 같은 매니지먼트 기업에 소속되고, 에이전시 기업을 통해 콘텐츠 회사나 불법 업자들과 협상을 하는 방안도 구상해볼 수 있을 겁니다. 

이미 일부 작가 에이전시 기업들은 그런 사업 전략을 구상하기도 하는 모양이더라구요.

 

어쨌든 창작자에게 중요한 것은 지속적으로 창작을 할 수 있는 자원 확보와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겁니다. 저작권 침해를 한 ‘범죄자들을 용서할 수 없다’는 식으로 고소, 고발을 해도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 경우는 많죠. 


그럴 때 ‘불법 콘텐츠 양성화’는 협상과 조정을 통해 다다를 수 있는 효과적인 전략 중 하나입니다. 


소송은 언제나 마지막 수단임을 잊지 마세요.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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