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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휘 Nov 12. 2019

억지로 웃지 않아도 되는 세상, 조커

감정실금, 환각, 망상, 그리고 조현병

"나만 미쳐가는 걸 까요? 아니면 세상이 점점 미쳐가는 걸까요?"

"is it just me or is it getting crazy out there?"


영화의 도입부, 사회복지사와 면담을 나누던 중 주인공 아서 플렉이 던진 질문이다. 영화가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핵심적인 질문이라 할 수 있다. 영화의 번역가는 이 중요한 질문의 앞단을 과감히 잘라버린 채 "세상이 점점 미쳐가는 거 같아요"라고 번역해버렸다. 질문을 단정으로 바꿔버리면 관객에게 남겨진 고민의 여지가 사라져 버린다. 아서는 이 질문을 꺼내기 전에 한참 뜸을 들인다. 중요한 대사라는 의미다. 아서의 고민이 담겨있음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영화를 보낸 내내 관객에게 곱씹게 만들고 싶었던 질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아서 플렉이 미친놈이라서? 세상이 미쳐가고 있어서?? 외톨이 아서 플렉이 잔인한 살인마 조커로 변신해가는 과정, 이것은 개인의 문제인가? 사회의 문제인가?

 

미친놈이 나쁜 놈이 되는 이야기?

미친놈이 나쁜 놈이 되는 이야기? 영화에 숨겨진 수많은 상징과 사회 비판적 서사들은 '미친놈', 이 한 마디로 무너져버린다.  그래서, 이 영화는 안타깝게도 다음과 같은 비판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첫째, 정신 질환을 가지고 있는 사람(=미친놈)과 폭력성을 연결하는 편견을 조장한다는 가슴 아픈 지적을 반박하기 힘들다. 인사이더(insider)*를 비롯한 많은 해외 언론에서 이러한 문제점을 언급하고 있다. 한 가지 더. 영화는 망상, 즉 현실과 괴리된 아서가 꾸며낸 허구의 세계를 묘사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게다가 아서가 꾸며낸 허구의 세상과 실제 세계(그런데 이마저 영화라는 판타지 안에 존재하는 고담시가 아닌가)의 경계마저 모호하다. 그 경계가 모호해질수록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 의식도 흐려지는 것** 같다. 영화는 조커라는 최악의 악당(super villain)의 탄생의 이야기에 숨겨진 많은 문제들을 보여주고자 많은 공을 들이지만, 아서가 직면하고 있던 모든 어려움들이 망상(=정신 질환)이라는 늪에 빠져 버리는 안타까운 사태가 벌어질 위험이 매우 크다. "결국 이 모든 게 다 아서가 '미친놈'이라서? 아서의 망상 아니야?"


사실 영화 속 아서가 안고 있는 정신 질환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조차 의견이 상당히 엇갈린다. 영화를 통해 묘사되는 모습만을 가지고 아서의 정신 질환에 대해 정확한 진단을 내리는 것 자체가 무리가 있기는 하다. 예를 들어 정신과 의사이자 코넬 대학교의 임상 심리학 교수인 지브 코헨(Ziv Cohen) 박사는 조현병(schizophrenia)이나 양극성 장애(bipolar disorder)의 가능성을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아무래도 코헨 박사는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영화 속에서 아서는 명백하게 현실 검증 능력이 결여된 상태를 보이고 망상(delusion)을 드러낸다. 아서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싱글맘 소피와의 스토리가 아서의 머릿속에서만 벌어지는 사건, 즉 공상(delusion)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영화 <조커>의 감독 토드 필립스 자신도 최근의 인터뷰에서 영화 속에서 "아서는 소피를 결코 죽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밝히고 있다. 영화가 묘사하는 현실과 망상의 경계가 모호하긴 하나 영화 속에는 과거 소피와의 데이트 장면 등을 의도적으로 플래시백 하는 장치를 통해 아서의 망상이었음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영화를 통해 묘사되는 아서의 모습을 먼저 자세히 살펴보자.




