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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휘 Oct 02. 2019

Once upon a time in Manson..

타란티노가 부활시킨 영화 속 맨슨 패밀리 이야기

[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라고 분명히 경고했습니다. 영화 예매를 하고 상영 날짜를 기다리는 분들이라면 영화를 보고 나서 나중에 읽어보시라고 말해주는 게 영화를 먼저 본 사람의 예의이기는 하나... 혹시 영화를 보고 나서 이게 대체 뭐가 극적인 반전인지 알 수 없다 괴로워하는 분들이라거나 영화를 보기 전에 영화의 배경이 되는 사건을 미리 다 찾아보고 영화를 보는 편을 즐기는 (저와 같은) 분들이라면 이 글은 조금 도움이 될 거 같기도 합니다. 영화 결말에 대한 진짜 스포일러가 등장하기 전에 다시 한번 경고를 드리죠. 그전까지 이야기는 어찌 보면 영화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 알아두면 좋은 배경 지식이 될 수도 있겠네요. (표지 이미지 출처는 Esquire)


<황혼에서 새벽까지(From Dusk Till Dawn)>와 <트루 로맨스(True Romance)>의 시나리오를 쓰고, <저수지의 개들(Reservoir Dogs>부터 시작해서 <킬 빌(Kill Bill)> 시리즈,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Inglourious Basterds) 등등, 그 누구보다 자신만의 독특한 색깔을 가진 영화감독 쿠엔틴 타란티노(Quentin Tarantino)의 새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1960년대 후반 미국의 모습과 정서를 완벽하게 재현해냅니다. 게다가 같은 스크린 안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브래드 피트가 불꽃 티는 열연을 펼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니! 그런데 말입니다... 불친절하기 짝이 없는 타란티노는 어찌 보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이라고 할 수도 있는 인물을 스치듯 슬쩍 보여주고 지나가버립니다. 다 알고 있는 이야기려니 하고 배경 설명도 해주지 않습니다. 2시간 반이 넘는 러닝 타임(161분이나 되지만 다행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나갑니다) 속에 숨어 있는 내러티브의 주인공은 따로 있었으니 그가 바로 찰스 맨슨입니다.   

영화 속에 잠깐 등장하는 찰스 맨슨의 모습 : 출처 rogerbert.com


챨스 맨슨(Charles Manson)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연쇄 살인마(serial killer). 그런데 막상 본인은 그 어느 누구도 직접 살해를 한 적이 없었습니다. 자신을 따르는 젊은이들, 이른바 맨슨 패밀리(Manson Famliy)에게 살인을 교사한 혐의로 맨슨은 1971년 일급 살인죄(first-degree murder)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습니다. 그런데 1972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사형제도가 폐지되면서 맨슨은 운 좋게 사형을 모면하게 되죠. 이후 맨슨은 감옥에서 평생을 보내다가 2017년 83세로 생을 마감합니다. 찰스 맨슨을 이해하려면 잠시 그 배경이 되는 1960년대 후반 미국의 시대상을 조금 들여다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쉽게 끝낼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월남전은 끝이 보이지 않는 구렁텅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무려 20만 명에 가까운 병사를 보내고도 미국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죠. 베트남과 미국, 양쪽의 희생은 점점 커져 가고 있었고 미국 내에서는 반전의 목소리가 점점 커져가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닉슨 대통령(1968년 당선되지만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불명예스럽게 대통령 자리에서 쫓겨나게 된 주인공입니다)이라니! 이런 혼돈의 소용돌이에서 기존의 정치 질서와 소비 지상주의 문화에 반기를 든 젊은이들은 한 손에는 꽃(실제 당시 이런 움직임을 flower power라고 부르기도 합니다)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기타를 들고 반전과 평화, 사랑을 노래하며 일종의 반(체제) 문화(counter-culture)라 할 수 있는 히피 문화(hippie culture)에 빠져들게 됩니다.


