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원포인트 꽁트
마법사6
그 후로 너는 내게 허물없이 안겼어.
폭신폭신한 쿠션을 껴안는 것 같아 기분이 묘했지.
여자들의 특징 중 하나는 친밀감을 스킨십으로 표시한다는 거야.
사람마다 제각각이긴 하지만 손잡기나 포옹 정도는 친구와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경우가 많아.
드물긴 하지만 입맞춤도 단지 친근함의 표시로 생각하는 여자들도 있지.
너도 그 중 하나일 거라고 단순하게 생각했어.
특히 ‘뽀뽀’는 자주 해도 ‘키스’는 싫다고 도망가 버리는 모습이 내 생각을 확인시켰지.
묘하게도 너는 나와 만나면서도 이별 노래를 좋아했어.
한 번은 노래방에서 이별노래를 부르면서도 내 품에 안겨든 적도 있지.
너는 간단히 답했어.
“난 단조가 좋아. 특히 라 단조.”
단조는 보통 슬픈 노래에 많이 쓰여.
클래식으로 치면 인기가 없어 항상 가난하게 살았던 프랑스 제3공화정 시기의 음악가 드 뷔시와 비슷해.
너는 침울하면서도 애조띤 멜로디에 쉽게 반했어.
너의 웃음과는 대조적이었지.
어딘가 문제가 있었어.
아무리 둔감한 사람이라도 눈치 챌 수 있는 일이야.
하물며 나는 마법사거든.
가을비가 장대처럼 쏟아지던 날 마침내 문제가 표면으로 드러났어.
그 날 너는 처음으로 내게 놀러왔지.
그동안 내가 찾아가거나 스터디에서 만나는 일은 있어도 네가 내게 찾아오는 일은 없었어.
집에서 시험을 그만 치고 결혼하라고 한다거나 다가오는 시험이 걱정된다는 상담이었어.
나는 주로 너의 이야기를 들었지.
여자들은 보통 고민을 나누지.
이야기를 같이 들어줄 사람, 공감해줄 사람을 원하지 주제넘게 해결해줄 사람을 찾지는 않아.
남자들은 보통 그 사실을 모르거나 알아도 참지 못하고 나서지만.
나는 선을 넘고 싶지 않았어.
너도 선을 넘고 싶지 않는 것처럼 보였거든.
고민을 털어놓던 너는 가만히 나를 보다 다시 기습했어.
“넌 참 잘 들어주는 것 같아. 고마워.”
입술이 묘하게 달면서 씁쓸했지.
오후에 장대비가 쏟아졌어.
비를 헤치며 우리는 도서관으로 향했지.
막바지로 접어든 스터디를 위해 자료를 찾아야 했잖아.
그런데 도서관에서 거닐다 네가 문득 멈춰섰어.
너는 어딘가를 깊이 응시했지.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너의 눈에는 그렇지 않은 것처럼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어.
넌 뭘 보고 있었을까?
“혼자 있고 싶어.”
나는 그 자리를 떠났어.
내가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마침내 발견한 느낌이었어.
장대비가 쏟아지는 밤거리를 거닐며 나는 도서관을 천천히 돌았어.
너의 선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반 바퀴쯤 돌았을 때였어.
네가 도서관 밖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어.
그런데 혼자가 아니었어.
어떤 남자와 함께 거닐었지.
그럴 수도 있어.
하지만 문제는 그 남자가 반쯤 투명하게 비쳤다는 점이야.
주위 사람들은 그 남자가 존재하는지도 모른 체 지나쳐 버렸어.
환영이었어.
너는 단순히 단 하나를 찾는 보통 사람이 아니야.
생각하는 바를 현실에 나타낼 수 있는 마법적인 자질을 가지고 있는 여자야.
비록 보통 사람의 눈에 보일 정도로 마법을 구사하지는 못하지만 나와 같은 마법사라면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어.
하지만 아무리 자질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아무나 환영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냐.
아마도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머리가 닳아 없어질 정도로 몰두했던 남자일 거야.
여자가 그토록 몰두할 남자라면 단 한 가지 경우 밖에 생각할 수 없지.
예전의 애인이야.
비 속에서 도서관을 한 바퀴 돌아 다시 마주쳤을 때 나는 물었어.
“아까 그 남자는 누구야?”
“누구? 나 만난 사람 없는데.”
“아니, 그러니까……, 네가 생각하던 사람.”
너는 가만히 있다 답했지.
“예전 남친.”
그게 선이었을까.
“잊지 못하겠어. 자꾸 생각나 버려. 참 나쁜 놈이고 그래서 헤어졌는데도……. 그렇게 좋아했던 거 처음이었거든.”
나는 물었어.
“왜 헤어졌어?”
단순히 나쁜 사람이라서 헤어졌다는 것은 이유가 되지 않아.
여자는 그런 이유로 남자와 헤어지지 않는 법이거든.
괜히 나쁜 남자가 인기 있는 게 아니고 나쁜 남자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자들이 부지기수인 게 아니야.
여자가 남자를 버릴 때는 반드시 그럴 만한 다른 이유가 있어.
“이상하게 내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어.”
당연한 일이야.
너는 ‘단 하나’를 원해. 네가 알든 모르든 간에.
넌 ‘단 하나’를 얻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충족하지 못해.
그 남자는 네가 원하던 ‘단 하나’가 아니었을 거야.
너는 나를 처연히 보다 말했지.
“친구로 지내자.”
이상한 이야기였어. 지금까지는 친구가 아니었다는 걸까.
하지만 나는 괴로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