감정실금(Pseudobulbar Affect, 이하 PBA) 

사실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 중 하나가 시도 때도 없이 터져 나오는 아서의 웃음이었다. 웃을 상황이 아닌데 한번 시작되면 끝날 줄 모르고 계속되는 아서의 웃음소리는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물론이고 영화를 보는 관객들까지 당황하게 만든다. 아서 플렉의 고통은 어쩌면 여기서부터 출발했는지도 모른다. 우리말로 '감정실금'이라고 이름 붙여진 Pseudobulbar Affect, PBA는 '적절하지 못한 순간에 통제가 안 되는 울음이나 웃음이 갑작스럽게 터져 나오는 증상(a condition characterized by episodes of sudden, uncontrollable and inappropriate episodes of crying or laughing)'을 특징으로 하는 신경 질환의 일종이라 한다. 치매나 루게릭병, 외상성 뇌손상(traumatic brain injury, TBI)을 가진 환자에게서 흔하게 나타난다고 하는데, 미국 국립 보건원(National Institute of Health, NIH)에 따르면 미국 안에서만 백만 명이 넘는 환자들이 감정실금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고 한다.


우리의 뇌는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감각과 함께 우리의 신체 상태를 계속 모니터링한다. 우리가 가지는 감정과 감정표현도 예외가 아니다. 이빨로 연필을 물고 억지 미소를 지어도 뇌는 지금 내가 행복하다고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진짜 즐겁고 행복해서 터져 나오는 웃음과 억지로 만들어낸 미소는 뇌에서 전혀 다른 경로를 지나간다. Scientific American Mind 2019년 9/10월호에 소개된 기사에 따르면 '진짜 웃음'은 뇌간(brain stem)과 변연계(limbic system)의 통제를 받지만, '가짜 미소'는 전전두엽의 자발적인 전 운동 영역(voluntary premotor areas of the preforntal cortex)으로부터 기인한다. 이 두 가지 경로는 달라도 한참 달라서 웃음을 억지로 참거나 반대로 억지로 웃음을 지으려 하면 안면 근육 마비(facial paralysis)까지 불러일으킬 수 있다. 심각한 분위기의 회의 석상에서 지난밤 TV에서 본 재미있는 장면이 문뜩 떠올랐다. 혼자 실실거렸다가는 회사 생활이 쉽지 않을게다. 참아라. 참아야 하느니라. 하필 대사까지 떠오른다. "아직도 나인이여? 나는 텐이여~" 주먹을 꼭 쥐고 참고 또 참다 보면 부르르 입가가 부르르 떨려올 것이다...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현재 느끼는 감정과 외부로 보이는 감정 표현이 계속 따로 놀면 뇌는 혼란에 빠진다. 슬픈 영화를 보면서 울지 못하게 하거나 재미있는 영화를 보면서 웃지 못하게 하면 악력기를 쥐는 힘이 약해진다. 에너지 소비가 커진다는 말이다. 심리학자 구스타프 융이 페르소나(persona)라 이름 붙인 것처럼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는 사회적 가면을 쓰고 살아가야 하지 않나. 지난밤 부부싸움으로 아직도 화가 덜 풀렸지만 출근길에 만난 직장 동료의 미소에 인상을 찌푸릴 수는 없는 일이고, 취업과 미래에 대한 걱정이 태산이라 하더라도 소개팅에 나가 내내 근심스러운 표정만 짓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니 감정 노동은 또 얼마나 힘들까. 갑질을 하는 진상 고객 앞에서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억누르고 겉으로만 미소를 지어야 하는 일이 잦아지면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언어 능력이 퇴화되며, 번아웃 신드롬이 발생할 확률(파리아넨, 2018)도 높아진다. 백화점 명품 매장에서 일하는 판매 사원이나 땅콩과 같은 위험한 음식을 다뤄야 하는 항공사 승무원도 그렇지만 영화배우나 코미디언과 같은 연예인들도 조금 다른 의미에서 감정 노동에 종사한다고 할 수 있다. 지금 내가 아무리 슬프고 힘들어도 카메라 앞에 서는 순간에는 관객이 원하는 모습으로 변신해야 하지 않는가. 카르페 디엠의 메시지를 가르쳐 준 영원한 키팅 선생님, 영화배우 로빈 윌리엄스부터 갑작스럽게 들려온 안타까운 소식으로 우리 모두를 슬픔에 빠지게 한 설리(최진리)까지 미소를 지은 채로 대중 앞에 서있던 그들은 자신의 아픈 마음을 감추기 위해 남들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슬픔이, 혹은 분노가 절정에 차오르는 순간 아서에게 통제할 수 없는 웃음이 터져 나온다. 아서가 PBA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 난데없는 웃음소리는 영화 속 등장인물들에게 오해와 분노를 유발하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 순간 누구보다 고통받는 사람은 바로 아서 자신이다. 아서가 우울증(depression)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 또한 명백해 보이지 않는가.