히피 문화의 중심지는 미국 서부의 샌프란시코였습니다. 스캇 맥킨지의 노래 첫 소절처럼 그곳에 가면 "꼭 머리에 꽃을 달아야 하는(If you’re going to San Fracisco, be sure to wear some flowers in your head)" 곳, 샌프란시스코. 절도 등의 범죄로 감옥을 드나들던 챨스 맨슨은 바로 그 샌프란시스코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사상을 전파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히피 문화에 빠져 있던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그를 추종하게 되죠.  대학을 나와 도서관 사서를 하던 메리 브루너(Mary Brunner)와 같은 이들이 비틀스 음악에 심취해 뮤지션을 꿈꾸던 좀도둑 맨슨을 숭배하며 그를 따라나선 것입니다.


이후 맨슨은 자신을 따르는 맨슨 패밀리를 이끌고 LA 근교의 한 농장(Spahn Ranch)으로 이주하여 집단으로 거주하며 살아갑니다. 네, 바로 영화 속에서 브래드 피트가 히치하이커 '푸시캣(pussycat)'을 따라서 방문했던 그곳입니다. 마리화나와 LSD(환각제의 일종)에 취한 추종자들에게 맨슨은 자신이 사람의 아들(The Son of Man, 성경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이라 주장합니다. 무자비한 인종 전쟁(racist war)이 벌어지고 흑인 이슬람교도(black Muslims)와 자신을 따르는 이들 (맨슨 패밀리)를 제외한 모든 인류가 멸망하는 종말, 헬터 스켈터(Helter Skelter, 비틀스의 노래 제목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맨슨은 비틀스의 노래가 자신의 계시를 노래로 선포한다고 주장했습니다)가 온다, 이것이 일종의 맨슨교 교리였던 것입니다.

챨스 맨슨의 실제 모습 :  사진출처 LA Times


자신의 손에는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7명의 목숨을 앗아간 연쇄 살인범 챨스 맨슨. 그리고 그의 명령을 따라 끔찍한 살인극을 벌인 맨슨 패밀리. 이 사건은 미국 사회에 충격을 안겨주게 됩니다. 그리고 그 영향력 또한 어마어마했습니다 맨슨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만 수십 편이 만들어졌고, 대중문화에서 묘사된 그의 모습은 나열하기 조차 힘들 정도입니다. 기괴한 분장과 파격적인 음악으로 큰 인기를 모았던 미국의 뮤지션 브라이언 워너(Brian Hugh Warner)의 예명(stage name)이자 자신이 이끄는 밴드의 이름은 마릴린 맨슨(Marilyn Manson)입니다. 아래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은 그로테스크한 메이크업을 하고 대중 앞에 등장해서 더 유명해지기도 한 이 뮤지션은 자신의 예명을 미국 대중문화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두 명에게서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합니다. 그 두 명은 다름 아닌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와 찰스 맨슨(Charles Manson)입니다.

뮤지션 마릴린 맨슨(Marilyn Manson) : 사진출처 dazed.com


영화 <세븐(Seven)>과 <파이트 클럽(Fight Club)>, 미드 <하우스 오브 카드(House of Cards)> 등을 연출한 거장 데이비드 핀처(David Fincher)가 제작과 연출에 참여한 넷플릭스의 드라마 <마인드 헌터(Mindhunter)>. FBI의 행동 과학 수사부(Behavioral Science Unit)를 만들고 연쇄 살인범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며 이른바 '프로파일링' 기법을 도입하게 된 계기를 만든 전직 FBI 요원 존 더글라스(John Douglas)의 실화를 담은 동명의 책(Mindhunter: Inside the FBI's Elite Serial Crime Unit)을 바탕으로 제작된 드라마입니다. 드라마 속에 나오는 범죄자들은 모두 실제 인물입니다. 이 드라마 속에서 맨슨은 쉴 새 없이 언급됩니다. 그리고 시즌 2의 5번째 에피소드에 드디어 챨스 맨슨의 인터뷰 장면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드라마에는 맨슨 패밀리의 핵심 멤버로 실제 살인을 저질렀던 챨스 왓슨(Charles 'Tex' Watson)의 인터뷰도 나옵니다. 맨슨 패밀리 안에서 '텍스(Tex)'라고 불렸던 그는 타란티노의 영화 속에서도 비중 있게 등장합니다. 흥미로운 사실 한 가지.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인 인 할리우드>와 <마인드 헌터> 모두 같은 배우((Damon Herriman)가 찰스 맨슨의 역할을 맡았습니다!

