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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휘 May 24. 2018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
멍 좀 때리게 내버려 둬요

Sleep, memory, neuroscience and  DMN


“딸! 공부 안 하고 뭐해?” 

“내일이 기말고사라서 잠시 멍 좀 때리고 있겠습니다” 



(그림 출처 : 구글)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에 대해 뇌과학 연구자들의 관심이 뜨겁습니다.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 Default Mode Network(이하 DMN)가 대체 뭐길래? 그전에 잠시, 수많은 연구들을 통해 이제는 거의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고 할 수 있는 ‘수면과 기억’에 관한 현대 인지신경과학의 연구결과들을 잠시 살펴봐야겠습니다. 


    수면과 기억 sleep and memory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 즉 ‘수면이 기억을 향상한다는 사실’은 은 행동주의 심리학이 전성기를 이루던 1960-70년대부터 이미 밝혀진 바 있습니다. 초기의 연구들은 주로 rapid-eye-movement수면(이하 렘수면)에 집중되어 있었지만 slow-wave sleep(이하 서파수면, 흔히 일상적인 언어로는 ‘숙면’이라고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의 숨겨진, 그러나 매우 중요한 역할들이 드러나면서 이제는 렘수면과 서파수면이 두뇌의 기억 메커니즘에 서로 다른 기능을 수행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두뇌의 기억 처리 과정은 보통 3가지로 나눕니다. (1) 입력/부호화 encoding, (2) 응고화 consolidation (3) 인출 retrieval, 그중에서 수면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기억의 응고화 과정입니다. 기억 처리 과정을 뉴런 수준에서 접근해본다면, 기억이 형성되고 응고화되기 위해서는 (1) 뉴런들 간의 시냅스 연결이 강화 change in the strength of synaptic connections 되고 (2) 새로운 단백질이 형성되는 과정이 핵심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억의 응고 consolidation과정을 조금 더 들여다봅니다.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온 정보는 단기 기억/작업기억 short-term memory를 이룹니다. 그리고 이런 기억의 1차 처리 과정에 해마 hippocampus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형성된 단기 기억이 장기 기억 long-term memory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바로 응고화 consolidation(‘굳힘’이라고도 번역됩니다)의 단계이고, 그러한 응고화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다름 아닌 ‘수면’이라는 사실입니다. (아직은 다소 상반된 실험 결과들로 인한 논란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서파수면과 렘수면의 기억 처리 과정에서 담당하는 역할의 차이에 대해 독일의 유명한 뇌과학자 한나 모니어는 아래(H. Monyer, M. Gessmann. 2015)와 같이 정리합니다.  


“숙면 중의 꿈은 낮에 학습하거나 경험한 것을 굳히는데 기여하고, 이어지는 렘꿈은 그렇게 굳게 학습한 바를 이런저런 형태로 시험하고 확장하는 데 기여한다”  

“첫 단계인 숙면에서는 일관되며 우리가 느끼기에 보유할 가치가 있는 데이터와 사건 계열들이 머릿속에 보존된다. 즉 전문용어를 쓰면 기억 내용의 굳힘이 이루어진다. 이어지는 둘째 단계, 곧 렘수면에서 이루어지는 일은 데이터의 검토와 보존이 아니라 평가와 해석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앞서도 지적한 바 대로 다소 논란의 여지를 남겨두고)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실 논란의 여지는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조금만 덧붙이자면 뉴런 레벨 수준에서 기억의 강화 과정은 시냅스 연결 강화로 충분하지만, 기억의 응고화 과정에서는 단백질 합성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연구결과 등이 발표되면서, 아래의 정리는 이제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수면싸이클과 기억



“아, 쫌! 그래서 대체 디폴트 뭐시기, 멍 때리는 거! 그거 이야기는 언제 나오냐고요???” 


    자 이제부터 시작합니다!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 DMN가 대체 뭐냐고요? 우리의 두뇌는 각기 다른 기능들을 담당하는 여러 영역들이 매우 복잡하게 연결되어 작동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의식적으로 뭔가를 수행하기 위해 애를 쓰는 순간, 예를 들어 제가 지금 이렇게 지루한 글을 쓰고 있거나 이런 괴로운 글을 읽느라 머리를 쥐어짜고 있을 때와는 달리 “아무것도 안 하는 순간, 즉 멍 때리거나 공상을 하거나  이런저런 잡생각에 빠져 있을 때” 우리의 두뇌는 의식적인 순간들과 다른 연결망을 형성하게 됩니다. 조금 다르게 표현하면, 우리의 두뇌가 외부의 감각과 정보에 집중하고 연결된 상태가 아니라, 우리 두뇌의 활동이 우리 내부로 향하고 있을 때, 바로 그러한 시간들에, 우리 두뇌의 여러 부분들이 어떻게 연결을 이루고 있는가를 가리킨다고 할 수도 있을 듯합니다.  DMN는 언제 작동하는가? (1)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self-referential operations, (2) 혹은 주변의 다른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에도, (3) 명상 mindfullness, 몽상 daydreaming, 잡생각 unconstrained thinking에 흘러 다니고 있을 때 mind-wandering 등 우리의 정신이 내부의 세계 internal mentation를 향하고 있는 순간, 물론 (4) 멍~~ 아무 생각 없을 때도! (I. Shapira-Lichter et al. 2013., (Wikipedia. 2018. 외) 왜 그런데 이런 상태가 디폴트, 즉 기본 상태일까요? 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우리의 두뇌 brain는 대략 1300-1400그램, 체중의 2%에 불과하지만, 우리 신체 에너지의 20%를 소비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많은 열이 또 발생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두뇌가 쉬지 않고 계속 일을 하고 있다면? 아마도 우리는 엄청나게 많은 에너지를(쉬지 않고 먹어야 한다는 이야기죠?) 공급해야 하고, 또 우리의 두뇌는 말 그대로 과열돼서 녹아버릴지도 모릅니다. 진화는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쉬는(=멍때리는) 상태를 기본(=디폴트 모드)으로 만들어놓은 것이지요. 그리고 또한 이러한 DMN상태에서는 해마와 편도체도 잠시 활동을 쉬게 됩니다. 무슨 이야기냐고요? 우리의 감정 인식과 감정 기억을 좌지우지하는 ‘불안’과 ‘우울함’ 같은 감정들도 잠시 가라앉게 된다는 사실이죠.  