환각(hallucination)과 망상(delusion)

앞서도 지적했지만 영화 속에서 아서는 명백하게 환각과 망상의 증상을 보이고 있다. 영화라는 판타지 속에서 주인공이 겪는 환각과 망상이라니. 사실 이야기 구조 자체가 이중적이다 보니 앞서 이야기한 대로 실제 사건(물론 이 것도 정확히는 영화적 판타지의 일부다)과 망상(아서 플렉의 머릿속에서만 벌어지는 일)의 경계는 매우 모호하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아서의 망상인지 알아차리기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아니 우선 환각(hallucination)과 망상(delusion)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방금 분명히 누가 내 이름을 불렀는데...

우리의 뇌는 감각 기관을 통해 들어오는 외부의 세계에 대한 정보를 기반으로 세상을 지각(perception)한다. 달리 표현하자면 우리가 지각하는 외부 세계는 감각 기관(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 등)을 통해 들어온 정보가 신경 회로를 따라 우리 뇌 속에 각각의 감각에 해당하는 감각 피질(sensory cortex)에 의해 처리된 결과물이다. 외부에서 오는 신호뿐만 아니라 우리의 뇌 속에는 눈을 감아도 지금 내 팔다리가 어디에 있고 내가 손가락을 펴고 있는지 굽히고 있는지 지각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고유수용성(proprioception) 감각은 내 몸의 현재 상태를 지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킨다. 젓가락으로 식탁 위의 콩자반을 집을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시각 정보와 고유 수용성 감각을 통합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능력에 손상을 입으면 아주 일상적인 걸음걸이마저 힘들어진다.      


그런데 간혹 뇌는 착각을 일으킨다. 즉 외부에서 오는 자극이 없는데도 마치 뭔가를 본 것처럼, 들은 것처럼 지각하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방금 뭐라 말하지 않았어?" 내 질문에 아내가 빤히 쳐다본다. 딱히 대답하지 않아도 안다. 이상하네, 분명 뭐라고 말을 건 거 같은데. 조용한 사무실에서 누가 내 이름을 부른다. 고개를 들어 두리번거리지만... 아무도 나를 바라보는 이는 없다. 용기를 내 물어본다. "혹시 누가 제 이름 부르지 않았어요?" 뭐지? 혼자 바보가 된 느낌이다.