왼쪽은 <마인드 헌터> 속 맨슨, 오른쪽은 영화에 등장하는 맨슨 : 출처 Entertainment Weekely


희대의 연쇄 살인범 챨스 맨슨과 그를 따르던 맨슨 패밀리가 벌인 범죄의 실화를 모르는 상태에서 영화를 보면 영화의 결말은 조금 생뚱맞게 다가옵니다. 영화에서 배우 마고 로비(Margot Robbie)가 맡은 역할은 영화배우 샤론 테이트(Sharon Tate), 실존 인물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맨슨 패밀리가 저지른 끔찍한 살인 사건의 피해자였습니다. 1969년 8월 맨슨 패밀리에 의해 살해당한 4명의 피해자 중 한 명이었던 테이트는 당시 26살, 뱃속의 아이는 8개월이었습니다. 전설과도 같은 공포 영화로 찬사를 받았던 영화 <악마의 씨(Rosemary Baby)>, 잭 니콜슨이 주연을 맡았던 영화 <차이나타운(China Town)> 등으로 명성을 떨쳤던  영화감독 로만 폴란스키(Roman Polanski)가 샤론 테이트의 남편이었습니다. 살해당할 당시 테이트는 폴란스키의 아들을

왼쪽은 샤론 테이트, 오른쪽은 샤론 역할을 맡은 마고 로비 : 사진 출처 mamamia.com

임신하고 있었고요. 사건이 벌어질 당시 영화 촬영차 유럽을 방문 중이었던 로만 폴란스키는 불행을 피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영화의 주인공 릭 달튼(디카프리오)이 사는 집이 바로 실제 살인 사건이 벌어진 폴란스키 감독의 바로 옆 집이었다는 것이 영화 속 설정이죠. 여담이지만 끔찍한 일이 발생한  1969년 8월 8일 당일 파티에 초대받은 이들 중에는 뮤지션 퀸시 존스(Quincy Jones)와 영화배우 스티브 맥퀸(Steve Mcqueen)도 있었다고 합니다. 둘 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이 날  모임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어찌 보면 그 덕분에 마이클 잭슨의 '빌리 진(Billy Jean, 퀸시 존스가 제작에 참여한 곡)'과 영화 <빠삐용>(1973년 스티브 맥퀸이 주연을 맡았던 영화)이 탄생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자 이제 진짜 스포일러입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 그러니까 부스(브래드 피트)가 범행을 저지르기 위해 찾아온 맨슨 패밀리 일당과 사투를 벌이는 동안 샤론과 함께 파티를 즐기고 있었던 4명도 모두 실존 인물입니다. 테이트의 전 애인이자 헤어 스타일리스트였던 제이 세브링(Jay Sebring), 커피 회사 <Folgers> 창업주의 딸 아비가일 폴저스(Abigail Folgers)와 그녀의 애인 등이 함께 있었습니다. 실제 벌어진 일대로라면 맨슨 패밀리 일당, 텍스(Charles 'Tex' Watson)와 수잔(Susan Atkins), 파트리샤(Patricia Krenwinkel)는 폴란스키 감독의 집에 쳐들어가 테이트를 포함해 5명을 끔찍하게 살해하게 됩니다. "최대한 끔찍하게 살해하라"라는 챨스 맨슨의 명령을 받은 이들은 아이를 임신하고 있으니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하던 테이트를 무려 16차례 칼로 찔러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만행을 저지릅니다. 그리고 범행 장소였던 집의 벽에다가 "돼지들(pigs)"이라고 낙서를 남기고 자리를 떠나죠. 실제 벌어진 일은 이러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순간 타란티노 감독이 관객의 뒤통수를 칩니다. 반전입니다. 픽션과 실화, 실존 인물(테이트, 찰스 맨슨과 맨슨 패밀리, 브루스 리, 스티브 맥퀸 등)과 가공인물(릭 달튼(디카프리오)과 클리프 부스(브래드 피트) 사이에서 교묘하게 줄타기를 하며 곧이어 벌어지게 될 끔찍한 살인 사건을 숨죽여 기다리던 관객에게 예상치 못한 결말을 선사한 것이죠. 폴란스키의 집에 찾아가 범행을 저지르려던 맨슨 패밀리 일당이 길을 잘 못 찾아 엉뚱하게 달튼의 집을 방문합니다. 술에 취한 달튼이 그들에게 욕을 하며 문전박대하자 맨슨 패밀리 일당은 폴란스키의 집이 아니라 달튼의 집을 공격하기로 계획을 변경한 것이죠. 번지수를 잘못 찾은 이들은 부르스 리를 단번에 제압해버린 스턴트맨 부스(브래드 피트)와 그의 충견 브랜디, 그리고 달튼의 화염방사기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됩니다. 이를테면 타란티노 감독은 영화를 통해 찰스 맨슨과 맨슨 패밀리에 의한 자행된 끔찍한 살인 사건에 대한 대체 역사(alternate history)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사실 우리에게는 그다지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찰스 맨슨 사건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모르고 영화를 본다면 타란티노가 의도한 '비틀기' 권법의 짜릿함을 제대로 맛보기 힘든 영화가 되는 셈입니다.