(그림 출처 : 구글)



 

    그런데, 현대 인지 신경과학의 놀라운 발견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마치 우리가 잠들었을 때와 비슷하게 이러한 DMN상태에서도  기억의 강화와 응고과정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수면 과정 중에서 이루어지는 기억 처리 과정과 비슷한 활동이 DMN 상태에서도 이루어진다는 놀라운 사실! 워커와 로버트슨(M. P. Walkerd, E. M. Robertson. 2016)은 휴식을 취하고 있는 두뇌에서 어떻게 기억 처리 과정이 이루어지는 지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감각기관을 통해 외부에서 들어오는 수많은 정보를 처리하는데도 힘들어 죽겠는데 뇌가 어떻게 동시에 ‘기억’이라는 많은 에너지가 소비되는 과정을 동시에 처리하겠습니까? 뇌는 틈을 노립니다. 즉 우리가 의식적인 활동을 잠시 멈추고 있을 때, 즉 잠을 자거나 DMN 상태에 있을 때 바로 그때 기억을 강화하고 굳히는 일을 하도록 진화한 것입니다. 뇌가 DMN상태로 복귀하지 못한다면? 예를 들어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환자나 자폐스펙트럼 증후군이 있는 경우, DMN상태에 방해를 받도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그러니, 다음번에 중학생 아들(딸)의 방문을 열었을 때, 벽을 보며 공상에 빠져 있거나 멍을 때리고 있다면, "아 기억의 강화와 굳힘 작업을 하고 있구나" 생각하시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방문을 닫고 나오시면 되겠습니다. 아, 이 짧은 글을 쓰는데도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 것 같습니다. 잠시 DMN상태로 좀 빠져있다 나와야겠습니다. 




<참고 문헌>                             

Bryan Kolb, Ian Q. Whishaw. (2015). Fundamentals of Human Neuropsychology. 7th Edition.Worth Publishers. 김제중, 한상훈, 김명선, 진영선 역. 신경심리학의 기초 (7판) 2018. 시그마프레스


Hannah Monyer, Martin Gessmann. (2015) Das geniale Gedchtnis: Wie das Gehirn aus der Vergangenheit unsere Zukunft macht. Albrecht Knaus Verlag. 전대호역. 기억은 미래를 향한다 : 뇌과학과 철학으로 보는 기억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 (2017). 문예출판사.                  


Jamie Ward. (2015) The Student's Guide to Cognitive Neuroscience. 3rd Edition. Psychology Press 이동훈, 김학진역. 인지신경과학입문(3판). (2017). 시그마프레스.


B. Rasch, J. Born. (2013) About Sleep's Role in Memory. Physiological Reviews. 2013 Apr; 93(2); 681-766


I. Shapira-Lichter et al. (2013). Portraying the unique contribution of the default mode network to internally driven mnemonic processes., Psychological and Cognitive Neuroscience. Vol. 110. no. 13: 4950-4955.


L. Huo et al. (2018). The Default Mode Network Supports Episodic Memory in Cognitively Unimpaired Elderly Individuals: Different Contributions to Immediate Recall and Delayed Recall. Frontiers in Aging Neruoscience 2018 Jar., Vol 10., Article 6.            


M. P Walker, E.M. Robertson. (2016) Memory Processing: Ripples in the Resting Brain., Current iology 26, 2016 Mar.; 239-241


Wikipedia contributors. (2018, May 15). Default mode network. In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Retrieved 05:40, May 21, 2018, from https://en.wikipedia.org/w/index.php?title=Default_mode_network&oldid=841428852


Wikipedia contributors. (2018, May 16). Sleep and memory. In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Retrieved 05:40, May 21, 2018, from https://en.wikipedia.org/w/index.php?title=Sleep_and_memory&oldid=841525019


Wikipedia contributors. (2018, May 15). Memory consolidation. In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Retrieved 05:55, May 21, 2018, from https://en.wikipedia.org/w/index.php?title=Memory_consolidation&oldid=841393798


https://www.washingtonpost.com/news/speaking-of-science/wp/2017/08/08/your-brain-can-form-new-memories-while-you-are-asleep-neuroscientists-show/?utm_term=.4d8e49b60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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