환각(hallucination)은 외부 세계의 자극(stimulus)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지각이 일어나는 현상이다. 환시(幻視)는 실제 존재하지 않는 사물을 보이는 것으로 착각하는 현상이고 환청(幻聽)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소리를 듣고 있다고 느끼는 현상이다. 그 외에도 환각은 환촉(幻觸, 누가 자꾸 내 팔을 긁는 거 같아), 환미(幻味, 아무것도 안 먹었는데 입에서 자꾸 땅콩버터 맛이 나), 환후(幻嗅, 어디서 자꾸 타는 냄새가 나는 거 같아) 등과 같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사고로 팔이나 다리를 절단한 사람이 잘려나간 팔이나 다리에서 고통을 느끼는 환상 지통(幻想肢痛, phantom limb pain)이라고 하는데, 이 또한 앞서 이야기한 고유수용성 감각이 문제를 일으킬 때 발생한다.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이상하네, 누가 분명히 내 이름을 불렀는데..")해봤을 만큼 일반인들에게도 종종 일어나고, 정신증(psychosis)으로 고통받는 환자에게서도 가장 흔하게 발생하는 환각의 형태가 환청이다. 그중에서도  다른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는 누군가의 말소리를 듣는 경우를 가리켜 언어성 환청(auditory verbal hallucination, AVH)이라고 한다. 언어성 환청을 오랜 기간 동안 연구해온 주디스 포드(Judith M. Ford)에 따르면 "소리의 의식적 지각에 관여하는 조가비핵과 두뇌의 언어영역 사이에 과다 연결이 이루어지는 경우" 환청이 발생한다고 설명(Ford, 2012)한다. 수면을 취하거나 멍을 때리고 있는 경우 우리 뇌에서는 DMN(디폴트 모드 네트워크, 이에 대해서는 필자의 다른 글 https://brunch.co.kr/@kissfmdj/1 참조)이 활성화되는데, 조현병 환자들의 경우 내측 전두엽, 브로카 영역(언어를 구성하는 능력), 조가비핵(언어를 인식), 편도체(감정 조절 및 감정 기억과 관련), 청각 뉴런에서 일반인에 비해 과도한 연결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내측 전두엽에서 일어나는 무의식적인 생각들이 청각 신경 세포들을 자극해 마치 외부에서 들리는 소리인 것처럼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셈이다. 무의식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마음의 소리를 누군가 내 귀에 들려주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환각이 왜, 어떻게 발생하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론들이 존재한다. 호주 멜버른 대학의 신경 과학자 쉬티 카푸어(Shitij Kapur)는 환각과 망상을 salience라는 개념으로 설명(Kapur, 2003)한다. Salience의 사전적 의미는 돌출(突出), 혹은 두드러지게 부각(浮刻)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돌출'이나 '부각'으로 번역해서는 정확한 개념을 설명하기가 쉽지 않아 영어 그대로 표기하려고 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내 책상 앞에는 여러 가지 물건들이 복잡하게 널려 있다. 하지만 나는 오른쪽 상단에 있는 민트색 조그만 선물 상자를 쉽게 구별해낼 수 있고, 어렵지 않게 왼쪽에 있는 책을 구별해서 집을 수 있을 수 있다. 이렇게 우리는 배경(background)을 이루는 주위 환경에서 특정 자극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고 이러한 능력을 가리키는 개념이 salience다. 그런데 만일 감각을 통해 들어와 머릿속에 재현된 다양한 정보(internal representations) 속에서 특정 자극을 구별하는 능력에 문제가 생긴다면? 지난밤 영화에서 본 CIA 첩보 요원의 모습이 마치 AR(증강 현실)처럼 우리 집 소파에 앉아있는 것처럼 보인다면? 친구가 내 험담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걱정하는 속 마음이 내 귀에 실제로 나를 비난하는 친구의 목소리로 들리는 일이 벌어진다면? 카푸어 교수는 그래서 환각이란 우리 머릿속에 재현된 감각 정보의 일탈된(aberrant) salience가 불러오는 직접적인 경험(direct experience)을 반영한다고 정의 내린다. 엉뚱한 정보들이 튀어나와 내 머릿속 의식 세계의 주인공이 되는 셈이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의 강웅구 교수는 신경 전달 물질 도파민에 의해 매개되는 신호는 정보의 내용 자체보다 정보가 처리되는 맥락을 담고 있다고 설명(강웅구, 2011)하는데, 도파민은 자극의 구체적 내용과 관계없이 어떤 자극이 우선적으로 처리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심리적 중요성(salience)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도파민은 감각 기관을 통해 들어오는 외부 세계의 신호와 뇌 속에 저장된 기억의 요소들 중 어떤 것이 중요하고 어떤 것을 먼저 처리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데 영향을 미치는 심리적 중요성(salience)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만일 도파민 분비 체계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래서 엉뚱한 생각이나 무의식 속 감각 기억들이 시도 때도 없이 소환돼 머릿속을 지배한다면?


분명히 누군가 내 뒤에 있는 것 같아!

산소통의 도움 없이 에베레스트산을 최초로 단독 등반한 산악인 라인홀트 메스너는 셀파와 둘이 히말라야 능선을 오르던 중 갑자기 제3의 인물이 자신 뒤를 따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자신의 몇 발자국 뒤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누군가가 뒤를 따르고 있다고 느꼈고, 그는 아주 분명히 그 사람의 존재를 확신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제3의 인물 현상(third man phenomenon, 혹은 'feeling of presence', FoP라고 한다)이다. 메스너뿐만 아니라 저산소증을 겪는 산악인들, 남극과 같은 오지를 탐험하는 이들에게서 종종 발생한다고 한다.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서 다큐멘터리 감독 '이은정'이 세상을 떠난 연인 '홍대'가 마치 곁에 있는 것처럼 느끼고 대화를 나누는 모습, 드라마 <위대한 쇼>에서 방송 작가 '정수현'이 백화점 붕괴 사고로 세상을 떠난 자신의 동생과 함께 있는 것처럼 느끼는 모습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사랑하는 이를 먼저 보낸 사람들의 경우 약 50%가 이러한 현상을 경험(Gazzaniga, 2018)한다고 하니 이게 그리 드문 일도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망상(delusion)은? 임상심리학에서 망상은 '현실과 충돌하는 잘못된 믿음(false beliefs that conflic with reality)'이라 정의 내릴 수 있다. 앞서 카푸어 교수는 salience의 개념을 통해 환각과 망상을 구별하고 있는데, 환각이 "우리 머릿속에 재현된 감각 정보의 일탈된(aberrant) salience가 불러오는 직접적인 경험(direct experience)을 반영"하고 있다면, 망상은 "일탈된 sailence의 경험을 설명하기 위한 인지적인 노력의 결과"라고 정리한다.


