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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신 Oct 02. 2018

극장

에세이-데이트랜드

언젠가 극장 앞에서 보았던 풍경이 있다.


연극을 보러 가던 하루의 일이다.

대학로 앞은 예술가들이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펼쳐낸 조형물과 공연으로 가득했다.

그곳에 자리한 수많은 극장 앞은 관객에게 선보이기 위한 갖가지 포스터로 어지러웠다.


벽돌로 된 극장 앞에서 한 사람이 판토마임을 하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허공 위로 마치 실체가 존재하는 것처럼 행동하며 동작을 그려낸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다.


아주 심상한 행위 예술의 한 풍경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훨씬 더 뛰어난 기예를 저 극장 안으로 들어가면 볼 수 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보이지 않고 존재하지 않으며 허구의 무언가를 빈 공간에 표현하기 위해 애쓰는 ‘배우’의 열의만은 그 찰나에 실존하고 있었다.


세상은 신이 꾸는 ‘꿈’에 불과하다고 옛 인도 신화에서는 말한다.

극장은 만들어진 이야기를 가짜 역할을 맡은 이들이 이 모든 것이 가짜임을 아는 관객들과 함께 펼쳐내는 실존하지 않는 것을 보여주는 무대다.

허구의 시공간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보게 된 실존하는 열망을 보며 형언하기 어려운 감상에 사로잡혔다.


이 세상이 실로 극장과 같다면 우리가 지나치는 시간은 모두 의미가 있을까.

신은 그렇다면 사람들을 바라보는 관객과 같은 존재는 아닐까.

혹시나 눈을 뜨면 현실이라 믿었던 모든 것들이 한낱 꿈으로 사라지지 않을까.


그럼에도 배우가 그 순간 발현한 열의와 열망과 열기는 진짜다.

우리들의 인생에서 적어도 진심만은 실존할 것이다.


생의 질곡을 맞이한 어느 날, 극장 앞에서 본 풍경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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