찰스 맨슨과 그를 추종하던 맨슨 패밀리의 범죄가 많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실제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 이들은 모두 20대 초반의 젊은 남녀들이었습니다.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전과도 없었고, 대부분 중산층 출신에 그중 일부는 대학 교육까지 받은 이들이, 그저 평범한 젊은이들이었던 이들이 연쇄 살인을 저지르다니. 아무리 자기네들이 추종하는 '교주' 찰스 맨슨이 명령을 내린다고 해도 말입니다. 멀리 미국의 맨슨 패밀리의 이야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말도 안 되는 사이비 종교에 빠져 재산을 탕진하고 가족을 버린 이들의 이야기를 우리는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아니 꼭 맨슨 패밀리와 사이비 종교와 같은 극단적인 사례들이 아니어도 말입니다, 대체 어떻게 '안아키(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와 같은 말도 안 되는 주장에 현혹되어 불행한 일을 겪게 되는지, 인공위성과 달에서 찍은 지구의 사진이 넘쳐나는데도 불구하고 '지구가 평평하다(flat earth theory)'는 주장을 펼치고 이런 허무맹랑한 주장을 따르는 이들이 21세기에까지 존재할 수 있는지(넷플릭스 다큐멘터리 <그래도 지구는 평평하다(Behind the Curve)는 이들의 주장을 담고 있습니다), 아무리 팩트를 들이밀어도 SNS 속 가짜 뉴스는 도무지 사라지지 않는지 정말 이해가 안 됩니다.


사회 심리학(Social Psychology)은 사람들이 어떻게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를 하는 심리학의 한 분야입니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듯이, 우리의 사고와 감정, 행동이 내가 만나는 사람과 내가 속한 집단, 그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의 그림 하나를 볼까요?