우리의 뇌는 외부에서 오는 감각 신호들을 해석하고 의도를 파악하고 대처하도록 진화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직장 동료가 오른손을 내미는 것을 보면 이게 나에게 주먹을 날리려는 건지 악수를 하자는 건지 쉽게 알아챌 수 있다. 정신없이 일을 하고 있는데 "밥 먹어~" 아내의 목소리가 들리면 잠시 잊고 있던 감각이 살아난다. 아 배가 고프구나, 저녁 먹을 시간이네?


그런데 남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이 내 곁에 자꾸 나타난다면? 아무도 없는 것 같은데 누군가의 말소리가 자꾸 들린다면? 텅 빈 사무실에서 누군가 자꾸 뒤에서 지켜보는 느낌이 든다면? 우리의 뇌는 혼란에 빠진다. 이렇게 잘못된 감각 정보로 인한 경험(sailence)이 자꾸 발생하면 우리 뇌는 이런 현상을 해석하고 이해하기 위해 애를 쓸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망상, 즉 잘못된 믿음이다. 아니 salience의 맥락에서는 잘못된 해석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너무 많이 돌아온 것 같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자. 외톨이 아서 플렉. 가상의 도시 '고담'은 빈부의 격차에 따라 생활권이 나눠진, 그래서 범죄와 열악한 생활환경으로 슬럼화 된 현실을 반영한다. 아서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야 했고 거리에선 아이들에게 이유 없는 폭력에 시달려야 했다. 그런데 우연히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싱글맘 소피가 말을 건넨다. 소피는 아서에게 옅은 미소마저 건넨다. 그리고 소피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아서. 그러나 소피와 함께한 모든 순간들은 모두 아서의 망상이었다! 그리고 아서는 소피를 죽이지 않았다. 그 마저도 망상이었다. 아서가 정신 병원에 오랜 기간 입원했다는 점, 그리고 아서가 보이는 망상, 정서적 장애 등으로 미루어 아서가 조현병을 앓고 있다는 추정은 무리해 보이지 않는다.

 



조현(調絃)병; 머릿속 음정이 안 맞아

환각과 망상은 조현병(schizophrenia) 환자에게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정신증(psychosis) 증상이다. 우선 조현병이란 명칭에 대해 좀 살펴보자. 정신증(psychosis)에 대해 최초로 과학적인 이론을 정립한 이는 근대정신의학의 창시자로 일컫어지는 에밀 크레펠린(Emil Kraepelin)이다. 크레펠린은 치매(dementia)와 유사한 증상이 이른 나이에 발병한다고 여겨서 '조발성 치매(dementia praecox)'라고 이름 붙였다. Schizophrenia란 명칭은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 유진 브로일러(Eugene Bleuler)가 고안해낸 것인데, 어원을 따져 보면 마음(정신, phren)이 분리(schizo, splitted)되었다는 뜻이다. 아직도 조현병보다 정신분열증이라는 말이 더 친숙할 수도 있겠다. 2011년 대한의사협회에서는 기존에 사용하던 정신분열증이란 병명 대신에 조현병이란 신조어로 개정했다. 정신분열증이란 말이 주는 부정적인 어감과 사회적 편견을 해소하기 위한 차원에서였다고 한다. 조현(調絃)이란 악기의 현(바이올린이나 기타의 줄,  string)을 조율(음정을 맞추다)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조현병이란 지각과 사고의 과정이 적절히 조율되지 않는 증상을 보인다는 뜻이다. 일본은 우리보다 앞선 1999년 기존에 사용하던 정신분열병이란 명칭을 통합 장애(intergration disorder)로 바꿨다.  


