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문을 대신해서 : 왜 글을 쓰고 싶은 거야? ]
술에 거나하게 취한 밤이었다. CF 프로덕션 사무실이었으니 이십 대의 마지막 순간이었거나 막 서른 즈음이었거나. 너무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정확할 리 없다. 그래도 확실히 생각이 나는 건 술에 취해 만난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속 쿠바의 모습에 내 마음이 흔들렸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쿠바는 나의 버킷 리스트에 올라갔다. 그리고 그때로부터 10여 년이 흐른 2010년 1월 나는 쿠바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쿠바의 수도 아바나(Havana)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저 음악이 너무 좋아서, 영화 속 멋진 풍광에 반해서 시작한 '쿠바 앓이'는 체 게바라를 만나고, 쿠바 혁명의 역사를 알게 되면서 마른 장작처럼 활활 타올랐다. 쿠바와 관련된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어 내려갔다. 그중에서도 유재현 선생이 쓴 책은 쿠바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느린 희망 : 지속 가능한 사회를 향해 인간의 걸음으로 천. 천. 히>. 책 제목이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고 있지 않은가. 국내에 나온 책들을 다 찾아 읽고도 성이 차지 않아 아마존을 뒤졌다. 쿠바의 정치, 경제, 사회, 역사와 관련된 수 십 권의 책을 사다 놓고 밑줄을 그어가며 공부했다.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이 만든 체 게바라의 전기 영화 <Che>를 비롯해 쿠바에 관련된 다큐멘터리, 영화는 모두 찾아서 보고 또 보고 복습까지 했다. 이제 진짜 쿠바로 여행을 떠나자고 마음을 먹고 다시 약 1년여의 시간 동안 여행 계획을 짰다. 스페인어 사전까지 옆에 가져다 놓고 까사(민박)도 예약하고 미리 버스표까지 다 끊었다. 10년을 준비하고 1년을 계획한 여행이었다.
쿠바에 대해 공부하기 위해 이런저런 책들을 보다 보니 여행 관련 책도 꽤나 읽게 됐다. 뭐? 여행 작가라는 직업이 있다고? 잘 쓰지는 못해도 글 쓰는 걸 좋아하고, 마침 사진 찍는 것도 좋아하지 않나? 여행을 다니며 사진을 찍고 글을 써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다시 여행을 갈 수 있다면? 아니 세상이 이렇게 멋진 직업이 있다는 걸 왜 미처 알지 못했을까? 타임머신을 타고 스무 살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난 꼭 여행 작가가 되리라, 술에 취한 밤마다 노래를 불렀다.
2주가 넘는 여행 기간 동안 쿠바 구석구석을 뒤지며 2500장이 넘는 사진을 찍었다. 카메라 장비만 15킬로가 넘는 배낭을 메고 카리브해의 태양이 이글거리는 말레콘(Malecon, 쿠바 아바나 해변의 제방)을 걷고 또 걸었다. 50년은 족히 넘은 멋진 클래식 카들이 거리를 누비고, 삶이 그리 넉넉해 보이진 않아도 춤과 노래, 환한 미소가 곁을 떠나지 않는 사람들 덕분에 쿠바는 카메라를 든 사람들에게는 천국과도 같은 곳이었다. 숙소에 돌아와 잠자리에 들기 전에도, 버스를 타고 이동을 하거나 카페에서 레모네이드 한잔으로 갈증을 달랠 때에도 틈이 날 때마다 여행의 단상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꼼꼼히 메모도 했다.
자, 이제 책을 쓰는 건 시간문제다, 사진과 메모들을 정리해 글을 쓰기만 하면 된다고 믿었다. 꿈은 늘 너무 야무진 모양새로 우리를 현혹하고 현실은 그런 우리를 비웃는다. 2주가 넘게 회사를 비웠으니 밀린 일은 산더미였다. 바빠도 너무 바빴다. 평소 운동과는 담을 쌓고 지낸 주제에 무거운 카메라 가방을 메고 하루 온종일 쿠바의 구석구석을 걸어 다닌 탓일까 허리 디스크까지 도졌다. 쿠바에서 찍어온 사진을 보고 아는 분이 사진 전시회도 열어 줬는데 디스크 수술을 한다고 병원에 입원을 하는 통에 막상 한 번도 가보지도 못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고 카리브해의 태양 아래 강렬하게 빛나던 쿠바의 풍광들은 점점 흐려져 갔다. 정신없이 1년 여의 시간이 흐른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아, 쿠바 여행기는 물 건너갔군.