자, 처음 표준 카드(Standard Card)를 보여줍니다. 왼쪽의 카드에 선 길이와 가장 비슷한 것을 실험 카드(Test Card)에서 골라보세요. 이걸 대체 왜..? 당연히 1번이죠. 그런데 심리학자들이 속임수를 쓰기 시작합니다. 다섯 명이 실험에 참여했다고 치죠. 실제 아무것도 모르는 불쌍한 우리의 주인공을 빼고 나머지 4명은 심리학자들 편입니다. 첫 번째 내통자가 2번이라 답합니다. 당황한 주인공, 아마도 속으로 "뭐지.. 저 바보는?" 하겠죠? 두 번째 내통자도 2번을 고릅니다. 고민이 시작됩니다. 세 번째, 네 번째 내통자도 2번을 답으로 고릅니다. 자, 이제 주인공 차례. 아무리 들여다봐도 답은 1번이 분명한데.. 앞서 4명과 다른 대답을 내놓아야 한다는 사실에 괴로워하게 됩니다. 많은 이들이 이런 상황 속에서 다른 사람의 의견을 따라가게 됩니다. 1930년대 심리학자 무자퍼 쉐리프(Muzafer Sherif)가 고안해낸 실험이죠. 판단의 기준이 사회적인 압력에 의해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를 잘 보여준 연구를 통해 사회심리학자들은 순응(conformity)의 개념을 주장합니다. 사회적 규범(social norms)과 주변의 압력이 우리의 판단과 선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사실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니까요. 구두쇠 사장님이 등장하는 유명한 중국집 회식 우스갯소리가 있죠. "다들 먹고 싶은 거 마음껏 시켜, 난 짜장면!" 10년 전쯤 만들어졌던 맥카페 광고는 이렇게 보여줍니다. 광고 카피는 "인간은 상황에 의해 지배를 받는다"라고 말하지만, 심리학의 용어를 빌어 표현하자면 "인간의 판단과 선택, 행동은 사회적 압력의 영향력을 피하기 어렵다" 정도로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맥카페 광고 :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jNsD128to6U


사회적 압력의 상황에서 사람들은 과연 어디까지 영향을 받을까? 이 질문에 대한 고민들로부터 출발한 더 악명 높은 실험들도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것 중 하나가 밀그램의 실험(Milgram Experiment)입니다. 예일 대학교의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이 고안해 낸 이 고약한 실험은 다음과 같이 진행됩니다. 3명이 한 팀을 이룹니다. 실험자(Experimenter, E)가 실험에 참가한 교사(Teacher, T)에게 명령을 내립니다. 기억력 테스트를 도와준다고 알고 연구에 참여한 (불쌍한) 교사(T)는 학생(Learner, L)이 문제를 제대로 맞히지 못하면 벌을 내리는 역할을 맡게 됩니다. 전기의자에 앉은 L에게 전기 충격을 가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입니다. 여기에 밀그램의 속임수가 숨어 있습니다. 사실 학생(L)은 미리 실험을 위해 준비된 연기자였다는 사실을 교사(T)는 모릅니다. 학생도 자기처럼 자원해서 연구에 참여했다고 믿고 있는 상황이죠.

밀그램의 실험 ㅣ 출처 : Wikipedia

학생(L)이 문제를 틀릴 때마다 교사(T)는 전기 충격기의 버튼을 눌러야 합니다. 그리고 학생이 전기 충격에 고통받으며 비명을 지르는 소리를 견뎌내야 합니다. 물론 실제 전기 충격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학생(L)은 연기를 하는 것일 뿐이었으니까요. 상황을 더 괴롭게 만들기 위해 학생은 일부러 나이가 지긋한 사람을 선택하고 교사에게 심장질환이 있다는 거짓 정보까지 미리 알려줍니다! 교사가 처벌을 주저하는 분위기를 감지하면 실험자(E)가 명령을 내립니다. "계속하세요(Please continue)" 학생이 문제를 계속 틀릴수록 전기 충격기의 강도는 올라가고 감독관인 실험자가 교사에게 내리는 지시도 강해집니다. "다른 선택은 없습니다. 계속해야만 합니다(You have no other choice, you must go on)"와 같이 말이죠. 진화의 과정 속에서 우리의 뇌 속에 존재하는 거울 뉴런(mirror neuron)은 타인이 고통받고 있는 상황을 지켜보는 이에게 자신이 직접 아픔을 느낄 때와 유사한 고통을 안겨준다고 합니다. (거울 뉴런에 대해서는 조금 뒤에 더 자세히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학생의 비명을 들으며 괴로워하는 참가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아무리 돈을 받고 연구에 참여(한 시간에 4달러, 당시로서는 상당한 금액이라고 하네요)한다고 해도, 눈 앞에서 고통받는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며 계속 전기 충격기의 버튼을 눌러야 할까요? 저라면 어떻게 했을까요?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이라면? 놀랍게도 밀그램의 연구에 참여한 40명 중 65%에 해당하는 26명이 최고 수준의 전기 충격기의 버튼(무려 450 볼트라고 적혀 있는)을 눌렀다고 합니다. 이후에도 이 실험은 여러 번 반복되어 실시되었다고 하는데요, 여러 실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평균 60% 이상이 비명 소리를 참으며 끝까지 임무(?)를 완수했다고 합니다.