조현병의 영어 표현은 schizophrenia다. 영어 표현을 우리말로 그대로 옮기면 정신분열증에 더 가깝다. 사실 schizophrenia, 즉 정신분열증이란 표현 자체가 혼란을 일으키는 측면이 없지 않다. '마음(정신)이 분열'된다는 어원 상의 뜻만을 놓고 보면 해리성 정체감 장애(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 이하 DID)로 오해하기 딱 좋은 표현인 셈이다. 조현병은 DID가 아니다. DID는 흔히 이중인격, 다중인격 장애라고도 하는데 정신적 충격이나 외상으로 인해 해리(dissociation) 현상이 일어나 한 사람이 마치 두 명 이상의 인격을 지닌 것처럼 행동하는 정신적인 장애를 가리킨다. 우리나라에서 <23 아이덴티티>라는 (영화 제목이 내용을 스포 하는... 필요 이상으로 친절한) 제목으로 개봉했던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Split>란 영화 속 주인공은 무려 23가지 인격체로 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드라마 <킬 미, 힐 미> 속 주인공 역할을 맡은 지성은 여자인 '나나'라는 캐릭터를 포함해 7개의 서로 다른 인격체로 빙의하는 열연을 펼치기도 했는데, 이 역시 DID를 극화한 케이스다.


Schizophrenia, 정신분열증이란 명칭은 앞서 지적한 대로 사람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아니,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낙인 효과(social stigma)다. 마치 소에 낙인을 찍듯이 정신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쏟아지는 편견과 달갑지 않은 시선은 이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이중, 삼중의 고통을 안겨준다. 영화 속 아서의 노트에 적힌 글귀는 이렇다.  

영화 <조커> 속 아서의 노트


"The worst part about having a mental illness is that people expect you to behave as if you DON'T" "정신 질환이 제일 힘든 점은 사람들이 당신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행동하길 기대한다는 사실이다" 아서는 자신의 정신 질환에 대해 스스로 자각을 하고 있다. 조현병으로 고통받는 이들 중 상당수가 사실 병식(insight), 즉 자신이 병을 앓고 있다는 인식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아서는 자신이 정신 질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사회복지사와 상담을 나누며 자신이 더 이상 약을 받을 수 없게 된다는 사실에 불안함을 느끼고, 자신을 대하는 사람들의 시선에 대해서도 고통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자신의 일기에 써 내려가는 모습에서도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영화의 번역가는 또 사고를 친다. 원래 문장의 주어를 바꿔버린 것이다. 정신 질환이 제일 나쁜 점이 "사람들 앞에서 아닌 척해야 한다는 거다"라고. 원 문장의 주어는 사람들(peolpe)이다. 사람들의 기대(expect)와 시선에 중심이 맞춰져 있다. 그런데 우리말 번역은 주어가 아서다. 아서의 행동(아닌 척 하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단 말이다. 아서가 고통을 느끼는 것은 정신 질환을 가진 이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기대와 시선이 아닌가?  


환각과 망상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일생에서 한 번쯤은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이다. 저명한 신경 과학자 마이클 가자니가는 조현병을 "salience syndrome"으로 새롭게 해석하려는 움직임에 주목한다. 신문 기사 속의 사진의 주인공이 갑자기 자신을 노려보거나, 길 가의 바위가 갑자기 자기에게 날아오는 것처럼 느껴지는 심리적 주목도(salience)의 변화, 그리고 이러한 변화를 해석하려는 인지적인 노력이 조현병의 증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조금씩 다르다. 키, 몸무게, 머리 색깔, 신발 사이즈와 같이 모든 신체적 특징이 나와 완벽하게 똑같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성격이나 마음도 천차만별이다. 웃음이 인색한 사람이 있고, 늘 싱글벙글 잘 웃는 사람이 있다. 너무 예민해서 조금이라도 지저분해지면 참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아무리 어질러진 공간이라 해도 눈 하나 까딱 안 하는 사람도 있다. 한 모금만 마시고도 포도의 품종과 자라난 지역까지 알아맞히는 뛰어난 미각을 지닌 사람이 있고, 모든 술은 그저 똑같이 쓴 맛이라 느끼는 사람도 있다. 세상엔 이수근도 있고 서장훈도 있지만 어느 한쪽이 좋고 나쁜 건 아니다. 우리는 모두 다양한  스펙트럼의 중간, 어느 사이에 있을 뿐이다. 똑같이 겨울 산행을 다녀와도 누군가는 멀쩡하고 또 누군가는 감기에 걸리는 것처럼 똑같이 이별의 슬픔을 겪어도 어떤 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반면 또 다른 이는 우울증으로 오랜 시간 힘들어하기도 한다. 생각이 아주 단순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서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고 생각과 감정의 조율이 잘 안 돼서 고통받는 사람도 있을 뿐이다.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은 뿔 달린 도깨비가 아니다.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상처 받기 쉬운 마음을 지니고 있거나, 두뇌의 신경 회로들 간 연결망에 조금 문제가 있을 뿐이다. 감기에 걸리거나 팔이 부러졌을 때처럼 제 때 치료를 받고 적절한 도움을 받으면 된다.  매우 중요한 이야기를 하나 더 하고 싶다. 