한번 잠들면 중간에 잘 깨지 않고 푹 자는 편이니 수면의 질이 떨어진다고 할 수는 없다. 문제는 잠이 들기까지다. 잠자리에 들면 생각이 많아진다.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져서 한두 시간은 뒤척여야 겨우 잠에 든다. 이게 아무리 피곤한 날도, 심지어 술을 퍼부은 날 밤도 마찬가지다. 대략 스무 살 이후부터 아직까지 그렇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전략은 책이다. 그것도 아주 어렵고 머리 아픈 책. 보통 두어 시간은 책을 붙들고 있어야 잠이 든다. 그래야 푹 잠을 잘 수 있다. 재미난 소설은 오히려 역효과를 낳아서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까지 읽어 내려가다 밤을 세기 일수라 웬만하면 펼치지 않는다. 그렇게 철학과 양자물리학의 친구가 됐다.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으로부터 레비 스트로스의 <슬픈 열대>까지 두꺼운 책일수록 좋았다.
먹고사는 일에 휩쓸려 정신없이 살다 보니 어느새 마흔의 문턱에 서 있었다. 같은 나이의 공자는 세상만사에 미혹((迷惑)되지 않았다 하는데 나는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공부나 좀 더 하자 싶어 대학원에 들어갔다. 회사 일을 챙기며 대학원 공부를 한다는 게 결코 녹녹지 않았다. 졸업 논문이 닥치니 눈 앞이 캄캄했다. 뭘 쓰지? 영상전공이니 영화를 불러와야겠다. 아 그렇지, 영화 <매트릭스>가 있었다. 내게 <매트릭스>만큼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 영화가 없지 않은가. 마침 그 무렵 밤마다 잠자리의 벗이 돼주던 슬라보예 지젝(Slavoj Žižek)이 <매트릭스>에 대해 쓴 글을 읽고 나니 생각이 좁혀졌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How the desire of the subject returns to fantasy? - Analysis of The Matrix and Black Swan with Lacanian Psychoanalytical Concepts>란 아주 길고 이상한 제목의 논문이다. '주체의 욕망은 어떻게 환상으로 돌아가는가?'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건지 나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 덕분에 지젝이 낸 모든 책은 남김없이 읽었다. 지젝이 인도하는 길을 따라가다가 프랑스의 정신분석가 자크 라캉(Jacques Lacan)과 독일의 철학자 헤겔을 만났다. 그리고 그 종착역에는 프로이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프로이트에 대한 책들을 읽다가 프로이트가 쓴 글을 읽게 됐다. '열린 책들'에서 나온 <프로이트 전집>이 한 권 두 권 쌓여가기 시작했다. <꿈의 해석>을 읽다가 잠든 밤에는 평소보다 꿈을 더 많이 꿨던 것도 같다. 공부를 더해보자. 홍대 대학원을 다니며 한번 데었던 경험이 있던 터라 이번엔 사이버대학교를 골랐다. 그렇게 두 번째 대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심리학 공부는 재밌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학교에서 배우는 심리학으로는 뭔가 채워지지 않는 기분이었다. 마침 뇌과학이 붐을 이뤘다. 심리학이 마음이 작동하는 원리를 보여준다면, 신경 과학은 그 마음이 우리 뇌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알려주었다. 미국의 대표적인 과학 잡지 <Scientific American>과 영국을 대표하는 <BBC Science Focus>를 정기 구독하기 시작했고, 심리학이나 뇌과학과 관련된 책들이라면 눈에 띄는 대로 모조리 읽어나갔다. 아마존을 통해 인지 신경과학(cognitive neurosicence), 생물심리학(biopsychology), 신경심리학(neuropsychology) 교과서들도 찾아 읽기 시작했다.
대학교 동기가 평택대학교의 광고홍보학과 교수다. 그 친구가 소개해준 덕분에 학생들을 가르친 지 벌써 5년째다. 광고밥을 먹은 지 25년이 넘어간다. 지난 19년 동안은 광고 오디오 피디(Audio PD)를 하며 광고 음악을 만들고 선곡을 하고 성우나 CF 모델의 목소리 연기 연출을 해왔지만 출발은 광고 대행사 PD였다. 프로덕션 기획실장, 아주 잠깐 CF 감독까지 그래도 이것저것 광고판을 훑고 다닌 셈이니 학생들에게 <광고 제작 실습> 과목을 가르치기엔 그런대로 자격이 되는 셈이다.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 욕심이 났다. 광고의 본질은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게 아닌가? 그리고 심리학과 뇌과학은 사람들의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이고. 그렇다면 심리학과 뇌과학으로 광고와 마케팅 이야기를 풀어가는 책을 쓰면 어떨까? 마침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 분야에 대해서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던 중이니 더없이 적절하지 않을까?