밀그램의 실험과 함께 사회 심리학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연구 중에는 스탠퍼드 대학교의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Philip Zimbardo)의 스탠퍼드 감옥 실험(Stanford prison experiment)이 있습니다. 1973년, 짐바르도는 가상의 감옥 만들고 스탠퍼드 대학교의 남학생들을 모집해서 죄수와 교도관 역할을 수행하도록 하는 실험을 고안해냅니다. 연구를 시작하기 전 연구에 참여하는 학생들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는지를 미리 체크했고, 죄수와 교도관은 무작위로 나눠서 역할을 맡기게 됩니다. 그런데 놀라운 현상이 벌어진 것입니다. 심리적으로 안정되고 평범했던 학생들이 교도관 역할을 맡게 되자 점점 폭력적이 되고 가학적인 모습으로 바뀌어 가는 것이었습니다. 동시에 죄수 역할을 맡은 학생들은 무기력해져 저항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2주로 계획되어 있던 실험은 고통을 호소하는 실험 참가자들 덕분에 결국 6일 만에 종료되게 됩니다. 다음의 동영상은 이 실험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더 스탠퍼드 프리즌 엑스페리먼트(The Stanford prison experiment)의 예고편입니다.

영화 <더 스탠퍼드 프리즌 엑스페리먼트> 예고편 : 출처 유튜브




밀그램과 짐바르도의 실험은 우리에게 권위에 대한 '복종(obedience)'의 문제에 대해 고민거리를 안겨 줍니다. 사실 밀그램과 짐바르도와 같은 사회 심리학자들에게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홀로코스트(Holocaust). 600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인류 최악의 비극 홀로코스트. 그런데 홀로코스트의 실제 악역은 명령을 내리고 대중을 선동한 히틀러와 괴벨스(Paul Joseph Goebbels)가 아니라 전장에서, 포로수용소에서 총칼을 들고 가스 체임버에 유태인을 몰아넣은 군인들이었습니다. 홀로 코스트에 가담한 모든 사람들이 처음부터 살인을 밥먹듯이 하는 무시무시한 살인마였을까요?


르완다 내전의 피비린내 나는 학살의 순간, 혹은 킬링 필드의 대학살의 순간,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그저 이웃 부족이었을 뿐이고 같은 마을에 서로 지나치며 인사를 주고받던 이웃이었을 뿐인데, 이들이 갑자기 총칼을 집어 들고 서로를 죽고 죽이는 만행을 저지르다니. 상냥한 이웃이 어느 날 갑자기 총칼을 든 살인마로 변신하다니. 아부 그라이브(Abu Ghraib) 교도소에서 죄수들을 괴롭히고 견디기 힘든 모욕을 준 미군 병사들이 처음부터 사악한 악마들이었을까요?


밀그램은 자신의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의 심리 상태가 홀로코스트의 부역자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저라면, 여러분이라면 어떨까요? 내가 학생에게 전기 충격을 주어야 하는 선생님의 역할을 맡는다면, 모의 감옥 실험에서 교도관 역할을 맡는다면 어떨까요? 아니 어느 날 갑자기 독일군이 돼서 가스 체임버를 작동해야 한다면, 이웃 부족을 죽여야 하는 상황에 놓이다면 어떨까요? 여기 뇌과학이 밝혀낸 약간의 힌트가 있습니다.