폭력성을 정신 장애, 조현병의 결과물로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 조현병과 폭력성에 관한 연구들을 종합한 웨링과 카펜터에 따르면 조현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범죄자로 체포되는 경우보다 범죄의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14배 이상 많다(Wehring, H. J., & Carpenter, W. T., 2011)고 한다. 또 다른 연구에 의하면 약물을 남용하는 조현병 환자와 조현병이 없지만 약물을 남용하는 사람들 간에 범죄율에 있어서도 차이가 없다고 한다.





Nature vs. Nurture : 본성인가? 아니면 양육(환경)인가?

어찌 보면 인간의 본성, 그 자체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질문은 오랜 시간 철학자들과 심리학자들을 괴롭혀 왔다. 한쪽 극단에는 고대 그리스의 스토아학파 철학자들로부터 빈 서판(tabula rasa, the blake slate)을 주장한 17세기 철학자 존 로크(John Locke), 그리고 20세기 초반 행동주의 심리학이 자리 잡고 있다. 열두명의 건강한 갓난아이를 주면 의사와 교수부터 거지와 도둑까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다 만들 수 있다고 자신한 이는 행동주의 심리학자 제임스 왓슨(James Watson)이다. 왓슨이 살아있다면 갓난아기 아서 플렉을 주고 조커가 아닌 배트맨을 만들어달라고 해보고 싶다. 그런가 하면 반대편 진영을 거슬러 올라가면 만날 수 있는 생각이 성선설과 성악설이다. 아이를 키워보면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수시로 바뀐다. 손가락을 입에 물고 천사처럼 잠들어있는 갓난아이를 보면 성선설이 맞지 싶다가도 같은 아이가 7살이 되고 중2가 되면 인간의 본성은 원래 악한 게 아닐까 고민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조커의 탄생은 개인의 문제인가? 사회와 환경의 영향인가?

후생유전학(epigenetics)은 DNA를 통해 부모에게 물려받은 우리의 유전자가 우리의 삶 속에서, 살아가는 환경 속에서 어떻게 발현하는가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일란성쌍둥이(monozygotic twins)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DNA는 동일하다. 일란성쌍둥이들 사이에 외모나 심리적 특질, 혹은 유전의 영향을 받는 질병이 동시에 발현하는 비율을 가리켜 일치율(concordance rate)이라고 한다. 만일 일란성쌍둥이 형제 중 한 명이 조현병이 발병했는데, 다른 한 명이 조현병 증상을 보일 확률, 그러니까 일치율은 (연구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략 40-50% 정도다. 달리 풀어 이야기하면 똑같이 조현병이 발병할 수 있는 유전적인 소인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하더라도 두 명 중 한 명은 발병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리고 지난 30년간의 결과를 종합해보면 조현병이 발병한다고 하더라도 그중 25%는 완치됐고, 35%는 독립적인 사회생활이 가능한 수준까지 치료가 진척을 보였다고 한다. 물론 적절한 치료와 지원이 뒷받침이 된다는 사실을 전제로 말이다.