그래서 2019년 새해 벽두에 내 원대한 계획은 "올 해가 끝나기 전에 책을 쓰자!"였다. 자료를 준비하고 책과 논문을 읽어 내려가며 조금씩 빈 화면을 채워나갔다. 프리랜서로 일하다 보니 일이 들쑥날쑥한다. 며칠 맘먹고 글을 써 내려가다 갑자기 생긴 두어 건의 일을 마무리하고 보름 후쯤 다시 책상에 앉으면 2주 전에 내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 글을 쓰고 있었는지 가물가물하다. 마무리가 안된다. 그래, 누가 뭐라 해도 결국 다 핑계다. 게으름이 발목을 잡은 거지. 광고 밥을 오래 먹다 보니 데드라인이 없고 쪼는 사람이 없으면 일을 안 한다. 나름 책의 내용을 정리해 목차를 구성하고 집필을 위한 시간표도 짰지만 자꾸 더뎌지는 글쓰기 속도에 오히려 조바심이 났다. 안 되겠다 싶어 고민하다 브런치가 떠올랐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뭐든 조금씩이라도 마무리해서 세상에 내놓자. 거의 1년 동안 개업휴점 상태로 파리만 날리던 브런치 책방의 셔터를 다시 올리고 돌아와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 광고 오디오 피디를 하다 보니 안 만나본 연예인이 없다. 마이크 앞에 선 그들은 헤드폰을 통해 나와 소통한다. 그렇게 만난 수많은 연예인, 스포츠 스타를 모두 통틀어 제일 기억에 남는 이가 노홍철이다. 무한도전으로 한참 잘 나갈 때였으니 광고도 많이 찍었고 녹음실에서 여러 번 만났다. "형~" 그의 첫마디는 형이었다. 응? 겨우 두 번째 만났을 뿐인데? 기억을 해주니 반갑다는 생각도 들고 뭐 내가 나이가 더 들어 보이긴 하니까 싶기도 했다. 아무리 그래도 형이라! 암튼 그는 한 10년은 친하게 알고 지낸 동네 형처럼 편하게 말을 하더라. "형~, 내가 노래는 잘 못하잖아. 이거 언제 들어가는지 형이 좀 숫자를 세줘~~" 이런 넉살이 참 부러웠다. 난 말을 잘 못 놓는다. "응 그래 홍철아~"라고 편하게 말해도 됐을 텐데 "아, 네 홍철씨" 가 내 대답이었다. 10년을 알고 지낸 지인들과도 말을 잘 못 놓는 편이다. 존댓말이 편하다고 할까. 그래서 글을 쓸 때도 지금처럼 말을 놓으면 마음 한 구석이 편하지 않다. 그런데 높임말로 글을 쓰면 이게 또 뭔가 말이 꼬이는 느낌이다. 어미가 자꾸 길어져 불편하다. 지금 브런치북으로 묶어내는 글들은 그래서 말을 높이다가 놨다가 뒤죽박죽이다. 기존의 글들을 고쳐서 하나로 통일할까 고민도 해봤지만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조차 내 모습이지 싶어 조금 민망하지만 그냥 놔두기로 했다.
책 전체를 하나의 이야기라고 치면 일관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말투도 그렇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도 그렇고 하다 못해 전반적인 레이아웃이라도 통일감이 있어야 할 텐데 지금 엮어내는 브런치 북은 너무 난잡하다. 2018년 5월 처음 브런치를 시작해 두어 달 동안 몇 편을 올리고 다시 최근에야 글을 올리니 1년여의 공백만큼이나 한 편 한편이 너무 다 제각각이다. 청소도 못하고 옷가지와 살림살이가 너저분한 집으로 초대하는 기분이라 창피하다. 중국집 메뉴 중에 잡탕밥이 있다. 해산물과 청경채를 비롯한 각종 야채를 센 불에 볶다가 굴소스로 맛을 내고 전분물을 풀어 되직하게 해서 밥 위에 얹어 나온다. 단품 식사로는 나름 비싼 메뉴에 속하지만 잡탕밥이라는 이름 때문인지 그리 고급스러워 보이지도 않고 많은 사람들이 찾는 메뉴는 아니다. 브런치북을 엮어나가다 보니 이게 어딘가 잡탕밥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름 좋은 해산물과 신선한 야채가 듬뿍 들어가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재료가 이리저리 마구 섞이다 보니 불 품이 좀 없어졌다. 그래도 글 하나하나가 영양가 높고 든든한 한 끼 식사는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런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