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신 Dec 27. 2017

'영웅문', '은영전', 그리고 '대망'의 공통점

번역물, 어떤 권리가 있을까?





영웅문, 은하영웅전설, 대망.

유명한 해외 무협과 SF, 그리고 대하역사소설입니다.      


영웅문은 홍콩 출신으로 중국에서 ‘신필’로 불리는 김용의 출세작으로 한국에서는 그 중 3부인 의천도룡기가 가장 유명하죠. 

지금도 중국에서는 매년 2부인 신조협려가 몇 년 마다 한 번씩 드라마로 리메이크 되고 있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알리바바의 창업주인 마윈이 애독자라 화제가 된 적도 있어요. 마윈은 아예 저택 한 쪽에 영웅문에 나오는 황약사의 ‘도화도’를 이름 붙여놨다고 하더군요.   



은하영웅전설은 일본에서 2천만부가 팔렸다는 스페이스 오페라 소설로 민주주의와 전제주의를 대결시킨 소설입니다. 

소싯적에 이 소설을 읽으며 ‘얀 웬리’와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중 누가 더 뛰어난 전략가인지 논쟁한 적도 있었죠.   

대망(원제 : 도쿠가와 이에야스)은 이 두 소설보다 약간 앞세대의 유명 해외 소설입니다. 1950년부터 쓰여진 소설로 한국에는 1976년에 소개되었습니다. 

일본 전국시대 삼걸, 노부나가와 히데요시, 이에야스가 일본을 통일하기까지 정략, 전략, 모략을 펼치는 이야기입니다. 

한국인 입장에서는 히데요시 때문에 불편한 점이 있지만 임진왜란 이야기는 당연하게도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이 3개의 작품들은 모두 한국에서 맞이하게 된 공통점이 있습니다.

유명하다? 많이 팔렸다? 물론 그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진짜 정답은 모두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무단 번역해 한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다는 겁니다.     



가장 최근에 보도된 ‘대망’의 경우입니다.

사실 대망이 가장 최근의 기소가 되어 화제가 되었을 뿐, 

위 세 소설은 모두 처음에는 무단번역되었습니다.


위 작품들만이 아니죠. 

원래 우리나라는 1987년 이전까지는 해외 콘텐츠의 저작권을 보호해주지 않았어요. 

하루키의 <기사단장 죽이기>가 수십 억의 인세를 한국에서 받아가는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죠?     


문제는 위 3작품 모두 홍콩과 일본에서 1987년 이전에 발간되었던 작품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1995년에 TRIPs라는 새로운 국제 저작권 협정이 발효되어 법이 바뀔 때까지는 저작권을 보호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영웅문도, 은하영웅전설도, 대망도 모두 무단번역되었지만 불법 번역은 아니었던 시절이 있었죠.

지금은 법이 모두 바뀌어서 그렇지 않습니다.


다만 1987년 이전에 이미 번역된 것들은 일종의 공소시효처럼 권리 안정을 위해 여전히 발간할 수 있게 해주고 있죠.     

이 작품들이 사실 명작이라도 베스트셀러가 아니라면 콘텐츠 시장에서는 문제가 안 되죠.


하지만 무단번역의 와중에도 이 3작품들은 모두 1백만부가 넘게 팔려나간 공전의 히트작이었습니다.


시대가 흘러 2000년대 이후 출판시장은 불황을 맞이합니다. 이를 타개하는 방법으로 해외 소설 번역붐이 일었는데, 그때 이 3작품에 대해서도 정식 번역 계약이 체결되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번역에도 저작권이 발생합니다.

‘번역저작권’이라는 거죠.      


원저작권자의 허락이 있어야 저작물을 만들 수 있는 권리를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이라고 하는데, 번역저작권도 그 중 하나입니다.


처음에 원저작권자와 계약을 어떻게 하느냐에 다르긴 하지만, 

번역저작권자도 엄연히 저작권자이기 때문에 저작권을 모두 행사할 수 있죠.     

그래서 국내 저작물과 달리 해외 저작물의 경우,

출판사가 출판계약으로 받아낸 국내 출판권에 번역저작권까지 가지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번역자에게 저작재산권을 사들이는 거죠.     


그 결과 위 뉴스와 같은 상황이 발생한 겁니다.     

정식 출판계약을 맺고 번역저작권을 가진 출판사와 1987년 이전에 무단번역(본인 주장에 따르면 원작 작가에게 허락을 받고 번역)한 출판사 사이에 공방이 벌어진거죠.     


비공식적인 통계지만 무단번역판 ‘대망’은 약 2천만부쯤 팔렸을 거라는 추정도 있습니다.

정식번역판도 이래저래 수년에 걸쳐 100만부를 넘게 팔았을 겁니다.

물론 ‘영웅문’ 정식 번역판, ‘은하영웅전설’ 정식 번역판도 수십만 부가 팔렸다고 하죠.     

어쨌든 당장은 이 케이스는 검찰이 기소를 했을 뿐, 

정식으로 판결이 나온 것은 아닙니다.

앞으로 어떤 판결이 나올지 두고 볼 일이죠.     


출판산업은 오늘날 사양 산업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뛰어난 해외 콘텐츠 하나를 번역 소개해 기사회생하거나 도약의 기회를 맞이하는 출판사도 얼마든지 있죠.


<해리포터>와 문학수첩과 같은 사례도 있구요(국내 1,453만부 판매. 2017. 5 기준).


다만 그럴 때 ‘저작권’ 문제는 항상 사전에 확인하고 깔끔하게 처리하는 게 좋습니다.      

소송전은 항상 최후의 수단임을 명심하세요.  <마침>

이전 09화 해외로 내 콘텐츠가 넘어갔어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