조현병의 원인이 완벽하게 밝혀졌다고 보기는 힘들다. 하지만 조현병이 태내에서 혹은 아동기와 청소년기 두뇌 발달(brain development) 과정에서의 문제점들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충분한 과학적 증거가 쌓여있다. 그리고 조현병의 발병 시기가 비교적 일정하다는 점(남자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중반, 여자는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에서 조현병을 신경 발달 장애(neurodevelopmental disorder)의 차원에서 바라보는 관점도 폭넓은 지지를 얻고 있다. 관련된 여러 연구들에 따르면 도시에서 자라고, 사회적으로 고립되거나, 사회경제적 약자 계층에 속한 경우, 청소년기에 중독성 약물에 노출되는 경우 발병 위험이 더 커진다고 한다. 만일 아서 플렉이 영화 속과 전혀 다른 환경 속에서 유복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면? 정신 질환이 발병했다고 하더라도 적절한 약물치료와 상담 치료를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었다면?  


아서가 악의 화신, 살인마 조커로. 이것은 정신 질환을 극복하지 못한 개인의 문제일까? 아니면 최소한의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기회마저 박탈당하고 이유 없는 폭력과 비난에 시달려야 했던 아서가 처한 환경의 탓일까? 조커의 탄생, 그 원인에 대한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영화를 보는 관점을 양극단으로 몰고 갈 수 있다. 미친놈이 나쁜 놈이 되는 이야기라고? 그냥 아서가 미쳐서라고? 그렇다면 영화의 배경이 되는 고담시와 토마스 웨인(브루스 웨인, 즉 배트맨의 아버지), 마지막 피에로 분장을 한 군중들의 시위와 같은 영화 속 수많은 장치들이 휴지 조각이 되어버린다. 그렇다고 모든 원인을 신자유주의(neoliberalism)에 내재한 사회적 갈등이 응집된 상징적인 공간인 고담시의 문제로 환원하면 아서 플렉의 내면을 둘러싼 갈등과 호아킨 피닉스의 감정 연기의 의미가 사라진다. 영화는 직접적으로 어느 한쪽의 손을 들지 않는다. 동시에 절묘하게 자리 잡은 중간 지점에서 우리에게 양쪽 모두에 대한 고민거리를 안겨준다. 적절한 치료와 관심의 손길이 있었다면, 폭력이 난무하는 고담시가 아니었다면, 살인마 조커의 탄생을 막을 수 있었을까? 쉽게 답을 내리기 힘들다. 점점 고담시를 닮아가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 지금 세상 어딘가에서 또 다른 조커가 탄생하고 있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 'Joker' draws a direct connection between mental illness and violence - Insider                

https://www.insider.com/joaquin-phoenix-joker-problematic-connects-mental-illness-and-violence-2019-10


** 'Joker': What's Real and What's a Not in the Movie? | Hollywood Reporter                  

'Joker,' an Uneasy Embrace of Comics and an Ambiguous Meaning

https://www.hollywoodreporter.com/heat-vision/joker-ambiguous-meaning-comic-book-references-explained-1245680


*** https://www.insider.com/what-joker-gets-wrong-about-mental-illness-2019-10


**** https://www.indiewire.com/video/todd-phillips-cut-zazie-beetz-joker-scene-fate-1202187212/



<참고 문헌>

프란카 파리아넨(2018). <나의 뇌는 나보다 잘났다> (을유문화사)


# 언어성 환각에 대해서는 아래 두 가지 자료 참조

Ford, J. M. et al. (2012). Neurophysiological studies of auditory verbal hallucinations. Schizophrenia bulletin, 38(4), 715–723. doi:10.1093/schbul/sbs009

아닐 아난타스와미 (2017). <나는 죽었다고 말하는 남자> (더퀘스트)


Kapur, S. (2003). Psychosis as a state of aberrant salience: a framework linking biology, phenomenology, and pharmacology in schizophrenia. Am J Psychiatry. 2003 Jan;160(1):13-23.


Gazzaniga, M. (2018). The Consciousness Instinct.


# 폭력성과 조현병의 관련성에 관해서는

Wehring, H. J., & Carpenter, W. T. (2011). Violence and schizophrenia. Schizophrenia bulletin, 37(5), 877–878. doi:10.1093/schbul/sbr094


# 조현병의 concordance rate에 관해서는

Gejman, P. V., Sanders, A. R., & Duan, J. (2010). The role of genetics in the etiology of schizophrenia. The Psychiatric clinics of North America, 33(1), 35–66. doi:10.1016/j.psc.2009.12.003


# 조현병의 완치율에 관한 데이터는 아래를 참조함

http://www.schizophrenia.com/szfacts.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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