잠시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운동회로 돌아가 볼까요? 옆의 반과 경쟁이 벌어지면 갑자기 우리 반을 위해 물불 안 가리고 죽어라 달리게 됩니다. 생각해보면 평소에 각별한 애정이 있던 것도 아닌데, 학급이라는 것도 사실 무작위로 나눠진 것뿐인데 내가 속한 집단은 정의롭고 착한 사람들이고 옆 반은 반칙을 일삼는 나쁜 놈들로 바뀝니다. 실험자들을 랜덤 하게 나눠서 팀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자원을 나눠주도록 하는 실험을 합니다. 처음 만나서 랜덤 하게 나눠진 사람들의 팀일 뿐인데, 어느새 내가 속한 집단(ingroup)에게 더 너그러워지고 다른 사람들의 집단(outgroup)에게는 냉정해집니다. 내가 속한 집단의 사람들이 더 착하고 좋아 보입니다. 옆의 팀 사람들은 나쁜 놈들이 되죠. 이렇게 자기가 속한 집단에 대해 선호(ingroup favoritism)를 보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해 보입니다.  


우리의 뇌에서 내측 전전두 피질(medial prefrontal cortex; mPFC)은 내 주변의 다른 사람들에 대해 생각할 때 주로 활성화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거울 뉴런(mirror neurons)은 타인이 고통받는 모습을 보면 마치 자신이 느끼는 것처럼 고통을 느끼게 하는 역할을 하죠. 거울 뉴런은 우리가 지니는 공감(empathy) 능력을 설명해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거울 뉴런이 작동하는 방식이 놀랍습니다. 내가 속한 집단의 사람들(ingroup)이 고통을 받을 때는 활발하게 작동을 하다가 타인들의 집단(outgroup)이 고통을 받는 모습에는 그 활동이 줄어들게 된다는 사실! 내측 전전두 피질 또한  타인들의 그룹을 관찰할 때는 그 활동이 현저히 떨어진다고 합니다. 연구에 따르면 극단적인 타 집단(extreme outgroup), 그러니까 나랑 전혀 상관없다고 여겨지는 사람들, 이를테면 노숙자(홈리스)나 마약 중독자 등을 바라볼 때는 내측 전전두 피질이 거의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합니다. 좀 잔인하게 표현하면 나랑 극단적으로 다른 집단에 속한 이들을 더 이상 '사람'으로 바라보지 않게 되는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짐바르도가 자신의 실험을 통해 지적한 탈개인화(dehumanize) 현상, 즉 '사람을 더 이상 자신과 같은 사람으로 바라보지 않게 되는 현상'이 어떻게 벌어지는 지를 뇌과학이 보여준 것이죠. (출처 : Gazzaniga et al. (2016). Psychological Science, 5th Edition).


사람과 사람을 나누는 것, 내가 속한 집단과 타인들의 집단을 구별하는 것. 그리고 지금 세상의 모든 불행과 죄악이 타인들의 집단에서 비롯될 것이라는 사악한 생각을 주입하는 것. 차별은 그렇게 악의 씨앗이 됩니다. 나치는 유태인을 지목했고, 르완다에서는 이웃 부족을, 크메르 정권은 이념이 다른 사람들을 나눴습니다. 그렇게 집단이 나눠지고 끊임없이 타 집단에 대한 악의적인 정보들을 제공하게 되면 타 집단에 속한 사람들은 더 이상 사람으로 보이지 않게 되는 지경(탈개인화, dehumanize)에 이르게 되는 것이죠. 인종을 나누고 계층을 나누고 정치적 신념으로 우리 편과 남의 편을 만들고. 차별이란 이렇게 편을 나누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나눠진 차별의 벽 안에서 우리는 모두 나도 모르는 사이 누구나 악마가 될 위험성을 가지고 있는 샘입니다. 짐바르도는 이야기합니다. "선량한 사람들을 망치는 것은 나쁜 사과가 아니라 나쁜 통이라고"


찰스 맨슨은 인종 전쟁이 벌어져 인류가 멸망할 것이라는 생각을 추종자들에게 전했습니다. 그러니 자신들의 집단을 제외한 모든 이들을 죽여야 한다고. 평범한 젊은이들이 그 메시지에 살인마로 변합니다. 그리고 타 집단에 속한 사람들에 대한 증오로 가득 찬 맨슨 패밀리의 눈에는 피해자들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범죄 현장을 떠나며 그들이 남긴 낙서는 "돼지들(pigs)"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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